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한 해가 지날 채비를 하지만,

동자동에 짓기로 한 공공주택은 어떻게 되었는지 감감소식이다.

 

뉴스에는 김포시가 서울에 편입되고 메가시티가 건설된다는 등

온통 정치 모리배들의 표몰이 바람에 시끌벅적하지만,

동자동공공개발은 공표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첫 삽도 뜨지 않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입을 다물고 있을까?

전세사기 대책이나 서울-양평고속도로 문제 등 눈앞에 닥친 일도 한둘이 아닌데다,

윤석렬 눈치 보느라 어느 것 하나 소신대로 하는 일이 없다.

 

  그와 달리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목표로 삼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좀 다른 것 같다.  

지난 달 동자동 온기창고개장식에서 동자동공공계발을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동행식당, 동행목욕탕, 온기창고 등 빈민들 피부에 닿는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의 집무실 한쪽 벽에는 약자와의 동행이란 글귀가 붙었는데,

그 글은 동자동 장애주민 윤용주씨가 써준 붓 글이었다.

 

국토교통부에서 깔고 앉아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국토부를 재촉해서라도 하루속히 성사시켜 줄 것을 촉구한다.

 

  그제는 동자동에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자들은 다들 어디로 피했는지,

비에 젖은 이불만 어지럽게 늘려 있었고, ‘새꿈공원에는 비둘기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조차 만 날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한가한 동자동 풍경이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은 채남규씨가 머무는 경기여인숙부터 잠시 들렸는데,

몸이 아파 공공근로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보살펴 줄 사람 없는 쪽방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큰 일이다.

 

  거리에는 곳곳에 젖은 이불을 말리고 있었다,

노숙인이 머무는 자리에는 누가 버렸는지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거리에서 임백수씨와 유정희씨를, 공원에서는 박소영씨와 황춘화씨를 만났다.

임백수씨와 황춘화씨는 만나 본 지가 한 참되었다.

그동안 왜 그리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 다 술을 끊었단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술 마시게 될까 염려되어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들 몸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해 금주를 했겠지만,

술 때문에 아들까지 잃은 황씨로서는 큰 결심을 한 것 같다.

 

  대개 보이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이사를 갔거나 교도소에 간 경우였는데, 이젠 금주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들 방에서 티브이만 끼고 사는데, 술을 끊을 수 있었던 그 비결이 궁금했다.

 

  건강은 물론 돈까지 절약할 수 있으니 도랑 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던가?

나 역시 술과 담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라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다.

 

  모처럼 술 마시지 않은 황춘화씨를 만나 초상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뒤늦게 나온 양인숙씨도 초상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찍은 초상사진 대부분이 남자들이라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제 날씨가 추워지면 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이 걱정이다.

다시서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노숙인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술을 끊지 못하는 알콜 중독자들은 어쩔 수가 없다.

 

  하루속히 약자들이 살 수 있는 주거부터 해결해 주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박갑석 47 세

빈곤은 늙은이보다 젊은이가 더 문제다.

쪽방 살거나 노숙하는 사람 중에는 젊은 친구도 더러 있는데, 대개 아들 같은 4, 50대로

한창 자식 키우며 신나게 일할 나이에 장가도 못 가고 거리를 떠돈다.

지병이 있어 장애등급을 받으면 쪽방이라도 들어올 수 있지만,

대개 주민등록에 문제가 있거나 장애등급을 못 받아 노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중에는 알콜 중독자가 많은데, 문제는 자포 자기하며 산다는 것이다.

 

모처럼 공원에 나갔더니, 짜장면 나누어 주던 봉사원들이 일을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지경학이는 짜장면을 먹다 말고 맹숭맹숭하게 앉아 있었다.

술 생각은 간절하나 돈이 없어 물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소주 한 병에 육포 하나 사서 같이 술 한잔했는데,

술이 들어가니 마음이 편안해지며 불안감이 사라진다고 했다.

 

경학이는 이제 쉰 둘인데, 내가 오기 전부터 동자동에서 머문 오래된 사이지만.

사진 찍히는 것을 유달리 싫어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니, 사진을 안 찍는 별다른 이유도 없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구질구질한 모습을 남기기 싫어서 란다.

 

입버릇처럼 말해 온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며,

자존감 나온 얼굴 사진이라도 한 장 남겨야 할 것 아닌가? 라고 말했더니,

자존감이 밥 먹여 주냐고 구시렁대며, 얼굴을 내밀었다.

 

지경학 52 세

그러나 기념사진은 찍을 수 있으나, 초상 사진은 다음에 찍자며 미루었다.

'사진에 술 마신 표가 나냐?'며 되물었지만,

정신이 온전할 때 찍기로 한 나름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며 설득했다.

 

그 와중에 이재안씨를 비롯하여 유정희, 정수일 등 여러 명이 등장했다.

유정희씨는 품속에 감추어둔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놓았고,

수일이는 배가 고프다며, 경학이가 먹다 만 짜장면을 먹었다.

한 시간도 더 지난 짜장면이라 불어 터졌지만,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먹었다.

 

수일이는 요즘 춘천에서 살고 있는데, 재미가 없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가오로 항상 나이방을 끼고 다니지만 도통 먹히지가 않는다며, 사진이나 멋지게 찍어 달랜다.

 

정수일47세

젊은이 초상사진으로는 지난 '추석 한마당'에서 찍은 강 호와 박갑석씨도 있는데,

다들 하루속히 안정된 일자리를 얻어 젊은 꿈을 펼치길 바란다.

 

강호 59 세

서울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원로작가지원사업의 도움으로 시작했던,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사진은 이달 말까지 찍은 사진으로 일단 마감해 정산하기로 했다.

 

장정된 초상사진은 오는 동짓날(1222)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새꿈공원에서 나누어 드릴 작정이다.

오후 6시부터는 서울역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도 열리니, 찍힌 분들은 그 날 찾아가기 바란다.

공원에 먼저 가신 분을 위한 조촐한 추모의 술상도 마련할 테니, 소주라도 한잔하면서...

 

이 초상 사진 나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사람 없는 초상 사진을 없애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은 지속적으로 찍을 작정이다.

개인이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제도개선을 위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한평생 힘들게 살다 죽는 것도 억울한 데, 죽어서 까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이건 인간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제발 인간을 모독하는 얼굴 없는 유령은 만들지 마라! "

 

사진, / 조문호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동자동 쪽방 촌에 한마당 어울림 잔치가 벌어진다.

 

그것도 자선단체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민 스스로 한 푼 두 푼 모은 잔치라 더 의미가 크다.

 

가난하게 살지만 서로 돕는 인정과 신명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주민이 술 마시며 어울려 놀지만, 한 번도 뒤탈 생긴 적도 없었다.

 

올해로 열두 번째인 동자동주민 한가위 어울림 한마당은 추석을 앞둔 지난 28새꿈공원에서 열렸다.

 

투호, 다트, 윷놀이, 노래자랑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음식을 나누는 쪽방촌 최고의 잔치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주관하는 한가위 한마당만은 빠질 수 없어 불편한 몸을 끌고 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빨래줄에 사진을 걸어 두고 찍은 사진도 돌려주었지만,

전시를 그만 둔 요즘은 항상 사진을 갖고 다닐 수 없는 어려움도 따른다.

 

행사장에는 고향을 찾지 못한 분을 위해 차례상도 마련되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다.

 

한때는 서울역쪽방상담소도 명절이 되면 차례상을 마련했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 그만두었는데, 주민들이 차례상을 반기지 않는 이유가 뭘까?

조상을 모실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 아니면 기독교 신자라 그런지 잘 모르겠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열린 한마당 어울림 잔치에서

다들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평소 보이지 않던 반가운 분도 여럿 만났다.

짝을 만나 떠났던 김규수씨도 되돌아왔고, 먼 곳으로 이사 간 강호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날은 김상진, 박희봉씨를 만나 인화해 간 사진을 전해주었는데,

김상진씨는 만족해했으나, 박희봉씨는 컬러사진이 아니라며 시큰둥하여 다시 뽑아주겠다고 다독였다.

초상사진을 갖고 싶어 하는 박갑석, 김봉구, 강 호, 양인숙씨를 찍기도 했다.

 

박갑석씨

민속놀이가 끝나니, 마당에 자리가 펴지며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송편과 묵, 파전 등의 명절 음식에다 돼지 수육까지 한 상 그득했다.

식사하며 반주를 곁들일 수 있는, 공원에서 술이 허락된 유일한 자리인 셈이다.

 

봉사하는 분들은 음식 나르느라 바빴지만, 다들 이웃과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쪽방 주민들이 어려운 노숙인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반가운 분들을 만나 인사 나누고 사진 찍느라 끼어들 틈도 없었지만,

문제는 아침부터 굶었으나 밥 생각은 물론 술 생각조차 없다는 데 있다.

이쯤 되면 밥숟가락 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즐거운 주연이 끝나자 마지막 순서인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최갑일씨 사회로 진행된 노래자랑은 공원을 주름잡던 단골손님들 무대였다.

뭐니 뭐니해도 주민들의 인기 속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노래와 춤이었다.

 

다만 천 원씩 내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분이 20명에 한정되어 아쉬웠다,

신청 순서에서 밀려난 주민의 안타까움이 곳곳에 묻어났다.

심지어 순찰하던 경찰관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신 노래 부르지 못한 사람은 춤으로 신바람을 일으켰다.

다들 돈이 없어 그렇지 신명 하나는 끝내 주더라.

춤꾼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으나, 그중 김봉구씨와 양인숙씨의 엉덩춤이 죽였다.

 

노래자랑이 끝나자 심사 결과가 나왔는데, 추측한 데로 이정애씨가 최고상을 차지하여 상품을 탔다.

노래 부른 사람만 상을 줄 게 아니라, 흥을 돋 군 춤꾼에게도 인기상 쯤은 줘야할 것 같았다.

 

잘 사는 것이란 결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욕심 없이 사는 데 있다.

요즘은 서울시에서 실시한 동행 식권으로 밥 굶는 사람은 없으니,

신명 나게 놀고 즐기는 것이 최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내년 추석에도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다들 행복한 추석 보내며,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사진, / 조문호

 

김지은씨

몸이 아프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순 없어 남대문사우나에 갔다.

서울시에서 한 달에 두 장씩 주는 무료목욕권을 아주 요긴하게 쓴다.

대개 비 오는 날 몸이 뻐근하고 아플 때 사용하지만, 이번엔 몸을 추스르기 위해 간 것이다.

냉탕 온탕을 드나들며 나부대니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다.

 

서울로육교를 거쳐 광장으로 내려가니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십여 년 동안 서울역을 누볐던 노숙인 김지은씨가 아닌가?

서울역 노숙하면 그부터 떠 올릴 만큼, 서울역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 그가 두세 달 전부터 보이지 않아 늘 궁금했는데,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넥타이 휘날리며 돌아온 것이다.

너무 반가워 손을 잡았더니, 손아귀에 힘이 실려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갈 데가 어딧어요. 빵이지...”라며 말을 흐린다.

 

차마 자존심 상할 것 같아 무슨 죄로 갔냐고 물어볼 순 없었지만,

추측컨데, 남의 옷이나 탐내다 문제 생긴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술도 많이 마시지 않지만, 싸우지도 않아 폭행에 휘말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동자동에 조현성 정신질환자가 유독 많듯 그 역시 그런 병인 것 같은데,

먹고 자는 것 보다 오로지 멋 부리는 데 치중한다.

 

볼 때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을 선보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에는 멋 부릴 옷이 없었던지, 런닝 셔츠에 넓적한 넥타이만 메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게 몸이 좋아지고 힘이 실려 있었다.

삼시 세끼 밥 잘 먹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하고 잠재우며,

짐승처럼 사육 당하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출감 기념 초상사진 찍자고 했더니, 반색을 한다.

멋 부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서울역광장을 거쳐 동자동으로 건너오다 또 한 사람 반가운 이를 만났다.

송범섭 역시 한동안 보이지 않아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건너 마을로 이사 갔다고 한다.

오래전에 찍은 기념사진이 있어 방에 데려가 사진을 찾아 주었더니,

이왕 주는 김에 초상사진도 한 장 찍어달란다.

 

송범섭씨

이젠 어디 가나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오랜만에 나타난 사람은 죽은 처삼촌 만난 듯 반갑다.

대개 이승을 떠난 사람이 많아지고, 이사 온 빈민만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질 존재가 아니던가?

죽기 전에 복 받을 짓을 해야 저승 가서 푸대접 받지 않을 텐데, 가진 것이 없으니 복 지을 건덕지가 없다.

열심히 사진이라도 보시하면 잘 봐주지 않을까 위안한다.

그러나 몸은 비틀거리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한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사진, / 조문호

 

 

전시 치루는 일이 힘에 부치는 걸 보니, 이제 몸이 다 된 것 같다.

보름동안 치룬 정영신의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 길돕느라 혼 줄이 났다.

전시 끝난 지가 제법 지났건만, 아직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틈만 나면 더러 눕고 싶지만, 일을 놔두고 어찌 잘 수만 있겠는가?

요즘은 하루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 외에는 컴퓨터만 끼고 산다.

 

 서울시에서 준 '이름다운 동행 사업' 무료 식권이 없었다면, 죽어도 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 날 먹지 않으면 없어지는 돈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챙겨 먹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자동 사는 노인 대부분이 비슷한 실정일 게다.

없는 자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는 좋은 일이지만, 움직여야 살 것 아니겠는가?

고독사를 줄이는데 서울시의 식권사업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쪽방 촌에 한정할 게 아니라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이다.

 

동자동에 정해진 식당만 열 곳이 넘지만, 늘 가는 곳만 간다.

처음엔 중국집 등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골라 먹었으나, 지금은 두 집만 다니며 집 밥처럼 찾아 먹는다.

다들 김밥집으로 몰려 그 집만 파격적인 매상을 올려주지만,

한 달 전 그곳에서 먹은 콩국수에 배탈 나, 온종일 쏟아 부은 적도 있다.

이후부터 그 식당은 발길을 끊었는데, 여름철엔 위생이 최우선이다.

 

지난 7일엔 식당 찾아가다 일전에 초상사진 찍은 이기영씨를 골목에서 만났다.

잠시 기다리게 하고, 다시 쪽방에 올라가 뽑아 둔 사진을 가져다 주었는데,

옆에 있던 채남규씨가 자기 방에서 한 잔 하자며 팔을 잡아 끌었다.

채씨는 쪽방 들어온 지 20년이 넘는 선배 격이지만,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같이 술자리를 했거나 특별한 연이 없으면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이웃이 많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때로는 오해 받는 경우도 있지만, 천성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아마 자기도 초상사진을 찍으려고 나를 방에 데리고 간 것 같았다.

경기여인숙’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코 구멍만한 방세가 한 달에 32만원이란다.

방세가 비싼 줄 알지만, 방세 싼 곳 찾기도, 옮기기도 귀찮아 눌러 산다고 했다.

방안에서 초상사진을 찍고 나니, 막걸리를 내놓았다.

먹는 약 때문에 술은 마실 수 없었지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해 64세인 채남규씨는 전라도 부안이 고향으로, 반평생을 미장 일하며 살았단다.

그러나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용산구청의 자활근로사업에 나가는데, 그것도 반타작이라 한 달에 팔십만원 받는단다.

방세주고 술값 제하면 남는 것도 없지만, 절약한 덕에 백만 원이나 통장에 남았다며 자랑 질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수시로 오줌이 마려워, 방안에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았다.

파리 눈물만큼 나오는 오줌을 모아 한꺼번에 버린다는데, 그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활 나가면 무슨 일 하느냐고 물었더니, 숙대 입구에서 담배꽁초 줍는 일 한단다.

제일 무료한 일이 담배꽁초 줍는 일이라 했더니, 맞다며 맞장구 쳤다.

주울 꽁초만 있다면 시간 보내기는 안성마춤이나, 주울 꽁초가 없어 지루해 미치겠다며 투덜거렸다.

자활이란 게 가난한 사람 돕기 위한 복지사업이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다른 일은 없을까?

 

이런 저런 신세타령을 듣는 중에 채씨의 전화기는 계속 울어 댔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일어 서질 않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급한 일이 생긴 후배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좋아 남이 어려운 사정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없는 사람이 인심 좋은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다시 골목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김상진씨가 나와 있었다.

그는 동자동에서 몇 안 되는 먹물로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지 나에 대한 정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김상진씨는 사진을 두차례나 찍었으나, 내키지 않아 다시 찍을 참이었다.

 

처음엔 눈물이 고여 실패했고, 두 번째는 나의 실수였다.

짝을 때 좀 많이 찍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한 자리에서 두세 컷 찍고 끝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러 생긴다.

평소의 촬영 습관이라 어쩔 수 없는데, 이번에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세 차례나 찍는 경우는 없었는데, 아마 좋은 초상을 찍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았다.

 

 새꿈공원에서 유정희씨를 만났는데, 술이 취해 길바닥에 퍼져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사진 달라고 졸랐는데, 술이 취해 챙기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정재은씨는 유씨에게 빌려 준 돈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는데,

돈 생기면 술 마시기 바빠 갚을 여유가 없는 것은 불을 보듯 훤했다.

 

공원 안쪽에는 자선단체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나왔는데, 이준기씨도 상담 받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런 곳은 갈 일 없는 것이 상책이다.

 

요즘은 '法' 법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친다.

무력으로 밀어 부친 군인들이 판을 친 군부시대에는 저항할 힘이라도 생겼지만,

남의 뒷구멍이나 뒤져 독제하는, 군부보다 더 무서운 검부시대에 살고 있다.

 

공원 한 쪽 구석에는 어떤 낯선 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애잔한 선율이 공원으로 번져 나갔는데,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 이름 붙여 본다.

사진, / 조문호

 

길가의 이병호씨가 휠체어에 깔려 있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는데,

술 취해 휠체어 바퀴에 머리를 집어넣고 잠들었다.

 

세상에! 한때는 중령까지 지낸 장교 출신 꼴이 이게 뭔가?

그는 걸어 다니질 못해 얼마 전 새 휠체어 하나를 얻었는데,

그걸 잃어버릴까, 바퀴 틈에 머리를 끼고 자는 것 같았다.

 

누가 휠체어를 건드리면 다칠 것 같아 깨웠더니, 게슴츠레 눈을 떴다.

나를 보더니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기에 일어나서 술 한 잔 하라고 말하니

그때야 휠체어에서 빠져나오려고 꼼지락거렸다.

 

부축해 일으켜 앉혔더니, 술 달라는 듯 마시는 시늉부터 했다.

물이나 우유를 갖다 줄까?”라고 물었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었지만, 정신만 차리면 술부터 찾았다.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 팩과 소주 한 병 사 와 우유부터 한 컵 따라주었더니,

한 모금 마시고는 토할 것처럼 불편해 했다.

그 대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마약처럼 얼굴이 풀렸다.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이런 노숙자를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김밥천국' 앞에는 위수범씨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역시 알콜 중독 증세가 있지만, 술을 참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들 넋 잃은 사람처럼 멍하게 쳐다보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새꿈공원' 입구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유정희씨를 만났다.

 

찍어 둔 초상사진을 전해주려고, 오래전부터 가방에 넣고 다녔으나 보이지 않았다.

몸이 아파 병원 간 줄 알았는데, 얼굴이 좋아져 한 달 만에 나타난 것이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벌금을 못내 감방 살다 왔단다.

술 마시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으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콜 중독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요즘은 찍어 준 초상사진을 다시 찍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임백수씨를 비롯하여 이상준, 이기영씨를 다시 찍었다.

 

가능하면 본 모습을 부각하려고, 멋 부린 것들은 가급 적 내렸는데,

왜 사나 가오를 죽이냐?’는 임씨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말이 맞았다. 안경이나 모자 하나라도 그 사람에게는 자존감이었다.

그 이후부터 찍힐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그날은 연세가 많아 기력이 없는 김수안씨가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옆방에 살지만, 꼼짝하지 않으시고 하루에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만 나오시는데,

늘 교회에서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을 기다린다.

아마 천국 가실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동자동에 살며 느낀 것은 다들 죽음을 겁내지 않는데 있다.

고통스러운 이승보단 저승이 편할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 영화를 누리면 누릴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은 더해지고,

목숨에 대한 집착도 강해지는 법이다.

 

죽는 걸 겁내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가진 것 없는 빈자의 특권이다.

 

사진, / 조문호

 

오는 12월, 쪽방 건물 벽면에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요즘은 초상사진 찍다 별 일을 다 겪는다.

노숙하거나 쪽방에 살면 누구던지 찍는 것이 아니라

찍을 대상의 기준을 정해두었으니, 마땅한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난하게 살아도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다,

술 마시지 않은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본인이 요청해 오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더구나 일체의 연출이나 보정 없이 있는 그대로를 노출하는 사진이라 잘 나서지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이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모든 것을 지우고 싶은데 사진은 남겨 무엇 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쪽방주민들은 대부분 영정사진을 만들어 놓은데다,

노숙인은 사진 둘 곳이 없어 찍어 줘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접근방법을 달리하여 찍어달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며, 스스로를 광고했다.

그동안 언론사 인터뷰 요청까지 거절해가며 동등한 위치임을 자랑삼았으나, 쪽팔려도 약력을 까 발렸다.

기존 영정사진과 달리 한 장의 초상사진으로 영원히 남기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아무리 사람을 찍어 왔지만, 짐승보다 못한 인간은 찍지 않는다며, 어깨 힘도 주었다.

 

어차피 전시가 끝나면 사진은 본인에게 돌려줄 것 이지만,

이중으로 돈 들여 사진 찍는대로 인화해 준 것이 소문이 난 것 같았다.

요즘은 나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아무리 모델로서 그럴싸해도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찍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은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 서둘 일은 아니었다.

량이 아니라 질이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작품성보다 당사자의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

 

며칠 전에는 음악이 좋아 통기타 하나 챙겨들고 떠돌다

쪽방에 입주한 위수범씨를 우연히 만났는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사진보다 자신의 삶에 자긍심을 갖는 일이 우선이라 길바닥에 퍼져 앉아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거지처럼 사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

돈 번 사람보다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더 잘 살았다는 위안에 그만 울고 말았다.

울음을 멈춘 후 사진을 찍었으나 슬픈 표정 즉 감정이 노출되어 실패했다.

사진은 나중에 다시 찍으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잘 살았다는 자긍심을 갖는 게 초상사진 찍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초상사진은 당당하게 스스로를 내 세울 수 있어야한다.

 

그 다음 날은 김상진씨를 만나 찍었으나, 그 역시 눈물이 고였다.

돈 때문에 가족을 잃었지만, 잘못 산 인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돈벌레 보다 얼마나 인간적이냐?

 

사진이야 다시 찍으면 되고, 그것도 아니라면 만족할 때까지 찍으면 된다.

돈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

일이 아니라 나의 놀이며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현충일을 맞아 돌아본 동자동 쪽방촌의 살풍경이다.

곳곳에 술 취한 사람이 마치 총 맞은 병사처럼 쓰러져있었다.

먹은 것이 없어 그런지, 조금만 마셔도 몸을 가누지 못한다.

자신의 명을 술로 재촉하고 있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이러한 알콜 중독자는 서울역보다 동자동이 더 많다.

한때는 노숙인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이야기도 들었으나,

그들의 중독 증세에 부채질하는 것 같아, 피해 다닌 지 오래다.

 

구멍가게에 담배 사러 갔다가, 우연히 유정희씨를 만났다.

이분은 오랜 노숙 생활 끝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 입주했다.

유씨를 비롯하여 초상사진 찍기로 약속한 분이 여럿 있으나,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셔 찍지 못했는데. 모처럼 정신이 또렷했다.

 

그 자리에서 초상사진부터 찍었는데, 만난 현장성에 의미를 두나,

 햇빛 때문에 건물 입구 그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햇빛을 비롯한 일체의 변화요인을 초상에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원칙이다.

찍기 전에 항상 강조하는 것은 당당한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다.

사진은 일주일 뒤에 주기로 약속하고, 내키지 않으면 다시 찍기로 했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싸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발걸음을 멈추어 나라를 위해 목숨 잃은 분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현충일이라 중령으로 퇴역한 이병호씨를 만나 군대 이야기나 듣고 싶었다.

 

그가 자주 머무는 공원 앞 담벼락으로 갔더니, 최정훈씨와 둘이 앉아 있었다.

그 역시 만날 때마다 술을 마셨으나, 그날따라 사진 찍기 위해 기다리는 것 같았다.

사실은 술 살 돈이 없어 물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자부심부터 인식시킨 후 찍었더니, 정훈이도 찍어라며 눈을 깜빡였다.

정훈씨는 잘 모르는 데다, 초상사진 찍는 목적에 공감하는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스스로 원하지 않아, 안 찍는다고 손을 내저었다. 

 

처음에는 빨리 추진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수를 두었지만, 하등의 서둘 이유가 없었다.

원로작가지원사업으로 시작된 ‘버려진 사람들의 초상전’은 그동안 찍은 사진으로도 충분히 치를 수 있으며,

이 일은 살고 있는 동안 꾸준히 해야할 내가 짊어 질 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상사진은 상대를 제대로 알고 찍어야 한다.

 

커피를 뽑아 와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딱 한 잔 만 하자는 권유를 차마 물리칠 수 없었다.

소주 두 병과 꽈베기 한 봉지를 사 왔더니, 잠자던 녀석도 일어나고,

보이지 않던 녀석까지 나타나, 술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하는 수 없어 만원을 꺼내 주었더니, 아예 소주 됫병을 사왔더라.

결국, 그들에게 약은 주지 못할망정 독을 주고 말았다.

 

그날은 이병호씨 군대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최정훈씨 군대 이야기를 들었다.

이북에 넘어가 죽다 살아났다는 그는, 젊은 시절 이태원에서 두 사람이나 죽인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단다.

마침 군대 장교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나서서 교도소 대신 북파공작을 수행하는

UDU로 들어가게 만들었는데, 인생의 쓴맛은 그때 다 보았다고 한다.

 

보급품을 주지 않아 뱀은 물론 표창으로 온갖 산짐승을 다 잡아먹고 살았는데,

제일 맛없는 고기가 고라니라며 고라니 고자도 듣기 싫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북파되어 옆구리와 허벅지에 맞은 총탄 자국까지 보여주었다.

 

군번 없는 군인으로 살아, 죽어도 이름조차 남지 않았겠지만,

죽는 것 보다 못한 짐승 같은 나날을 보내는 현실이 더 슬펐다.

 

다들 먹은 것이 없으니, 술도 많이 마시지 못했다.

목사님이 갖다준 빵 봉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교회 단체 ‘이에수스 핸즈’에서 얻어 온

물김치 한 술 뜬것이 전부라, 한 사람 한 사람 드러눕기 시작했다.

 

동자동에서 오랫동안 노숙을 한 지경학, 유정희, 김상진 등 여러명이 수급자가 되어 쪽방에 들어갔지만,

쪽방보다 밖이 더 좋은지 허구한 날 길거리에 나 앉았거나, 노상에 쓰러져 자는 것을 더 자주 본다.

 

다들 술로 명을 재촉하고 있으나, 손 쓸 방법이 없다.

비참하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편할지 모르겠으나, 산 목숨이다.

정부에서 알콜 중독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촉구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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