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려는 인사동년 치맛자락 붙들고 늘어진지도, 어연 30년이다.
속절없는 인생처럼, 데려가겠다는 세월 앞엔 대책 없더라.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인사동 냄새 맡으려 반나절 넘게 돌아 다녔다.
매번 보던 인사동도 꼼꼼히 살펴보니 아스라한 이야기가 남았더라.

시멘트 사이로 터져 나온 담장 속에서 인사동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예술가들이 죽치던 대폿집과 골목골목의 희미한 기억들,
연탄 쌓인 술집 뒷간에서도 예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큰 길은 대부분 옷을 갈아입었고, 후미진 골목에서나 간간히 볼 수 있었다.

몰려드는 돈의 위력에 옛 건물들은 사정없이 흘려 나가고,
사람 사는 정마저 새로 들어 선 건물들처럼 번지레할 뿐이었다.
벗이 떠난 자리를 젊은이들이 채우듯, 인사동 풍정도 그렇게 변해갔다.
낮선 듯 낮 익은, 오랜 석물들만 골목 어귀를 지키며 추억을 대신하란다.

몇 안 남은 터줏대감 따라 인사동도 그렇게 훌쩍 떠나겠지만,
아직은 추억의 끝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그 시절을 기억한 사람마저 사라진다면, 다 무슨 소용이랴!
오늘의 인사동에 불과하지만, 무모한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인사동을 사랑했으니까.

사진, 글 / 조문호




































 

수요일만 되면 별 볼일 없어도 인사동에 나가고 싶어진다.

전시장들은 새로운 작품들로 교체되고, 거리에선 반가운 인사동 사람들을 쉬 만날 수 있어

모처럼 인사동 기운이 충천하기 때문이다.

지난 27일엔 사진가 변홍섭씨와의 오찬약속을 수요일로 잡아두어, 일찍부터 작정하고 나올 수 있었다.
변홍섭씨는 정선같이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자문을 구해왔으나

내가 사는 곳은 이미 관광지화 되어 추천할 수가 없었다.

‘툇마루’에 식사하러 가서는 음유시인 송상욱선생을 만났고,

‘귀천’에 차 마시러 가서는 민속학자 심우성선생을 만났는데, '귀천'엔 빈 자리가 없었다

인사동거리에서는 사진가 이갑철, 육명심씨, 시인 강 민, 이행자, 서정춘씨, 소설가 구중관씨,

서양화가 안창홍, 이종송씨,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사진평론가 최건수씨, 무이도 예술촌장 정중근씨,

예당국악원 조수빈원장 등 많은 분들을 만났다.

평소 인사동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고작 한 두 사람에 불과한데,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분들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대박수준이다.

그러나 대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거나, 금주령이 내려 진 분들이 많아 술 한 잔 하자는사람이 없었다.

무더운 날씨의 낮 술에 취하면 힘들 것 같아 점심식사 때부터 사양했지만,
막상 그냥 지나치려니 맹숭하고 허전했다.
그래도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 여한은 없었다.

사진,글 / 조문호

 

 

 

 

 

 

 

 

 

 

 

 

 

 

 

 

 

 

 

 

 

 

 

 

 

 

 

 

 

 

 

 

 

 

 

 


 

따뜻한 햇살에서 따가운 햇살로 바뀌었던 지난 5월 21일은
오찬약속에다 만찬약속까지 겹쳐 온종일 인사동을 맴돌아야 했다.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아는 곳을 방문했으나

낯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강 민선생님과 이행자시인을 만나 오찬을 함께 하였고,

인사동 거리에서는 만화가 박재동선생을 만났다.

 

도화가 오만철씨를 비롯하여 김 민씨, 김비아씨, 송정순씨의

전람회장에 들렸고, ‘갤러리 나우’와 ‘공아트’, ‘아라아트’ 사무실에

들려 이순심관장과 공창호씨, 전인미 감독을 각 각 만났다.

‘허리우드’에서는 김명성, 이상훈, 공윤희씨를 만나기도 했다.

인사동거리는 유랑 악사들과 초상화 그리는 이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렇게 바쁘지 않은 나들이객들의 발길을 잡지는 못했다.
파리만 날리는 인사동 전시장과는 대조적으로, 그 많은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이나 찍으며 관광상품가게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게 일상적인 인사동의 풍경이니 머지않아 관광객도 줄어들게다.

그 관광객들이 물러나야 인사동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5월20일 하오의 인사동 거리풍경이다.

 

인사동 거리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분주했지만,

전시 현수막들만 햇살을 받아 도드라질 뿐,

전시장들은 여전히 한산했다.

 

이 날은 처음보는 한량무 춤꾼이 나타나

흥겨운 가락에 도포자락을 휘날리기도 했다.

 

사진,글 / 조문호

 

 

 

 

 

 

 

 

 

 

 

 

 


 

 

넉넉하고 고풍스러웠던 옛날의 인사동이 그립다.

 

사람 정은 각박하고 거리는 복잡해졌지만, 시대적 변화를 어쩌랴?
모든 것이 세상이치대로 세대 교체되어 갈 뿐이다.

현실을 받아들여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요즘 인사동 거리에서는 불특정인을 안아주는 프리허그(free hug)가

성행하는데, 그게 정 나눔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젊은이들과 속내를 터놓고, 한 번 소통해 보고 싶다.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인 고미술과 골동품가게, 화랑과 필방,
표구점들이 옹기종기 모였던 인사동도 세월따라 많이들 변했다.

 

이젠 관광 상품 파는 잡화점이나 군것질 매장들이 더 많아졌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내국인 보다 외국 관광객들이 더 많다.

 

사람이 사람에 치이는 게걸음 행렬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표정은 활기차다. 

분위기도 박물관적 정적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 꿈틀대는 동적이미지다.

 

그리고 옛 시절의 낭만과 향수를 깔고 앉은 골목들도 아직 정겹다.
다만, 인사동을 드나드는 예술가들을 쉬 만날 수가 없고,

함께 어울릴 만한 대폿집이나 공간들이 없어 그렇지...

 

연휴를 맞은 지난 5월 4일, 한 시간 가량 인사동을 떠 돌았지만,
아는 분이라고는 서양화가 박불똥씨 내외를 만났을 뿐이다.

 

그래도 고향 같은 인사동을 나는 떠나지 못한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일 오후7시 무렵의 인사동은 주변 도로가 통제된 채,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벌인 민노총 조합원들과 세월호 유가족 등 이천오백 여명의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려 안국동 방향으로 진입해 인사동 일대가 경찰과의 대치장소가 된 것이다.

‘무다헌’에서 장경호씨를 만나기로 하였으나 골목까지 봉쇄되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경찰저지선을 뚫고 들어갔는데, 강고운, 정희성시인, 장경호화백 등 몇 명이 앉아

바깥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술자리에 퍼져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급하게 소주 반병을 마시고 카메라만 챙겨 나갔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장 구조개악 폐기,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시위대는 경찰차에 밧줄을 매달고

경찰저지선을 흔들어 댔고, 경찰은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쏘는 등, 인사동 일대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오후 9시 40분 경 경찰은 1차 해산명령을 발표한 뒤 대열 맨 앞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붙들린 참가자 한명은 머리가 땅에 떨어져 부상을 입어 실려 가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해산하지 않자 경찰은 살수차에서 물포를 시험 발사한 후,  연거푸 다량의 최루액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물포에는 다량의 캡사이신이 섞여 호흡곤란과 피부 고통을 유발했다. 

밤 11시 10분 경부터 약 40-50분 동안 경찰은 훨씬 강한 농도의 캡사이신이 섞긴 물포를 줄기차게 발사했다.

사람들은 물포의 물에 약간만 닿아도 “불에 데인 듯 쓰라렸다”면서,

군사독재 시절 거리에 쏟아진 최루탄 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최루탄은 바람이 불면 날라가지만 이번 최루액 물포는 물 방울이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코와 입을 계속 공격하고 피부에 흡수돼 직격으로 맞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통증을 초래했다.

마지막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나서 물포 발사 중단을 호소했지만, 그들에게도 물포를 쏘아댔다.

 

정말 오래 만에 맡아보는 지독한 최루 냄새였다. 87년도 민주항쟁 시절 당한 후 처음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한 건 없었다. 단지 최류탄에서 최류액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저지방법은 더 치밀해져 시위대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87민주항쟁으로 그 지긋지긋한 군인정치에서 벗어났지만, 그 뒤의 정권들도 별 수 없었다. 

오히려 빈부격차만 높아져 가난한 사람만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정치판은 재벌들과 협잡하느라, 민생은 뒷전이다.

더럽다고 내 버려둘 일도 아니니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물대포 한방 맞고 콜록대며 ‘무다헌’으로 기어들었지만, 술 취한 장경호씨 말대포에 또 한방 얻어 맞았다.

사진,글 / 조문호

 

 

 

 

 

 

 

 

 

 

 

 

 

 

 

 

 

 

 

 

 

 

 

 

 

 

 

 

 

 

 

 

 

 

 

 

 

 

 

 

 

 

 

 

 

 

 

 

 

 

나른한 봄볕이 내려쬐이는 지난 24일의 인사동거리는 분주했다.

인사동거리는 외국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가방가게도 바빴고, 아이스크림도 불티났다. 
낙원상가 옆으로 관광버스가 줄지어 선 것도

이젠 인사동의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외국인들에게 인사동이 어떻게 보일지 늘 조마조마하다. 

 

세월호여파가 인사동까지 밀려 왔나보다.
인사동외곽은 경찰의 경계로 삼엄했다.

 

'아지오'에서 정영신, 전인미, 김은경씨를 만났고,

거리에서는 동창들과 어울린 이종승화백도 만났다.
늘 바삐 오가는 김명성씨를 '허리우드'에서 만났고,
공윤희, 최일순씨도 만났다.


사진,글 / 조문호

 

 

 

 

 

 

 

 

 

 

 

 

 

 

 

 

 

 

 

 

 

 

 

 

 

 

 

 

 

 

 

 

 




 

몇 일 동안 컴퓨터와 씨름했더니, 온 몸에 좀이 쑤셨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산책삼아 인사동으로 나갔다.

 

무작정 걷고 싶었으나, 수요일 오후라 전시장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썩 발길 잡는 전시는 없었다.
사진전도 두 군데나 있었으나, 동명이인이거나 아마추어 전시였다.

'인덱스'에서는 최건수씨를, '가나스페이스'에서는 김가중, 곽명우씨 등

아는 분도 여럿 보였으나, 마음이 바빠 그냥 지나쳤다.
인사동 거리에서는 사진가 이갑철, 이상일씨도 만났다.

 

두 시간 동안 전시장과 인사동거리를 쏘다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전시장마다 아는 분도 있고, 술과 음식이 즐비했지만 마다했다.
인사동나와 이 날처럼 술 한 잔 없이 돌아간 적은 없었다.

 

가고싶은 술집도 술 벗도 없으니, 차라리 우리집 주막이 더 나은 듯 했다.

인사동의 낭만도 전설이 되어가는 요즘, 왜 인사동을 못 잊고 떠돌까?
늘 고향 같았고, 고향 동무 같은 벗 들이 있었으니까...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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