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사진작가



미술품이 투자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소위 말하는 블루칩 작가나 인기 작가들의 비싼 작품은 작은 집 한 채 값에 맞먹는다. 그건 ‘그림의 떡’이 아니라 ‘그림의 거품’이다.

'돈 놓고 돈 먹기’란 말처럼, 비싼 작품을 사야 이득을 많이 남긴다는 말은 화랑가의 오랜 상설이나, 더 많이 남기려는 화랑 측의 음모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돈 많은 대기업들이 합세해 판을 부풀린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젠 다수의 대중들이 나서 그 가치 기준의 틀을 깨 부숴야 한다.

예술이란 유명작가나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좋은 작품이 무조건 비싼 것도 아니고, 싸다고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배부른 작가보다 배고픈 작가의 작품이 훨씬 치열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이란 작가의 유명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장하려는 개개인의 가치기준에 있다. 자신의 생각은 내 팽개친 채, 작가 이름이나 신경 쓰는 정신 나간 짓은 더 이상 하지말자.

제일 큰 문제는 작품을 작품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보는 현실에 있다.그래서 미술품 경매에 작품도 내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는가하면, 미술품이 좋아도 구입할 엄두를 못내는 보통사람이 2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몇 십 만원에 팔더라도 작업에 힘이 되고, 몇 십 만원 들여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이들이 우리 미술을 살찌울 수 있는 힘이다. 작가들도 작품 값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잘못된 생각은 버려야 한다. 팔지 못한 작품을 잔뜩 쌓아놓고, 돈이 없어 쩔쩔매는 작가들이 부지기수다.

그리고 작품가격 형성도 객관적인 판단아래 더 맑아져야 한다. 사진계의 일례지만, 6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사진60년 전’의 일이다.

한국의 대표적 사진작가 106명이 작품을 내놓았는데, 그 작품 값이 천태만상이었다.같은 가격으로 제일 많이 나온 게 30여명이 내놓은 300만원이었지만, 간 큰 어떤 친구는 1억을 부르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몇 년 전 돌아가신 최민식선생은 단돈 50만원에 내놓았다는 점이다. 한 평생 인간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고, 인간을 위해 사진을 찍었던 최민식선생 다웠다.

미술관에서 보험가 산정을 위해 가격을 물었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때보다야 나아졌겠지만, 이게 사진판의 작품가격 실태다. 한 컷의 사진으로 몇 장 프린트하느냐, 크기는 얼마냐 에 따라 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룰은 정해져야 할 것 같다.

요즘 “한 가정 한 작품” 바람도 불고 있고, 작품 대중화를 위한 기획전들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이에 맞추어 작가들도 거품 뺀 투명한 가격을 제시해 미술시장 대중화에 나서야 한다.

작품가격의 거품을 거둬내는 것이야말로 미술시장 대중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필자 : 조문호 (사진작가)

 

인사동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정겨운 정서를 오롯이 담은 곳이었다.

오래된 골동가게와 표구점들, 고풍스런 분위기의 음식점과 찻집들이 골고루 뒤섞여 인사동만의 풍류가 넘실댔다.

미로 같이 얽힌 인사동 골목골목에는 지난 시절의 낭만과 향수를 한 자락씩 깔고 앉은 예술가들이 밤새워 술잔을 치켜들며 사람냄새를 나누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사동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우리만의 정겨운 풍정은 사라지고, 싸구려 기념품이나 파는 관광지로 변한지 오래다.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조차 줄어들고. 인사동의 정체성을 빛낸 가게들도 하나 둘 밀려났다.

그 자리에 짝퉁 관광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선 것이다. 그렇다고 시류를 거슬러 옛날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인사동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우리문화의 품격을 잃지 않는 수준에서 변화를 추구했으면 한다.

인사동에 수많은 갤러리들이 밀집해 있지만, 그 많은 전시장들이 텅텅 비어있다.

하루 10만 명이나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전시장으로 이끌 방법은 없는가?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의 큐레이트와 연계해, 전시장마다의 작업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주 단위의 전시 안내서 제작도 절실하다. 전시에 관심 많은 사람들조차 정보 부재로 방황할 때가 많다.

그리고 전시 작가들의 리프렛을 한 곳에 모아 볼 수 있는 진열대를 만드는 등

관광객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야한다.

그래서 무명화가의 그림까지 너그러이 품을 수 있는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메카로 만들자.

그리고 인사동과 북촌지역을 연계하는 국제적인 아트페어를 해마다 개최하여 인지도를 높이자.

그래야 해외의 유명작가들이 인사동으로 작품을 싸들고 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관공서와 작가 시민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예술과 친숙하지 못했던 구세대들은 전시문화에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미술관에 자주 들릴 필요가 있다.

 

전시 작가들도 관객을 위한 배려가 태부족이다.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기본이고,

관광객들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옛날 영화관 광대처럼 등짐 북을 메고 돌며 전시를 알리는 퍼포먼서는 안될까?

그리고 인사동 문화를 통괄하는 지자체 부서도, 전문지식이 없는 행정 공무원으로는 안 된다.

문화기획자를 영입하여 각계 문화 인사들과의 연결망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오래전 종로구청에 제안한 적도 있으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작은 이득에 눈이 어두워 큰 것을 놓치는 상인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말 빨 없는 예술가들의 넋두리만 인사동 술집으로 흘러 다닐 뿐이다.

이제 전통과 현대예술이 어우러진 인사동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대 문예부흥을 일으켜 보자.


*사진작가 조문호 선생은 30여 년 동안 사회 환경을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동아미술제’와 ‘아시안게임기록공모전’에서 각각 대상 수상. ‘전농동 588번지’, ‘87민주항쟁’, ‘동강백성들’, ‘두메산골 사람들’, ‘인사동 사람들’,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 등 열 여섯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저서로는 <동강 백성들> 포토 에세이집,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집,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사진집, <전농동 588> 사진집 등을 출판했다.

조문호 선생은 한때 문학도를 지망했던 사진작가로 그의 글은 직설적이고 해학적이며, 예리하게 문제를 파헤치는 뷰파인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격한 언어들도 있겠지만 애써 정제하지 않겠습니다. 불합리와 비정상 투성이의 답답한 현실에서 독자 여러분들께서 대리 만족을 느끼시실 바라는 뜻에서 입니다. 조 선생은 어느 날은 사진현장에서 또 다른 날은 인사동 선술집 귀퉁이에서 선생의 성격처럼 때로는 껄껄 웃음을 담기도 하고, 결 고운 감수성에 어느 날 눈물 뚝뚝 흘리면서 글을 보내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두 문화예술계에 몸 담고 살아가는 예술인들의 삶의 희노애락이 곰삭아 올라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연재의 첫 시작은 조 선생이 운영하는 블로그 ‘조문호의 사진아카이브 인사동사람들’에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유는 최근 사진계에 이슈가 되고 있는 <최민식사진상>과 <동강사진제> 문제를 짧지만 정곡을 깊이 찌르는 글이기에 두루 공유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입니다. 앞으로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지면을 통해 만날 <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제대로 보기>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편집의 글)

 

 





 [서울문화투데이]


▲ 조문호 사진작가



내가 이광수선생을 좋아하는 건 단지 588사진집의 발문을 써주어서만이 아니라 불의를 두고 보지 못하는 피 끓는 그의 정의감 때문이다.


이광수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올 들어 전시장에서 몇 차례 만나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마침 지난 동강국제사진제에서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의 강직한 의지와 소탈한 인간적 면모에 매료된 것이다.


무슨 일이던 개혁을 하려면 혁명가기질의 총대를 멜 사람이 필요하다.


바른말을 쏟아내는 이규상선생의 투사정신도 이광수선생 못지않지만 '눈빛출판사'를 운영하며 긴 세월 얽혀 온 사진판의 인맥들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느지막이 사진평론가로 등장한 이광수선생은 그 부분에서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두 분 모두 일신상의 손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왕따에다 직업 또는 사업상의 불이익을 당 할 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약자들을 위해 강자들과 싸울 전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 사진판 개혁을 운운하는 네가 직접 나서 칼을 휘두르라 할지 모르지만, 난 그렇게 나설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긴 세월 이어져 온 공모비리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여러 사진단체 일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문제점들은 하나하나 끄집어 낼 수는 있을 것 같다.


지난 14회 동강국제사진제 워크샵의 첫 회 발제자인 진동선선생께서 최민식사진상 문제를 언급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용인즉 몇몇 사람의 문제 제기에 대부분의 사진인들이 입을 다물었고, 특히 2-30대의 젊은 사진인들이 나서지 않아 힘을 얻지 못했다는 말에 공감했다.


왜 사진인들이 남의 일처럼 등짐만 지고 지켜보고 있을까? 귀찮아서, 아니면 찍힐까봐..
그리고 동강사진제에 다녀 와 올린 모씨의 글도 이해는 되었다.
기득권에 줄 대려 살살거리는 꼬락서니에 염증을 느껴 이후로 아예 신경을 끊겠다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10여 년 전 똑 같은 생각을 하며 내 일만 하고 지냈으나, 뿌리만 더 깊어졌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이기에 끝까지 물고 널어져야 하는 것이다.
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 피한다는 말도 있지만, 더러워도 밟아 짓이겨버려야 한다.


이 명경알 같이 밝은 세상에 아직까지 개 같은 일들이 계속된다는데 분통이 터진다. 힘들어도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는 많은 다큐사진가들의 좌절감을 생각하니 속이 뒤집힌다.
최민식사진상에서 터져 나온 논란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사진판의 병폐 중 조그만 불씨에 불과하다.

이제 시작된 기득권과의 전쟁에서 기어이 이겨내야한다.



*사진작가 조문호 선생은 30여 년 동안 사회 환경을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동아미술제’와 ‘아시안게임기록공모전’에서 각각 대상 수상. ‘전농동 588번지’, ‘87민주항쟁’, ‘동강백성들’, ‘두메산골 사람들’, ‘인사동 사람들’, ‘장날 그 쓸쓸한 변두리 풍경’ 등 열 여섯 번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저서로는 <동강 백성들> 포토 에세이집, <두메산골 사람들> 사진집,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사진집, <전농동 588> 사진집 등을 출판했다.


조문호 선생은 한때 문학도를 지망했던 사진작가로 그의 글은 직설적이고 해학적이며, 예리하게 문제를 파헤치는 뷰파인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격한 언어들도 있겠지만 애써 정제하지 않겠습니다. 불합리와 비정상 투성이의 답답한 현실에서 독자 여러분들께서 대리 만족을 느끼시실 바라는 뜻에서 입니다. 조 선생은 어느 날은 사진현장에서 또 다른 날은 인사동 선술집 귀퉁이에서 선생의 성격처럼 때로는 껄껄 웃음을 담기도 하고, 결 고운 감수성에 어느 날 눈물 뚝뚝 흘리면서 글을 보내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모두 문화예술계에 몸 담고 살아가는 예술인들의 삶의 희노애락이 곰삭아 올라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연재의 첫 시작은 조 선생이 운영하는 블로그  ‘조문호의 사진아카이브 인사동이야기’에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유는 최근 사진계에 이슈가 되고 있는 <최민식사진상>과 <동강사진제> 문제를 짧지만 정곡을 깊이 찌르는 글이기에 두루 공유하고 공감하기 위해서 입니다. 앞으로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지면을 통해 만날 <조문호의 빼딱한 세상, 제대로 보기>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편집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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