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덕산기의 소설가 강기희(61)씨가 지난 81일 오전2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 : 자 강승범, 처 유영숙

빈소 : 정선군립병원 장례식장 (사북읍 지장천로 72)

발인 및 영결식: 2023.8.3 (목)10:00
장지 : 동해 승화원, 덕산기 선산 
문의 : 전상현(010. 3331. 0059)
 
강기희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문학21』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로 『아담과 아담 이브와 이브』(1999),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1999), 『은옥이 1, 2』(2001), 『도둑고양이』(2001), 『개 같은 인생들』(2006), 『연산-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2012), 『원숭이 그림자』(2016), 『위험한 특종-김달삼 찾기』(2018), 『연산의 아들, 이황-김팔발의 난』(2020), 『이번 청춘은 망했다』(2020) 등을 출간했다.
한국 최초 전자책 전문업체인 '바로북닷컴'이 주최한 ‘5천만원 고료 제1회 디지털문학대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창작기금을 수혜하였다. 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오지 마을인 정선 덕산계곡에서 창작 활동과 함께 ‘숲속책방’을 운영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래는 고인의 생전 모습입니다.

지난 사진을 돌아보며 고인을 추모해 주십시요.

 

 

 

 

실종의 소설가 구중관 형이 소설제목처럼 영원히 실종되어 버렸다.

팔순이 넘도록 홀로 적적하게 지내더니 산천이 들썩이는 이 화창한 봄날, 하늘나라로 떠났다.

천상의 선녀 만나러 떠난 것일까?

 

중관형이 여주로 이사한 뒤로 늘 궁금하던 차에, 난데없는 부고가 날아들었다.

뇌경색을 일으켜 조카의  간병을 받았으나, 며칠 지나지 못한채 운명하셨다고 한다

 

중관 형의  빈소를 인사동 '사가연'에 마련한 사람은 '시네갤러리' 노광래 관장이었다.

지난 달 유목민에서 치른 신성준 선생 장례처럼, 여기 저기 알려 인사동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비싼 장례식장보다 잘 다니던 술집을 빈소로 정하여 고인의 삶과 연결시켰다.

 

요즘은 일로 인한 스트레스인지, 갈 때가 되었는지 몸이 예전 같지 않다.

힘들어 온 종일  누워있지만, 중관형이 떠나는 마지막 길은 마다할 수 없었다.

더구나 마지막 볼지도 모를 배평모씨가 삼천포에서 온다는데 어찌 누워 있겠는가?

 

빨리 갔다 와서 쉬는 게 나을 것 같아 일찍부터 나섰는데, 길에서 잘 아는 노숙거사를 만났다.

"어딜 그리 황급히 가는가? 술 한 잔 하고 가시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노숙거사는 행색은 거지지만 표정은 부처 같았다.

마신 술이 약인지, 두들겨 많은 것처럼 쑤시던 몸이 가뿐해 졌다. 

알콜 중독증세일까? 아니면 노숙거사의 신 끼가 작동한 걸까?

준비한 조의금에서 파랑새 한 장 빼내 적선했다.

 

찾아 간 인사동 시가연‘에는 상주인 조카 구정현씨와 잘 모르는 분만 있었다.

마이크 잡고 노래한 적이 어저께 같은데, 그 자리를 영정사진이 대신하고 있었다.

절을 올리며 중관형의 명복을 빌었으나 마음은 찹찹했.

살고 죽는 것이 이리 간단한 것이던가?

 

중관형과 양평장에서 만난 일들을 떠 올리며 혼자 홀짝거리고 있으니, 반가운 분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노광래씨를 비롯하여 이준기, 김형구, 배평모, 김철환, 임해리, 임계재, 박상희, 이만주씨 등 많은 분이 모여들었다.

 

소설이 안 팔려 작가폐업술집 냈던 배평모씨는 만난지가 너무 오래되었다.

쩌렁 쩌렁한 목소리 들으니 기가 철철 넘쳐 백수는 무난할 것 같았다. 

평소 귀가 어두워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기차 불통을 삶아 먹었는지 잘들리다 못해 귀가 멍멍했다.

앞 사람과 조가 맞아 쉼없는 구라를 풀어대는데, 그 시끄러운 와중에도 졸리기 시작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들은 이야기로는, 요즘 죽는 사람이 유독 많은 것은 윤석열이 때문에 홧병이 나 죽는단다.

결정적으로 잠을 깨운 이야기는 비아그라 이야기였다.

 

 비아그라를 많이 먹은 한 인간이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시신의 거시기가 튀어 올라 관 뚜껑이 닫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죽은 자의 친구가 나타나 ! 너그 마누라 왔다고 하니, 관 뚜껑이 쑥 내려갔다"는 설렁한 개그였다.

 

영정사진을 거두어 여주로 내려갈 준비하는 것을 보고서야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 분들이 많이 돌아가신다.

인사동과 관련된 분만 해도 신성준선생을 비롯하여 박구경시인 등 줄줄이 돌아가셨는데,

아직 사망신고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또 돌아가신 것이다.

 

살아남은 자는 가슴 아프지만, 그 길은 천국 가는 영생의 길이 아니던가?

이젠 장례문화도 초상집이 아니라 잔칫집으로 바뀌어야 한다.  

비싼 장례식장보다 사정에 맞게 치루고, 춤추며 노래부르는 신나는 굿판을 만들자. 

 

중관형!  봄바람에 실려 꽃길따라 훨훨 날아가, 좋은 세상만나길 축원드립니다

 

사진, / 조문호

 

 

 

 

소설가 구중관(80세)씨가 지난 13일 뇌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빈소를 지킬 가족이 없어 인사동 ‘시가연’에 임시 분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분향시간 : 15일 정오부터 오후 10시까지

분향장소 : ‘시가연’ 인사동길 52 (전화02-720-6244)

상주(조카) 구정현 010-4754-2817

 

아래는 고인의 생전 모습입니다.

 

 

낭만가객 최백호의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마음의 숲에서 출간되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출판된지 한 달도 되지않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최백호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마음의 숲/ 240면 / 가격17,000원

지난 달 초에 발간된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그가 써온 노래가사처럼 깊은 우수와 사유,

삶에 대한 통찰이 오롯이 담겨있다.

 

산문집에는 최백호가 가수가 된 우여곡절과 가수로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살아 온 진득한 이야기,

노래에 얽힌 사연, 그리고 깊은 울림을 주는 삶의 잠언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60세가 넘어 그리기 시작하여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졌던 그림 30점도 수록되어

산문집의 볼거리를 더해주는데, 그림에 이어 글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다.

하기야! 그가 쓴 시 같은 노래가사들을 보면 일찍부터 노래하는 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수이며 시인이고, 시인이며 화가인 최백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풍류객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4일 오후 4시에는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홀에서 최백호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북 콘서트가 열렸다.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은 350석 규모지만 코로나 방역으로175명만 입장할 수 있는데다,

책은 이미 구해 읽은 터라 북 콘서트는 가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뜻밖의 이변이 생겨버렸다.

 

필자가 포스팅한 북 리뷰를 본 울산의 오세필씨가 사발통문을 돌려버렸다.

그 덕에 김명성씨가 좌석을 확보하여 인사동 지인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이십여 명이나 추가로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객석의 반만 예약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 날 오후 3시 무렵, 정영신씨와 인사동부터 들려 갤러리인덱스에서 열리는

) 김기찬선생의 어게인 골목안 풍경 속으로사진전을 관람했는데,

사진전 역시 모처럼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좋은 사진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역술인 신단수씨를 만나 그날 일진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북콘서트가 열리는 대산홀 입구에는 신단수씨의 친형인 김명성씨가 구입한 책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객석에는 오세필, 임태종, 정기범, 이정숙씨등 반가운 분도 여럿 보였다.

 

오후4시부터 시작된 북 콘서트는 최백호의 주옥같은 노래와 함께

가을 낙엽처럼 구수한 이야기들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께서 태어난 지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자신을 보러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누님으로부터 너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원망과 더불어

공부가 하기싫어 방황했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맺힌 상처까지 다 털어놓아

그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별도의 사회 없이 혼자서 1시간 30분 동안 끌어가는 북 콘서트 진행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다.

 SBS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낭만시대'14년 동안 끌어 온 경험이 뒷받침 되지 않았나 싶다.

 

그 날 부른 노래는 부산에 가면을 비롯한 애창곡을 일곱 곡이나 불렀는데,

우수에 젖은 그의 노래는 흩어지는 낙엽처럼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특히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친구 홍수진 시인을 생각하며 가사를 쓴

영일만 친구에서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왔다.

마지막 구절인 친구를 부르는 대목은 절규처럼 가슴에 내려 꽂혔다.

 

3월 말에는 부산에서 최백호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북 콘서트가 열린다니,

부산에 계신 분들은 잊지 말고 좋은 시간 만들길 바란다.

 

'인사동 사람들'은 북 콘서트가 끝난 후 미리 예약해 둔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유쾌한 만찬의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김명성씨가 마지막 기념사진 찍으며 뱉은 농담 한마디는 영원히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가 되고 말았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 사진
정영신사진
정영신사진

  

삼천포의 박구경시인(67세)이 지난 3월2일 오후10시, 서울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조정애시인의 페이스북에 올라 온 박구경시인 부고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승 가는 길에 순서야 없지만, 왜 착한 사람만 데려가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오래전 ‘진료소가 있는 풍경’시집 낼 때는 프로필 사진 찍으러 그녀가 근무한 ‘사천 북사동 보건소’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인사동 사람들 모임이라도 있으면 먼 길을 마다 않고 올라와 모두의 안부를 확인한 인정 많은 시인이었다.

 

너무 늦게 알아 문상도 가지 못했지만, 부디 극락왕생을 빕니다.

 

빈소 : 삼천포서울장례식장

발인 : 3월 4일 오전9시

장지 : 선산수목장

 

박구경시인은 경상대간호학과를 졸업하고, 한때 경남일보 기자와 사천북사동보건진료소장을 지내며, 96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국수를 닮은 이야기’, ‘외딴 저 집은 둥글다’, ‘형평사를 그리다’ 등이 있다. 98년 제1회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장관상을 수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산 윤선도 문학대상, 경남작가상, 하동문학상을 수상했고, 경남작가회의 회장을 지낸바 있다.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자가용은 너무나 미끈하고/ 핸드폰은 점점 작아지고/ 디지털의 표정,/ 그 생각은 너무나도 엉뚱해지고/ 그 꿈들은 세련되고 약아빠졌으니/ 육중한 열 량 스무 량의 기차가/ 거친 쇳내를 풍기며 들어서는 바닷가 역사驛舍/ 사람들이 사철나무 울타리에 깃들어/ 아침 햇살과 바다 물결을 길게 이고 지고/ 사람들이 왔다야! 하며/ 흥청흥청 장터처럼 모여들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2007년 작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중에서)

 

최백호 /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마음의 숲 / 240면 / 17,000원

낭만가객 최백호의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마음의 숲에서 출간되었다.

가수에서 화가로, 화가에서 문필가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전방위 예술가로 거듭나고 있다.

 

인사동 공화랑/ 쵀백호개인전에서 2008.5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그의 소식은 인터넷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최근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산문집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서둘러 구해 보았다.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이어 맛깔 나는 글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깊은 사유와 삶에 대한 통찰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가수로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살아 온 이야기와 노래에 얽힌 사연, 그리고 속 깊은 울림을 주는 인생의 잠언들은 최백호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환갑이 되어 그리기 시작해 여러 차례 전시 해 온 그림 삼십여 점도 볼거리를 더해준다.

 

인사동 '경복궁'에서 '인사동사람들'모임에서 / 2018.8

, 최백호를 추남(秋男)으로 부른다.

며칠 전에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의 노래 부산에 가면을 들었는데, 쪽팔리게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마치 낙엽이 흩어질 듯한 우수에 젖은 목소리가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만난 지가 몇 년은 족히 된 것 같아 모처럼 그에게 문자메시지로 편지를  보냈다. 평소 어눌한 말버릇으로 소통이 잘 안되는데다, 이젠 귀도 어둡고 발음까지 분명치 않아, 전화는 잘 걸지도 받지도 않는다. 마침 '스마트협동조합' 일로 상의할 것도 있어 장문의 편지를 쓴 것이다.

 

정동 이화아트갤러리 / 장사익글씨전에서 2019.5

그를 알게 된지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10여년 전 정영신씨와 내가 인사동에서 '아트온'이란 사진출력소를 차린 적이 있었다. 그 때 김명성시인과 뜻을 모아 '앱숀' 출력기를 사라며, 천 만원이나 되는 큰 돈을 준적이 있었다. 돈이 있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세월은 아름다운 시간도 있었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시간도 많았다. 그는 부끄러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움도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얼마나 용감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볼이 빨개진 모습.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알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른인 우리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

 

인사동 '툇마루'에서 김명성, 오세필씨와 함께 / 2018. 7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떠나보낸 세월 속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환되고 있었다. “노래 속에 나오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은 부산 동래시장 근처 수안파출소 부근의 어느 허름한 다방이었다. 힘들었던 시절 길을 걷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에이스 캐논의 색소폰 연주곡인 로우라가 흘러나와 그 자리에서 스무 번을 넘게 들었던 것 같다. 그런 기억을 더듬어 만든 노래다

 

마포 '뮤지스땅스' 개막식에서 / 2014.12

노래에 대한 투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여든이 되어도 나는 입영전야를 부를 수 있다. 젊은 시절에 한 호흡으로 부르던 대목을 두세 호흡으로 나눠 부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든에는 여든의 호흡으로 아흔에는 숨이 좀 가파르겠지만 충분히 노래할 수 있다.”  그렇다. 그는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친구다. 책 속에 이런 대목도 나온다. “나보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나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매일 새벽 6시 반쯤 일어나 두세 시간씩 노래 부르고 그림을 그린다. SBS 라디오'최백호의 낭만시대'14년째 하고 있다. 열심히 하는 일에 타협은 필요 없다.”

 

인사동 덕원갤러리의 정영신 '장날' 전에서 / 2016.8

그리고 사회를 향한 질책도 빠지지 않았다.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카메라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 어른에게 심한 욕설을 해대는 젊은이, 더욱 거칠어진 폭력범, 갑 질하는 부자들의 뻔뻔스러움 등은 씁쓸하면서도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

이외에도 스스로 간이 작았다며 무대에서 손을 올리기까지 한없이 힘들었다는 이야기, 할 말은 하는 그의 성격 덕에(?) 일어났던 방송국 에피소드, 70년대 해외 공연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 박자가 틀리고 부를 때마다 노래가 다르다고 후배들에게 핀잔 듣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표절에 대해 남긴 글에서는 정의로운 의지를, 교편 잡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압구정 '장천아트홀'에서,, 옆은 오세필씨와 필자 / 2014,8, 정영신사진

이 책의 매력은 결코 최백호의 진정성 있는 고백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 그가 주목하는 지점은 진정성이다. 고독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서지 않고 돋보이려 하지 않는 것. 그 고독을 견디는 힘이 최백호의 음악과 그림 그리고 지금의 글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진정성이라는 중력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겨 독자들로 부터 사랑받게 된 좋은 책이다. 나 온지 며칠 되지않았으나 벌써 베스트셀러다.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효교' 교주로 등극 / 2014.8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고독이다. 그것은 내가 노래와 그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언제나 가장 소중한 친구다. 고독에서 사유의 힘이 오고 혼자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이 온다. 진정한 고독은 따뜻한 위로를 준다.”

 

나는 일출보다 일몰을 더 사랑한다. 세상을 삼 킬 듯이 힘차게 솟아오르는 피둥피둥한 아침 햇살 의 욕망스런 모습보다, 온몸을 불태워 최선을 다한 장엄한 황혼의 그 처절한 모습에 감동 받는다.”

사진, 글 / 조문호

 

오는 3월4일 교보문고(23층대산)에서 최백호 북콘서트가 열린다.

 

자유로운 삶을 사신 철학자 신성준 선생께서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받았다.

뇌출혈을 일으켜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인사동 유목민에 빈소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윤명철씨가 발견하여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늦었다고 한다.

독일 사는 조카에게 연락이 닿아 그나마 혈연이 빈소를 지킬 수 있었다.

 

지난 5일 오후6시 무렵, 빈소를 차린 유목민에 갔더니,

독일에서 온 외조카 유수선씨와 조카 신대식씨를 비롯하여

윤명철, 노광래, 전활철, 최유진, 강찬모, 김명성, 조해인, 이명희씨가 있었다.

 

일찍은 박상희씨가 다녀갔고, 늦게는 방기식씨와 김상현씨도 조문을 왔는데,

김상현씨는 암과 투병중인 환자가 아니던가?

 

빈소에 걸린 영정사진이 젊은 모습이라 낯설기도 하지만,

고인의 영전에 술 한 잔 올려 편안한 안식을 기원했다.

 

먼길 떠나는 노잣돈이라며 돈봉투를 내놓았더니, 노광래씨가 필요없다며 돌려 주었다.

술 값은 독일에서 온 외조카 유수선씨가 부담한다며...

 

고인은 독신으로 사셨으니, 걸릴 것 없이 편하게 떠나신 것이다.

장례식장보다 유목민에 빈소를 마련한 것도 잘 한 것 같았다.

 

5일은 인사동 유목민에서 조문객을 맞고,

6일은 노광래씨가 운영하는 시네갤러리에서 맞을 것이라 한다.

 

생전에 두 곳을 가끔 들리기도 했지만, 유목민처럼 사시며 술을 즐겼으니

고인의 뜻도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인의 삶처럼 자유롭게 이승을 떠돌며  삶을 하직한 것이다.

최유진씨는 장례문화도 이처럼 다양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해는 화장하여 조카가 사는 독일로 옮겨 갈 것이라는데,

절차가 까다로워 보름정도의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

 

삼가 고인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사진, / 조문호

 

 

 

 

철학자 신성준 선생께서 지난 4일,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빈소를 지킬 가족이 없어 인사동 ‘유목민’에 임시 분향소를 마련하였습니다.

2월 5일은 '유목민'에서 조문이 가능하고, 2월6일은 노광래씨의 '시네갤러리'로 옮깁니다.

생전에 좋아하신 약주 한 잔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아래는 고인의 생전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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