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현의 사진일기

배추벌레 잡아준 날

이곳에는 비가 꽤 많이 왔습니다. 배추는 물을 주는 대로 자란다고 했는데 막 모종을 심고 바로는 신경을 못 썼습니다. 그러다 비가 오니까 배추 물 안 줬는데 비가 오니 배추 잘 자라겠다고 생각하며 물 주는 것을 게을리했습니다. 어느 날은 배추벌레 안 잡아주면 다 없어지겠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올라갔더니 배춧잎 하나에 벌레가 세 마리씩 붙어있었습니다. 한 마리도 아니고 모든 배추에 벌레가 그렇게 붙어서 갉아먹으니 배추벌레를 안 잡아주면 배추가 없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젓가락으로 열심히 잡아줘서 다한 줄 알았더니, 다음날 가보니 벌레가 또 있었습니다. 벌레는 계속 생기고 잡아 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벌레를 잡아주면서 자세히 보니 종류가 다양했습니다. 배추 속을 파먹는 벌레는 거미줄 같은 실로 막아놓고 거기서 잎을 갉아먹고 커지면 나와서 속을 파먹습니다. 그리고 초록색 배추벌레, 배추 겉잎에 붙어있는 송충이, 너무 작은 벌레가 있어서 배추에 얼굴을 가까이 붙이고 열심히 찾다가 갑자기 뚱뚱한 벌레가 나오면 너무 놀라서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건 차마 손으로 죽일 수가 없어서 실눈을 뜨고 조심히 집어 돌로 꾹 눌러놓습니다. 벌레 잡는 일이라니...!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해야 하는 것이라니..!  

 

근데 이 배추 안에서도 배추벌레 말고도 다양한 곤충들 여치 개미 그리고 거미 등 다양한 생명들이 먹이사슬이 형성되어 있어, 배추를 먹는 벌레가 있으니 그 벌레를 잡아먹는 곤충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09 12 배추
09 27 배추
배추벌레
배추에 거미

길가에 벚나무는 일찍이 낙엽이 다 떨어졌습니다. 해바라기는 고개를 숙이고 하얀 구절초가 피었습니다. 가을에 피는 국화도 꽃망울이 몽글몽글 맺혔습니다. 여름밤 더웠던 열기를 식혔던 밤바람이 이제는 꽤 쌀쌀해졌습니다. 자연에서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창 자랐던 여름날을 지나 꽃을 피우고 씨가 여물어가고 나무들은 낙엽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농작물뿐만 아니라 여름내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곳의 풀들도 아주 잘 자랐습니다. 그것들도 씨를 퍼뜨려야 하니까요. 여기저기 산자락 그리고 밭에까지 뻗어온 칡도 꽃이 피고 씨가 맺혔습니다. 내년에도 많은 풀과 함께 해야겠습니다. 바람이 차고 날씨가 쌀쌀해지는 만큼 감나무의 감도 익어가고 밤나무에 밤도 후드득 떨어집니다. 가을비가 오고 나면 날이 더 추워지고 바람도 차고 하늘의 구름도 달라집니다. 덥지 않지만 햇빛은 더 뜨겁게 느껴집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씩 보이고 느껴질 때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구절초

자연에서 계절이 바뀌어가는 모습들을 보고 있습니다. 생명들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고 이곳의 농작물들을 거두어들이면서 겨울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여름날 늦게 심은 참깨와 고구마, , 호박등 밭에 있는 작물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리고 마늘 심을 밭도 준비해야 하지요. 이곳에서 지내는 것에 대해서 제 몸이 온전히 이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는 것이 즐겁습니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닐 적 건물 안에서만 모든 시간을 보냈던 때에는 계절도 날씨도 그저 지나가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 역시 날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날씨가 중요하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도시에서 일할 때는 항상 건물 안, 출근할 때 지하철을 타고 들어가면 해가 다 지고 나올 때야 깜깜한 하늘을 봤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출근길이 좀 불편한 것만 빼면 바람이 선선해지고 날이 무더운 것도 영향이 없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자연과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재현과 표현을 한 자리에 모은 김혜원과 문슬의 사진통섭전이

지난 9월20일부터 10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인덱스에서 열리고 있다.

 

김혜원 '용담댐 시리즈' 사진집 / 128면 /가격15,000원

눈빛사진가선’ 70호인 김헤원의 사진집 용담댐시리즈-수몰 이전

71호인 문슬의 사진집 두꺼운 현재가 연이어 나온 출판기념전이다.

 

문슬 '두꺼운 현재' 사진집 / 127면 / 가격 15,000원

표현재현이 어떻게 하나의 사진으로 수렴되는가 하는 사진통섭전으로 이름 붙였지만,

 객관적이야 하는 기록과 주관적인 예술은 태생적으로 가는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잘났니, 네가 잘났니, 척을 지고 따질 성질의 것도 아니다.

 

문슬의 두꺼운 현재

어찌 보면 객관적인 기록도 사진가의 시각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사진가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김혜원의 '용담댐'

둘 다 같은 사진이지만, 말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재현의 창으로 본 김혜원의 용담댐

표현의 거울에 비친 문슬의 두꺼운 현재가깝지만 먼 당신이다.

 

문슬의 두꺼운 현재는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만나는 사물을 통해

작가 내면을 표출한 사진으로, 시간에 대한 감각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사물을 읽어내는 작가의 감성이 아주 뛰어난 작품이다.

 

[문슬 '두꺼운 현재']

김혜원의 용담댐 시리즈-수몰 이전

1990년대 우리나라 국토개발 현실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다목적 댐이 건설되기 전의 진안군 용담마을의 소중한 기록이다.

 

[김혜원의 ‘용담댐 시리즈-수몰 이전’]

국토개발의 이름 아래 많은 농민이 실향민이 되어버린, 돌이킬 수 없는 사단이었다.

 

 '사진통섭' 전시를 보기 전에 두 사람의 사진집부터 먼저 보았는데,

지방에 이렇게 훌륭한 사진가들이 숨어 있다는데, 새삼 놀랐다.

 

그동안 눈빛사진가선을 통해 작가들의 다양한 작업을 골고루 볼 수 있었기에.

아무리 돈이 없어도 눈빛사진가선만은 빠지지 않고 사 보았다.

 

결코 사진집이 크고 비싸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사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이 값싼 시리즈가 팔리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눈빛사진가선71호까지 나왔으나, 재판 찍은 사진집은 두 종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사진작가만도 얼마나 많은데, 그들은 도대체 무슨 책을 사볼까?

 

사진가 문슬

비싼 외국 사진집으로 책장을 도배한 사진가는 종종 볼 수 있는데,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좌로부터 안미숙관장, 사진가 정영신과 문슬

더 훌륭한 사진가를 발굴하여 지속적으로 소개하려면, 책이 팔려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사진가 문슬이 관객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구독자가 늘어나, 70호가 아니라 700호가 되었으면 좋겠다. 

‘눈빛사진가선’에 많은 관심과 구독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작가와의 대화 뒤풀이에서

 

 

 

김지은씨

몸이 아프다고 방에만 처박혀 있을 순 없어 남대문사우나에 갔다.

서울시에서 한 달에 두 장씩 주는 무료목욕권을 아주 요긴하게 쓴다.

대개 비 오는 날 몸이 뻐근하고 아플 때 사용하지만, 이번엔 몸을 추스르기 위해 간 것이다.

냉탕 온탕을 드나들며 나부대니 훨씬 컨디션이 좋아졌다.

 

서울로육교를 거쳐 광장으로 내려가니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십여 년 동안 서울역을 누볐던 노숙인 김지은씨가 아닌가?

서울역 노숙하면 그부터 떠 올릴 만큼, 서울역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 그가 두세 달 전부터 보이지 않아 늘 궁금했는데,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넥타이 휘날리며 돌아온 것이다.

너무 반가워 손을 잡았더니, 손아귀에 힘이 실려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갈 데가 어딧어요. 빵이지...”라며 말을 흐린다.

 

차마 자존심 상할 것 같아 무슨 죄로 갔냐고 물어볼 순 없었지만,

추측컨데, 남의 옷이나 탐내다 문제 생긴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술도 많이 마시지 않지만, 싸우지도 않아 폭행에 휘말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동자동에 조현성 정신질환자가 유독 많듯 그 역시 그런 병인 것 같은데,

먹고 자는 것 보다 오로지 멋 부리는 데 치중한다.

 

볼 때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을 선보여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에는 멋 부릴 옷이 없었던지, 런닝 셔츠에 넓적한 넥타이만 메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게 몸이 좋아지고 힘이 실려 있었다.

삼시 세끼 밥 잘 먹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하고 잠재우며,

짐승처럼 사육 당하니 몸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출감 기념 초상사진 찍자고 했더니, 반색을 한다.

멋 부리는 것을 워낙 좋아하니,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한다.

 

서울역광장을 거쳐 동자동으로 건너오다 또 한 사람 반가운 이를 만났다.

송범섭 역시 한동안 보이지 않아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건너 마을로 이사 갔다고 한다.

오래전에 찍은 기념사진이 있어 방에 데려가 사진을 찾아 주었더니,

이왕 주는 김에 초상사진도 한 장 찍어달란다.

 

송범섭씨

이젠 어디 가나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오랜만에 나타난 사람은 죽은 처삼촌 만난 듯 반갑다.

대개 이승을 떠난 사람이 많아지고, 이사 온 빈민만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그들처럼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질 존재가 아니던가?

죽기 전에 복 받을 짓을 해야 저승 가서 푸대접 받지 않을 텐데, 가진 것이 없으니 복 지을 건덕지가 없다.

열심히 사진이라도 보시하면 잘 봐주지 않을까 위안한다.

그러나 몸은 비틀거리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한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사진, / 조문호

 

 

(The Act)

박부곤/ PARKBOOKON / 朴富坤 / photography

2023_0912 2023_0924 / 월요일 휴관

박부곤_위례신도시-8_C 프린트_152×190cm_2020

박부곤 홈페이지_www.bookonpark.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공간 미끌

gallery gong-gan Miccle

서울 종로구 종로 74 B1

Tel. +82.(0)10.3117.0697

www.micggle.com

 

벽이 생긴다면, 그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페렉은 그의 산문집 공간의 종류들에서 "산다는 것, 그것은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 공간이라 지칭되는 것은 인간에 의해 발명된 공간이다. 명명함으로써 증식되는 일상의 공간에 대해,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에 대해 페렉의 끊임없이 질문하고 분류하며 기록하는 행위, 즉 그의 글쓰기는 다르게 생각하기를 실천하게 한다. 마치 앙리 미쇼가 "나는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공간은 결코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이는 기호로 시작되는 질문이고 의심이다. 결코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 모든 공간은 같을 수 없으며 그 이동도 지루하지 않는 행위가 된다. 다시 말해, 페렉에게 산다는 것은 하나의 사유에서 다른 사유로 최대한 명료하게 이동하는 것이다.

 

박부곤_위례신도시-23_C 프린트_96×120cm_2020

박부곤의 작업을 지켜본 지 벌써 십여 년이 되었다. 이 기간을 전, 후로 나누어 보면 먼저, 신도시 개발 현장의 땅을 기록한 "대지(The Land)" 연작과 그 현장을 돌아다니는 자신을 기록한 "트래킹(Tracking)" 연작이 있다. 이후는 현장에 세워지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찍은 사진과 기계장치를 결합해 도시화 과정을 보여주는 설치작품이 작업의 중심에 있다. 이처럼 그는 인간에 의해 완벽하게 탈바꿈되는 땅의 풍경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열 번의 개인전에서 참으로 성실하게 보여 주었다. 그의 작업은 분명 자본과 결탁한 인간의 욕망이 축조하는 바벨의 탐색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읽기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자는 그의 사진 앞에서 땅의 권리를 혹은 인간 종 아닌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심지어 파괴된 땅의 미학적 아름다움에 매혹되는 아이러니한 경험도 가졌다. 특히 장 노출로 빛의 이동 경위를 보여주었던 사진은 구도적 풍경으로까지 다가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성의 확장성을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을지 묻게 된다. 물론 일부 작업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대지(The Land)""트래킹(Tracking)" 연작 대부분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했던 작가의 일상이 반영된 것이다. 사진 속 촬영지는 그의 집에서 직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신도시 건설 현장이고, 사진을 찍었던 시간은 이른 새벽과 늦은 밤이었다. ㅡ여기서도 그의 성실성은 드러난다.ㅡ 이러한 제약은 오히려 노골적인 풍경을 의미가 사라진 텅 빈 공간으로 만들었다.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꽤 큰 규모의 설치작품 또한 엔지니어란 그의 직업을 안다면 이해가 된다. 그는 기계장치에 연결된 램프의 점멸로 빛과 어둠을 표현했고, 이는 공간의 왜곡을 직접적으로 가시화했다. 연극에서 보이지 않던 공간을 보이게 하는 조명의 효과처럼 말이다. 이렇듯 빛의 강도는 빈 공간을 생성하였고 감상자는 하나로 뭉치지 않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사유를 경험하게 된다.

 

박부곤_위례신도시-20_C 프린트_64×80cm_2016
박부곤_위례신도시-24_C 프린트_64×80cm_2021

이번 전시, (The Act)에서 새롭게 보여주는 사진 또한 그의 일상과 밀착된 작업이다. ㅡ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 다수이다.ㅡ 그는 몇 해 전 자신이 기록하였던 현장 중 한 군데인 위례 신도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의 첫 삽은 대단지 아파트 공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된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 입주민은 크고 작은 공사 현장에 매일 노출된다. 심지어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창밖 풍경이 그렇다고 그는 말한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아파트와 상가 빌딩이 들어서면서 주변 공사 현장에 어둠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적나라하게 현전하는 욕망의 장면만 크고 단단한 이미지로 남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빛의 강도로 사진적 공간을 발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림막을 연극의 막(act)과 같은 개념으로 그는 해석한다. 연극에서 막(act)은 공간의 변화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차단/생성하는 작용을 한다. 공사장 가림막의 용도도 이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가림막 뒤로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가림막에 그려진 자연과 유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는 공사장에서 쏟아지는 소음과 먼지에 대한 생각을 차단하면서 그 이미지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유도한다. 그 효과는 상당히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단순히 경계를 지을 목적으로 치는 공사장 펜스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틈은 언제나 있다. 가림막 이미지 앞에 멈춰 선 시선 위례 신도시-8, 이미지를 뒤덮은 기이한 덩굴 위례 신도시-23, 이미지와 너무도 완벽한/어설픈 공조 위례 신도시-20/위례 신도시-24은 애초의 의도를 차단하고 다른 이야기를 생성하기 충분하다.

 

박부곤_서울시-10_C 프린트_150×120cm_2022
박부곤_위례신도시-2_C 프린트_64×80cm_2020
박부곤_위례신도-10~15_C 프린트_20×25cm_2021~2

박부곤은 매일 지나다니는 길에서 가림막들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가림막에 그려진 그 욕망의 공간에 그는 이미 살고 있다. 그에게 가림막이 새로운 사진적 공간으로 명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발명된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위, 그에게 그 행위는 사진 작업이다. 그는 가림막 이미지 위에 생성된 공간에서 서성거린다 위례 신도시-8. 가림막을 뚫고 그 이면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위례 신도시-2. 가림막이 무용지물이 되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서울시-10. 시간 단위로 공간을 분류하고 기록한다 위례 신도시-10~15. 그렇다, (act)은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위(act) 하기 위한 것이다. 막의 뒷면에서 새로운 무대를 위해 연출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보다 막을 마주한 관객들이 더 부산스럽다. 조금 전 무대를 잊는다. 다음 무대를 상상하거나 연극이 끝나면 무엇을 먹을지, 누구를 만날지 생각한다. 혹은 극 중 인물들은 왜 그래야 했는지 묻는다. ㅡ이 글을 쓰는 순간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디 액트(The Act)가 떠 올랐다.ㅡ 박부곤의 사진 앞에 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사진적 공간을 마주한 우리는 행위(act) 한다. 그가 질문하고 의심했던, 하지만 결코 정의할 수 없었던 그 공간들을 들락거린다. 그리고 우리 역시 무한한 공간/우주(space)를 발명하고 이동한다. 나를 돌아다니며 나를 돌아다니기 위해. 오래전 그에게 그렇게 잠을 줄이면서까지 사진을 왜 찍냐고 물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요, 재미있어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혜진

 

A Sound of Hammer

이수현/ Sooh Lee / 李秀賢 / photography

2023_0914 2023_0927 / ,공휴일 휴관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2_70×46cm_2023

이수현 인스타그램_@soohleestudio

 

초대일시 / 2023_091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

(후암동 435-1번지) B1

Tel. +82.(0)2.706.6751

www.kpgallery.co.krl

@kpgalleryseoul

 

KP Gallery에서 이수현 작가의 A Sound of Hammer전시가 2023914일부터 927일까지 개최됩니다. ● 『A Sound of Hammer전시는 개인의 무의식에 상재하는 '불안'과 이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그녀는 본인이 경험했던 '불안'을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의 감각으로 수용하고 이를 다른 관점의 ''의 의미로 연결하려 시도합니다. 이는 오늘날 '불안'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일반적인 사회적 태도와 다른 접근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점점 더 불안의 내면으로 침식됨을 인지하지만 동시에 '불안'이 스스로에게 자신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닌 환경과 범위 안에서 삶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늘날 '불안'을 사회구성원들이 지닌 '나약함'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을 흔히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강해져', '참아', '이겨내'와 같이 스스로에게 되뇌는 말들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KP 갤러리는 A Sound of Hammer전시를 통해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이해에 대해 질문하고 이수현 작가가 지닌 삶의 태도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KP 갤러리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9_90×67cm_2023

'이따금 나의 머릿속을 두드리는 '망치'가 있는데, 나는 이것을 손에 쥐는 순간 이미지를 생산한다. 이는 나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잠재하는 '불안'을 의미하며 역설적으로 나의 시각적 선택에 있어 박동을 만드는 장치가 되어준다.' 나는 미디어 사회 속에서의 개인이 내면 상태의 불안정을 인지할 때, 스스로의 생각과,감정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미세한 불안에 대하여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 충돌의 심상을 보다 밝은 채도와 다양한 발색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들로 전시를 구성하고자 하였다.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4_120×93cm_2023

이번에 선정된 작품들 중 아날로그 재현 방식으로 묘사한 21세기 보디빌더, 놀이동산에서 인공빛으로 촬영한 추상 이미지들,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정물 사진들이 큰 주축을 이루고 있다. 나는 각각의 주제를 갖는 이러한 작업 내용들을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A sound of hammer'라는 청각적 은유를 바탕으로 개별이미지가 가진 조형적 특성에 더욱 시선을 맞추어 채택하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나는 기존의 '불안'의 정서를 대하는 사회의 단편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역동성과 생의 감각으로 연결 짓는 시도를 하고자 하여, ' 나약성'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되려 그 자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미의 행위들을 재탄생할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나의 믿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6_90×67cm_2023

작업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빛의 번짐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추상 이미지들은 오랫동안 내가 불면을 겪었던 시기에 촬영한 것이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지나 아침이 밝아 오는 순간에 나의 감정과 모순적 의미를 내포하는 외부 환경을 찾아 그 안에서 다양한 순간을 채집하듯 이미지로 기록하였다. 나는 종교적 공간인 루앙대성당을 반복해서 따라가빛의 인상을 담은 모네의 행위와 그에 따라 파생된 '시뮬 라르크/ 시뮬라시옹' 의 개념을 차용하여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개인의 왜곡상태를 인공빛을 사용하여 연속 선상에서 재생산하고자 하였다.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4_111×14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7_120×90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_20_120×111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2_90×67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01_50×37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3_90×67cm_2023
이수현_A Sound Of Hammer #11_37×50cm_2023

보디빌더의 작업은 영국에서 만난 보디빌딩 선수들을 각각 VHS와 필름으로 촬영해 현재 시제의 인물이 마치 과거의 지점에서 자신의 '''승리'를 기호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써 표현하고자 하였다. 과거 자본주의 시대의 노스텔지아를 인위적으로 연출하여 지금 현재 인간의 힘이 가지는 상징성의 가치를 되묻는다. 이수현

 
 

전시 치루는 일이 힘에 부치는 걸 보니, 이제 몸이 다 된 것 같다.

보름동안 치룬 정영신의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 길돕느라 혼 줄이 났다.

전시 끝난 지가 제법 지났건만, 아직도 맥을 못 추고 있다.

틈만 나면 더러 눕고 싶지만, 일을 놔두고 어찌 잘 수만 있겠는가?

요즘은 하루 한 번씩 식사하러 갈 때 외에는 컴퓨터만 끼고 산다.

 

 서울시에서 준 '이름다운 동행 사업' 무료 식권이 없었다면, 죽어도 밖에 나가지 않을 것 같다.

그 날 먹지 않으면 없어지는 돈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챙겨 먹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동자동 사는 노인 대부분이 비슷한 실정일 게다.

없는 자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는 좋은 일이지만, 움직여야 살 것 아니겠는가?

고독사를 줄이는데 서울시의 식권사업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쪽방 촌에 한정할 게 아니라 전국 독거노인에게 확대해야 할 복지사업이다.

 

동자동에 정해진 식당만 열 곳이 넘지만, 늘 가는 곳만 간다.

처음엔 중국집 등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골라 먹었으나, 지금은 두 집만 다니며 집 밥처럼 찾아 먹는다.

다들 김밥집으로 몰려 그 집만 파격적인 매상을 올려주지만,

한 달 전 그곳에서 먹은 콩국수에 배탈 나, 온종일 쏟아 부은 적도 있다.

이후부터 그 식당은 발길을 끊었는데, 여름철엔 위생이 최우선이다.

 

지난 7일엔 식당 찾아가다 일전에 초상사진 찍은 이기영씨를 골목에서 만났다.

잠시 기다리게 하고, 다시 쪽방에 올라가 뽑아 둔 사진을 가져다 주었는데,

옆에 있던 채남규씨가 자기 방에서 한 잔 하자며 팔을 잡아 끌었다.

채씨는 쪽방 들어온 지 20년이 넘는 선배 격이지만, 평소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같이 술자리를 했거나 특별한 연이 없으면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이웃이 많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때로는 오해 받는 경우도 있지만, 천성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아마 자기도 초상사진을 찍으려고 나를 방에 데리고 간 것 같았다.

경기여인숙’ 2층에 살고 있었는데, 코 구멍만한 방세가 한 달에 32만원이란다.

방세가 비싼 줄 알지만, 방세 싼 곳 찾기도, 옮기기도 귀찮아 눌러 산다고 했다.

방안에서 초상사진을 찍고 나니, 막걸리를 내놓았다.

먹는 약 때문에 술은 마실 수 없었지만,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해 64세인 채남규씨는 전라도 부안이 고향으로, 반평생을 미장 일하며 살았단다.

그러나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용산구청의 자활근로사업에 나가는데, 그것도 반타작이라 한 달에 팔십만원 받는단다.

방세주고 술값 제하면 남는 것도 없지만, 절약한 덕에 백만 원이나 통장에 남았다며 자랑 질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수시로 오줌이 마려워, 방안에서 페트병에 소변을 보았다.

파리 눈물만큼 나오는 오줌을 모아 한꺼번에 버린다는데, 그 일도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활 나가면 무슨 일 하느냐고 물었더니, 숙대 입구에서 담배꽁초 줍는 일 한단다.

제일 무료한 일이 담배꽁초 줍는 일이라 했더니, 맞다며 맞장구 쳤다.

주울 꽁초만 있다면 시간 보내기는 안성마춤이나, 주울 꽁초가 없어 지루해 미치겠다며 투덜거렸다.

자활이란 게 가난한 사람 돕기 위한 복지사업이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다른 일은 없을까?

 

이런 저런 신세타령을 듣는 중에 채씨의 전화기는 계속 울어 댔다.

간다 간다 하면서도 일어 서질 않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급한 일이 생긴 후배에게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좋아 남이 어려운 사정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없는 사람이 인심 좋은 건 말 할 필요도 없다.

 

다시 골목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김상진씨가 나와 있었다.

그는 동자동에서 몇 안 되는 먹물로 인문학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는지 나에 대한 정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김상진씨는 사진을 두차례나 찍었으나, 내키지 않아 다시 찍을 참이었다.

 

처음엔 눈물이 고여 실패했고, 두 번째는 나의 실수였다.

짝을 때 좀 많이 찍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한 자리에서 두세 컷 찍고 끝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러 생긴다.

평소의 촬영 습관이라 어쩔 수 없는데, 이번에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세 차례나 찍는 경우는 없었는데, 아마 좋은 초상을 찍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았다.

 

 새꿈공원에서 유정희씨를 만났는데, 술이 취해 길바닥에 퍼져 있었다.

만나기만 하면 사진 달라고 졸랐는데, 술이 취해 챙기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정재은씨는 유씨에게 빌려 준 돈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는데,

돈 생기면 술 마시기 바빠 갚을 여유가 없는 것은 불을 보듯 훤했다.

 

공원 안쪽에는 자선단체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나왔는데, 이준기씨도 상담 받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런 곳은 갈 일 없는 것이 상책이다.

 

요즘은 '法' 법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친다.

무력으로 밀어 부친 군인들이 판을 친 군부시대에는 저항할 힘이라도 생겼지만,

남의 뒷구멍이나 뒤져 독제하는, 군부보다 더 무서운 검부시대에 살고 있다.

 

공원 한 쪽 구석에는 어떤 낯선 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애잔한 선율이 공원으로 번져 나갔는데,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소나타라 이름 붙여 본다.

사진, / 조문호

 

박종호의 나목’ 그 황량함에 대하여...사진전이 

 96일부터 23일까지 충무로2가에 위치한 아주특별한사진교실에 초대 전시되고 있다.

 

 먼저 나목이란 제목 자체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나목으로 등단하기도 했지만, 신경림 시인의 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각예술로는 박수근화백의 나목에 이어 사진가 임응식선생의 대표작이 줄줄이 떠오른다.

벌거벗은 나무로 벌거벗은 인간을 말한 그 상징성이...

 

1983년 발행한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 게재된 임응식선생의 '나목', 글은 고 이명동선생께서 쓰셨다 .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대 부산에서 촬영한 임응식선생의 나목은 포화에 불타버린 앙상한 가지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려는 당시 시대상황을 대변했지만, 박종호의 나목은 사진으로 쓴 시에 가깝다.

 

박종호는 작가노트에 기다림은 희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며, 조용히 준비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그 봄을 말이다.

그 때가 오면 앙상했던 나목에는 푸르름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나목은 우리에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진 겨울 한가운데 서서 그 시간을 인내하라고 한다.

그 속에 봄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채, 그 속에 생명을 간직한 채 말이다.

그렇게 나목은 찬란하게 빛날 그 봄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박종호의 작업노트를 읽다보니, 근원적인 인간의 모습이 나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모두가 나목처럼 벌거벗은 존재로 오지 않던가?

 

 박종호의 사진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는 앙상한 나목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이미지의 형상성이나 심미감에 앞서 작가의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깔려있는 것이다.

 

아래 적힌 신경림시인의 나목시구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목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소외된 자들의 상징이고,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은 것은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인간의 간구일 수도 있겠다.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시는 9월 23일까지 열린다.

 

/ 조문호

 

박종호 나목그 황량함에 대하여...’

전시기간 202396-23(12:00-19:00, ,월 휴관)

서울 삼일대로(충무로2)414 신원빌딩 401

아주특별한사진교실’ 02-771-5302

 

 

 

Auspicious Snow

엄효용/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23_0907 2023_0924 / ,화요일 휴관

 

엄효용_2016030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초대일시 / 2023_0907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화요일 휴관

 

고공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로 82 3

Tel. +0507.1358.3076

 

상서로운 눈과 그 눈에 덮인 세상 엄효용은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려오는 눈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눈이 내려오고 있다. 아니, 작품을 벽에 세워 걸었으니 눈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까마득한 어둠으로부터 솟아 나온 빛의 입자들처럼 명멸하며 다가오는 눈송이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눈송이들은 캄캄한 삶에도 간혹 찾아오는 기쁨의 순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내어 보는 반짝이는 용기 같기도 하다. 때로 화면을 가득 메운 함박눈의 형상은 모든 애틋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의 함성이다. 많은 이야기를 걸어오다가도 문득 고요하게 잦아드는 눈 이미지들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아름다움으로 조용하게 소란스럽다.

 

엄효용_20171124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171218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1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107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_20210302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_2023

엄효용이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록한 눈송이들의 궤적은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나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연상시킨다. 불규칙적이고 무계획적이며 우연적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하얀 궤적들은 바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는 조리개가 열려 있는 동안 스트로브strobe를 여러 번 터트려 눈송이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엄효용은 현대 기술을 활용해 사진에 대한 통제권을 지닌 채 여러 장의 사진을 중첩시키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사진기가 지닌 기본 기능만으로 피사체를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했다. 작가의 이런 행보는 본디 사진이 갖고 있던 고전적인 장점들을 작품 속에 되살려냈다. 대상을 선택하고 연속하는 시간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여 화면 위에 붙들어 매는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사진 안에 포착되지 못한 사진 밖의 수많은 대상들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진 안에 고정된 한 순간 앞뒤로 늘어서 있는 고정되지 않는 마음들, 사람들, 사건들에 대한 그리움과 낭만을 배가시킨다. 찰나에 머물러 있는 이미지는 내용상으로 제약 받을 수록 의미적으로는 더욱 확장된다. 관람자들은 상상 속에서 사진의 물리적 테두리를 벗어나 끝없이 이어지는, 눈 내리는 밤의 시공간 안에 자신만의 기억과 이야기를 무한히 대입할 수 있다. 작가가 전통적인 사진술로 회귀하며 사진 속에 되살려 낸 것은 의미의 역설적 확장만이 아니다. 작가가 통제권을 사진에 양도함으로써 작품 안에 증대된 우연성은 그의 사진을 전보다 자연스럽고 창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사진기는 태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록한다. 사진기가 피사체를 수용하기에 앞서, 대상을 선별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결정하는 작가의 선택이 있지만, 그것은 허락된 상황 안에서 이루어지는 수동적 선택이다. 사진은 작가가 수세적일 수록, 사진에 대한 작가의 권력이 약해질 수록 그 힘이 강해진다.

 

엄효용_삼방로 느티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60×105cm_2018
엄효용_소양로버즘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45×60cm_2018
엄효용_원미산 독일가문비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엄효용의 개인전 Auspicious Snow는 한밤에 눈 내리는 소리와 겨울 숲의 정적으로 가득하다. 이번 전시는 눈을 주제로 한 신작들과 기존 작업 중에서 겨울나무 이미지들만 모아서 엮었다.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눈밭 위에 서 있거나 눈으로 덮인 겨울나무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 있으면, 밤 사이 내린 눈이 그렇게 나무들과 만난 듯하다. 작가의 겨울나무들은 기존 작업 중에서도 그 숨결이 유독 부드럽고 정적이다. 스스로 부차적인 것들을 다 털어 버리고 본질만을 남긴 나무의 메마른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너진 마음을 바로 세우게 하는 힘이 있다. 혹한 속에 홀로 서서 의연히 살아가는 겨울나무의 이미지는 뜻밖에도 관람자들의 마음에 추위가 아니라 따듯함을 건내준다. 겨울나무 이미지의 이러한 맥락은 신작 눈 연작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어둠을 이기는 눈송이들의 여린 목소리와 겨울나무의 낮고 평화로운 숨소리는 작품 앞에 선 이들의 와해된 마음을 넉넉히 일으켜 줄 수 있을 것이다. 훈기를 지닌 엄효용의 겨울 사진들은 외로움과 결핍이 아니라 삶의 소박한 기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황현승

 

엄효용_장성천길 소나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90×120cm_2023
엄효용_종합 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8
엄효용_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겨울_종이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20
겨울이 오면눈이 내리길 기다린다.겨울 하늘에 어둠이 내리고눈, 바람, 빛이 만나면한 편의 교향곡에 맞추어눈의 춤사위가 펼쳐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중력을 가지는 모든 것은신비함을 품고 있으며그것을 숭배하는 마음으로오늘 하루를 채워간다. 엄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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