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 인사동을 넘나들며 그림을 그려 온 화가 칡뫼 김구의 황무지, 우상의 벌판

지난 13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식 날 다른 일로 보지 못하고 이틀 뒤 정동지와 전시장을 들렸더니,

전시작가와 김경일 신부가 함께하고 있었다.

 

전시된 황무지, 우상의 벌판작품들을 돌아보니,

정치검찰의 날선 칼이 공동묘지 묘석처럼 솟아나기도 하고,

사람 없는 법복만 그려 법관을 얼굴 없는 유령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온 천지에 돈 쓰레기가 난무하고, 기레기 들의 나팔이 세상을 어지럽히며 십자가가 불탔다.

오늘의 비참한 정치, 사회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이다.

 

한 때는 분단의 현실에 집착한 작업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항상 비판적 시선이 깔려있다.

 

동시대인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 하는 자라는 말처럼

김구는 작금 한국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뒤틀린 현실에 기꺼이 발을 담그고

시대의 어둠을 직시하고 있는 셈이며, 그의 작업 역시 착종된 현실에서 다종의 폭력을 배태시키는

인자들에 대한 증오와 그로인해 황폐화된 시대의 암흑을 형상화 한다는 화가 장경호씨의 전시서문처럼,

정치검찰이나 기레기 같은 쓰레기 들이 판치는 현실을 풍자하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 왔다. 

 

작가로서의 작품이 아무리 훌륭할지언정 정작 비틀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정치나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던 말던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식에서 무슨 작품이 되겠는가?

 

좀 있으니, 전시서문을 쓴 장경호씨가 막걸리 두병을 들고 나타났다.

술을 끊어 술자리를 피해 다니는 형편이라 모른 척 딴전을 피웠는데,

책상에는 이번에 펴낸 화문집 고양이처럼 출근하기가 쌓여 있었다.

 

 

전시와 때 맞추어 한국스마트협동조합에서 펴낸 화문집에는 열여섯 편의 글과 그림이 실렸는데,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자 삶을 향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었다.

 

재치 있는 글 솜씨와 더불어 생각을 끌어내는 그림까지 곁들여, 사 볼만한 책이었다.

 

전시는 오는26일까지 열린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지난 5일은 인사동 구테이블에서 송상욱시인 추모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산에서 하루 전에 올라와, 두 시간 전에 인사동에 사진액자를 부렸는데,

추모제 시동을 건 창예헌김명성이사장과 화가 서길헌씨가 먼저 와 있었다.

 

함께 온 정영신씨만 행사준비에 힘을 보태기 위해 내렸고, 나는 차안에서 잠깐 눈을 붙여야 했다.

요즘 불면증으로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해, 늘 잠이 부족해서다.

얼마 전 술이 취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저질러 그 죄책감으로 실의에 빠져버렸다.

 

이런 저런 일들이 머리를 짓눌러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반세기동안 즐겨 마신 술도 끊어, 술로 마음을 달랠 수도 없었다.

차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아 죄 없는 담배만 피워댔다.

 

정해진 다섯 시가 되어서야 추모제 열릴 장소에 갔더니, 일찍부터 많은 분이 와 계셨다.

다들 오랜만에 만난 분들이라 인사 나누기 바빴는데,

송상욱선생 덕분에 모처럼 많은 인사동 인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방동규, 구중서 원로선생을 비롯하여 오산에서 오신 한봉림선생,

양산에서 온 정명수씨, 지리산에서 온 하태웅씨 등 다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셨다.

 

김명성, 박인식, 최유진, 정기범, 이 성, 조준영, 정영신, 장경호, 최석태,

서길헌, 이만주, 임태종, 이동국, 강찬모, 이두엽, 안혜련, 이명희, 정복수,

칡뫼김구, 박상희, 전강호, 조명환, 노광래, 김정남, 이상훈, 전인경, 심재문,

김각환, 임경일, 노인자, 백남희, 발렌티노김, 박흥식, 강경석, 전활철씨 등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분이 모였는데, 60여명은 되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대수술로 중환자실에서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뮤아트김상현씨가

가족의 부축을 받아가며 악기를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병석에 계셔서 원로 선생님은 두 분 밖에 못 나왔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 나온 분도 많았지만,

송상욱선생 추모를 겸한 인사동사람들의 결집에 다 같이 힘을 보태 주었다.

 

추모제 비용은 1인당 4만원씩 50명의 식사비와 사진 액자 제작비, 제사비용 등을 김명성씨가 부담하였고,

나머지 추가된 10명의 식사비와 술값은 이상훈씨가 계산했다.

그리고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보낸 막걸리 네 박스는 반이나 남아, 아산 설치전 때 사용키 위해 차에 실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참석하기로 한 고인의 미망인은 연락이 두절된 채, 나타나지 않았다.

여러 의혹이 갖가지 추측만 불러 일으켰다.

 

벽에는 송상욱시인의 자필시를 비롯하여 고인을 추모하는 많은 시가 걸렸고,

생전의 모습이 담긴 여러 장면의 사진도 전시되었다.

 

그러나 행사장으로 사용한 ‘’구테이틀의 구조 상 전시를 보기 힘들었다.

하나의 장식물에 불과 할 뿐, 고인을 추념하는 데는 별 도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앉은 방을 구석구석 돌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당 구석에 설치한 동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송상욱선생의 노래가 마음을 움직였다.

기타 치며 부용산을 부르는 지난 모습을 보니, 마치 선생께서 환생하셔서 노래 하는 것 같았다.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방동규선생께서 고인의 영정 앞에 절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차례대로 예를 올렸다.

생전의 모습을 떠 올리니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지긋 지긋한 세상 졸업하고 떠난 이 기쁜 잔칫날, 슬픔이라니...

하기야!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 하지 않았던가?

 

송상욱 음유시인의 인사동 사랑은 유별나다.

학교를 퇴임한 후 우연히 들린 인사동의 풍류에 매료되어 인사동에 방 한 칸 얻어, 시 쓰며 노래 불렀다.

 

좋아하는 시편들을 모아 멧돌이라는 무가지 간행물을 만들어

시 좋아하는 인사동 사람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시사랑, 노래사랑, 인사동사랑, 삼박자 춤을 춘 것이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열리는 지인들의 전시회나시와 관련된 행사 때 마다

무거운 음향기기를 끌고 다니며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축하해 주었다.

 

기타가 없는 술자리에서 젓가락 장단으로 부르는 노래 또한 얼마나 흥겨운지...

내 이름은 순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그냥 십팔번으로 통한답니다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고향에 부모형제 내 동생이 보고파 웁니다

 그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뜬소문도 거짓이예요"

라는 내 이름은 순이가 흥겨운 젓가락 장단에 실려 귓전에 맴도는 것 같다.

 

그러한 풍류의 세월도 뒤늦게 재혼을 하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즐겨 만들어 돌리던 멧돌도 폐간되었고, 인사동 사무실마저 철수하게 되었다.

가끔 기타를 메고 인사동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과 마주치면 마음이 짠했다.

 

고인의 넋을 기리려고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아코디언으로 애절한 연주를 해준

김상현씨의 열정 또한 코끝이 찡했다.

 

김명성씨는 그 고마움에 답이라도 하듯, 김상현씨에게 작품 두 점을 선물했다.

인사동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청운 화백의 100호짜리 대작 두 점을....

이 야박한 세상에, 친구를 위해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작품을 선물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지 아닐 수가 없다.

 

송상욱 선생이 불러준 부용산 노래가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두 번째 눈물은 감격에 의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옛정을 잊지 않고 모여주시고 도와주시는 고마운 마음에 벅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책과 슬픔, 기쁨이 범벅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인사동은 변했지만,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반가운 분들이 권하는 술 한 잔 받아 마시지 못하는 불편한 자리지만,

이차로 옮겨간 유목민까지 따라 다니며 자리를 지켰다.

먼 길 떠난 송상욱 시인을 배웅해 드리며, 인사동 사람들의 재기에 박수를 쳤다.

 

사진, 글 / 조문호

 

 

 

 

 

 

 

작가 강경구

 

강경구 바람의 시간전이 지난 2‘NAMA 갤러리에서 개막되었다.

떠나는 사람들, 162X112cm,캔버스에 아크릴,2024

 

강경구의 신작이 가까운 돈화문로에서 열린다는데,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그는 먹 대신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겹겹이 칠해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며,

인간 내면의 고민을 담아 온 작가다.

서있는 사람들,227X181cm, 캔버스에 오일,2024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여 자연과 도시 풍경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았다. 20여 회의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지며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계리, 80.5X234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전시장에 들어서니 대작 임계리가 시선을 압도했다.

농토와 경작지로 여겨질 정도로 산세만 그렸는데도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동양화의 전통적 기법을 현대적 해석과 결합해, 바람이 지닌 상징적 힘과

그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송계리 , 130X324cm,  캔버스에 아크릴 ,2021

그 옆에 걸린 송계리는 산세만 드러낸 것으로 보아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울림이었다.

백두대간의 능선과 골만 드러냈으나 우직스러운 원시적 질감에서 마치 산의 꿈틀거림을 감지할 수 있었다.

뭔가 부족한 듯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충만함의 미적쾌감이 일어났다.

작품들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시간과 공간,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바람을 매개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에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힘이 자연의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치며 화폭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우러라 우러라 , 80X117cm,  캔버스에 아크릴,2024

그리고 우러라 우러라연작은 한강 고수부지 잡초 넝쿨들의 질긴 생존 현장을 그렸는데,

인간들의 삶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야전 탱크의 위장막 같기도 하고, 귀신들의 너울거림 같기도 하고,

거대하고 육중한 다면체의 바위가 되었다가는, 얼굴 없는 수많은 군중의 시위 현장처럼 삼엄하게 다가왔다. 이곳은 또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에 의해 전혀 다른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상한 연극무대이기도 했다.”고 작가 노트에 적었다.

즉 인간들의 삶과 같은 처절한 생존 이미지라는 것이다.

우러라 우러라 , 60X73cm,  캔버스에 아크릴 ,2024

2층으로 올라가니 때마침 개막식이 열리고 있었다.

강경구 작가를 비롯하여 안창홍, 김진열, 송 창, 김근중, 장경호, 박 건, 이흥덕,

김진하, 이재민, 하일지, 이동환씨 등 내노라 하는 화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유령처럼 서성이는 사람들 그림으로 장식했다.

 

한정된 시간 속의 모습이 다양한 자세로 그려져 있었는데,

기다리는 사람들떠나는 사람들의 연작, ‘외출’, ‘퇴근

도시 삶에 찌든 군상들은 마치 영혼이 실종된 현대인의 초상 같았다.

18년후, 110X259cm, 캔버스에 오일,2024

강경구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직관과 느낌을 주관적으로 그려내는 화가로,

소소하고 비근한 일상의 모습을 친근하게 그려낸다.

그의 작품에는 삶의 무의미, 절망, 고뇌와 고독, 아픔 등 도시의 감수성이 절절히 녹아 있었다.

호방한 필치에 의한 대담한 축약의 형태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명쾌함을 선사한다.

얼핏 보면 삽화나 가벼운 스케치풍의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구수한 해학의 정취가 녹아들어 오늘의 시대 미감을 드러내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 112X162cm, 캔버스에 아크릴, 2023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서문 그림, 그리기, 그림다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액티브하고, 거칠고, 즉발적인 표현주의적 형태감과 색채와 붓질과 물질감은, 그만큼 충동적인 그리기의

유희성을 수렴한 그림이다. 아동화를 연상시킬 정도의 무작위로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조형성은

어른 식 아동화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일상적 체험을 담은 내용이되 속기를 거세한 이런 내면의 드러냄은 강경구식 문인화로 보아도 될 정도이고, , 서양화라는 물리적, 관습적 구분에서 일탈한 채

자유로운 드로잉에 기반한 대교약졸의 형상성이 거기에서 꿈틀거린다. 원초적인 몸의 궤적인

그리기과정이 낳은 동사형 그림’, 동적 쾌감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탈속의 어법으로 전환하고,

그 형상은 다시 현실적 주제로 귀환하는 이미지다

모순의 날들, 117X73cm, 캔버스에 아크릴,2024

 

오늘의 현실을 읽을 수 있는 바람의 시간은 오는 1022일까지 열린다.

 

/ 조문호

지난 15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린 장경호의 '묵시'전에는 반가운 손님이 많았다.

 

뒤풀이 집으로 정한 낭만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전시장에서 만났던 김진하, 이정황, 안원규, 류연복, 우문명, 김정업, 박윤호, 배성일, 정동용,

황준연, 최석태, 김세규, 조준영, 정희섭, 심정수, 김재홍, 최민화, 박불똥, 전강호, 신동여씨 는 물론,

신학철 선생을 비롯하여 칡뫼김구, 나종희, 임경일, 이강군, 양상용, 김영진, 이명희, 김수길, 김정대, 강경석

서인형, 이명신, 김이하, 조경연, 박은태, 김윤기, 박영애, 임정희, 김정환, 황정아, 이재민, 이도윤, 김상천,

이현정, 김보영씨 등 많은 분이 모여 있었는데, 늦게는 현장스님, 이효상, 노형석, 하태웅씨도 오셨다. 

 

전시를 축하하는 자리지만 술로 한세상 인사동을 풍미했던 당사자는 뇌경색에 졸아 술 한 잔 마실 수 없었다.

 

다들 장화백의 빠른 회복을 바라며 대신 마셨다.

 나는 너무 마셔 이틀을 드러누웠지만... 

 

어쨌거나, 장화백 덕에 인사동 풍류객들이 모처럼 한 자리 앉아 즐겁게 마시고 놀았다.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가기 싫어 생 지랄발광을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울긋불긋 꽃처럼 돋아난 화려한 물질문명에 슴이 턱턱 막혔다.

지난26일 성균관로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린 김재홍 초대전 깨어나는 몸, 다시 서는 거인을 보면서다.

 

  2년 전 보여준 거인의 잠에서는 갈갈이 찢기고 망가진 땅 즉 병든 국토를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 보여 준 깨어나는 몸은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정신을 탓하는 것 같았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물질문명, 즉 돈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을 반성케 하는 리얼리즘이라 듯이,

작가 김재홍이 전해주는 시어들은 절규에 가깝다.

 

   

김제홍은 정치적 모순이나 불안한 한반도 평화, 환경의 황폐화, 물질문명에 병든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 등

동시대인이 처한 삶의 문제점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화산이나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핵폭탄 등을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보들레르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그대의 증오로 저주받은 이 씨앗은

나를 짓누르는 분노를 솟구치게 할지니

독기 품은 새싹이 돋아나지 못하도록

늦기 전에 이 나무를 아주 비틀어 놓으리라!“

-보들레르의 시 축복’ 중에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여행은 죽음뿐이라고 했다

죽음의 길에서 새로운 미지의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목숨 걸고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악의 꽃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김재홍이 추구해 온 일관된 작업은 우리민족이 겪어 온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민주화 과정을 겪는 지난한 시대적 사건에서 부터,

국토의 분단과 자연의 황폐화 그리고 핵 확산이 가져올 종말적 위기론까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가 배경으로 끌어들이는 인간의 몸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며 세상이다.

분단의 상처나 핵폭발로 일어 날 비극적 상황을 몸의 상처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반성케 한다.

 

  아래 글은 홍경한 미술평론가의 전시 서문에서 한 단락 옮겼다.

 

김재홍은 정치적·사회적 관계망 속에 거주하는 실존이 겪는 삶의 냉혹한 현실을 기록하고

시대의 긴급한 사회적 문제들을 품격 있게 다룬다.

또 다른 역사화로 <근정전>을 잇는 <안타까운 유산>에서처럼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논평이 된다.

 

  물론 또 다른 특징도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은 형식상 사실주의적 경향을 따르지만 입체적 상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입체적 상상은 상징적인 요소에 의한다. 작가는 상징을 통한 직관성을 회피하는 대신 작품마다 시어(詩語)를 심으며 현실 인식과 성찰의 행간을 만든다. 예를 들어 폭탄에 의해 깊은 웅덩이가 들어선 대지 혹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몸을 그린 <거인의 잠>, <야만의 흔적> 연작은 거칠고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다룬 진혼곡이다.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기록과 생채기들은 엄혹한 현실의 투영이면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익명의 상흔이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26일은 청승맞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성균관대 부근에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문규씨 집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어렵사리 찾았지만 많은 분들이 뒤풀이 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일 이층에 나누어 내건 대형 작품에 압도되었지만 손님이 너무 많았다.

뒤늦게 작품 보랴 인사 나누랴 정신없었는데, 단양 사는 김언경씨 모습도 보였다.

 

주인공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박불똥, 조경연, 장경호, 박흥순, 안원규, 박상희, 이필두, 최석태,

김도수, 김영진, 최운영, 류충렬, 나종희, 황준연, 이인철, 김진하, 류연복, 이재민, 양상용, 이현정,

칡뫼김구, 성기준, 두시영, 박은태, 곽대원, 손기환, 한상진씨 등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화가들이 나왔다.

 

  임정희씨는 동행한 독일 문화비평가 안드레아스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뒷풀이 집인 한국관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넓은 식당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마침 장경호씨가 자리를 잡아 놔 끼어 앉을 수 있었는데,

그 날 뒤풀이 비용은 갤러리측에서 낸다기에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마신 것 까지는 좋았으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 탈이었다.

옆에 앉은 손기환씨가 술잔만 비면 따라주는 바람에 정량을 한 참 초과했는데,

문제는 술이 취하면 오버 하는데 있다.

 

  평소엔 말을 잘 하지 않지만, 술이 취하면 검정되지 않은 이야기를 마구 까발리거나 고집하는 게 문제다.

그 날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며칠 후 끝나게 될 이인철의 거리에서전시에 꽂혀,

전시 끝나는 다음 날 인사동 거리 전을 하자고 고집한 것이다.

 

  그것도 작품설치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이며 관리는 어떻게 한다는 등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이인철, 김진하, 최석태씨 등 가까이 있는 모든 분에게 반복했으니, 얼마나 짜증나겠는가?

 

  전시장은 텅텅 비고 거리에는 사람이 넘쳐나는 문제점의 대안을 찾고 싶은 궁여지책으로,

이인철의 ‘거리에서’전을 열면 행인들에게 오래된 추억을 소환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술자리에서 거론할 문제는 아니었다.

술 취한 자의 행복한 노래 쯤으로 여겼으면 좋으련만, 미운 살 박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 최석태씨 도움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갔는데, 길거리에서 중국 통 이강군씨를 만나기도 했다.

 

  대학로에서 버스로 출발해 갈아 탄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보니 목적지에서 두 구역이나 지났는데, 술김에 걸었으나 너무 무리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시장 찾느라 많이 걸었는데, 며칠은 고생하게 되었다.

부산 같다 온 휴유증도 이틀 만에 간신히 가라앉히고 나갔는데 말이다

사람도 아닌 송장이 사람 행세하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

 

이 전시는 1126일까지 열리니 꼭 한 번 관람하시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한때 인사동 골목대장으로 통했던 창원의 변형주가 올라왔다는 연락이 왔다.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인데, 하필 그날이 유목민정기휴일이었다.

문 닫은 술집에서 오붓하게 한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나섰는데,

몸은 흐느적거리지만 반가운 사람 만날 생각에 마음은 들떴다.

그러나 지하철 타고 가다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왜 안 오냐는 변형주 전화에 잠이 깼는데, 목적지를 한참 지나버렸다.

요즘은 앉기만 하면 졸아, 조심하는데도 매번 실수를 한다.

 

변형주는 창원에서 오래전부터 식당을 운영해 왔다.

지금은 저승으로 떠난 친구 정남규와 김의권 뒷바라지도 많이 했고, 내게도 도움을 준 인정 많은 후배다.

 

문 닫은 유목민에서 중화요리를 시켜 술을 마셨는데, 요즘은 시골 들어가 살 준비를 하고 있단다.

그가 준비해 온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부산 에덴공원 음악실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데,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인 것 같았다.

그 시절을 그리며 홀짝홀짝 마신 술에 그만 취해버렸다.

주량을 초과했는지 아니면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 갑자기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전활철씨 부축을 받아 간신히 자리에 누웠는데, 한 시간쯤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더 취하면 가기도 힘들지만, 4층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요즘 몸 상태로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처지지만, 병원에 들어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버틴다.

세상사 아무 미련은 없으나, 한 가지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서다.

다가오는 동짓날 전해주기로 한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사진 때문인데,

그날이 제삿날이 될 지언정,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한다.

 

사진, / 조문호

 

 

  한상진의눈멂- Blinding Scenery’전이 안양 두나무아트큐브에서 지난 6일 열렸다.

 

지난 7일 아산 꿈에실농장가는 길에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정동지 전시도 있었지만, 몸이 편치 않아 오랫동안 아산에 들리지 못했더니,

지난 추석에는 아산 농장 식구들이 서울로 올라 오기도 했다.

 

  가을걷이라 해야 고추 밖에 없지만 겸사겸사 시간 내어 안양 한상진씨 전시부터 들린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 전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작가가 나타났다.

 

전 날 인사동 정복수씨 전시장에서 만남에 이은 연이은 만남이었다.

 

  전시장에는 수묵드로잉을 비롯한 페인트작업이 걸렸고

바닥에는 버려진 사물들을 채집하여 가지런히 진열해 놓았는데,

사진으로 본 작품의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눈멂이란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중지'의 순간으로,

길을 가다 만난 풍경과 풍경 속에 담긴 삶의 모습이 아련하지만 친근하게 다가왔다.

 

  대상을 만나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그치며 그려 낸 작품에는 고요한 울림이 번지고 있었다

찰나가 전해주는 잔잔한 울림으로, 마치 수행자의 묵상처럼 고요한 정적감도 감돌았다. 

 

  볼수록 풍경 속으로 빨려 가는 심오한 흡인력이 느껴졌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난 계곡의 돌들도 저마다 소리를 내고,

말없이 흐르는 구름마저 손짓하며 암시한다.

그렇게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그의 되돌아 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그곳에는 이름 없는 풍경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보잘것없는 사물들, 변화하며 사라져가는 자연의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 사유가 자연을 인위적인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사유에 있어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작가가 그려가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회화작업 속에는 이러한 전통적 사유와 함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 두나무아트큐브

 

  이 전시는 안양시 예술로공원에 있는 두나무아트큐브에서 111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한상진'눈멂, Blinding Scenery' :: 인사동 사람들 (tistory.com)

 

이청운 화백이 청운을 꿈을 안고 상경한 지도 어언 반세기가 가깝다.

그가 화단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71년 구상회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다,

그리고 데뷔한 지 10년 만에 중앙미전에서 특선을 받으며 재 부상한다.

이때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시련도 따랐다.

 

박통 때인 1970년대 말에는 독제에 항거하는 ‘현실과 발언’에 합세해 혼이 난적도 있다.

정의감을 억누를 수 없어 참여했지만, 그가 표적이 된 것이다.

 

어리숙한 이화백을 만만하게 본 정보당국은 그를 납치해 무려 50일이나 감금해 버렸다.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출감하자 말자 낯설고 먼 프랑스로 떠난 것이다.

마지못해 선택한 외유에서 의외의 성과도 얻었다.

바로 살롱도톤느 전에서 1등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가 주로 그렸던 그림 소재는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낸 부산 바닷가 풍경이었다

애수에 젖은 풍경들은 질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둡지만 서정적인 바다가 바로 이청운의 그림 세계다.

 

그가 아프기 전에 부산 청사포로 화실을 잠깐 옮긴 적이 있었다.

비릿한 바닷가 추억을 떠올리며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림의 완성도 보지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항상 10년이라는 변곡점이 따랐다.

병마와 싸운 지도 이제 10년이 가까워오니, 곧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먼지 덮인 미완의 작품이 빛을 발할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지난 20일, '청운이형 병문안 가자'는 연락을 김명성씨로부터 받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다 몸도 편치 않았지만, 누워만 있을 일은 아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가지 못했으니, 그를 본 지도 3년이 넘어 버렸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 응암역에 내렸는데,

약속 장소인 서부경찰서 앞에는 김명성씨와 조해인씨가 먼저 와 있었다.

뒤이어 송상욱, 김영복, 전활철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화실에는 부인 이상랑 여사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긴 세월동안 간병하느라 고생해서 그런지, 곱던 얼굴에 주름이 졌다.

대조적으로 이청운씨는 동자 같은 미소를 띠며 반갑다고 손을 흔들었다.

마치 양산박에 등장하는 무대의 모습이 연상되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청운 화백이 지병으로 자리에 누운 지도 어언 십 년이 가깝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 이청운 화백도 변할 때가 된 것 같다.

살신성인,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아내 덕이지만,

미완의 그림을 두고 눈감지 못하는 이화백의 절박함도 더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 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겠는가?

 

처음 병문안 갔을 때, ‘5년만 더 그릴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소연 했는데,

소망을 이루고 싶은 집념에 십 년을 버텨낸 것 같다.

병상에 누워  곳곳에 걸린 미완의 그림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구상과 고민을 했겠는가?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 미완의 그림에 혼을 불어넣을 때다.

 

털고 일어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구상한 것을 에이 아이가 완성케 하면 안될까?

 

어두운 잿빛 화실의 풍경 자체가 이청운의 오래된 자화상 같다.

이젤은 어두운 뒷골목에 버틴 전봇대 같기도 하고, 삽살개가 다리를 치켜든 정겨움도 연상되었다.

 

뒤 늦게 뮤지션 김상현씨가 등장했다.

그 역시 중병으로 투병하는 처지지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힘들게 찾아온 것이다.

전에는 아코디온을 메고 와 셀브루의 우산을 연주했는데, 얼마나 애잔하고 슬펐는지 모른다.

그때가 생각났는지, 청운의 표정은 아쉬운 감이 역력했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 온 상현씨 역시, 힘들어 악기를 가져오지 못한 심정이 어떻겠나?

 

물감이 짓이겨져 걸려 있는 팔레트 행렬도 정겹고,

이젤에 기대어 화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등대 또한 얼마나 불을 밝히고 싶겠는가?

모든 게 정지된 풍경이지만, 그 자체가 이청운의 삶이고 색깔이었다.

 

김명성씨는 이청운 미완의 작품 전을 열겠다고 말하지만, 안쪽에 누운 이 화백 들을까 걱정되었다.

긴 세월 눈 감지 못한 이유가 뭔 데, 자존심 상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들 화실에서 나왔지만 그냥 헤어질 수 없어, 서부경찰서 후문 쪽에 자리 잡은 마포나루로 갔다.

푸짐한 갖가지 해산물이 나왔는데, 인사동 낭인들 술자리에 어찌 소리가 없을소냐?

‘부용산’으로 시작한 음유시인 송상욱 선생의 흘러간 노래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들였다.

 

'내 이름은 순이' 라는 노래인데, 가사 내용이 대폿집 작부의 신세타령이었다.

"내이름은 순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 그냥 십팔번으로 통한답니다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 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고향에 부모형제 내동생이 보고파 웁니다.

그 날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뜬소문도 거짓이예요"

 

오랜만에 듣는 송상욱선생 노래도 흥겹지만, 술상 두드리는 젓가락 반주가 더 죽였다.

 

사진,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