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출판사' 창립 35주년 기념 북페어 우리 마음속의 사진과 책 한 권

지난 22일부터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35년 동안 눈빛에서 출판해 온 사진 책 600여 종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책에 따라 10%에서 50%까지 할인하여 판매하니, 좋은 사진들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된다.

 

더구나 중견과 신예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중점적으로 엮어온 눈빛사진가선시리즈

71권을 통해 한국사진의 흐름도 가늠해볼 수 있다.

눈빛 아카이브로 나온 사진집은 지금 발행하면 도저히 그 가격으로 구할 수 없는

책이라 싸게 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눈빛이 소장하고 있는 책 속의 사진들도 관람할 수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 이경모, 김한용, 김기찬, 힌정식, 김영수, 이창성, 전민조,

김문호, 엄상빈, 김보섭, 우명률, 조숙진, 정영신, 이정희, 임재천, 이규철 씨 등

작고 및 원로 현역 사진가들의 주옥같은 사진들도 책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비록 사진을 하지 않는 분이라도 곁에 두고 틈틈이 볼 수 있는 추억의 사진집이 많다.

작품성을 강조한 난해한 사진보다 갓구워낸 군고구마처럼 한 장의 사진이 따스한 추억을

모락모락 불러들여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 줄 좋은 사진집이다.

 

예를 들면 최민식의 인간이나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은 모르는 분이 없겠지만,

작고 작가인 이해선, 이형록, 이경모 사진집과 김한용 희망연대기‘, 정도선 회령에서 남긴 사진집도 있다.

 

그리고 눈빛에서 엮은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지금까지의 사진에서부터 크리스 마커의 북녁 사람들’,

구와바라 시세이 내가 바라본 격동의 한국“, 박옥수 시간여행‘, 안장헌 소소한 일상‘,

전민조 역사를 말하는 사진‘, 신복진 광주발사진종합‘, 권태균 노마드‘, 김운기 어머니, 그 고향의 실루엣‘,

정영신 어머니의 땅도 지난 시절을 새록새록 불러들일 추억 속의 사진집이다.

또한 오랜 병영 생활을 되 돌아 볼 수 있는 이한구의 군용과 장종운의 젊은 날의 초상등을 추천한다.

 

진열대에 올린 사진집만도 이렇게 좋은 책이 많은데, 꼼꼼히 살펴보면 더 좋은 사진집도 부지기수다.

 

이왕이면 오늘 1125() 오후 4시에 들리면 오랫동안 묵언 잠적했던 이규상 대표의 강연회가 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눈빛출판사이규상 대표 글이다.

 

책은 오랫동안 지식의 전달과 영감(靈感)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정보의 전달과 저장이 종이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수천 년 이어온 책의 위상은 나날이 퇴색돼 가고 있다. 불과 2-30년 사이에 불현듯 가해진 이러한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산업혁명이 인간 삶의 근본적 변혁을 몰고 왔듯이 디지털 문명의 출현은 또 다른 삶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수천 년의 습관을 순식간에 바꿔야 하는 가공할 디지털 혁명기에 살고 있다. 그에 따른 인문의 위기는 곧 출판의 위기다. 이번 행사는 사옥 짓기보다 사진으로 사진집을 지어온 눈빛출판사의 35년 발자취를 집약한 전시를 겸한 북페어다. 최근 전시를 통해 책의 확장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눈빛출판사는 급변하는 출판환경에 대응하고 인문과 예술의 위기 속에 다 각도로 출판의 방향과 역할을 모색해오고 있다.”

 

북페어는 오는 124일까지 열리니, 인사동 가는 걸음에 꼭 들리시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여름철에는 쪽방 사는 빈민들이 힘들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노숙인이 버텨내기 힘들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보호시설을 비롯하여 서울역 인근에 응급 잠자리 65개를 준비하는 등

서울시의 대처로 예년에 비해 추위에 노출된 노숙인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해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노숙인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에는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추운 날씨였다.

 

서울역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노숙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지하도는 단속이 심해 그런지 비둘기 한 마리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양지바른 다시서기건물 벽에 서너 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외국인 한 사람이 침낭을 몇 개 가져와 나누어 주었다.

 

다시 동자동으로 건너와 새꿈공원에 갔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공원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공원입구에 처음 보는 노숙인이 찬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좀 있으니, 지나가던 선교사가 이대로 자면 얼어 죽는다며 깨웠다.

춘천에서 왔다는데, 넘어졌는지 얼굴에 피멍이 들어있었고 술도 좀 마신 것 같았다.

덮고 있는 외투를 들치니 내복을 입지 않아 양팔이 그대로 노출된 체, 찬 바닥에 누워있었다.

선교사가 가까운 여인숙에 방 하나 얻어 주겠다며 끌었지만 한사코 사양했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방에 왜 갇히고 싶겠는가?

눈치 챘는지 나중에 다시 오겠다며 선교사는 가버렸다.

알콜 중독자의 구걸 속성을 아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가끔 베푸는 경우가 있다.

주면 안 된다지만, 당장 돈이 절실한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구걸할 수 없으니 그 짓을 하는 것이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피차 마음 편한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몇 푼 되지 않지만, 꼬깃 꼬깃 접어 손에 끼어주니 움켜잡았다.

부디 부디 찬 바닥에서 일으나 무탈하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양이현의 사진일기

 

밭을 만들었습니다.

장마철 늦게 심은 들깨는 씨가 맺히고 오이를 심었던 밭에는 지지대가 꽂혀있습니다. 봄에 심었던 상추 밭에는 풀이 한가득 자라고 말라서 씨가 맺힌 채 빼곡히 덮여있습니다. 옥수수와 감자를 심었던 밭에는 콩을 심었는데 잎이 다 지고 잘 여물었습니다. 땅콩을 수확하고 나온 빈자리의 밭과 콩을 거두어 들이고 밭을 갈아야겠습니다. 풀이 난 곳은 예초기로 잘게 잘라서 밭을 갈 때 잘 섞어주면 좋은 거름이 됩니다. 관리기의 날이 땅 속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갑니다. 위에 있던 풀과 흙이 갈퀴가 지나가면 아래 흙이 올라와 골고루 섞입니다. 밭가장자리 끝에서 끝까지 오가다 보면 갈색이고 보드라운 흙이 나옵니다. 이 흙색깔을 무슨 색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때가 참 좋습니다. 울툴불퉁한 잔 곡선이 있고 돌멩이와 촉촉이 수분을 머금은 흙을 손으로 쥐어보면 시원하고 향긋한 흙냄새가 납니다. 

 

11.04

 

오늘은 양파와 마늘을 심을 것입니다. 양파와 마늘은 작물 중 제일 오랫동안 밭에 있는데 그만큼 밭을 만들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괭이로 밭고랑을 만들며 둑을 쌓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하면서 쭉 가야지 밭이 똑바로 나오는데 자꾸 몸이 흐트러지는지 밭이 삐뚤빼뚤하게 갑니다. 몇 번을 멈추고 쉬었다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한 줄을 완성했습니다. 비닐을 씌울 것이기 때문에 밭이 똑바로 나오지 않으면 비닐 씌우기가 안 좋다고 합니다.  비닐을 씌운 뒤 양파는 모종을 심고 마늘을 심습니다. 구멍에 마늘의 뿌리가 밑을 향하게 하여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었습니다. 밭이 보드라워서 마늘을 누르는데 쏙 잘 들어가니 땅이 얼마나 포근한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밭을 갈 때는 잘 갈아서 부드럽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늘 심기도 안 좋고 나중에 마늘이 뿌리를 내릴 때 땅이 단단하면 솟아오른다고 합니다.

 

밭은 똑바로.. 부드럽고.. 평평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11.08 양파 모종

 

양파를 심을 때는 나무막대로 구멍을 파준 뒤 뿌리 흙이 다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눌러줍니다. 그다음에는 위에 흙을 덮어주는데 물 빠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래가 많이 섞인 흙으로 덮어주었습니다. 이날은 비가 오고 땅이 마르지 않아 흙이 많이 뭉쳤습니다.

 

양파
잔마늘

 

마늘은 남도마늘, 한지마늘, 빨간 마늘, 잔마늘을 심었습니다.  옛날에 이곳에 계신 선생님께서 어느 시골 할머니와 인연이 닿아 마늘을 받으셨는데 그게 이 잔마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마늘은 지금은 사라진 우리나라 토종마늘 입니다.  쉰 쪽마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처럼 마늘 한 통이 수십 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씨 뿌리듯이 훌훌 뿌려주고 싹이 나고 좀 자라면 먹을 수 있습니다. 봄 여름에 마늘이 없을 때 호미로 한 움큼씩 캐서 풋마늘로 먹으면 좋습니다. 알마늘은 껍질을 다 까지 않고 그대로 콩콩 쪄서 찌개에 넣어먹으면 보통 마늘처럼 똑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잔마늘

올해 농사의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니 많이 서운해집니다. 마늘은 싹이 올라올 거고 곧 있으면 부쩍 추워지겠지요. 간간히 밭에 오면 마늘밭의 비닐이 펄럭이고 벗겨지지 않았는지 싹은 잘 올라왔는지 돌봐야겠습니다.

 

지난 9일은 용산보건소에서 동자동에 밀집한 쪽방 건물 64개동을 대상으로 빈대방역을 실시했다.

 

내가 사는 4층은 빈대가 발견되지 않아 3층까지만 했는데

스팀 소독기로 방구석 구석을 비롯하여 옷가지와 침구까지 뿌려 바퀴벌레까지 씨를 말릴 것 같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데, 방역하는 걸 보아서인지 아무렇지도 않던 내 몸까지 가려웠다.

 

사실 빈대가 문제가 아니라 쪽방 빈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건물주 빈대가 더 문제다.

그토록 사유재산 침해라며 난리를 치더니, 공공주택지구내에 거주하지 않는 쪽방 소유주도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니 조용해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착공하여 한창 공사 중이어야 하는데 

그들 때문에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 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2 7개월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던 공공개발의 실마리는 푼 셈이다.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의 보상 확대 내용을 담은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고 이달 중에 열릴 본회의 문턱만 남았다고 한다.

 

  그 개정안은 쪽방 밀집 지역을 포함한 공공주택지구 토지 또는 건축물 소유자에게 

현물보상  '아파트 분양권을받을  있도록 하는 특례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공공주택이 성사되어도 입주하려면 아직 몇 년이 더 걸릴지 몰라

죽기 전에 입주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 마음편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속히 공공임대주택이 마련되어 다들 다리 뻗고 잘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 조문호

 

 

플라뇌르 서울 Flaneur Seoul

전강희/ JEONKANGHEE / 全堈熙 / photography

2023_1107 2023_1120

전강희 _ 건대입구  #02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90cm_202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전강희 인스타그램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전강희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도스

Gallery DOS

서울 종로구 삼청로737 2

Tel. +82.(0)2.737.4678

www.gallerydos.com

 

작품 소개 서울이라는 대도시는 대한민국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태어나서 30년 넘게 생활해온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본인이 오랫동안 생활해온, 고도의 자본주의 정신이 물질화 된(되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 곳곳을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기법을 사용하여 사진 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디지털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현재, 대도시(=메트로폴리스)로 거듭나고 있는 서울에서는 재현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상품 세계의 판타스마고리아(환영), 상품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회가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판타스마고리아(환영)가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이는 서울을 단순히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초현실적인 장소로 탈바꿈시킨다. 상품 세계 그 자체 뿐 아니라, 상품이 전시되는 방식과 그 전시 공간, 그리고 전시 공간이 되는 도시를 중심으로 상품 세계 전반의 판타스마고리아(환영)가 펼쳐지는 것이다. 상품의 판타스마고리아(환영)는 상품 세계를 바라보는 산책자의 시선뿐만이 아니라 그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불특정 다수인 대중들에 대한 경험까지 확장시키는데, 결국 도시의 판타스마고리아(환영)적 이미지는 도시의 건축물들, 도시를 배회하는 대중들, 그리고 상품들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대도시 서울 곳곳의 장소들에서 환영적으로 펼쳐지는 이미지들을 사진 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기법으로 제작해 보았다.

 

전강희_고속버스터미널 지하 아케이드 #05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23
전강희 _ 대학로 골목  #01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90cm_2023
전강희 _ 명동 거리  #05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90cm_2023

작가 및 기법 소개 현대 도시의 풍경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판타스마고리아' 기법을 사용하여 '플라뇌르' 시리즈를 진행 중에 있는데, 플라뇌르(flaneur)'거리 산책자'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현대의 도시를 상상력과 직관을 지닌 채 누비고 다니는 예민하고 고독한 사람을 의미한다. '플라뇌르' 시리즈 작업은 대도시(=메트로폴리스)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이미지로 드러내 보이는 일로써, 항상 새로운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것들의 반복일 뿐인 '반복 동일성'의 신화가 지배하고 있는 고도화된 상품 자본주의의 공간으로서, 대도시의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본인은 이것을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모종의 환영과 그로 인한 욕망으로 인하여 작동하는데, 그러한 환영과 욕망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불가항력적이고 애매모호한 감정을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해보고자 한다.

 

전강희_석촌호수 #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23
전강희_신림역 사거리 #02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23
전강희 _ 신사동 가로수길  #01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90cm_2023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는 환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판타스마(Phantasma)에서 유래한 단어로 환등상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의미를 지닌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기법은 우리가 직접 발을 딯고 살아가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단순히 사람의 눈(=망막)에 비치는 외부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카메라라는 기계의 눈(=렌즈)을 빌려 인지적으로 작동하는 초현실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진이라는 매체는 기본적으로 '레디메이드'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작업 방식에 매우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보통 아우라를 상실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다시끔 아우라를 복구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본인은 작업을 통하여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언뜻 보면 경계가 명확하고 확실해 보이나,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모든 것들이 뒤엉켜 섞여있다. 경계라는 것은 모종의 인위적인 사회적 약속이며 언제나 고정적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인 것으로, 그러한 경계가 불명확하고 모호한 세계, 가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가상이 되는 소위 '포스트모던'한 디지털 세계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세계 감정을 모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전강희

 

전강희_여의도 지하 아케이드 #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23
전강희 _ 여의도 한강공원 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90cm_2023
전강희 _ 잠수교  #01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90cm_2023

익명의 시간을 노정(路程)하는 찰나의 무늬 여기, 도시를 유영하며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도시 공간의 서사를 더듬는 차가운 시간이 있다. 1. 카메라의 셔터가 눌리는 순간, 사진 프레임에는 시간의 영속성이 박제된 이미지로 탈각되어 갇힌다. 그것으로써 사진 이미지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린다면 사진 이미지는 우리 세계에서 공진(共振)하지 못하고 화석화된 시간 속에 영원히 서식하게 될 것이다. 사진의 속성이 순간의 가시적 세계를 투명(transparent)하게 '기록'하는 소임으로만 수렴될 때 벌어지는 일이다. 비평가이자 기획자이며, 그 역시 사진가였던 존 사코우스키(John Szarkowski 1925~2007)는 그가 1962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사진가의 눈>이라는 전시에서 '사진'이 과거에 머문 단순한 기억의 파편이 아니라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며, 멈춰 있는 현재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 '현재성'을 담지한 컨텍스트임을 설파 했다. 사진의 살아 있는 생명력을 말하고자 했던 그의 견해처럼 사진이 만들어 가는 이미지는 인간과 자연의 생활세계에 관여하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생명력을 얻은 사진의 힘으로 하나의 장소에 귀착해 그 공간에 스며드는 사람과 풍경을 긴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포획해 겹쳐 가는 전강희의 작업은, 구체적 해명이 쉽지 않은 장소성에 얽힌 일상의 핍진성을 증폭하는 힘을 갖는다. 동시에 특정한 시공간에 깃든 인간 군상과 사물들의 움직임을 켜켜이 포갬으로써 얻어지는 '이미지의 불투명성'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체계에서 미약해져만 가는 인간 존재의 함량을 표징 하려고 한다.

 

전강희_청량리 시장 아케이드&nbsp;#0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0&times;90cm_2023
전강희 _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 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times;90cm_2023
전강희 _ 홍대 거리&nbsp; #04_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_60&times;90cm_2023

2. 이번에 선보인 플라뇌르(Flanuer) 서울연작에서도 그러했고 이전의 작업에서도 전강희는, '플라뇌르'의 사전적 의미처럼 한가롭게 공간을 배회하는 산책자의 가벼운 태도를 견지하며 피사체에 대한 감정의 개입을 극도로 경계하는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감정의 개입이 차단당한 채 무수히 겹쳐진 사진 이미지들은 멀리서 관조하면 덧칠의 덧칠을 거듭한 거친 마티에르로 이루어진 먹먹한 풍경화처럼 다가온다. 이미지의 과잉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허용해 이미지의 선명성을 흐려 이미지의 형태를 소거하는 전강희의 독특한 방식은, 김아타(본명: 김석중, Atta Kim 1956~ )2005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8시간의 장노출을 이용해 뉴욕 타임스퀘어를 지나 간 수많은 자동차들과 사람들의 형태를 먼지처럼 뭉개버린 사진 이미지와 겹쳐지곤 한다. 하나는 이미지의 과잉을 통해, 다른 하나는 이미지의 결핍이라는 상반된 방식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이른바 존재론적 숙명을 사진 이미지로 증명하려 한다. 전강희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수렴하는 방식으로, 김아타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탈락시켜 흔적만 남기는 상반된 방식으로 작업을 기술(記述)한다. 그러나 죽음이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라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언명처럼 두 작가의 사진 이미지에는 공히 장엄한 시간의 흐름에서 그 곳에 있었으나 부재(不在)할 수밖에 없는 익명화 되어 가는 존재들의 불길함이 담긴다.

 

3. 이미지의 과잉에 가까운 중첩을 통해 그 공간을 혼돈의 세계로 만드는 전강희의 풍경은 늘 쓸쓸하다.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신체는 파편화 되어 있고, 공간은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미분화 되어 있는 이미지로부터 이미지가 담고 있는 감정의 선을 따라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지를 향한 이미지 외부로부터의 정서적 관여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전강희의가 구축한 이미지의 세계는 극적이기 보다 무심하다. 전강희가 자신 밖의 외부를 바라보는 방식이자 개념으로 끌어들인 '플라뇌르' 즉 산책()의 본질은 공간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주관적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사물과 사람을 관조하고 관찰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플라뇌르는 전강희의 작업에서 적정한 작업 기술(技術)이자 도시의 공간들을 편견 없는 공평한 감정의 무게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태도가 된다. 사진 프레임 속 일반적인 풍경 이미지들은 개별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시선과 목적이 어렵지 않게 발견되거나 읽혀진다. 반면, 전강희의 작업에서는 좀처럼 풍경에 관여하는 화자의 시선을 마주하기 어렵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 발화(發話)되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강희의 풍경 이미지에서는 자기 억압처럼 이야기는 발화되지 않고 삼켜진다. 역설적으로, 다채로운 서울의 공간을 부유하는 전강희의 플라뇌르는 우리를 둘러싼 풍경과 공간을 자기 객관화라는 과정을 거치도록 하면서 비로소 균등하게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한다. 김용진

 

 

며칠 전 초상사진에 사용할 액자를 구하러 일산 이케아에 갔다.

8X10규격이지만, 매트 여백도 좀 있어야 하고 프레임의 재질이나

색깔이 마음에 들어야 했는데, 액자는 골랐으나 수량이 모자랐다.

재고량을 전부 구입한 후 부족분은 다음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액자매장에서 침대매장 쪽으로 들어서니 쪽방에 꼭 맞는 침대가 있었다.

나도 몇 년 전 허리 협착증이 생겨 꼼짝 못 할 때가 있었는데,

그 사연을 알게 된 안애경 작가가 함께 일하던 필란드 목공예가를 데려와

즉석에서 목침대를 만들어주어 잘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천국으로 떠났지만...

 

방이 비좁은 쪽방에 무슨 침대를 들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침대 크기만 줄인다면 비좁은 방일수록 더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침대 밑은 책장이나 설합장으로 활용해 너절한 짐은 그 속에 집어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침대를 이케아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도 145,000원이면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침대 필요한 쪽방 주민이 많다면 일괄적으로 주문 제작하면 가격도 더 낮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사용하는 목침대는 별도의 쿠숀 없이 이불로 쿠숀을 대신하지만, 아주 편하고 좋다.

아무래도 별도의 쿠숀이 있다면 침대 밑 수납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단점도 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선반은 물론 작은 수납장도 필요하다.

한 달 전에는 누가 버린 삼단 코너장을 주워 사용하는데, 복잡한 공간이 단출해 졌다.

 

침대는 다른 곳으로 이사해도 사용할 수 있기에 쪽방 사는 노약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온종일 방에서 지내는 쪽방 주민으로서는 잠자리가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느끼는 행복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특히 허리가 불편한 분들은 필수품에 가깝다.

물론 개인이 그곳에 사러 간다거나 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현실인 만큼,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께 설문을 돌려 일괄 구입하거나 제작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냉온열의자를 동자동 새꿈공원에도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노약자들이 공원에서 오들오들 떨며 시간을 보내는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되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서울시청담당자에게 건의해 주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또 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한 해가 지날 채비를 하지만,

동자동에 짓기로 한 공공주택은 어떻게 되었는지 감감소식이다.

 

뉴스에는 김포시가 서울에 편입되고 메가시티가 건설된다는 등

온통 정치 모리배들의 표몰이 바람에 시끌벅적하지만,

동자동공공개발은 공표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첫 삽도 뜨지 않고 있다.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입을 다물고 있을까?

전세사기 대책이나 서울-양평고속도로 문제 등 눈앞에 닥친 일도 한둘이 아닌데다,

윤석렬 눈치 보느라 어느 것 하나 소신대로 하는 일이 없다.

 

  그와 달리 약자와의 동행을 시정목표로 삼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좀 다른 것 같다.  

지난 달 동자동 온기창고개장식에서 동자동공공계발을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동행식당, 동행목욕탕, 온기창고 등 빈민들 피부에 닿는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의 집무실 한쪽 벽에는 약자와의 동행이란 글귀가 붙었는데,

그 글은 동자동 장애주민 윤용주씨가 써준 붓 글이었다.

 

국토교통부에서 깔고 앉아 어쩔 수 없이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국토부를 재촉해서라도 하루속히 성사시켜 줄 것을 촉구한다.

 

  그제는 동자동에도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자들은 다들 어디로 피했는지,

비에 젖은 이불만 어지럽게 늘려 있었고, ‘새꿈공원에는 비둘기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조차 만 날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한가한 동자동 풍경이었다.

 

  비가 그친 다음 날은 채남규씨가 머무는 경기여인숙부터 잠시 들렸는데,

몸이 아파 공공근로에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보살펴 줄 사람 없는 쪽방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큰 일이다.

 

  거리에는 곳곳에 젖은 이불을 말리고 있었다,

노숙인이 머무는 자리에는 누가 버렸는지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거리에서 임백수씨와 유정희씨를, 공원에서는 박소영씨와 황춘화씨를 만났다.

임백수씨와 황춘화씨는 만나 본 지가 한 참되었다.

그동안 왜 그리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 다 술을 끊었단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술 마시게 될까 염려되어 방에서 꼼짝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들 몸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해 금주를 했겠지만,

술 때문에 아들까지 잃은 황씨로서는 큰 결심을 한 것 같다.

 

  대개 보이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이사를 갔거나 교도소에 간 경우였는데, 이젠 금주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들 방에서 티브이만 끼고 사는데, 술을 끊을 수 있었던 그 비결이 궁금했다.

 

  건강은 물론 돈까지 절약할 수 있으니 도랑 치고 게 잡는 일이 아니던가?

나 역시 술과 담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라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문제다.

 

  모처럼 술 마시지 않은 황춘화씨를 만나 초상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뒤늦게 나온 양인숙씨도 초상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찍은 초상사진 대부분이 남자들이라 고맙게 받아들였다.

 

이제 날씨가 추워지면 오갈 데 없는 노숙인들이 걱정이다.

다시서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노숙인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술을 끊지 못하는 알콜 중독자들은 어쩔 수가 없다.

 

  하루속히 약자들이 살 수 있는 주거부터 해결해 주기 바란다.

 

사진, / 조문호

 

 

 

 

) 한정식 선생의 미 발표작, ‘()은 열려있다전이

지난 1021일부터 1214일까지 후암동 ‘KP Gallery’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고인이 남긴 유작 중 공개되지 않은 미 발표작으로 구성되었다.

유작을 맡아 관리하는 제자 이일우씨가 찾아낸 작품으로,

그것도 한두 점이 아니라 전시와 사진집을 만들 정도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빈틈 없는 선생께서 왜 발표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정적인 고요의 세계에 너무 몰입해 놓친 것일까?

아니면 사후에 발표하려고 의도적으로 숨겨 둔 걸까?

사진가가 자기 작품을 고르는 데 눈이 어두울 수는 있으나,

남겨 둔 글로 보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이번 전시로 선생의 작품세계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된 사진은 존재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선(禪)의 경지다.

긴 세월 동양 철학과 한국적 미학을 탐구해 온 선생의 작품세계에서

길이 빛날 유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 한정식선생의 철학과 한국적 사진 미학의 정수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미발표 작을 담은 ()은 열려 있다사진집은 신청한 분에 따른 한정본으로 발행된다.

전시가 끝나는 1214일까지 신청 받는다고 한다.

 

아래는 선생께서 남긴 글이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종말인 거기에 공()은 열려 있다.“

 

내 사진은 사물의 존재로 향하고 있다. 특히 물, , 풀 등 자연 자체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요 애정이라 해도 좋다. 내가 왜 자연으로 눈을 돌린 것일까. 내 눈을 끄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인간을 떠난 자연이었다. 내가 지향하는 자연의 사진이란 이런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의 재현이 아니라, 그 안 깊이 잠겨 있을 시원에 대한 향수, 하늘이 열리던 때의 그 아득함을 생각한다. 그것을 찍고 있다가 아니라, 찍고자 한다, 찍고 싶다.

하지만 시원의 광야를 나는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그리로 가고는 싶은데 가는 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 깊은 속으로 들어가 시원의 하늘과 땅을 드러낼 방법을 아직은 모른다. 자연의 그 장엄함이 원시의 힘찬 숨결이 저절로 느껴지는 그런 풍경을 향해 서 있을 뿐 그리 들어가는 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한 개 사물을 통해 그 안에 숨어 있는 시원을 찾아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모색해 오던 사진의 경지, ‘적정, 적멸(寂靜, 寂滅)’ ()’의 경지라는 것도 결국은 사물의 근원적 존재 양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움직임이 사라진 고요, 움직임도 움직임이 아님도 아닌 고요, 다시 말해서 생성 소멸을 벗어나 형태도 사라지고 존재감마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경지,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동시에 종말인 거기에 은 열려 있다.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내 <고요>의 또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다.

태풍의 눈이 그러하듯 모든 움직임의 중심은 고요하다. 그 고요가 곧 이다. 존재의 근원이다. 적정, 적멸이 그것이고, 그리고 이 <고요>는 그 을 향한 나의 발자국이다. 하늘이 열리던 날의 바람 소리가 듣고 싶다. 땅이 처음 솟던 날의 울림을 느끼고 싶다. 그 땅으로 처음 싹을 피워 올린 풀잎의 작은 촉감을 손가락 끝에 누리고 싶다.

 

2009년 밝은 방에서, 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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