1955년 만리동


우유 배급이라도 주는지 냄비를 든 어린이들이 몰려나왔고,

일거리를 기다리다 지쳐 수레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물지게로 아슬아슬하게 물을 나르는 소녀 모습 등,
5-60년대 서민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두들 힘들게는 살았지만, 인정이 넘쳤던 시절이다.


1959년 중림동

1960년 마포 현석동

한평생 사진기자로 사신 원로사진가 정범태선생께서 찍은 사진으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정범태사진집/카메라와 함께 한 반세기”에서 옮겼다.




다큐멘터리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집 출간을 겸한 정진호씨의 서울 걷기사진전 개막식이

지난 11일 오후6시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여지 것 '브레송'의 전시 개막식에 여러 차례 참석했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본적도 없거니와,

한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중견다큐멘터리 사진가를 이렇게 많이 만난 적도 없었다.

 

다큐멘터리사진가가 찍은 풍경갤러리 브레송김남진관장이 장기간에 걸쳐 추진한 야심찬 기획전으로,

마지막 주자로 나선 정진호씨의 서울 걷기전시개막식에, 참여 작가는 물론  많은 다큐사진가들이 모인 것이다.

 

이번 기획전에 눈빛출판사이규상씨와 사진평론가 이광수교수가 동참해,

그 성과물인 사진집을 출간하므로서 18개월간의 프로젝트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잘 알려진 현상만 찾는 퍼블릭 다큐멘터리에서 벗어나

일상의 소소한 것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하려는 좋은 시도였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에 불을 지폈다는 점은, 사진사에 남을 일이다.

 

참여작가들의 소개로 시작된 개막식에서 작가들의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힘을 실어준 이광수교수의 격려사와 부인의 통역에 의한 구와바라 시세이선생의 메시지도 있었다.

김남진관장은 사진인을 찾아라는 다음 프로젝트를 안내하기도 했다.

국내작가들을 심층 분석해, 연구 발표하는 전시를 열 차례 열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자리의 하이라이트는 이규상씨의 투사적 멘트였다.

골장터 약장수를 연상케 하는, 울적거리며 뱉은 그의 메시지는 좌중을 웃음판으로 이끌며

긴 여운을 남기게 했기 때문이다. “사진판의 잘못된 가치관과 잘못된 구조를 깨부수자...

 

반평생동안 다큐사진을 해 왔지만, 이토록 가슴 벅찬 날은 없었다.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의 결집과, 그 용트림에 짜릿한 희열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전시작가 정진호씨를 비롯하여 김문호, 김상훈, 김지연, 박병문, 신동필, 이정용, 이한구, 이규철,

최항영씨 등 프로젝트 참여작가는 물론, 엄상빈, 성남훈, 정영신, 임재천, 김제훈, 최연하, 남 준,

이상임, 그리고 일본의 다큐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선생까지 함께했다.


좁은 전시 공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인사 나눌 여유도 없었고, 객석에 케메라를 들이댈 틈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같은 시간에 예정된 인사동사람들의 송년회 때문에 뒤풀이는 놓쳤지만,

큰 위안을 받고 희망을 갖는 보람된 시간이었다.

 

사진,/ 조문호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다큐멘터리 사진가 찍은 풍경사진집이다.

강제욱, 고경대, 고영일, 김문호, 김상훈, 김지연, 김진석, 박병문, 성동훈, 신동필, 이규철,

이정용, 이한구, 임종진, 정진호, 최항영, 하지권씨 등 17명의 작품들과 작업노트가 실려있다.

그리고 김남진, 이광수, 김문호씨가 나눈 대담은 사진가라면 누구나 읽어 볼만한 내용이다.

가격 : 18,000


오는 19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마지막 주자인 정진호씨의 서울 걷기사진전이 열린다.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께서 필름을 장전하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식 없이 살고, 가식 없이 노래한 시인이 천상병시인이다.
그 천진난만한 위인께서 하늘나라로 떠난지도 어언 20여년의 세월이 훌쩍 넘었다.


오늘 따라 선생님이 그토록 간절히 생각나는 건, 또 한해를 보내야하는 인생의 무상함 같은 게 아니라,

선생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결심을 뒤늦게 접어야 하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다.


평생을 아내에게 짐 지우며 살아 왔으나, 이제 한계에 달했다.
온 종일 내년부터 벌일 일거리에 몰두하다보니, 불현 듯 선생님이 그리워졌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60이 넘어 철이 든 것 같다지만, 나는 70을 앞두고 철이 들려니,
더 미련하다. 올해처럼 돈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 적도 별로 없었다.
오죽하면 자칭 사회불만자라고 떠벌리며, 정치와 섞은 사회구조에 악을 쓰며
욕설을 퍼 부었겠는가?


돌이켜 생각하니 꼴리는 데로 잘 살아왔고,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잔잔한 행복들도 가득했다.

30여년 전에는 천상병선생님이 사시던 의정부 댁에 가끔 들린 적이 있었다.
인사동에서 만나면 세금 내라지만, 댁에서는 절대 세금을 받지 않는데다
가족처럼 격식을 가리지 않아 좋았다.


한 여름을 빼고는 내복차림으로 사셨다.
오줌 누는 모습을 보고 뒤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서 비나~ 비나~ 앞에서 찍어야지~ 앞에서 찍어야지~”라며 능청도 잘 떠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너무 땡보셨다.
아무도 선생님에게 술 한 잔 얻어 마신 분이 없을 것 같다.
매번 인사동대폿집에 술을 맡겨두고 드시지만, 한 잔 마시라는 소리 들어 본 적 없다.


"저승에서 만나 뵈면, 그 때는 꼭 얻어 마셔야지..."



86년(인사동 대폿집)과 87년(의정부자택)에 찍은 조문호사진으로,
‘눈빛출판사’의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추모 사진집에서 옮겼다.



늦가을 비가 추적 추적내리는 18일 오후 김정일씨의 ‘기억의 풍경’전이 열리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를 찾았다.
출판사에 들려 그의 사진집에 실린 작품들을 보았기에 나이가 지긋한 사진가인줄 알았는데, 만나보니 엄청 젊었다.
혹시 아버님께서 찍은 사진인가도 생각했으나, 저도 환갑이 되었다는 작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영화배우 남궁원씨 처럼 잘 생겼는데, 잘 생기면 늙지도 않나 생각되었다.

중요한 건 사람도 사람이지만 사진들이 좋았던 것이다.
80년대 초반 경제개발이 시작될 때의 사진으로, 그 때는 우리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해 간 시절이었다.

땅이 파헤쳐지고 오래된 집들이 헐려나갔던 그 당시의 아련한 풍경들이 김정일씨의 렌즈에 고스란히 포착되어 있었다.

난개발로 땅 투기까지 불러일으키며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역사의 현장이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사진들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케 하는 향수나 기록에 머물지 않았다.

기억 안에 잠재되어 있던 문제의식을 살아 꿈틀거리게 함으로, 기록을 뛰어넘는 울림을 안겨준 것이다.

개막식에는 작가 내외를 비롯하여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박재호 대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사진가 엄상빈, 윤한수, 탁기형, 정영신, 김봉규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축사를 한 이규상씨는 젊은 유학파들이 수평전이란 전시로 예술사진 바람을 일으킨 것은

우리나라 사진사에 큰 재앙을 불러 온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일씨 처럼 훌륭한 사진들이 빛을 못 보고 잠들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그때부터 우리나라의 기록사진은 첩에게 쫓겨 난 신세가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큐멘터리사진의 침체로 한국사회사 기록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다.



사진 : 정영신,조문호 / 글 : 조문호























전쟁으로 피폐한 삶을 산 1956년도의 청계천 천막촌 풍경이다.
청계천 어느 지점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추운 겨울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곤궁한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힘들어도 불만조차 털어놓을 수 없다.
환경은 열악하고 살기는 힘들었지만, 서로간의 인정은 더 따뜻했을 것이다.
물질이 풍족해진 요즘이야말로 인정은 메마르고, 사는 게 흉악스럽게 변해버렸다.

옛날에는 단순히 머리만 깎던 이발소가 지금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자정이 넘도록 회전등이 돌아가는 걸 보면, 늦은 시간에도 손님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대개들 발 씻겨 주고 안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춘까지 풀코스로 이루어진다.
이름만 이발소일 뿐이지 사창가나 마찬가지다.
바깥을 지켜보는 CCTV로 경계들을 하지만, 경찰도 단속에 손을 놓은 듯하다.

재미있는 요지경이라, 가끔은 시절을 되돌리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1956년 이해문 선생께서 찍은 사진으로, ‘한국사진의 재발견’(눈빛출판사)에서 옮겼다.




옛날에도 다방이나 빵집 같은 손님 받는 가게들이
나름대로 멋지게 보이려고 생활 용품으로 장식들을 하였답니다.


정범태 선생께서 1958년 북창동에서 찍은 빵집 앞에는 달구지 바퀴가 놓여 있고,
1956년 이해문 선생께서 찍은 '종점다방' 문에는 물지게가 걸려 있습니다.
물 길러 가다 잠시 걸어놓았는지는 모르나 하나의 장식이 되었습니다.

잠시 들려 찐빵도 사먹고 싶고, 다방에 들어가 도라지 위스키에
다방마담과 농담 따먹기도 하고픈 그런 사진입니다.

위의 사진은 '정범태사진집'-카메라와 함께 한 반세기-(눈빛출판사)에서 옮겼고,
아래 사진은 '한국사진의 재발견'(눈빛출판사)에서 옮겼습니다.


 

 

30여 년 동안 사라져가는 서울의 골목풍정을 기록한 김기찬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께서 10주기를 맞는 지난 8월 27일,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란 제목의 책을 펴내며,

중학동에 있는 '한일관'에서 김기찬선생을 추모하는 조촐한 자리를 만들었다.

 

그 자리에는 미망인 최경자여사를 비롯하여 사진가 한정식, 황규태, 이완교, 전민조, 엄상빈, 김보섭, 정영신,

윤한수씨, ‘눈빛’ 편집장 안미숙씨, 한겨레신문 임종업기자 등 생전에 가까운 지인들과 글을 쓴 필자들이 모였다.

안미숙편집장은 인사말에서 “이 책을 지궁스럽게 만들었다”며 잘 쓰지 않는 말부터 끄집어냈다.

이번에 나온 사진 에세이에 김기찬선생께서 ‘지궁스럽다’는 말을 썼는데,

그 뜻이 책을 만든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 것 같다는 것이다.
윤한수씨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마음 쓰는 것이 지극히 정성스럽고 극진한데가 있다“로 찍혀 나왔다.

정말 ‘눈빛출판사’의 이규상, 안미숙 두 내외는 김기찬선생을 지극하다 못해 끔찍히도 모셔왔다.

한정식선생께서도 그의 지극한 마음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규상씨가 “지난 번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사진집이 재판되었을 때,
고인의 무덤까지 사진집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김기찬 사진에세이 '골목을 사랑한 사진가'


 

제본소에서 책 나오기를 안절부절 기다리던 이규상씨가, 뒤늦게 책을 안고 허겁지겁 나타났다.

내 놓은 책들은 금방 구워낸 붕어빵처럼 따끈따끈했다.

10주기에 맞추어 선보이려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그의 지극한 마음이 전해졌다.

그 마음이야 김기찬선생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오래전부터 싹터 온 인간적 정리도 한 몫 한 듯하다.

그 분에게만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진을 위해 그만큼 애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뻔히 안 팔릴 줄 알면서도 기록적 가치만 있으면 무조건 출판하는 그의 뚝심에 모두들 걱정이 대단하지만.

그의 집념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

우리가 그에게 보답할 수 있는 일은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많이 사 보는 방법뿐이다.

결국 스스로를 기름지게 하는 자양분이지만...

 

 

 

책에 실린 김기찬선생의 생전 모습 / 한정식선생께서 찍었다.


 

책을 펼쳐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선생의 주옥같은 사진과 글들이 마치 당시의 상황과 애잔한 마음을 직접 들려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생생했다.
그리고 사진가 한정식선생과 전민조씨는 평소에 지켜 보았던 작가의 따뜻한 인간적 면모를 적었고,

사진가이자 건축가인 윤한수씨는 선생께서 다녔던 골목 골목을 답사하며 사진과 함께 글을 썼다.

사회학교수 김호기씨와 사진평론가 정진국씨, 역사학교수 이광수씨, 한겨레신문 임종업기자,

‘사진책도서관’대표 최종규씨 등 여러 필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김기찬선생의 작가론과 골목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부산대 사회학 교수 윤일성씨의 ‘도시 빈곤에 대한 두가지 시선’

-최민식과 김기찬의 사진연구-란 논문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를 하찮게 여기는, 서양귀신 씬 사진가들은 꼭 읽어야 한다.

“최민식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작가이고 김기찬은 ‘따사로운 온기’의 작가이다.”
그 논문에 쓰인 이 한마디가 양대 다큐멘터리 대가의 성격을 잘 말해 준다.



 

 

 

각설하고, 이야기를 다시 추모 만찬장으로 돌린다.
추모사를 겸한 이규상씨의 인사말과 이완교선생의 추억담 등 고인을 기리는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김기찬선생을 그립게 만들었다. 그토록 골목을 사랑한 분이 어디 있었는가?

 

그리고 어려운 형편에 음식은 얼마나 푸짐하게 차렸는지, 너무 황송스러웠다.

고맙게도 누가 몰래 밥값을 냈으나  계산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짐작컨데 황규태선생께서 내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짐을 들어주고 싶은 따듯한 마음이 이심전심 전해졌다.

이차로 자리를 옮긴 맥주집에는 이규상, 안미숙 내외와 엄상빈, 김보섭, 정영신, 임종업씨가

자리를 함께 했는데, 한 잔 마신김에 좀 과음했다.

뒤늦게 '한겨레신문'의 김봉규씨가 온 것으로 기억되나 카메라에 그의 흔적이 담겨있지 않았다. 너무 취했나?
아무튼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씨의 기개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글 / 조문호

 

 

 

 

 

 

 

 

 

 

 

 

 

 

 

 

 

 

 

 

 

 

 

 

 

 



 

 

‘2015 북경국제사진제’에 참가할 한국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첫 미팅이
지난 18일 오후3시 인사동 ‘귀천’에서 있었다.

그 자리에는 한국사진가들의 참여를 추진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를 비롯하여
기획자인 류은규씨, 다큐사진가 엄상빈, 김보섭, 조문호, 임재천씨 등
모두 6명이 모였다.

 

오는 10월24일부터 11월1일까지 열리는 축제에 다섯명의 국내 작가가 참여하게 되는데,

각각 20여점씩 출품하게 된다고 한다.

류은규씨의 진행 상황을 전해 듣고, 준비할 것들을 챙기기도 했다.
참가할 사진가들의 소통을 위해 엄상빈씨가 통역원을 제공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모임이 끝난 후, 인사동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대낯부터 술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술집으로 내가 이끌어 놓고, 술값은 엄상빈씨가 내 버렸다.
그 술값이 만만 찮을텐데...

사진 : 류은규, 조문호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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