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린 장경호의 '묵시'전에는 반가운 손님이 많았다.

 

뒤풀이 집으로 정한 낭만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전시장에서 만났던 김진하, 이정황, 안원규, 류연복, 우문명, 김정업, 박윤호, 배성일, 정동용,

황준연, 최석태, 김세규, 조준영, 정희섭, 심정수, 김재홍, 최민화, 박불똥, 전강호, 신동여씨 는 물론,

신학철 선생을 비롯하여 칡뫼김구, 나종희, 임경일, 이강군, 양상용, 김영진, 이명희, 김수길, 김정대, 강경석

서인형, 이명신, 김이하, 조경연, 박은태, 김윤기, 박영애, 임정희, 김정환, 황정아, 이재민, 이도윤, 김상천,

이현정, 김보영씨 등 많은 분이 모여 있었는데, 늦게는 현장스님, 이효상, 노형석, 하태웅씨도 오셨다. 

 

전시를 축하하는 자리지만 술로 한세상 인사동을 풍미했던 당사자는 뇌경색에 졸아 술 한 잔 마실 수 없었다.

 

다들 장화백의 빠른 회복을 바라며 대신 마셨다.

 나는 너무 마셔 이틀을 드러누웠지만... 

 

어쨌거나, 장화백 덕에 인사동 풍류객들이 모처럼 한 자리 앉아 즐겁게 마시고 놀았다.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가기 싫어 생 지랄발광을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울긋불긋 꽃처럼 돋아난 화려한 물질문명에 슴이 턱턱 막혔다.

지난26일 성균관로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린 김재홍 초대전 깨어나는 몸, 다시 서는 거인을 보면서다.

 

  2년 전 보여준 거인의 잠에서는 갈갈이 찢기고 망가진 땅 즉 병든 국토를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 보여 준 깨어나는 몸은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정신을 탓하는 것 같았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물질문명, 즉 돈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을 반성케 하는 리얼리즘이라 듯이,

작가 김재홍이 전해주는 시어들은 절규에 가깝다.

 

   

김제홍은 정치적 모순이나 불안한 한반도 평화, 환경의 황폐화, 물질문명에 병든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 등

동시대인이 처한 삶의 문제점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화산이나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핵폭탄 등을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보들레르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그대의 증오로 저주받은 이 씨앗은

나를 짓누르는 분노를 솟구치게 할지니

독기 품은 새싹이 돋아나지 못하도록

늦기 전에 이 나무를 아주 비틀어 놓으리라!“

-보들레르의 시 축복’ 중에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여행은 죽음뿐이라고 했다

죽음의 길에서 새로운 미지의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목숨 걸고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악의 꽃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김재홍이 추구해 온 일관된 작업은 우리민족이 겪어 온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민주화 과정을 겪는 지난한 시대적 사건에서 부터,

국토의 분단과 자연의 황폐화 그리고 핵 확산이 가져올 종말적 위기론까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가 배경으로 끌어들이는 인간의 몸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며 세상이다.

분단의 상처나 핵폭발로 일어 날 비극적 상황을 몸의 상처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반성케 한다.

 

  아래 글은 홍경한 미술평론가의 전시 서문에서 한 단락 옮겼다.

 

김재홍은 정치적·사회적 관계망 속에 거주하는 실존이 겪는 삶의 냉혹한 현실을 기록하고

시대의 긴급한 사회적 문제들을 품격 있게 다룬다.

또 다른 역사화로 <근정전>을 잇는 <안타까운 유산>에서처럼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논평이 된다.

 

  물론 또 다른 특징도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은 형식상 사실주의적 경향을 따르지만 입체적 상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입체적 상상은 상징적인 요소에 의한다. 작가는 상징을 통한 직관성을 회피하는 대신 작품마다 시어(詩語)를 심으며 현실 인식과 성찰의 행간을 만든다. 예를 들어 폭탄에 의해 깊은 웅덩이가 들어선 대지 혹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몸을 그린 <거인의 잠>, <야만의 흔적> 연작은 거칠고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다룬 진혼곡이다.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기록과 생채기들은 엄혹한 현실의 투영이면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익명의 상흔이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26일은 청승맞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성균관대 부근에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문규씨 집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어렵사리 찾았지만 많은 분들이 뒤풀이 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일 이층에 나누어 내건 대형 작품에 압도되었지만 손님이 너무 많았다.

뒤늦게 작품 보랴 인사 나누랴 정신없었는데, 단양 사는 김언경씨 모습도 보였다.

 

주인공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박불똥, 조경연, 장경호, 박흥순, 안원규, 박상희, 이필두, 최석태,

김도수, 김영진, 최운영, 류충렬, 나종희, 황준연, 이인철, 김진하, 류연복, 이재민, 양상용, 이현정,

칡뫼김구, 성기준, 두시영, 박은태, 곽대원, 손기환, 한상진씨 등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화가들이 나왔다.

 

  임정희씨는 동행한 독일 문화비평가 안드레아스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뒷풀이 집인 한국관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넓은 식당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마침 장경호씨가 자리를 잡아 놔 끼어 앉을 수 있었는데,

그 날 뒤풀이 비용은 갤러리측에서 낸다기에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었다.

 

  기분 좋게 마신 것 까지는 좋았으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게 탈이었다.

옆에 앉은 손기환씨가 술잔만 비면 따라주는 바람에 정량을 한 참 초과했는데,

문제는 술이 취하면 오버 하는데 있다.

 

  평소엔 말을 잘 하지 않지만, 술이 취하면 검정되지 않은 이야기를 마구 까발리거나 고집하는 게 문제다.

그 날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며칠 후 끝나게 될 이인철의 거리에서전시에 꽂혀,

전시 끝나는 다음 날 인사동 거리 전을 하자고 고집한 것이다.

 

  그것도 작품설치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이며 관리는 어떻게 한다는 등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이인철, 김진하, 최석태씨 등 가까이 있는 모든 분에게 반복했으니, 얼마나 짜증나겠는가?

 

  전시장은 텅텅 비고 거리에는 사람이 넘쳐나는 문제점의 대안을 찾고 싶은 궁여지책으로,

이인철의 ‘거리에서’전을 열면 행인들에게 오래된 추억을 소환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술자리에서 거론할 문제는 아니었다.

술 취한 자의 행복한 노래 쯤으로 여겼으면 좋으련만, 미운 살 박히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 최석태씨 도움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갔는데, 길거리에서 중국 통 이강군씨를 만나기도 했다.

 

  대학로에서 버스로 출발해 갈아 탄 것 까지는 좋았으나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보니 목적지에서 두 구역이나 지났는데, 술김에 걸었으나 너무 무리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시장 찾느라 많이 걸었는데, 며칠은 고생하게 되었다.

부산 같다 온 휴유증도 이틀 만에 간신히 가라앉히고 나갔는데 말이다

사람도 아닌 송장이 사람 행세하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다.

 

이 전시는 1126일까지 열리니 꼭 한 번 관람하시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한때 인사동 골목대장으로 통했던 창원의 변형주가 올라왔다는 연락이 왔다.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인데, 하필 그날이 유목민정기휴일이었다.

문 닫은 술집에서 오붓하게 한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나섰는데,

몸은 흐느적거리지만 반가운 사람 만날 생각에 마음은 들떴다.

그러나 지하철 타고 가다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왜 안 오냐는 변형주 전화에 잠이 깼는데, 목적지를 한참 지나버렸다.

요즘은 앉기만 하면 졸아, 조심하는데도 매번 실수를 한다.

 

변형주는 창원에서 오래전부터 식당을 운영해 왔다.

지금은 저승으로 떠난 친구 정남규와 김의권 뒷바라지도 많이 했고, 내게도 도움을 준 인정 많은 후배다.

 

문 닫은 유목민에서 중화요리를 시켜 술을 마셨는데, 요즘은 시골 들어가 살 준비를 하고 있단다.

그가 준비해 온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부산 에덴공원 음악실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데,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인 것 같았다.

그 시절을 그리며 홀짝홀짝 마신 술에 그만 취해버렸다.

주량을 초과했는지 아니면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 갑자기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전활철씨 부축을 받아 간신히 자리에 누웠는데, 한 시간쯤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더 취하면 가기도 힘들지만, 4층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요즘 몸 상태로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처지지만, 병원에 들어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버틴다.

세상사 아무 미련은 없으나, 한 가지 지켜야 할 약속이 있어서다.

다가오는 동짓날 전해주기로 한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사진 때문인데,

그날이 제삿날이 될 지언정,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한다.

 

사진, / 조문호

 

 

  한상진의눈멂- Blinding Scenery’전이 안양 두나무아트큐브에서 지난 6일 열렸다.

 

지난 7일 아산 꿈에실농장가는 길에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정동지 전시도 있었지만, 몸이 편치 않아 오랫동안 아산에 들리지 못했더니,

지난 추석에는 아산 농장 식구들이 서울로 올라 오기도 했다.

 

  가을걷이라 해야 고추 밖에 없지만 겸사겸사 시간 내어 안양 한상진씨 전시부터 들린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 전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작가가 나타났다.

 

전 날 인사동 정복수씨 전시장에서 만남에 이은 연이은 만남이었다.

 

  전시장에는 수묵드로잉을 비롯한 페인트작업이 걸렸고

바닥에는 버려진 사물들을 채집하여 가지런히 진열해 놓았는데,

사진으로 본 작품의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눈멂이란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중지'의 순간으로,

길을 가다 만난 풍경과 풍경 속에 담긴 삶의 모습이 아련하지만 친근하게 다가왔다.

 

  대상을 만나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그치며 그려 낸 작품에는 고요한 울림이 번지고 있었다

찰나가 전해주는 잔잔한 울림으로, 마치 수행자의 묵상처럼 고요한 정적감도 감돌았다. 

 

  볼수록 풍경 속으로 빨려 가는 심오한 흡인력이 느껴졌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난 계곡의 돌들도 저마다 소리를 내고,

말없이 흐르는 구름마저 손짓하며 암시한다.

그렇게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그의 되돌아 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그곳에는 이름 없는 풍경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보잘것없는 사물들, 변화하며 사라져가는 자연의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 사유가 자연을 인위적인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사유에 있어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작가가 그려가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회화작업 속에는 이러한 전통적 사유와 함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 두나무아트큐브

 

  이 전시는 안양시 예술로공원에 있는 두나무아트큐브에서 111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한상진'눈멂, Blinding Scenery' :: 인사동 사람들 (tistory.com)

 

이청운 화백이 청운을 꿈을 안고 상경한 지도 어언 반세기가 가깝다.

그가 화단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71년 구상회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다,

그리고 데뷔한 지 10년 만에 중앙미전에서 특선을 받으며 재 부상한다.

이때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시련도 따랐다.

 

박통 때인 1970년대 말에는 독제에 항거하는 ‘현실과 발언’에 합세해 혼이 난적도 있다.

정의감을 억누를 수 없어 참여했지만, 그가 표적이 된 것이다.

 

어리숙한 이화백을 만만하게 본 정보당국은 그를 납치해 무려 50일이나 감금해 버렸다.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출감하자 말자 낯설고 먼 프랑스로 떠난 것이다.

마지못해 선택한 외유에서 의외의 성과도 얻었다.

바로 살롱도톤느 전에서 1등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가 주로 그렸던 그림 소재는 유년과 청년 시절을 보낸 부산 바닷가 풍경이었다

애수에 젖은 풍경들은 질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둡지만 서정적인 바다가 바로 이청운의 그림 세계다.

 

그가 아프기 전에 부산 청사포로 화실을 잠깐 옮긴 적이 있었다.

비릿한 바닷가 추억을 떠올리며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림의 완성도 보지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그에게는 항상 10년이라는 변곡점이 따랐다.

병마와 싸운 지도 이제 10년이 가까워오니, 곧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먼지 덮인 미완의 작품이 빛을 발할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지난 20일, '청운이형 병문안 가자'는 연락을 김명성씨로부터 받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다 몸도 편치 않았지만, 누워만 있을 일은 아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가지 못했으니, 그를 본 지도 3년이 넘어 버렸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 응암역에 내렸는데,

약속 장소인 서부경찰서 앞에는 김명성씨와 조해인씨가 먼저 와 있었다.

뒤이어 송상욱, 김영복, 전활철씨가 줄줄이 나타났다.

 

화실에는 부인 이상랑 여사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긴 세월동안 간병하느라 고생해서 그런지, 곱던 얼굴에 주름이 졌다.

대조적으로 이청운씨는 동자 같은 미소를 띠며 반갑다고 손을 흔들었다.

마치 양산박에 등장하는 무대의 모습이 연상되는 그런 표정이었다.

 

이청운 화백이 지병으로 자리에 누운 지도 어언 십 년이 가깝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제 이청운 화백도 변할 때가 된 것 같다.

살신성인,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아내 덕이지만,

미완의 그림을 두고 눈감지 못하는 이화백의 절박함도 더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 어찌 하늘이 감동하지 않겠는가?

 

처음 병문안 갔을 때, ‘5년만 더 그릴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소연 했는데,

소망을 이루고 싶은 집념에 십 년을 버텨낸 것 같다.

병상에 누워  곳곳에 걸린 미완의 그림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구상과 고민을 했겠는가?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 미완의 그림에 혼을 불어넣을 때다.

 

털고 일어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구상한 것을 에이 아이가 완성케 하면 안될까?

 

어두운 잿빛 화실의 풍경 자체가 이청운의 오래된 자화상 같다.

이젤은 어두운 뒷골목에 버틴 전봇대 같기도 하고, 삽살개가 다리를 치켜든 정겨움도 연상되었다.

 

뒤 늦게 뮤지션 김상현씨가 등장했다.

그 역시 중병으로 투병하는 처지지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힘들게 찾아온 것이다.

전에는 아코디온을 메고 와 셀브루의 우산을 연주했는데, 얼마나 애잔하고 슬펐는지 모른다.

그때가 생각났는지, 청운의 표정은 아쉬운 감이 역력했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 온 상현씨 역시, 힘들어 악기를 가져오지 못한 심정이 어떻겠나?

 

물감이 짓이겨져 걸려 있는 팔레트 행렬도 정겹고,

이젤에 기대어 화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등대 또한 얼마나 불을 밝히고 싶겠는가?

모든 게 정지된 풍경이지만, 그 자체가 이청운의 삶이고 색깔이었다.

 

김명성씨는 이청운 미완의 작품 전을 열겠다고 말하지만, 안쪽에 누운 이 화백 들을까 걱정되었다.

긴 세월 눈 감지 못한 이유가 뭔 데, 자존심 상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들 화실에서 나왔지만 그냥 헤어질 수 없어, 서부경찰서 후문 쪽에 자리 잡은 마포나루로 갔다.

푸짐한 갖가지 해산물이 나왔는데, 인사동 낭인들 술자리에 어찌 소리가 없을소냐?

‘부용산’으로 시작한 음유시인 송상욱 선생의 흘러간 노래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들였다.

 

'내 이름은 순이' 라는 노래인데, 가사 내용이 대폿집 작부의 신세타령이었다.

"내이름은 순이랍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에레나예요. 그냥 그냥 십팔번으로 통한답니다

술이 좋아 마신 술이 아니 랍니다. 괴로워서 마신 술에 내가 취해서 고향에 부모형제 내동생이 보고파 웁니다.

그 날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뜬소문도 거짓이예요"

 

오랜만에 듣는 송상욱선생 노래도 흥겹지만, 술상 두드리는 젓가락 반주가 더 죽였다.

 

사진, / 조문호

 

 

 

정선 덕산기의 소설가 강기희(61)씨가 지난 81일 오전2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 : 자 강승범, 처 유영숙

빈소 : 정선군립병원 장례식장 (사북읍 지장천로 72)

발인 및 영결식: 2023.8.3 (목)10:00
장지 : 동해 승화원, 덕산기 선산 
문의 : 전상현(010. 3331. 0059)
 
강기희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문학21』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로 『아담과 아담 이브와 이브』(1999),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1999), 『은옥이 1, 2』(2001), 『도둑고양이』(2001), 『개 같은 인생들』(2006), 『연산-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2012), 『원숭이 그림자』(2016), 『위험한 특종-김달삼 찾기』(2018), 『연산의 아들, 이황-김팔발의 난』(2020), 『이번 청춘은 망했다』(2020) 등을 출간했다.
한국 최초 전자책 전문업체인 '바로북닷컴'이 주최한 ‘5천만원 고료 제1회 디지털문학대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창작기금을 수혜하였다. 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오지 마을인 정선 덕산계곡에서 창작 활동과 함께 ‘숲속책방’을 운영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는 고인의 생전 모습입니다.

지난 사진을 돌아보며 고인을 추모해 주십시요.

 

 

 

 

실종의 소설가 구중관 형이 소설제목처럼 영원히 실종되어 버렸다.

팔순이 넘도록 홀로 적적하게 지내더니 산천이 들썩이는 이 화창한 봄날, 하늘나라로 떠났다.

천상의 선녀 만나러 떠난 것일까?

 

중관형이 여주로 이사한 뒤로 늘 궁금하던 차에, 난데없는 부고가 날아들었다.

뇌경색을 일으켜 조카의  간병을 받았으나, 며칠 지나지 못한채 운명하셨다고 한다

 

중관 형의  빈소를 인사동 '사가연'에 마련한 사람은 '시네갤러리' 노광래 관장이었다.

지난 달 유목민에서 치른 신성준 선생 장례처럼, 여기 저기 알려 인사동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비싼 장례식장보다 잘 다니던 술집을 빈소로 정하여 고인의 삶과 연결시켰다.

 

요즘은 일로 인한 스트레스인지, 갈 때가 되었는지 몸이 예전 같지 않다.

힘들어 온 종일  누워있지만, 중관형이 떠나는 마지막 길은 마다할 수 없었다.

더구나 마지막 볼지도 모를 배평모씨가 삼천포에서 온다는데 어찌 누워 있겠는가?

 

빨리 갔다 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아 일찍부터 나섰는데, 길에서 잘 아는 노숙거사를 만났다.

"어딜 그리 황급히 가는가? 술 한 잔 하고 가시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노숙거사는 행색은 거지지만 표정은 부처 같았다.

마신 술이 약인지, 두들겨 많은 것처럼 쑤시던 몸이 가뿐해 졌다. 

알콜 중독증세일까? 아니면 노숙거사의 신 끼가 작동한 걸까?

준비한 조의금에서 파랑새 한 장 빼내 적선했다.

 

찾아 간 인사동 시가연‘에는 상주인 조카 구정현씨와 잘 모르는 분만 있었다.

마이크 잡고 노래한 적이 어저께 같은데, 그 자리를 영정사진이 대신하고 있었다.

절을 올리며 중관형의 명복을 빌었으나 마음은 찹찹했.

살고 죽는 것이 이리 간단한 것이던가?

 

중관형과 양평장에서 만난 일들을 떠 올리며 혼자 홀짝거리고 있으니, 반가운 분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노광래씨를 비롯하여 이준기, 김형구, 배평모, 김철환, 임해리, 임계재, 박상희, 이만주씨 등 많은 분이 모여들었다.

 

소설이 안 팔려 작가폐업술집 냈던 배평모씨는 만난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쩌렁 쩌렁한 목소리 들으니 기가 철철 넘쳐 백수는 무난할 것 같았다. 

평소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기차 불통을 삶아 먹었는지 잘들리다 못해 귀가 멍멍했다.

앞 사람과 조가 맞아 쉼없는 구라를 풀어대는데,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졸리기 시작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들은 이야기로는, 요즘 죽는 사람이 유독 많은 것은 윤석열이 때문에 홧병이 나 죽는단다.

결정적으로 잠을 깨운 이야기는 비아그라 이야기였다.

 

 비아그라를 많이 먹은 한 인간이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시신의 거시기가 튀어 올라 관 뚜껑이 닫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죽은 자의 친구가 나타나 ! 너그 마누라 왔다고 하니, 관 뚜껑이 쑥 내려갔다"는 설렁한 개그였다.

 

영정사진을 거두어 여주로 내려갈 준비하는 것을 보고서야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 분들이 많이 돌아가신다.

인사동과 관련된 분만 해도 신성준선생을 비롯하여 박구경시인 등 줄줄이 돌아가셨는데,

아직 사망신고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또 돌아가신 것이다.

 

살아남은 자는 가슴 아프지만, 그 길은 천국 가는 영생의 길이 아니던가?

이젠 장례문화도 초상집이 아니라 잔칫집으로 바뀌어야 한다.  

비싼 장례식장보다 사정에 맞게 치루고, 춤추며 노래부르는 신나는 굿판을 만들자. 

 

중관형!  봄바람에 실려 꽃길따라 훨훨 날아가, 좋은 세상만나길 축원드립니다

 

사진, / 조문호

 

 

 

 

소설가 구중관(80세)씨가 지난 13일 뇌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빈소를 지킬 가족이 없어 인사동 ‘시가연’에 임시 분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분향시간 : 15일 정오부터 오후 10시까지

분향장소 : ‘시가연’ 인사동길 52 (전화02-720-6244)

상주(조카) 구정현 010-4754-2817

 

아래는 고인의 생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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