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6일 성균관로 ‘정문규미술관’에서 열린 김재홍 초대전 ‘깨어나는 몸, 다시 서는 거인’을 보면서다.
2년 전 보여준 ‘거인의 잠’에서는 갈갈이 찢기고 망가진 땅 즉 병든 국토를 이야기 했다면,
이번에 보여 준 깨어나는 몸은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정신을 탓하는 것 같았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물질문명, 즉 돈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현실을 반성케 하는 리얼리즘이라 듯이,
작가 김재홍이 전해주는 시어들은 절규에 가깝다.
김제홍은 정치적 모순이나 불안한 한반도 평화, 환경의 황폐화, 물질문명에 병든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 등
동시대인이 처한 삶의 문제점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화산이나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을 핵폭탄 등을 아름다운 꽃으로 표현한 작품에서는
보들레르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그대의 증오로 저주받은 이 씨앗은
나를 짓누르는 분노를 솟구치게 할지니
독기 품은 새싹이 돋아나지 못하도록
늦기 전에 이 나무를 아주 비틀어 놓으리라!“
-보들레르의 시 ‘축복’ 중에서-
그리고 마지막 남은 여행은 ‘죽음’ 뿐이라고 했다
죽음의 길에서 ‘새로운 미지의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목숨 걸고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악의 꽃’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였다.
김재홍이 추구해 온 일관된 작업은 우리민족이 겪어 온 역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민주화 과정을 겪는 지난한 시대적 사건에서 부터,
국토의 분단과 자연의 황폐화 그리고 핵 확산이 가져올 종말적 위기론까지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가 배경으로 끌어들이는 인간의 몸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며 세상이다.
분단의 상처나 핵폭발로 일어 날 비극적 상황을 몸의 상처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반성케 한다.
아래 글은 홍경한 미술평론가의 전시 서문에서 한 단락 옮겼다.
“김재홍은 정치적·사회적 관계망 속에 거주하는 실존이 겪는 삶의 냉혹한 현실을 기록하고
시대의 긴급한 사회적 문제들을 품격 있게 다룬다.
또 다른 역사화로 <근정전>을 잇는 <안타까운 유산>에서처럼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논평’이 된다.
물론 또 다른 특징도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은 형식상 사실주의적 경향을 따르지만 입체적 상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입체적 상상은 상징적인 요소에 의한다. 작가는 상징을 통한 직관성을 회피하는 대신 작품마다 시어(詩語)를 심으며 현실 인식과 성찰의 행간을 만든다. 예를 들어 폭탄에 의해 깊은 웅덩이가 들어선 대지 혹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몸을 그린 <거인의 잠>, <야만의 흔적> 연작은 거칠고 험난한 질곡의 역사를 다룬 진혼곡이다.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기록과 생채기들은 엄혹한 현실의 투영이면서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던 익명의 상흔이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26일은 청승맞게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성균관대 부근에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문규씨 집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어렵사리 찾았지만 많은 분들이 뒤풀이 집으로 옮기고 있었다.
일 이층에 나누어 내건 대형 작품에 압도되었지만 손님이 너무 많았다.
뒤늦게 작품 보랴 인사 나누랴 정신없었는데, 단양 사는 김언경씨 모습도 보였다.
주인공 김재홍씨를 비롯하여 박불똥, 조경연, 장경호,박흥순,안원규, 박상희, 이필두, 최석태,
한상진의‘눈멂- Blinding Scenery’전이 안양 ‘두나무아트큐브’에서 지난 6일 열렸다.
지난 7일 아산 ‘꿈에실농장’ 가는 길에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정동지 전시도 있었지만, 몸이 편치 않아 오랫동안 아산에 들리지 못했더니,
지난 추석에는 아산 농장 식구들이 서울로 올라 오기도 했다.
가을걷이라 해야 고추 밖에 없지만겸사겸사 시간 내어 안양 한상진씨 전시부터 들린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전시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작가가 나타났다.
전 날 인사동 정복수씨 전시장에서 만남에 이은연이은 만남이었다.
전시장에는 수묵드로잉을 비롯한 페인트작업이 걸렸고
바닥에는 버려진 사물들을 채집하여 가지런히 진열해 놓았는데,
사진으로 본 작품의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너무 달랐다.
눈멂이란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중지'의 순간으로,
길을 가다 만난 풍경과 풍경 속에 담긴 삶의 모습이 아련하지만 친근하게 다가왔다.
대상을 만나 스스로 성찰하는 과정을 그치며 그려 낸 작품에는 고요한 울림이 번지고 있었다
찰나가 전해주는 잔잔한 울림으로, 마치 수행자의 묵상처럼 고요한 정적감도 감돌았다.
볼수록 풍경 속으로 빨려 가는 심오한 흡인력이 느껴졌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난 계곡의 돌들도 저마다 소리를 내고,
말없이 흐르는 구름마저 손짓하며 암시한다.
그렇게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그의 되돌아 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그곳에는 이름 없는 풍경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보잘것없는 사물들, 변화하며 사라져가는 자연의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 사유가 자연을 인위적인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사유에 있어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작가가 그려가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회화작업 속에는 이러한 전통적 사유와 함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 두나무아트큐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