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에서 생선회와 복지리를 잘하는 싼 집을 만났다.

어제 예술활동지원금 결과 보고를 할 줄 몰라 불광동에 있는 스마트협동조합을 찾아갔다.

조합의 오피스아트를 빌려 쓰는 정동지도 그곳에 있었고, 장경호화백도 지원금 신청하러 와 있었다.

서인형이사장께서 자료를 찾아 잘 마무리해 주었는데, 주당 장경호씨를 만났으니 어찌 그냥 올수 있겠는가?

장화백이 알아 낸, 싸고 맛있다는 회집을 따라갔다.

손님 받는 테이블도 너 댓개 뿐인 조그만 횟집이었는데, 주방을 지키고 선 주방장의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다.

먼저 간 이사장이 모듬회와 초밥을 시켜놓았는데, 술상이 그득했다.

 

서이사장은 다른 약속이 있어 계산만 하고 먼저 일어났으나,

나중에 일을 끝낸 정동지도 왔고, 인사동에서 전시 중인 칡뫼 김구도 왔다.

술도 못 마실 놈이 술자리에 끼어 있기가 영 불편했으나, 안주로 시켜놓은 회나 축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회도 맛있지만 붙여 놓은 가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듬회 28,000, 복지리 12,000원 등 시중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일찍부터 마신 장화백은 안주는 손도대지 않고 술만 마셔 혼자 취해버렸다.

늦게 나타난 칡뫼김구 더러 타박 주기만 반복해 슬며시 일어났는데,

장화백이 정동지 먹으라고 복지리까지 포장해주었다.

 

이튿날 복지리를 조금 얻어 먹어보니 맛이 꽤 괜찮았다.

회를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정동지가 좋아해 가끔 이용할 작정인데,

싸고 맛있는 집이라 우리만 알기는 너무 아까웠다.

소문나 자리가 없어 대기할 망정, 생선회를 좋아하는 분에게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주소는 은평구 진흥로1526-1, 상호는 진초밥이다.

 

그리고 개인사무실을 찾는 분은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오피스아트를 활용하시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인터뷰] <새로 본 인사동> 펴낸 김경숙, 김경미 자매

▲ 김경숙 글 ,  김경미 사진 , <Born in Insadong  새로 본 인사동  > 표지

 

"이 집이 바로 종로의 '주택 왕'이라 불리던 정세권씨가 세운 한옥입니다."

인사동 중앙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어느 한옥 카페에 앉아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인사동 전문가답게 술술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최근에 출판한 <새로 본 인사동>의 글을 쓴 김경숙씨의 말이었다. 정세권씨는 그냥 주택사업자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최대 독립운동 단체였던 신간회에 참여해 활동한 독립지사였음을 그는 누누이 강조했다.

필자도 1935년 무렵 빈곤하기 그지없었던 조선어학회 사무실 터를 무상으로 제공한 사실을 알기에 정세권 동상을 인사동이나 북촌, 아니면 최근에 뜨고 있는 익선동에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맞장구를 쳤다.

사진을 찍은 동생 김경미씨는 사진작가답게 연신 사진에 담고 소리에 담느라 분주했다. 인터뷰를 지난 4일은 월요일 저녁이라 사람들은 분주하지 않았지만, 차가운 늦가을 날씨 때문인지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빨랐다.

인사동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자매가 낸 인사동 책이라 더욱 흥미가 갔다. 정세권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서 김경숙씨는 문화정책 전문가답게 인사동 문화정책에 대한 소견을 쏟아냈다.

"인사동과 인접해 있는 북촌, 안국동, 익선동은 일제강점기에 정세권 선생이 지은 한옥밀집지역이었습니다. 북촌은 개발규제 구역으로 묶였다가 한옥보존지구로 지정, 재정비되면서 한옥들이 보존되어 대표 문화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북촌문화센터도 있고, 민간인들의 문화 활동도 활발합니다. 관광객들로 인한 주민 불편 해소를 위해 구청이 '북촌 특별관리지역 지정'도 했습니다. 재개발계획에 묶여 낙후되었던 익선동은 재개발이 무산되자 젊은 개발자들이 들어와 특색 있는 실내장식의 음식점 밀집지라는 콘텐츠를 만들어냈습니다.

반면 인사동은 상가로 개조된 한옥들을 북촌처럼 대표 콘텐츠로 내세울, 전통문화 관련 영업장은 줄었습니다. 역사문화예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문화체육관광부도 참여하는 자문 팀을 구성해서 전통문화 콘텐츠를 보다 다각적으로 구축하고 활용할 방안으로 모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시작된 인사동지구단위계획 개정 용역의 마무리 시점이 다가오는데요. 이 용역 보고서는 개정안이지만 인사동의 미래를 결정할 기초 키잡이입니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청사진이 담기면 좋겠습니다.“

▲ < 새로 본 인사동 > 을 펴낸 자매 김경숙 ( 오른쪽 ),  김경미씨 ,  인사동 한옥 카페에서 .

 

- 저자분의 견해와 <새로 본 인사동> 내용이나 구성을 보면 이 책은 좀 더 심화된 인사동 길라잡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사동은 전통문화의 거리와 한국 문화지구 1호로 지정되면서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곳입니다. 관광객들은 인사동길의 중심도로만 보고 가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사실 한국인이 알아야 할, 그리고 외국인에게 소개하면 좋을 인사동 역사문화의 상당 부분은 중심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들에 대부분 푯돌과 표지판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장소들을 일일이 검색하지 않아도 좀 더 깊이 있고 손쉽게 둘러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역사, 인물, 항일, 교육, 건축, 문화로 나누어 각각의 시간과 공간을 155장의 사진에 담고,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

사진을 찍은 김경미씨는 원래 한문학자로 한문 관련 문화재 유적지 답사와 기록물, 번역 연구 사업을 오래 주도해 오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학교에서 전문 사진작가 수업을 받고 본격적으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작품이라 보여지는 이유가 있었다.

- 책에는 인사동 역사문화의 푯돌과 표지판 소개가 많았습니다. 인사동에서 역사 관련 유적지가 특별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책에 나와 있지만 관광객들에게 어디를 먼저 추천하고 싶으신지요?

"인사동은 대한민국 역사 중심입니다. 태조 때 한양의 지리적 정중앙임을 알리는 푯돌이 인사동에 세워졌지 않습니까? 도화서 등 조선 관청들이 있던 곳이고, 궁들이 지어졌습니다. 큰 자취를 남긴 인물들이 살았고, 일제강점기부터 문화를 이끈 장소들이 있습니다. 최초의 초등학교도 개교했고요. 무엇보다도 인사동은 친일과 항일의 격랑이 공존했던 곳입니다. 탑골공원 외에도 여러 곳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헌종이 승하하자 후궁 경빈 김씨가 궁에서 나와 살았던 곳인 순화궁은 이완용이 살다가 요릿집 태화관이 되었고, 그곳에서 민족대표들이 삼일독립선언을 했습니다. 태화관 터에 놓인 푯돌에는 "도시재개발계획에 따라 건물이 철거케 되매 새집을 짓고 여기에 그 사연을 붙잡아 둔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현장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푯돌로나마 남아 있는 이야기를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 삼일운동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태화관 자리에서 선 김경숙씨

 

찻집 인터뷰가 끝난 뒤 삼일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태화관 자리를 함께 찾았다. 밤이라 그런지 푯돌 이야기를 설명하는 김경숙씨의 의미심장한 말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고, 마치 태화관에서의 그날의 긴박했던 이야기들이 들리는 듯했다.

- 인사동을 자주 찾던 문화예술인들 중에는 아무래도 인사동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회를 피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큰길에는 골동품상, 문방사우 판매점, 고서점, 화랑들이 있고, 골목에는 작은 한옥이 조용히 자리한 인사동은 한 정당의 당사가 들어온 무렵부터 바뀌어갔습니다. 시위하던 이들이 최루탄을 피해 골목으로 피신해 가정집에 숨고, 한옥은 하나씩 음식점이 되었고요. 묵향 그윽하고 문기 가득했던 곳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관광기념품점, 외국 물건과 외국 음식 판매점, 잡화점들이 늘어났습니다. 한복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옷을 대여하는 곳도 좀 있어서 외국 관광객들은 그것을 한국의 전통 복장으로 알고 입고 다닙니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이곳의 문화적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 인사동 문화지구는 업종 제한에 대한 찬반양론도 있는데요.

"전통문화 보호를 위해 <서울시 문화지구 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에서 업종을 제한한 구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사단법인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금지업종 진입 확산을 막아달라며 제출한 민원과, 금지업종 폐지 주장을 인용한 기사가 동시에 떠 있습니다. 문화는 관의 개입 없이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그러나 전통문화의 거리는 700미터밖에 안 되고, 접해 있는 한옥 관리구역도 면적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규제가 폐지되어야만 상권 활성화가 가능한 건지,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인사동 지역도 있는데 굳이 규제지역 안에 입점해서 금지업종으로 영업을 해야만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 유튜브 '인사동김교수'에 올리신 '몹시 안타까운 한남서림 터'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인사동 한남서림 터 표지판이 길바닥에 놓여 있어 오가는 이들이 보지 못하고 계속 밟고 지나다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무 관청이 표지판 위치 이동이나 설치방식 변경을 검토하도록 건의합니다. 1910년에 백두용 선생이 문을 열었고,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인수한 <한남서림>은 일제강점기에 주요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지켜진 문화재의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일본의 조선어학회 탄압이 극심했던 때, 전형필 선생이 서울의 큰 기와집 한 채 값을 주고 사서 지켜낸 훈민정음 해례본은 UNESCO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입니다."

인사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자매의 인사동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인사동의 변화된 현실에 대해 아쉬움이 더 많은 듯했다. 특히 전통을 지키고자 만든 제한 업종이 알게 모르게 풀리면서 인사동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제일 크다고 했다.

결국 입주 업체와 주민들, 관리 당국 모두 함께 힘을 모으지 않는다면 인사동의 정겨운 풍경은 대기업의 상품화 물결에 휩쓸리고 말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새로 본 인사동>은 결국 인사동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오랜 시간을 애정으로 지켜 본 자매의 간절한 소망에 대한 기록이다.

 

오마이뉴스 / 김슬옹

 

 

 

긴 세월 인사동을 넘나들며 그림을 그려 온 화가 칡뫼 김구의 황무지, 우상의 벌판

지난 13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식 날 다른 일로 보지 못하고 이틀 뒤 정동지와 전시장을 들렸더니,

전시작가와 김경일 신부가 함께하고 있었다.

 

전시된 황무지, 우상의 벌판작품들을 돌아보니,

정치검찰의 날선 칼이 공동묘지 묘석처럼 솟아나기도 하고,

사람 없는 법복만 그려 법관을 얼굴 없는 유령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온 천지에 돈 쓰레기가 난무하고, 기레기 들의 나팔이 세상을 어지럽히며 십자가가 불탔다.

오늘의 비참한 정치, 사회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이다.

 

한 때는 분단의 현실에 집착한 작업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항상 비판적 시선이 깔려있다.

 

동시대인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 하는 자라는 말처럼

김구는 작금 한국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뒤틀린 현실에 기꺼이 발을 담그고

시대의 어둠을 직시하고 있는 셈이며, 그의 작업 역시 착종된 현실에서 다종의 폭력을 배태시키는

인자들에 대한 증오와 그로인해 황폐화된 시대의 암흑을 형상화 한다는 화가 장경호씨의 전시서문처럼,

정치검찰이나 기레기 같은 쓰레기 들이 판치는 현실을 풍자하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 왔다. 

 

작가로서의 작품이 아무리 훌륭할지언정 정작 비틀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정치나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던 말던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식에서 무슨 작품이 되겠는가?

 

좀 있으니, 전시서문을 쓴 장경호씨가 막걸리 두병을 들고 나타났다.

술을 끊어 술자리를 피해 다니는 형편이라 모른 척 딴전을 피웠는데,

책상에는 이번에 펴낸 화문집 고양이처럼 출근하기가 쌓여 있었다.

 

 

전시와 때 맞추어 한국스마트협동조합에서 펴낸 화문집에는 열여섯 편의 글과 그림이 실렸는데,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자 삶을 향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었다.

 

재치 있는 글 솜씨와 더불어 생각을 끌어내는 그림까지 곁들여, 사 볼만한 책이었다.

 

전시는 오는26일까지 열린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손기환 추진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갑진년 미술대동잔치가 지난 16일부터 115일까지 인사동 관훈미술관에서 열린다.

열림굿-1985년 을축년 미술대동잔치 개막식 굿 오마주_광대패 모두골의 공연

 

주최는 서울미술공동체이고 주관은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손기환, 추진위원: 박진화 류연복 이인철)로 지난 16일 열린 개막식에는 광대패 모두골이 열림굿을 열었다.

열림굿-1985년 을축년 미술대동잔치 개막식 굿 오마주_광대패 모두골의 공연

 

참여작가는 손기환씨를 비롯하여 김준권, 김방죽, 김억, 김기현, 류연복, 문영태, 박기복, 박건, 박불똥, 박영률, 박진화, 유은종, 이기정, 이인철, 장명규, 주완수, 홍황기, 황세준씨 등 19명이다.

참여작가 김방죽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 특별전

 

서울미술공동체(이하 서미공)198310월 창립 관련 논의를 시작하여 19849월 정식회의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서미공의 첫 번째 활동은 시와 판화달력(우리마당 발간, 1984.10) 제작이었다. 1985을축년 미술대동잔치를 통해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냈고, '취지문' 또한 이 시기에 발표했다. 1985~19862년 동안 한국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키며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987년에 이르러 활동량이 줄어들다가 자연적으로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미공의 주요 인물들이 기획 개최한 1985, 한국미술, 20대의 힘전1980년대 예술 검열과 민중미술 탄압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 건설의 계기를 마련한 전시로서 미술사적 의의를 가진다. 관훈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갑진년 미술대동잔치는 서미공 창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2023년 초 구성된 서미공 연구팀은 계묘년 서미공 콜로키움 한마당행사를 개최하여 서미공 창립과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대 주무 최민화, 손기환, 류연복, 박진화뿐만 아니라, 김방죽, 김억, 박성조 등 서미공 활동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구술채록을 추진했다. 또 류연복, 손기환 등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1980년대 자료 등을 조사 발굴했다.

왼쪽부터 유연복 이인철 김방죽 손기환 박진화

 

관훈갤러리 1층은 서미공 관련 사료와 전시 포스터 등을 정리한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되었다. 2023년 진행된 계묘년 서미공 콜로키움 한마당또한 영상으로 관람 가능하도록 했다. 2층과 3층은 서미공 활동을 했던 작가들의 1980년대 작품뿐만 아니라 최근 작품도 함께 전시했다. 1980년대 서미공은 민중미술인들의 협의체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미 소집단에 소속이 있는 작가들도 중복으로 서미공 활동을 겸하곤 했다. 당대에는 참여 작가가 170여명에 이를 정도로 아주 큰 규모의 공동체였다. 하지만 올해 전시의 취지를 알리며 초대 공문을 발송했을 때 연락이 닿는 작가, 출품이 가능한 작가는 최종 19명으로 추려졌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아래 미술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활동으로 한국미술사를 대표할 수 있는 독보적인 사례다. 하지만 현재 이와 관련한 조사와 연구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1980년대 한국미술사의 생동감과 풍부함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전시는 1016일 광대패 모두골의 열림굿 공연으로 개막하여 115일까지 진행된다. / 서울미술공동체 연구팀

 

서울미술공동체에 대하여

 

1983101일부터 3일까지 경기도 가평의 대성리에서 '사흘 낮밤 토론회'가 있었다. 옥봉환의 주선으로 김봉준, 문영태, 장진영, 최민화, 최열, 홍선웅, 홍성담이 한자리에 모여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미술운동의 성격과 방향, 그리고 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대중적 미술운동을 펼쳐나가기로 결의하고, 민중적 현실주의에 기반한 지역별 '미술공동체'를 전국적으로 조직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최민화는 그달에 곧바로 류연복, 박진화와 함께 '미술공동체' 창립을 논의하고 각 매체별 담당을 지정했다. 만화 파트에 최민화, 벽화 파트에 류연복, 판화 파트에 이기정을 지정한 것이다. 19841월부터 상반기 동안은 건강한 미술을 회복하고 건설하기 위한 토론회를 계속했다. 토론회 자료를 묶어 현대미술연구소 이름으로 현대미술2백 권을 펴냈다. 그해 6월 회원들은 105인의 작가에 의한 삶의 미술전에 참여하고, 9월에는 '미술공동체' 발족을 위한 정식회의를 개최하여 제1대 주무(기획실장)로 최민화를 선출하였다. 10월에는 판화 달력 시와 판화(우리마당 발간)를 펴냈다. 그리고 19852월에 '서울미술공동체 (서미공)'가 공식적으로 발족한다. 서미공에 참여한 소집단은 '그림동인 실천', '횡단', '목판모임 나무', '에스파', '시대정신', '벽화기획 십장생', '억새' 등이다.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취지문을 살피면 "시각예술이 갖고 있는 풍부한 형식 가치를 창조적으로 계발하",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제약하는 어떠한 요소와도 투쟁"하며, "예술품이 민중의 삶의 현장에 투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적고 있다. 서미공은 발족과 동시에 대중을 위한 미술장터인 을축년 미술대동잔치(2)를 기획했다. 잔치는 대성공을 거뒀고, 연이어강남판매장개관전(3)을 열었다. 4월에는 서미공 기관지 미술공동체를 펴냈고, 5월엔 '5.3인천노동자대회'에 걸개그림을 제작하여 게시했다. 6월엔 제1차 총회를 거쳐 제2대 주무로 손기환을 선출했다. 7월엔 손기환, 박진화, 박불똥의 기획으로 1985,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이 열렸으나, 경찰의 탄압으로 작가들이 연행되고 작품은 압류되었다. 그에 따라 민중미술탄압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8월엔 민족미술대토론회에 참석하고, 9월에는 서강대학교 신문사 연계 판화전, 외국어대학교와 문중문화협의회에서 1985,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슬라이드 강연을 열었다. 12월에는 미술공동체3호를 펴냈는데, 1986년까지 총 다섯 권을 펴냈다. 19862월에 병인년 미술대동잔치를 아랍미술관에서 개최했다. 3월에 제2차 총회에서 류연복을 제3대 주무로 선출했고, 1987년 제3차 총회에서는 박진화가 제4대 주무로 선출되었다.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1986617일 신촌역 앞 건물에 '통일의 기쁨'이라는 벽화를 제작하고, 726일에는 류영복 자택 담장에 '상생도' 벽화를 제작했는데, 두 벽화는 공권력에 의해 훼손된 바 있다. 또한 정릉벽화를 그린 작가들은 불구속 기소 되었다. 8월에는 풍자와 해학을 기획하여 그림마당 민에서 전시하였고, 198711월에는 전환기의 위대한 미술1 정치와 미술을 기획하였다. 1987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민족미술협의회는 내부 노선 투쟁이 격화되었고, 그에 따라 소집단들의 경향성과 활동 방향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81,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서미공은 발전적 해체를 논의한 뒤 해산하였다. 서미공에 참여한 작가들은 최민화, 류연복, 박진화, 손기환, 이인철, 박기복, 최정현, 유은종, 김낙일, 임승택, 홍황기, 박성조, 김기현, 이기정, 김억, 장명규, 김방죽, 곽대원, 박영률, 김준권, 조인수, 황세준, 주완수, 전승보 등이다. / 김종길 (기획 및 감독)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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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박흥순의 잊혀진 그림을 찿아서가 열렸다.

첫날 들리지 않으면 못 볼 것 같아, 아산 가려고 두 시쯤 짐을 챙겨 동자동에서 나왔다.

한글날이라 그런지 인사동에 사람이 엄청 많았다.

 

'나무화랑에 올라가니 박흥순씨를 비롯하여 김진하 관장과 장경호씨가 있었다.

 

전시작들은 오래전 보아왔던 복서연작 말고도 환경 비판적인 작품이나 다른 작품도 있었다.

 

승자보다 패자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잔인한 말초성을 까발린 복서연작은 비애감이 감돌았다.

 

링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권투선수도 그렇지만, 맞아 쓰러지는 선수 보며

객석에서 환호하는 사람은 또 뭔가? 폭력의 관음증에 노출된 인간 심리를 나무라고 있었다.

 

승자를 대리 체험하는 자기도취가 결국 권력과 자본이 연출한 허구임을 까발린 것이다.

한편으로 쓰러진 복서의 비참한 모습은 80년대 군부독재에 핍박받은 민중의 모습이기도 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반체제 작가로 낙인찍혀 감시받아 가며 힘겹게 작업했다.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복서나 마찬가지였다.

 

박흥순씨는 1982년 결성된 임술년창립 멤버로,

당대 현실을 소재로 비판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리얼리스트다.

한때 민미협대표를 지내기도 했는데, 작품도 좋지만 사람은 더 좋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초상화 전시를 열며 나까지 그려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돈 없는 거지 그리는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전시가 끝난 후 작품을 싸 주는데, 벼룩은 낮짝이라도 있다지만 벼룩보다 못하다.

그냥 그림만 챙기고 다음에 술 한잔 산다는 게 십 년이 넘었다.

 

초상화 또한 얼마나 멋지게 잘 그렸는지 모른다.

그의 그림 솜씨라면 당연히 잘 그리겠지만,

여태 다른 화가가 그린 내 초상화도 보았으나 최고였다.

 

그리고 복서신작도 있었는데, 정치적 풍자로 대상이 바뀌었다.

김정은의 주먹에 쓰러지는 트럼프를 보며 왜 그리 속이 후련한지 모르겠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트럼프는 주는 것 없이 밉다.

 

트럼프 뿐 아니라 때려잡을 놈이 어디 한두 놈이겠는가?

다시 불을 지핀 박흥순의 새로운 복서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서문 일부를 옮겼다.

고향의 불안, 1991,갈증, 1994은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거론했고, 이라크와 성조기, 2006를 통해서 미국의 폭력적 전쟁을 고발하고, 독도와 촛불, 2008은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장엄한 현장을 그리고, 북에서 바라본 NLL, 2012은 핑크 모노톤으로 NLL의 긴장을 경쾌하고도 모던한 팩러독스 문법으로 회화적 실험을 하고, 만남, 2019은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작가의 기대를, 미완의 종지부, 2020를 통해서는 여전히 5.18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전두환을 비판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다시 복싱에 북·미 관계를 대입한 풍자화 북미의 이벤트를 그렸다. 복서로 링에 오른 김정은이 역시 복서인 트럼프를 다운시키는 장면이다. 그런데 둘 다 상처투성이다. 심한 밀당으로 상호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남은 북·미 간 협상 실패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 상황을 걱정해서인데, 결국 2024년 현재 그의 염려대로 한반도는 심각한 갈등상태에 처해 있다. 그의 염려가 예지였던 셈이다. 결국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우리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는 리얼리스트의 피가 흐른다는 게 반증된 것이라고 하겠다

 

전시를 보고 나니, 뒤늦게 정영신 동지와 정해레나씨가 나타났다.

박흥순씨가 삶아 온 약 밤 까먹으며, 님도 보고 뽕도 땄다.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열린다.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전시가 아니오니, 놓치지 마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5일은 인사동 구테이블에서 송상욱시인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산에서 하루 전에 올라와, 두 시간 전에 인사동에 사진액자를 부렸는데,

추모제 시동을 건 창예헌김명성이사장과 화가 서길헌씨가 먼저 와 있었다.

 

함께 온 정영신씨만 행사준비에 힘을 보태기 위해 내렸고, 나는 차안에서 잠깐 눈을 붙여야 했다.

요즘 불면증으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해, 늘 잠이 부족해서다.

얼마 전 술이 취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질러 그 죄책감으로 실의에 빠져버렸다.

 

이런 저런 일들이 머리를 짓눌러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반세기동안 즐겨 마신 술도 끊어, 술로 마음을 달랠 수도 없었다.

차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죄 없는 담배만 피워댔다.

 

정해진 다섯 시가 되어서야 추모제 열릴 장소에 갔더니, 일찍부터 많은 분이 와 계셨다.

다들 오랜만에 만난 분들이라 인사 나누기 바빴는데,

송상욱선생 덕분에 모처럼 많은 인사동 인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방동규, 구중서 원로선생을 비롯하여 오산에서 오신 한봉림선생,

양산에서 온 정명수씨, 지리산에서 온 하태웅씨 등 다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셨다.

 

김명성, 박인식, 최유진, 정기범, 이 성, 조준영, 정영신, 장경호, 최석태,

서길헌, 이만주, 임태종, 이동국, 강찬모, 이두엽, 안혜련, 이명희, 정복수,

칡뫼김구, 박상희, 전강호, 조명환, 노광래, 김정남, 이상훈, 전인경, 심재문,

김각환, 임경일, 노인자, 백남희, 발렌티노김, 박흥식, 강경석, 전활철씨 등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분이 모였는데, 60여명은 되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대수술로 중환자실에서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뮤아트김상현씨가

가족의 부축을 받아가며 악기를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병석에 계셔서 원로 선생님은 두 분 밖에 못 나왔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 나온 분도 많았지만,

송상욱선생 추모를 겸한 인사동사람들의 결집에 다 같이 힘을 보태 주었다.

 

추모제 비용은 1인당 4만원씩 50명의 식사비와 사진 액자 제작비, 제사비용 등을 김명성씨가 부담하였고,

나머지 추가된 10명의 식사비와 술값은 이상훈씨가 계산했다.

그리고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보낸 막걸리 네 박스는 반이나 남아, 아산 설치전 때 사용키 위해 차에 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참석하기로 한 고인의 미망인은 연락이 두절된 채, 나타나지 않았다.

여러 의혹이 갖가지 추측만 불러 일으켰다.

 

벽에는 송상욱시인의 자필시를 비롯하여 고인을 추모하는 많은 시가 걸렸고,

생전의 모습이 담긴 여러 장면의 사진도 전시되었다.

 

그러나 행사장으로 사용한 ‘’구테이틀의 구조 상 전시를 보기 힘들었다.

하나의 장식물에 불과 할 뿐, 고인을 추념하는 데는 별 도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앉은 방을 구석구석 돌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당 구석에 설치한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송상욱선생의 노래가 마음을 움직였다.

기타 치며 부용산을 부르는 지난 모습을 보니, 마치 선생께서 환생하셔서 노래 하는 것 같았다.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방동규선생께서 고인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예를 올렸다.

생전의 모습을 떠 올리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지긋 지긋한 세상 졸업하고 떠난 이 기쁜 잔칫날, 슬픔이라니...

하기야!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 하지 않았던가?

 

송상욱 음유시인의 인사동 사랑은 유별나다.

학교를 퇴임한 후 우연히 들린 인사동의 풍류에 매료되어 인사동에 방 한 칸 얻어, 시 쓰며 노래 불렀다.

 

좋아하는 시편들을 모아 멧돌이라는 무가지 간행물을 만들어

시 좋아하는 인사동 사람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시사랑, 노래사랑, 인사동사랑, 삼박자 춤을 춘 것이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열리는 지인들의 전시회나시와 관련된 행사 때 마다

무거운 음향기기를 끌고 다니며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축하해 주었다.

 

기타가 없는 술자리에서 젓가락 장단으로 부르는 노래 또한 얼마나 흥겨운지...

내 이름은 순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그냥 십팔번으로 통한답니다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고향에 부모형제 내 동생이 보고파 웁니다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뜬소문도 거짓이예요"

라는 내 이름은 순이가 흥겨운 젓가락 장단에 실려 귓전에 맴도는 것 같다.

 

그러한 풍류의 세월도 뒤늦게 재혼을 하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즐겨 만들어 돌리던 멧돌도 폐간되었고, 인사동 사무실마저 철수하게 되었다.

가끔 기타를 메고 인사동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과 마주치면 마음이 짠했다.

 

고인의 넋을 기리려고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아코디언으로 애절한 연주를 해준

김상현씨의 열정 또한 코끝이 찡했다.

 

김명성씨는 그 고마움에 답이라도 하듯, 김상현씨에게 작품 두 점을 선물했다.

인사동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청운 화백의 100호짜리 대작 두 점을....

이 야박한 세상에, 친구를 위해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작품을 선물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지 아닐 수가 없다.

 

송상욱 선생이 불러준 부용산 노래가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두 번째 눈물은 감격에 의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옛정을 잊지 않고 모여주시고 도와주시는 고마운 마음에 벅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책과 슬픔, 기쁨이 범벅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인사동은 변했지만,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반가운 분들이 권하는 술 한 잔 받아 마시지 못하는 불편한 자리지만,

이차로 옮겨간 유목민까지 따라 다니며 자리를 지켰다.

먼 길 떠난 송상욱 시인을 배웅해 드리며, 인사동 사람들의 재기에 박수를 쳤다.

 

사진, 글 / 조문호

 

 

 

 

 

 

 

작가 강경구

 

강경구 바람의 시간전이 지난 2‘NAMA 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떠나는 사람들, 162X112cm,캔버스에 아크릴,2024

 

강경구의 신작이 가까운 돈화문로에서 열린다는데,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는 먹 대신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겹겹이 칠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인간 내면의 고민을 담아 온 작가다.

서있는 사람들,227X181cm, 캔버스에 오일,2024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여 자연과 도시 풍경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았다. 20여 회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지며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계리, 80.5X234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전시장에 들어서니 대작 임계리가 시선을 압도했다.

농토와 경작지로 여겨질 정도로 산세만 그렸는데도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을 현대적 해석과 결합해, 바람이 지닌 상징적 힘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송계리 , 130X324cm,  캔버스에 아크릴 ,2021

그 옆에 걸린 송계리는 산세만 드러낸 것으로 보아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울림이었다.

백두대간의 능선과 골만 드러냈으나 우직스러운 원시적 질감에서 마치 산의 꿈틀거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뭔가 부족한 듯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충만함의 미적쾌감이 일어났다.

작품들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시간과 공간,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바람을 매개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에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힘이 자연의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치며 화폭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우러라 우러라 , 80X117cm,  캔버스에 아크릴,2024

그리고 우러라 우러라연작은 한강 고수부지 잡초 넝쿨들의 질긴 생존 현장을 그렸는데,

인간들의 삶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야전 탱크의 위장막 같기도 하고, 귀신들의 너울거림 같기도 하고,

거대하고 육중한 다면체의 바위가 되었다가는, 얼굴 없는 수많은 군중의 시위 현장처럼 삼엄하게 다가왔다. 이곳은 또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에 의해 전혀 다른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상한 연극무대이기도 했다.”고 작가 노트에 적었다.

즉 인간들의 삶과 같은 처절한 생존 이미지라는 것이다.

우러라 우러라 , 60X73cm,  캔버스에 아크릴 ,2024

2층으로 올라가니 때마침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

강경구 작가를 비롯하여 안창홍, 김진열, 송 창, 김근중, 장경호, 박 건, 이흥덕,

김진하, 이재민, 하일지, 이동환씨 등 내노라 하는 화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유령처럼 서성이는 사람들 그림으로 장식했다.

 

한정된 시간 속의 모습이 다양한 자세로 그려져 있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떠나는 사람들의 연작, ‘외출’, ‘퇴근

도시 삶에 찌든 군상들은 마치 영혼이 실종된 현대인의 초상 같았다.

18년후, 110X259cm, 캔버스에 오일,2024

강경구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직관과 느낌을 주관적으로 그려내는 화가로,

소소하고 비근한 일상의 모습을 친근하게 그려낸다.

그의 작품에는 삶의 무의미, 절망, 고뇌와 고독, 아픔 등 도시의 감수성이 절절히 녹아 있었다.

호방한 필치에 의한 대담한 축약의 형태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명쾌함을 선사한다.

얼핏 보면 삽화나 가벼운 스케치풍의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구수한 해학의 정취가 녹아들어 오늘의 시대 미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 112X162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서문 그림, 그리기, 그림다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액티브하고, 거칠고, 즉발적인 표현주의적 형태감과 색채와 붓질과 물질감은, 그만큼 충동적인 그리기의

유희성을 수렴한 그림이다. 아동화를 연상시킬 정도의 무작위로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조형성은

어른 식 아동화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일상적 체험을 담은 내용이되 속기를 거세한 이런 내면의 드러냄은 강경구식 문인화로 보아도 될 정도이고, , 서양화라는 물리적, 관습적 구분에서 일탈한 채

자유로운 드로잉에 기반한 대교약졸의 형상성이 거기에서 꿈틀거린다. 원초적인 몸의 궤적인

그리기과정이 낳은 동사형 그림’, 동적 쾌감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탈속의 어법으로 전환하고,

그 형상은 다시 현실적 주제로 귀환하는 이미지다

모순의 날들, 117X73cm, 캔버스에 아크릴,2024

 

오늘의 현실을 읽을 수 있는 바람의 시간은 오는 1022일까지 열린다.

 

/ 조문호

1`

박재동화백의 ”이것저것”展이 지난 22일 오후 4시부터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개막식에는 작가를 응원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시장에 들어가니 박재동 화백과 시민운동가 김민웅,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함께 노래 부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음악인이 나와 축하공연을 펼쳐 전시장에 온 것이 아니라 마치 공연장에 온 것 같았다.

 

만화계 지인들은 물론이고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하여 심정수, 박복신, 허준, 조신호, 최명철씨 등

반가운 분들이 너무 많아 다 거명할 수가 없다.

 

전시장 중앙에는 수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치켜든 ‘촛불행동’이 걸려 있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촛불행동'의 거리 투사다웠다.

군부보다 더한 검부 시대 사는 예술가들이 어찌 팔짱 끼고 지켜볼 수만 있겠는가?

 

그는 고답적인 소재보다 항상 낮은 곳에 사는 민중들 일상에 다가가 그렸다.

그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애정 어린 눈길로 그린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얼굴 전부를 그려야 한이 풀릴 거라는 그다.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떤 자리건 안 가리고 그림을 그리는데,

심지어 거리 행진을 하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타고 난 화가다.

 

전시장에는 어린 시절 그린 작품에서 시작하여 수시로 조그만 화첩에 그린 '손바닥 그림'도 붙어 있었다.

 

전단지나 종이컵에 자유롭게 그린 스케치를 비롯해 크레파스화, 수채, 유채, 수묵, 팬화, 크로키 등

많기도 한데,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 때 독자를 웃기며 열 받게 한 만평과 익살 넘치는 캐리커처였다.

 

고답적인 언론 지형에서의 과감한 형식 파괴가 오늘의 시사 만화계를 일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화백 작품은 모든 것이 민중의 삶에서 비롯된다. 그림 값으로 동전 받고 아이들을 그려준다.

 

재료에 한계 짓지 않고 닥치는 대로 그린다.

시위 전단지에서부터 종이컵에 이르기까지 소재에 구애 받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사물을 소중하게 본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해 꾸준히 시대의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전시장 초입 벽에 적힌 '예술인 듯한 것'도 싫고,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도 싫다는

작가의 글이 예술의 허세를 비꼬는 듯하다.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2층에서 열리는 '박재동의 이것저것' 展은

27일까지라 전시가 며칠 남지 않아 서둘러야 한다. “모두 함께하자!”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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