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브레송’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두 번째 기획전

징병제에 의한 의무복무, 박제화, 사육과 무기력, 몰인간성

 

 

강재구 사진전이 지난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가 강재구는 입영 전의 민간인에서부터 머리를 깎은 군인에 이르기까지, 징병제에 따른 군인 시리즈를 20여 년 동안 기록해 왔다. 이등병이라는 전형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휴머니즘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한구의 ‘군용’ 사진이 군에 갓 입대해 체험적 병영생활을 어렵사리 기록한 사진이라면, 강재구 사진은 군인으로서의 문제점을 다 각도로 형상화해 왔다는 점이 다르다.

 

강재구 작업은 직업군인보다 의무적 복무를 수행하는 이등병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등병은 막 입영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욕구조차 자신의 의지 대로 행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통제당하며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때부터 사람이 아닌, 군바리 취급을 받는 안쓰러운 존재가 되어, 군대가 만들어 낸 틀 안에서 이등병이란 자아 상실을 경험하며 나약해 진다. 카메라 앞에선 긴장된 모습이 마치 박제화된 인간처럼, 모순된 상황을 재현한다

 

그가 징집병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군인의 정체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군인으로 끌려가 삶을 저당 잡혀 살아야 하는 청년 문화를 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청년 문화 안에 서식하는 집단성과 몰 개체성이나 비인간적으로 사육되는 무기력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 복무 시절과는 전혀 다른 제대 후의 예비역 모습도 보여준다. 예비군복은 입었지만, 머리카락이 자라 군모를 쓴 것조차 어색하고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빨간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거나 팔찌나 목걸이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군기 빠진 또 다른 군인 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2009년에는 기존 시리즈와는 성격이 약간 다른 군대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 식의 ‘사병증명’도 있다. 필름을 아끼려고 두세 명을 나란히 세워놓고 촬영한 후 필요한 사진의 얼굴만 도려내 사용하면, 사진에는 얼굴은 없고 몸만 남는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된 이름만 남은 증명사진 프레임은 군대라는 몰인간성을 은유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2019년 작업한 ‘12mm’는 획일적 군대의 시작점이며, 비인간적인 군대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이등병은 입대 전 머리카락 길이를 12mm로 잘라야 하는데, 군 훈육이 남긴 일종의 정신적 충격을 기념사진 형식으로 드러낸 사회적 초상이다. 입대를 전후해 삭발한 인물을 릴레이로 촬영한 ‘12mm’는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 등 지금까지의 군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작업이다.

 

작가는 일반 기념사진과는 달리 모델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포즈를 연출하도록 한다. 다만 적절한 배경이나 인물의 수만 결정할 뿐이다. 배경은 훈련소 막사 앞일 수도 혹은 그 주변 시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담배를 피우던지 애인을 감싸 안을 수도 있어, ‘이등병’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인간적이다.

 

이번에 새로이 보여 준 ‘입영전야’는 입영을 앞둔 청년들의 알몸사진을 찍었다.

지난 달 그 작품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이 페이지가 삭제되고 일주일 동안 운영정지된 바도 있다.

성기가 노출되지도 않은 청년의 알몸 사진을 유해물로 판단한 관리자의 의식전환이 시급한 실정이다.

제외된 '입영전야' 작품사진은 '아트뉴스'나 네이브 블로그 '인사동이야기'에서 강재구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받으며 알몸으로 카메라를 마주하는 청년의 모습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과 그가 속해있던 환경,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한 사진을 통해 군인으로서의 강인함이 아닌, 아직은 여리고 앳된 소년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아래 글은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강재구론, ‘전형’을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서 발췌했다.

강재구 다큐멘터리 재현의 가장 중요한 방편은 순간 동작이 아닌 연출로 만들어진 행위를 촬영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진가가 미리 대상을 섭외하고, 기획하여 짠 각본에 따라 촬영한다. 그러니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동작과 사실의 관계에 대한 담론이 생긴다.

 

스튜디오 포트레이트의 동작은 포즈다. 포즈란, 피사체가 사진가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에게 말하는 그만의 언어인데, 그 언어를 사진가가 통제하고 강제해버린다. 피사체는 사진 바깥의 세계에서 그가 처한 군인이라는 위치에서 똑같이 철저하게 강제당함으로써 행위자 피사체로서는 죽은 존재와 다름없이 전락해버린다. 강재구 사진의 탁월성이 여기에서 나온다.

 

사진가는 강제로 연출 당하면서 모든 언로를 차단당한 채 무기력하게 존재하는 그 박제된 이등병과 그 주변인들을 통해 몰개성과 획일성을 비판한다. 독을 제거하려면 깨끗한 물이 아닌 또 다른 독으로 해야 한다는 힌두교 밀교의 세계관이다.

 

글 / 조문호

 

 

김문호의 豊裏眞景(풍리진경)’ 사진전이 지난 15일 전북도립미술서울관“(인사아트6)에서 시작되었다.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에서 풍리진경 사진집도 나왔다.

 

'풍리진경' 김문호 사진집 표지 / 눈빛출판사 / 160페이지 양장 / 가격 35,000원

 

사진집 제목으로 내 건 豊裏眞景이란 뭘까?

사진집에 작가 노트는 물론 촬영장소나 날자 등 아무런 정보가 없다,

나름의 독해력을 요구하는 불친절함은 있지만,

고주알 메주알 변명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백배 낮다.

 

풍리진경이란 풍요로움 속의 이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으나,

풍요로운 현대 문명을 누리는 감춰진 그 속에 진짜 경치가 있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다가가는 디스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가 채집한 잿빛 살풍경은 생각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시멘트로 뒤덮인 아파트나 산업현장의 침울한 이미지가 마치 멸망의 묵시록으로 다가왔다.

아파트 건물 사이로 내려앉는 태양은 지구의 종말을 예고하는 장엄한 서사같았다.

 

편리한 것만 좋아하는 인간의 욕망이 불러낸 눈앞의 현실이다.

작가는 무분별한 생산과 소비로 황폐화되어가는 환경을 추적하며, 인간들의 각성을 요구했다.

 

이번 '풍리진경'에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혹시 인간 멸종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하기야! 몸은 살아 남았지만, 인간성이 파괴된 지는 오래다.

그의 작업은 피폐한 문명에 앞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실에 더 주목한 것 같다.

 

사진가 김문호는 40년 넘게 인간과 문명에 천착하며 작업 해 왔다.

그의 사진 작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명비판이다,

한때 찍었던 초상 사진이 인간에 대한 애정의 눈길이었다면

온더 로드는 인간이 만든 문명에 대한 사유로 넓혀졌고,

그 사유는 대상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었다,

그다음에 보여 준 ‘Shadow’ 성시점경에서 더 구체화되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객관성을 주관적으로 바꾼 대표적 사진가다.

김문호의 관심적 대상은 무엇을 찍느냐가 아니고, 사실을 어떻게 사유하느냐다.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정신이다.

이미지를 포착하는 결정적 순간이나 미학적 형상성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정신이라는 것이다.

 

 풍리진경 사집집 서문 말미에 쓴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의 글이다.

 

사진가 김문호는 무슨 연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도시의 풍요로움, 자본주의의 발전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렇게 되기에는 분명 여러 고정점이 있을 것이다. 그 고정점들을 중심으로 그는 시간의 변화와 역사의 흐름을 풍요로움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본 것이다. 그 풍요로움 속은 무엇일까? 인간관계의 상실일 수도 있고, 잃어버린 고향일 수도 있고, 정겨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의 이런 생각을 나누던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간다고, 결국, 사람들은 릭셔리한 외제 차를 타고 질주하지만, 그것은 이미 다 깨져버린 껍데기일 뿐이라고, 그러니 작가 보기에 그들이 가는 곳은 결국 시멘트 덩어리 숲이고, 그 덩어리 너머로 붉은 해만 떨어질 뿐인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되새김하면서 현재를 보지만 결국, 미래를 보는 것이다. 과거를 보니 현재 서 있는 위치가 보이고, 결국, 미래가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가 김문호의 풍리진경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찬란한 유토피아가 아니고, 스산한 디스토피아의 미래. 발전으로 여기지만, 사력을 다해 죽음으로 퇴보하는 저 휘황찬란한 물질문명의 미래 말이다

 

전시는 20(월요일)까지다.

 

사진,  / 조문호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1916~2002) 작고 20주년을 기념하는

'Colors of Yoo Youngkuk'이 삼청로 국제갤러리전관에서 열리고 있다.

 

자연과 을 모티브로 강렬한 원색의 기하학적 구도가 특징인 유영국 작품은 

조형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추상화다.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이러한 작가의 말처럼 유영국 추상화의 근간은 산에 있는 것이다.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아마 주변에 둘러 쌓인 산에서 영향 받은 것 같다.

, , , ,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산에서 차용하여, 자연적 심상을 화폭에 담아왔다.

 

이 작품은 강렬한 태양이 화면 전체를 집어삼킬 듯 아른거린다.

농도를 달리한 붉은 색이 면과 면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푸른빛 삼각뿔이 중심을 잡는다.

석양 풍경을 추상으로 전환시키며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강렬한 색을 보다 잠시 눈을 감으면 일어나는 색의 잔상처럼 느껴진다.

유영국만의 창발적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이 압권이다.

보색의 조화와 색채의 깊이를 동시에 누리며, 색을 통한 추상 미학의 절정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박영국 작품 제목은 모두 (Work)일로 통일되어 있다.

이는 전업 작가로서 절제의 삶을 지향한 작가 개인적 철학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적 절정을 향한 집요한 의지와 부단한 조형 실험 등 추상의 정수를 탐구하려는 구도자적 자세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단청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격자 무늬 가 등장하기도 하고,

한 때는 경주 남산 불상을 소재로 한 사진 콜라주 작업도 했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을 끌어들여 표현의 다변화를 고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영국은 지금도 우리에게 풍경 없이 풍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준다.

마치 마음으로 본 것 같은 추상이 따스한 색채의 잔상으로 남는다.

 

K1 관에서는 색채 실험과 조형 언어를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작가의 대표작과 초창기 작품을 펼쳐 놓았다.

독자적 미학을 구축하기 시작한 1950년대 및 1960년대 초중반 작품으로,

자연의 요소를 추상적 형태로 변환해 마티에르를 살린 유화들이다.

 

K2 관에서는 기본적인 조형 요소를 살린 1970~90년대 작품을 보여준다.

강렬하고 원초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후기 작품들이다.

2층에서는 1942년 경주 사진 연작과 드로잉, 그리고 작가의 활동 사료를 보여준다.

 

K3 관에서는 기하학적 추상과 조형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후반~1970년대 초기에 제작한 작품들로,

다양한 색채를 활용해 거침없이 자연을 묘사하고 있다.

 

유영국의 작품 세계를 정리한 이번 전시는 시기별 대표 작 68, 드로잉 21,

그리고 추상 작업의 일환이자 새로운 기법의 시도를 보여주는

1942년 꼴라쥬 사진과 작가의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가 총 망라되었다.

 

이 전시는8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70년대 유영국 사진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내 길이 되는거야

 

생각나는 데로 만들고 그리며, 작품이란 틀 자체를 깨부수는

김을의 김을파손죄전이 조계사 옆 ‘OCI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김을은 기존의 타성을 깨기 위해 늘 새롭게 생각하며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는 작가다.

전시장 1층에 설치된 작업실에는 수많은 망치가 벽에 걸려있었다.

붓이 있어야 할 곳에 망치가 있다는 것은 자신의 창작이란 망치로 깨부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난감 같은 다양한 오브제를 비롯한 수많은 드로잉 작품이 삼 개 층에 빽빽이

전시되었는데, 누구처럼 특정한 주제도 없고 일관된 방식도 없다.

닥치는 데로 만들거나 그리고, 아니면 사정없이 파손한다.

작업을 일로 보지 않고 즐기는 놀이에 가깝다.

 

전시장 곳곳에 갖가지 인형 형상이나 머리가 어지럽게 늘려 있고,

목마나 수레가 놓여있기도 해, 마치 어린이집이나 놀이터에 온 기분이다.

인형의 신체를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다양한 행위들이 어린이처럼 자유롭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심각한 척 그렸으나 능청스러운 익살이 있고, 세상을 향한 야유도 엿보인다.

이러한 것들을 적절히 버무린 균형감이 김을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요체다.

 

작품 하나하나의 섹션 구성이나 형식이 작품 전체에 걸쳐 프랙털처럼 등장하기를 거듭한다.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변형시킨 작품에서 우상파괴적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요란한 놀이를 통해 그동안의 사색을 오브제나 드로잉으로 표출해 내는 것이다.

 

작가를 빼닮은 민머리와 미소가 있는가 하면, 앙증맞도록 귀여운 인형도 곳곳에 늘려 있다.

물신적 욕망을 드러내는 인형 같은 오브제도 어쩌면 확장된 드로잉인 셈이다. 

그의 작품은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싱싱한 날것 같다.

 

작가는 무엇을 그릴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그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목표라지만, 작업에 임하면 여전히 갈등한다. 드로잉 곳곳에 등장하는

“나의 그림이 개지랄을 떨고 있다, 넌 무조건 지옥행!, 그림 이 새끼" 등의 글귀 들이 말한다.

그뿐 아니라 그림을 집어던지는 사람, 날아가다 처박혀 벽으로 흘러내리는 그림, 

잘 마무리하다 냅다 긋고 찢은 캔버스까지 각양각색이다.

이와 같은 행위들이 작가의 진솔한 마음을 말해주는 민낯인 것이다.

 

어쩌면 김을파손죄란 주제 자체가 김을의 미술 행위를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도화된 틀이나 속박으로부터 벗어 나려는 자유로운 행위 자체가 김을 작업의 핵심인데,

선택한 오브제나 드로잉을 파손해가며 만들었다는 자체는 창작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동판을 부조처럼 오려 붙인 뒤 아크릴 물감으로 칠하는 자화상 연작을 그렸고,

자신의 뿌리를 가계사에서 찾는 혈류 연작도 발표 했다.

이는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에서 가족 또는 핏줄의 내면으로 영역을 확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인생의 슬픔이나 한을 산이라는 자연 공간에서 해방시키려는 ‘이산 저산’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가의 뇌리와 감성의 망에 걸려 탄생한 김을파손죄는 오는 64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고 문영태화백 미망인 장재순씨가 운영하는 민예사랑’ [김포시 월곶면 문수산로434]

북한의 개풍군을 코앞에 둔 서해안 최북단에 자리 잡고 있다.

 

살림집에 들어앉은 '민예사랑'의 전시는 꽃 피는 오월 한 차례만 열린다.

그곳은 정원이 아름다운데다 고가구들이 적절히 배치된 공간의 아늑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에 빠져들게 한다.

 

넓은 정원에는 돌확과 장대석, 동자석 등 몇백 년은 됨직한 갖가지 골동들이 나무들과 어울려 있고,

전시된 작품이나 생활용품 모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그런 전시 분위기가 작품의 격조를 높이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 놓인 작품 역시 격조가 높아야 차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 20 정동지 연락을 받아 달려갔는데, 

전시도 궁금했지만 오월의 민예사랑정원이 더 그리웠다.

전시장에 초청작가는 보이지 않고 몇몇 컬렉터만 돌아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초대된 일본 판화가 노다 테츠야는 도쿄예술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도예가 이시야마 토시키는 후나기 켄지에게 사사 받아 염유석탄가마를 축조하는 등

독보적인 작업을 펼쳐 온 작가다.

그리고 이영재는 카셀 미술대학 도예과 연구교수를 역임한 후

현재 독일에서 도자 공방을 운영하는 등 모두 일가를 이룬 명장들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부드러운 톤의 판화가 벽에 걸려 있었다.

품격있는 조선 가구가 배치된 적절한 공간을 마치 자기 자리 찾은 듯한 도자기가 얄밉도록 앙증맞았다.

숨결이 느껴지는 질감과 우아한 자태의 작품들은 마치 아름다운 삼중주를 듣는 듯 빠져들게 만든다.

 

노다 테츠야의 판화 작품은 너무 오래되어 곰팡이가 번진 듯한 부드러운 계조로 표현되었는데,

세월을 한 참 거슬러 간 오래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작가의 시대적 사유가 내포된 심상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조선 도자의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도예가 이시야마 토시키의 작품은 개성이 뚜렷했다.

흙 색깔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기법을 여러 작품에 접목해 독창성을 부각시켰다.

다완의 은은한 빛깔이나 개성적인 형태가 낯설지만 친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한국 문화가 참 좋다. 멀찌감치서 보기도 하고, 푹 파묻혀도 보는 그것이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 형식에서는 벗어났지만, 우리 고유의 멋을 풍기고 있었다.

 

한국적 선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도예가 이영재의 사발과 호리병은

우리 전통 도자의 멋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모양세는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보면 볼수록 심미감을 더해주는 깊은 맛이 있었다.

 

판화가 노다 테츠야의 섬세한 터치와 일본 북해도의 자연을 닮은 이시야마 토시키 도자기,

그리고 한국적 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영재의 도자기가 어울린

민예사랑초대전은 오는 27일까지 열린다 (전시문의 / 010-5357-5256 )

 

사진, 글 / 조문호

 

 

 

 

춘자삼춘' 앞에 선 이명복작가

 

 

이 세상에 어머니란 말보다 더 편하고 정겨운 말은 없을 것이다.

어깨를 토닥이며 불러주던 자장가로 꿈꾸던 행복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이명복_겨울 배추밭_75×60cm_2021

말만 들어도 코끝이 찡해지는 어머니를 형상화한 이명복의 어멍전이 어버이날에 맞춘 지난 54일부터 17일까지 열렸다.  몇 달 전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사진전이 열렸던 나무화랑’에서 다시 그 감회에 빠져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겠냐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일부터 생각난다.

 

이명복_휴식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낙동강 전투의 최후 보루인 내 고향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내 나이 세 살 때였으나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다. 포화가 잠잠할 즈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유엔군이 진을 친 남산 아래 미나리꽝 뚝 길로 지나칠 무렵, 피 흘리며 쓰러진 군인이 , , 이라 외치며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고, 옆에 선 군인은 그냥 가라며 총부리로 위협했다. 겁에 질린 어머니가 간신히 군인의 손을 뿌리치기는 했으나 뒤에서 총을 쏠까 염려되어 등에 업힌 나를 가슴에 끌어안고 뛰셨는데, 어머니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흘렀다. 그때 느꼈던 어머니의 거친 숨결 속의 전율감은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다. 이것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오랜 기억이다.

 

이명복_밭일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이명복은 역사와 현실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의 시대상을 그려내는 민중화가다. 제주로 간지 12년이 넘었는데, 제주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참혹한 과거가 묻힌 곳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질곡의 현장을 답사하며, 민중의 한맺힌 응어리를 형상화해 왔다. 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은 붓으로 새긴 역사화에 다름아니다. 비록 한 사람의 인물을 그렸지만, 그 인물 속에 한 생애가 고스란히 들어있을뿐더러, 우리 민중의 한이 서려 있는 것이다.

 

이명복_감자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27.3cm_2021

이명복 작품 중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작품은 2년 전 ''전에 내놓은 해녀 옥순삼춘이었다. 마치 흑백사진 같은 리얼한 표정의 슬픈 모습인데, 웃음을 머금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애잔한 표정이었다. 마치 민족의 한이 한 여인의 얼굴에 응축된 것 같았다. 그리고 5월9일까지 '인사아트센터' 열리는 4.3기획전 바라·'에 출품된광란의 기억도 대단한 역작이었다.

이명복의 작품은 풍경마저 보는이를 슬프게 만든다. 상처받은 역사에 암울한 현실이 더해져 또 다른 감회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이명복_해녀-춘자삼촌_92×62cm_2021

이번에 보여준 어멍전에는 어머니의 초상과 삶터에서 일하는 모습으로 압축되었다. 역사의식에 바탕 둔 현실 수용으로, 어머니의 깊게 파인 주름과 눈빛에서 지난한 세월의 아픔을 읽을 수 있다. 잠시도 쉬지 않는 근면함과 강인한 생활력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며, 숭고한 생명의 꽃을 피운 것이다.

 

이명복_봄바다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27.3cm_2021

회화는 그 형식적 물리적 속성으로 인해 한 작품에 작가가 원하는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바로 이 한계를, 이명복은 풍경화-인물화-역사화라는 분절된 장르를 리드미컬하게 상호 연관시킴으로 종국에는 그가 원하는 내용과 주제를 형상성으로 드러내고 극복하게 된다. 이번 나무아트의 '어멍(어머니)'전은 거대한 역사화로 이르는 이명복 회화의 출발점이자 통로라 하겠다고 김진하 미술평론가는 적었다. 

이 전시는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이명복_귀로_한지에 아크릴채색_45.5×33.4cm_2022

 

포토존 앞에 선 사진가 박옥수

박옥수의 ‘시간여행 이 지난 5월4일부터 9일까지 ‘인사아트프라자’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작은 1965년부터 80년까지의 박옥수 초창기 사진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근현대 사료로서 중요한 가치도 지녔다.

 

뚝섬 , 서울 , 1970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박옥수는 고교시절 부터 사진가로 두각을 드러냈고, 대학 시절에는 고 이형록 선생이 이끄는 '현대사진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50년대에서 7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사진사에서 신선회, 살롱 아루스, '현대사진연구회'로 이어지는 사진 그룹 활동은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자각과 새로운 사진 이념이 생성된 중요한 시기였다. 정범태, 이해문, 한영수, 전몽각, 황규태, 박영숙 등 기라성 같은 사진가들이 활동한 '현대사진연구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고) 이경모선생의 추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대학을 졸업한 후, 사진가 문선호선생 휘하에 들어가며 광고사진가로 변신한 후 현대자동차 홍보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동성고 , 서울 , 1975 / 70cm x 100cm 장정 디아섹

그는 개인전을 하지 않았다. 가끔 단체전에 내놓은 작품도 리얼리즘 사진보다 서정적인 풍경이 주를 이루었다. 초창기 작품으로는 83년 문선호씨가 주도한 한국현대사진대표작'전에 내놓은 미사에서 지휘하는 장면과, 2005민사협에서 주최한 시대와 사람들전에 내놓은 국립묘지에서 통곡하는 유족들 모습이 박옥수 초창기 작품을 본 전부였다.

 

수색부근 서울 . 1969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2009민사협에서 주최한 한국현대사진60전을 비롯한 여타 단체전에 발표한 작품은 조형적이거나 서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기에 리얼리즘 사진을 집중적으로 찍은 사실은 전혀 몰랐다. 2017년 토탈스튜디오를 그만둔 후 페이스북에 올라온 6-70년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난지도, 서울 . 1969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그 소중한 자료를 반세기 동안 깔아뭉갠 이유가 궁금했다. 상업사진에 전념하느라 정리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스튜디오를 그만두기 전에는 할 일 없이 시간 보내는 것도 여러 차례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이경모선생도 역사적인 여순사건의 중요한 필름 원판을 긴 세월 묻어 둔 사실이 있지않은가. 1994눈빛출판사이규상대표가 먼지 쌓인 필름을 끌어내어 격동기의 현장이란 사진집을 출간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뚝섬 , 서울 , 1970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어쩌면 객관적인 기록보다 작가의 주관을 중시하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추측 컨데, 그 사진들을 찍을 당시에는 고 임응식선생이 내세운 생활주의 리얼리즘이 주도할 시기였다. 한국사진의 주류로 급부상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은 작가의 자기모순과 공모전용 걸작사진 위주의 획일화라는 부정적인 영향도 미쳤다. 그러나 이형록 선생을 필두로 한 현대사진연구회에서는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의 형식적 한계를 벗어나 조형성을 강화한 사진도 더러 나왔는데, 그런 영향을 받은 건 아닐지 모르겠다.

 

사근동 청계천 서울 . 1967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그리고 한국사진사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는 모든 게 공모전으로 평가받던 시기였다. 사진가의 주관은 둘째 문제고 오로지 눈에 튀는 사진이 우선이었다. 원근감과 안정감을 주는 사진 구도같은 것을 따지기도 했고,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한 공모전 사진의 길을 걷지 않은 원로 사진가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나? 망원렌즈를 낀 고등학생 시절 모습을 보니, 마치 이미지 사냥꾼 같은 공모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대상과 부딪혀야 하고, 잘못된 사회를 개선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허망한 이치를 아직도 버리지 못했지만...

 

뚝섬 , 서울 . 1968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대부분의 공모전은 한국사진작가협회에서 주관했는데, 세월이 반세기가 흐른 아직까지 공모전으로 장사하며 회원 늘리는 데 급급하고 있다. 이젠 사진작가라 불리는 회원이 만 명을 넘는 공룡집단이 되었지만, 제 돈 쓰며 취미생활 한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원로 사진가 중 주명덕, 강운구, 황규태 등 몇몇 사진가만 사진 협회에 가담하지 않았지, 대부분의 원로들이 '한국사진작가협회' 고문이나 자문위원을 거쳤다.

87년 '민족사진가협회'가 창립되면서 대학교수를 비롯한 프로 사진가들은 대부분 빠져나왔지만, 그 구태는 여태 바뀌지 않았다. 희대의 살인마 이동식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찍기 위해 이발사에게 독약을 먹인 사건도 그러한 공모전이 원인이었다.

 

뚝섬 ,서울 , 1974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하기야! 공모전만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남의 의견을 듣거나 고르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시간여행사진집을 출판하기 위해서도 많은 사진 원고에서 골라낸 출판사 편집자가 있었고, 출판사에서 골라낸 수많은 사진 중에 전시작으로 선택한 것도, 다 같은 맥락이 아니겠는가?

 

여수, 전남 . 1975; / 70cm x 100cm 장정 디아섹

1991년 무렵,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과 교류하며 ''을 소재로 열었던 전시 외는 개인전도 하지 않았고, 개인 사진집도 출판한 적이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눈빛출판사’에서는 시간여행’과 ‘개마서원에서는 뚝섬이라는 사진집을 각각 출판하며 대규모 전시를 마련한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서울. 1971 / 70cm x 100cm /장정 디아섹

새 아파트가 즐비한 배경으로 쓰러질 듯 자리를 지킨 청계천 판자촌, 물지게를 지고 위태롭게 물을 건너가는 어린 소녀들, 창경원에서 휴대 전축을 틀어놓고 춤추는 젊은 남녀들, 우산을 쓰고 물 구경 하는 가족의 정겨운 모습, 파월용사 묘역에서 울부짖는 여인들, 논두렁을 걷는 어린이의 기막힌 동작 포착  수많은 사연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뚝섬; 서울 . 1968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박옥수의 시간여행은 기자들이 찍는 현장 사진과 달리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여, 그 시기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60년대는 전통으로 지켜 온 우리의 문화가 서서히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시기로, 서민들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박옥수의 눈을 통해 기록된 풍속의 리얼리티가 현실감 있게 드러난 사진에는 절망 속에서 살아온 우리 삶의 흔적이 질퍽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안정적이고 단순한 앵글로 주제를 부각시킨 그의 사진은 한국사진의 전통적 형식에 다름아니다. 아마 전통적 사진을 배우고 익힌 마지막 세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선거유세장의 청중들 . 1971 / 70cm x 100cm / 장정 디아섹

박옥수의 시간여행을 보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린다.

힘들어도 그때가 그립다.

 

글 / 조문호

 

박옥수사진집 '시간여행' / 눈빛출판사 / 239X252mm양장/ 228페이지 / 가격 50,000

 

박옥수사진집 뚝섬’ / 개마서원 / 235X253mm양장 / 160페이지 / 가격 40.000

 

 

 

 

 

 

 

사진가 황규태선생의 짝사랑 PiXEL ai Pixy전이 4월 1일부터 29일까지

대안공간 ‘space22’에서 열리고 있다.

 

색의 변주에 빠져들게 하는 짝사랑픽셀 작품을 돌아보며, 선생의 끊임없는 매체 실험이나 치열한 작가정신에 존경심이 일었다. 사실 생존한 원로사진가 중 선생만큼 열심히 하는 분이 있던가? 다들 기존 작품으로 회고전이나 여는 처지에 따끈따끈한 신작을 펼쳐 보이며 새로운 시각언어를 토해내고 있으니, 분명 아직도 청춘임이 틀림없다. 더 중요한 것은 작업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선생의 자유로운 생활처럼 놀이로 즐긴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렵게 생각하고 힘들게 작업하는 것보다 더 무모한 짓은 없기 때문이다.

 

황규태선생의 작가적 역량을 모르는 분이야 없겠지만, 몇 마디 부언할까 한다. 선생은 60년대 초반, '경향신문'기자로 시작했으니, 첫 사진은 분명 보도사진인 셈이다. 그러나 신문사특파원으로 미국에 건너가며 실험에 의한 초현실주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머리를 관통하는 총알을 형상화 하는 등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확립한 것이다. 그때부터 필름을 태우거나 합성하거나, 이중 노출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활용하여 메시지에 힘을 실었다.

 

70년대 생태적, 환경적, 문명적인 것에 대한 비판 정신을 바탕으로 태어난 원 풍경 환경의 변화를 예견한 일종의 경종이었고, 통렬한 비판이었다. 기록성과 고발성에 더해 조형적 회화의 속성까지 띄고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작품 경황은 당시 리얼리즘 사진이나 살롱사진에 한정된 한국사진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입장에서는 비 사진적이란 생각도 들었으나, 마음을 당기는 흡인력은 대단했다. 지구환경과 문명의 위기를 경고하며, 종말적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요즘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런 실험정신 덕에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사진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황선생의 자유롭고 은유적인 작품들을 보면 80년도 현실과 발언에 참여하며 민중미술의 길을 걸어온 원로 화가 주재환 선생이 연상된다. 패러디의 거장답게 삶의 곳곳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재치도 닮았지만, 그 장난스러운 기발함이 유치찬란한 예술로 승화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대개의 작가들이 한 가지 방법에 빠져 작업하다 보면 생소한 옆길로 빠지기가 쉽지 않지만, 선생은 달랐다. 60여 년 동안 끊임없는 매체 실험으로 터득한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예술적 관심사가 자신의 삶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흔한 주변 삶 속에 있다는 진리를 터득한 노익장의 여유가 만들어 낸 놀이 세계이자 색으로 부르는 연가인 셈이다.

 

색으로 평화와 사랑을 노래한 '픽셀'작업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으니 20년은 족히 넘었다. '픽셀'은 이미지를 계속 확대하다 보면 이미지가 깨지거나 흐려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선생의 '픽셀'은 선명하고 현란했다. 지난 픽셀 작업이 직선과 사각으로 이뤄진 단순한 형태로 구성되었다면, 이번에 보여주는 픽셀 작업은 구불구불한 곡선과 일렁이는 듯한 파장이 느껴지는 독특한 형태로 바뀌었다.  짝사랑이란 제목처럼 유치찬란한 색의 변주 속에 숨은 사유를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색과 면의 경계를 파괴하거나 확장해 가며 인간 내면에 잠재된 욕망까지 꿈틀거리게 한다.

 

어쩌면 짝사랑이란 제목처럼, 사랑이란 말조차 계산적이거나 변질되어 갈 미래의 시대 상황을 예견하며 보내는 작가의 안타까운 연애편지인지도 모른다. 마치 체음제처럼 보는 이의 느낌이 포근해지고 뜨거운 연정이 일어나니 이 얼마나 신통한 일이더냐? 비록 짝사랑에 그칠지라도 아름다운 사랑의 꿈에 젖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살맛 나는 세상인가? 기존상식을 희롱하고, 무거운 예술에 야유를 던지는 선생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정신에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이 전시는 강남역 1번 출구에 있는 미진프라자’ 22층의 ‘SPACE22’에서 429일까지 열린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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