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진가 김영호씨가 페북에 올린 박광복 지상낙원전시리뷰에 무릎을 쳤다.

낙원동 골목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이 많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보고만 있었는데,

박광복의 전시 소식은 너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사진전에 가지 않지만, 축하하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송상욱시인 추모 모임에 사용할 현수막도 찾을 겸,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브레송을 정동지와 함께 갔다.

전시장 문은 열렸는데, 식사하러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찬찬히 돌아보았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아는 분도 여러 사람 등장하지만, 이런저런 오래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30년이 넘도록 인사동 사진 찍느라 오가며, 돈 떨어지면 갈 때가 낙원동뿐이었다.

지금이야 감시카메라가 있어 얼씬도 못하겠지만, 담장 넘어 탑골공원 잔디밭은 숙소나 마찬가지였다.

추운 날씨에는 월담할 자가 없지만, 여름에는 모기에 시달려도 잘만했다.

어떨 때는 남녀가 딩굴며 사랑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오백원짜리 동전 한 잎 챙겨 해장국 먹으러 가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이천 원으로 올랐지만, 그 부근의 음식 값은 싸고 맛있는 집이 많다.

낙원상가 지하의 일미식당으로부터, 탁자가 두 개뿐인 낙원상가 계단 밑에 자리 잡은 구멍가게도 좋다.

이름도 없는 대폿집을 통인의 관우선생이 다리 밑집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갈 때마다 자리가 없다.

북문 쪽의 유진식당도 자주 이용하는 술집이었다.

그러나 낙원동에 출입하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맛보다 더 싼 집을 찾는다.

 

탑골공원으로 출근하는 노인이 많은 것은

무료급식도 있지만, 파격적으로 싼 식당이나 이발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현궁 맞은편에 있는 노인복지센터와 낙원상가에 있는 실버영화관 등

노인들이 시간 보낼 곳이 몰린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박카스 아줌마'들이 종묘 쪽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나랑 연애 한번 할래요? 잘해 드릴게라며 박카스를 내미는 장면은 이제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볼 수 없다.

 

어쩌다 나이 드는 것이 사회적 문제의 고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가족 부양하느라 정신없이 돈벌이에 급급하다

미처 재미있게 사는 '놀이'조차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몰입할 놀이도 없는 남자들에게 불어난 잉여 시간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남자 비극의 시작은 월급봉투가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가면서다.

경제권을 빼앗기며 집에서까지 밀려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노인 문제는 누구나 거쳐야 할 인생 행로다.

이곳 노인들은 대체로 이중적 존재 의식에 사로잡혀있다.

물리적 신체나이는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된 상황을 심리적으로 거부한다.

이곳에 나와 있어도, 스스로는 철저히 '관찰자'라 여긴다.

돈이 없어 무료급식소를 이용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과거를 살아낸 시간에 의식의 끈을 묶어 두고 있다.

잘 나가던 지난 모습을 현재 시공간에 끊임없이 투영시킨다.

분명 현실과 괴리된 몽상임에도, 이런 의식이 이곳을 노인 전유 공간으로 변화시킨 힘이라 여겨진다.

 

다들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가면, 공원 주변엔 노숙자만 남는다.

리어커에 실고 다니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 한 곡 뽑는 재미도 쏠쏠한데, 시끄럽다는 상인들 신고로 쫓겨났다.

낙원동이 노인들 도피처가 아니라 전시 제목처럼 지상낙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술과 가무, 시비와 싸움 등 밑바닥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포착되었다.

스트로보를 동조시킨 강렬한 장면들은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액티브한 포즈가 경직된 그들의 삶을 말하는 것 같다.

언젠가 이곳도 밀려나게 되면, 박광복의 사진으로만 남아 추억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니겠는가?

 

사진도 사진이지만 외로운 노숙자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계속해서 낙원동 기록을 해 주었으면 고맙겠지만, 애로를 알기에 강요하지는 못하겠다.

그리고 완전한 기록을 위해 찍힌 분들의 성함도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이름 없는 사람 사진은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자부심을 갖도록 설득하는 것도 사진가가 해야 할 덕목으로 꼽힌다.

 

노숙인들과 함께하며 기록해낸 박광복의 지상낙원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전시는 갤러리 브레송에서 1016일까지 열리니 많은 관람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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