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쪽방촌은 추위보다 화재가 무섭다.

추위를 막는 대부분 물품이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 소재인데다,

주방이 없어 방 안에서 부탄가스로 밥을 한다.

전선도 대부분 노후화되어 아슬아슬한데다, 끼고 사는 전기장판도 너무 오래되어 위험하다.

 

방과 방 사이 사람 한 명이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다닥다닥 붙은

쪽방 구조 자체가 불에 취약한데다 화재가 나도 소방차가 진입하기도 어렵다.

동자동 쪽방촌은 해마다 화재로 골머리를 앓는데, 사흘 전에도 불이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으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

동자동 재개발을 계속 미루는 것이, 화재로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건가?

 

나 역시 정선 살 때 옆집에서 옮겨 붙은 불로 모든 걸 태웠지만, 아산으로 옮기고 나서도 불을 끼고 산다.

장작 타 들어 가는 불길이 좋아 하염없이 지켜보는 것이 낙이라면 낙인데,

활활 타오르다 한 줌의 재로 사는지는 것을 보면 마치 인생을 보는 듯 하다,

집에 손님만 오면 불을 피워 고기나 고구마를 구워 먹는데, 문제는 태울 나무가 넉넉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 목요일도 서둘러 아산으로 내려가 필요한 생필품을 사려고 '하나로마트'부터 들렸는데,

완주의 김종신씨가 백암길 전시장에 와 있다는 연락을 했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부안의 김영숙씨와 같이 와 있었다.

 

땔감이 부족해 걱정했는데, 캠핑 카에 있던 참나무부터 꺼내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무가 적게 들어가는 화덕을 사용해 한숨 돌렸다.

아담한 불길에 삼겹살과 고구마를 구워 술판을 벌였으나, 나는 안주만 축낼 팔자가 되고 말았다.

20여일 전부터 금주를 시작했으나 전시 중 딱 한 차례 유혹에 못 이겨 술을 마셨는데,

술이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음담패설을 즐기던 예전 버릇이 도졌다.

그 이후로 술을 마시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다짐했으니, 그들의 건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술 고문이나 다름 없으나, 기어이 떨쳐 낼것을 다짐하며 죄 없는 담배만 피워댔다.

유일하게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던 술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애인을 잃은 듯 허전한데,

블루투스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악장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반가운 벗들과 옛 이야기 나누는 정겨움에 위안받고,

타오르는 불길에 음악 날리는 행복감에 젖었다.

하늘에 걸린 초승달 또한 얼마나 매혹적인지, 예쁜 여인네 눈웃음을 닮았다.

김영숙씨는 김종신씨 술 덜 먹이기 위해 마시다 보니 주량이 늘었다며, 연이어 술 잔을 부딪혔다.

홀 애비와 과부가 서로 사랑하며 의지하지만, 자식들 눈치 보여 결혼 못한다니, 답답한 분들이다.

자식들이 평생 같이 살아줄 것 같은가?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버스가 멈추며 김재돌씨가 내렸다.

유달리 사진을 좋아하는 분이라 반겼는데, 운전하는 애주가에게 술을 권할 수 없어 난감했다.

꼬불쳐 둔 대마불사주를 한 잔만 따라 주었는데, 단숨에 들이킨 후,

고기 던져 주기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들고양이처럼 애절한 눈길을 보냈다.

건달로 살아오다 우연히 마을버스 기사 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지난 이야기를 하염없이 풀어 대는 바람에 분위기를 깨버렸다.

 

술자리가 파한 후 김종신씨 내외는 캠핑 카에 자러 갔으나,

잠이 오지 않아 첫닭이 울 때까지 뒤척이다 늦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 보니 해가 중천에 걸렸고, 김종신씨도 그때 사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선우가 끓여 놓은 시락국으로 속 달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요즘은 텃밭의 채소가 다 자라 나무하는 것이 유일한 일이다.

주변에서 주워 사용하던 나무가 바닥나, 당장 급한 일은 땔감 장만하는 일이었다.

 

현충사 둘레길로 이어진 산길로 차를 끌고 가 넘어진 소나무 가지를

조그만 톱으로 잘라 오기란 만만찮았다.

 

그렇지만, 모닥불에 둘러앉아 보내는 행복한 시간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차례나 오르내리며 정신 없이 실어 나른 후, 일을 끝 내려는데 톱이 보이지 않았다,

다닌 곳을 삼십 분 가량 찾아 헤매다, 포기하고 차로 돌아와 보니 짐칸 나무에 걸려 있지 않겠는가?

어이 없지만, 이런 치매 현상이 어제오늘 만의 일도 아니다.

 

실어 온 나무도 제법 많은 것 같았으나,

잘라 정리해보니 두세 차례 땔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보리 슝년에 이게 어딘가?

 

마당을 청소하며 돌아보니 오래전 김창복씨가 옮겨 심은 국화가 이제 사 봉우리를 맺기 시작했다.

 

서리 올 때 핀다는 말은 들었으나,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모든 꽃이 시드는 늦가을의 아쉬움을 이 국화가 달래 주었다.

마치, 너도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듯...

 

사진, 글 / 조문호

 

다시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보여주기식 전시나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며칠 전에는 온 식구가 동원되어 전시 준비 작업에 나섰다.

선우만 가게 일 하느라 동참하지 못했지, 다들 솥을 걸거나 칠을 하는 등 정신없이 바빴다.

김창복씨는 목공 일을, 기웅서씨는 용접일을, 이현이는 조경 일로 다들 고생했다.

용접할 자제가 부족해 마무리는 못했지만, 대략의 가닥은 잡혔다.

 

거지 처지에 남의 돈 까먹는 이 힘든 일을 왜 하는지, 하면서도 고개를 흔들어 댔다.

발단은 김선우가 만들어 준 아산 백암길 사람사진관의 개관식을 겸한 전시도

한번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선 집 화재 때 도움 주신 많은 분에게 드리는

보고 형식의 자리도 필요했다.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마침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신청해 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24 예술활동준비지원사업

선정되어 진행하였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원금 삼백만원으로 준비하기도 부족하지만,

동자동에서 아산 백암길을 드나들며 준비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보다 무슨 사진으로 무슨 말을 할지가 관건이었다.

전시 기획안부터 마련되어 추진하는 것이 순서겠으나.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그래서 삼십 년 전에 찍었으나 제대로 발표하지 못한 신체발언사진을 꺼내

사회적 문제로 꼽히는 미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는데,

시골인 것도 걸리지만, 사진관을 만들어 준 선우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긴 세월 작업해 온 전체 사진에서 주요 사진만 추려내어 그때 말을 되새기는

말한다사진 설치전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지 신체발언사진은 내 사진 한 점만 숲속에 내걸어 당사자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진안 계남정미소에서 열린 정영신의 진안 그 다정한 풍경

작가와의 대화에 따라갔는데, 그날 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오래된 사우 김종신씨를 만나 완주 자택에서 자기로 하고 술을 마셨는데,

술만 마시면 발동하는 성적 발언이나 장난 끼가 도진 것이다.

그것도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딸 같은 선우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 당시는 심각한 상황도 인식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는데,

뒤늦게 선우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을 받아 보며 화들짝 놀란 것이다.

선우에게 사죄하고, 앞으로 술을 완전히 끊기로 하고 덮었으나,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난, 성 개방주의자로 성 문제를 경직시키는 현실에 늘 불만을 가진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좌중을 웃기려고 가끔 성 문제를 거론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오래된 술버릇이라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평상시에는 샌님처럼 말도 잘 하지 않다가

술만 한 잔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바뀌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술 취해 돼지 목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성을 안주 삼아 별 지랄을 다 한다.

다행히 돈도 권력도 명예도 없어 살아남았지,

아니었다면 벌써 미투에 걸려 매장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크게 깨달은, 뒤늦은 반성으로 평생 즐겨온 술마저 끊었지만,

미력하지만 그 문제를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사회적 문제가 된 미투가 성 의식을 바로잡아 성차별을 없애는 데는 이바지했으나,

정치적이거나 개인적 목적에 의해 생사람 잡는 경우도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아름다운 성 문제를 경직시켜 남녀 간의 큰 벽을 만들었다.

사람답게 살자는 바람직한 운동이 남녀 간의 애정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일단 이번 전시에 내 걸기로 한 사내 알몸 사진은 걸지 않기로 했지만,

언젠가 다시 보충 사진을 찍어 제대로 된 전시와 심포지움을 열어,

페미니즘 문제의 가해자로 낱낱이 고백하는 단두대에 서겠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

경직된 남녀 문제에 봄바람을 일으키고 싶다.

 

건강이 그때까지 지탱해 줄지 모르겠으나 돌팔매는 나중에 맞기로 하고,

이번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전시를 치루게 되었다.

 

평생 작업해 온 사진에서 추려 내 자연 속에 설치하는 전시인데,

전시장에 갇힌 사진에서 야외로 끌어내는 전시다.

동자동 빨래 줄 사진전에서 인사동 담벼락 전시에 이은 야외 전 행보다.

 

청량리에서 몸 팔던 소녀의 이야기에서부터 독재에 저항한 시민이나

살기 어려운 산골 농민이나 장터 사람들의 하소연,

거리에 내몰린 노숙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의 인간애를 소환하는 전시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김세진 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있고,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렸다오팔팔김정숙씨의 하소연,

춥고 배 고프다는 노숙인 이덕영씨의 절규도 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증평장의 정숙현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세상에 믿을 건 두 손 뿐이다

정선의 최종대씨 등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술은 오기, 무기, 놀기다는 화가 박건씨의 사진이나

막사발로 세계를 제패하고 싶다는 도예가 김용문씨 등

인사동 사람들의 투지가 포함된 30여 점의 사람사진이 자연 속에 설치된다.

 

사람 사는 정이 메말라가는 이 에이아이유령 세상에,

힘든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지나치는 걸음에 들려 차 한잔 드시며 사람 사는 정이나 나누자.

 

가을이 무르익는 24일부터 31일까지 백암길 사람사진관에 술상 차린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본 블로그는 지난 2023년 11월 27일  '네오록'에 소개된 김남진전시 리뷰를 올렸다가

티스토리로 부터 청소년 유해 정보라는 사유로 '영구 로그인 제한'이라는 극단적인 규제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지속적인 이의제기와 항의로 약11개월만에 규제가 해제되어 재개하게 된 점을 알려드립니다.

그 동안 불편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리며,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운영자 조문호 올림

 

추석을 맞아 미국계신 매형이 귀국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귀국모임에는 사정에 의해 만날 수 없었지만,

지난 6일 어머니를 모신 일산 추모공원 하늘문에서 만난 것이다.

 

누님 조미희는 암에 걸려 8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누님 생전에, 미국으로 이민가기 위해 모든 가산을 정리한 적도 있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근무하던 매형께서 직장까지 그만두고 준비를 했으나,

출국장에서 제동이 걸려 이민을 포기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이민 길에 올라 외로운 이국생활에 적응해 갔으나,

느닷없는 병마를 만나 오랜 세월 키워 온 행복의 꿈이 풍비박산 난 것이다.

혼자 미국에 남게 된 매형은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직장에 나갔으나, 팔순을 맞은 올해부터 일손을 놓았단다.

 

누님께서 세상을 떠날 때와 3년 전 귀국 때 뵙고 처음인데, 건강은 여전하셨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도, 내가 더 늙어보였다.

매형과 일산 사는 동생 조창호를 추모공원에서 만나

납골당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며, 오랜만의 해후를 풀었다.

 

  인근에 있는 식당 강강수월래로 옮겨 회덮밥에 소주 한잔 했다.

5년 후에 살아 있다면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받았으나, 아무래도 마지막인사가 될 것 같았다.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사진, / 조문호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데, 지난 번 귀국 때 찍은 사진같다.

눈멂, Blinding Scenery

한상진/ HANSANGJIN / 韓相振 / mixed media

2023_1006 2023_1101 / 월요일 휴관

한상진 _ 검은 산 _ 종이에 수묵드로잉 _ 양구에서 _42×29.7cm_2023

 

초대일시 / 2023_1007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두나무아트큐브

DOONAMOO ARTCUBE

경기도 안양시 예술공원로 131번길 49

@doonamoo_artcube/

www.youtube.com/@Doonamoo_Artcube

 

두나무아트큐브에서는 한상진 작가의 눈멂, Blinding Scenery을 기획하였다. 그의 작업은 드로잉과 회화(painting) 그리고 버려진 사물을 채집하여 숨결을 불어 넣는 오브제(objet)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작가의 작업은 주로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낯선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과 사람들, 그 속에 담긴 삶의 모습들, 친근하면서도 낯선 언어들과의 만남, 접촉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의 되돌아 봄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그곳에는 이름 없는 풍경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 돌아올 수 없는 시간, 보잘것없는 사물들, 변화하며 사라져가는 자연의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양의 전통적 사유가 자연을 인위적인 환경으로 조성하는 것임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사유에 있어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작가가 그려가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현대적인 회화작업 속에는 이러한 전통적 사유와 함께 우리가 성찰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스며들어 있다.

 

한상진_적벽_종이에 수묵드로잉_금산에서_42×29.7cm_2023
한상진_바람처럼_종이에 수묵드로잉_정독도서관에서_42×29.7cm_2023
한상진_묵상 Meditation_종이에 수묵드로잉_신도림 마로니에_42×29.7cm_2023
한상진_피어나다_종이에 수묵드로잉_반려식물, 옥상드로잉_42×29.7cm_2023

길 위에서, 멈춰서서, 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순간을 작가는 '눈멂'이라고 말한다. 눈멂이란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중지'의 순간이 아닌가... 중지의 순간-이끌림, 의식과 의미가, 이성의 구조적 판단이 멈추는 응시의 순간, 수행자의 묵상처럼 찰나가 전해주는 울림을 그는 마음의 숨결, 몸의 감각을 통해 화면으로 전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2023년 전후, 풍경과 사물을 응시해온 수묵드로잉을 포함하여 페인팅 작업 그리고 채집된 오브제로 재구성된 가변설치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상진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2005년 전후 문명의 침실연작, 2008년 전후 FLASH GARDEN연작, 2011년 전후 응시와 명상연작, 2014년 전후 소요逍遙-흐르는 풍경, 무경계, NO BOUNDARY, 미명微明연작 등, 실험적인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20여 회의 개인전과 100여 회의 기획전 및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두나무아트큐브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20030905_양양-태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3×100.3cm_2023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20030906_양양-태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3×100.3cm_2023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20030907_양양-태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3×100.3cm_2023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20030908_양양-태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3×100.3cm_2023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20030909_양양-태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3×100.3cm_2023

눈멂-Blinding Scenery 나는 이름 없는 풍경들이나 버려지고 오래되어 허름한 사물들에 이끌린다. 의미화되거나, 화석화되거나, 기호화된 것들과는 거리가 먼,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응시의 순간이 작동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보여지는 것 이상의 바라봄이며 시선이 시선 속에 그 이상의 나머지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알 수 없는 삶의 계기들은 거부할 수도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친밀하고도 낯선 모호함을 숨기고 있다. 문화적으로 가공된 이미지들은 공시적 의미(connotation)로 기능하며 독자의 체계와 공명하겠지만, 이미지가 그 너머의 타자성을 품을 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밝은 방에서 제기한 개념 푼크툼(punctum, 푼크툼은 라틴어로 '찌름'이라는 의미로, 이미지를 봤을 때 다가오는 충격과 여운의 감정을 말한다)처럼 숨겨진 틈으로 이어지는 강렬한 분열이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지는 때로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분열의 시간은 일상 속에서 접하는 시간의 나눔과 선형적인 구분 사이에 있다. 동일성을 배제한 타자들의 목소리는 어두운 심연에 몸을 움츠리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침묵이 또 다른 소리의 형상이며 침묵 또한 온전하게 의미로 정립되는 것을 방해한다. 동행하던 내 안의 내가 길 건너 저편에서 손짓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유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도플갱어(doppelganger), 겹침(overlapping)은 그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온전치 못한 불가능한 의미의 세계로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풍경 속에서 풍경이 되어가는 순간들은 길 떠남으로부터 시작된다. 흐린 날의 기행, 목적 없이 떠나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은 변증법적으로 충족시켜가는 과정이 아니며, 다시는 고유성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실패하는 여행이다. 죽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미 죽은 것들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나의 또 다른 모습들이다. 벗어남, 회의, 전락, 공포의 감정, 무의식... 존재는 언어적인 의미로 해석이 안 된다.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유한성의 무한한 지속을 존재의 참을성(patience)이라고 한다. 의미는 급하고 참을성이 없다. 어떤 것에 속하려고 하는 강박은 의미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벌거벗은 존재로서의 연기는 나에게 종결되지 않는 물음을 제기한다. 존재는 의미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풍경 속에 몸을 담고 있다. 중지의 순간에도 흐르는 풍경은 고유한 자리가 없다. 죽음은 죽임으로 종결되지 않는 욕망이다. 흔적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죽음은 시간적인 차연으로 존재함으로 풍경이 풍경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벌거벗은 풍경으로서, 재현 불가능한 풍경으로서만 이야기될 수 있다.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1001_양구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6×194cm_2023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1002_양양-태풍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6×194cm_2023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1003_양구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6×194cm_2023
한상진_산수무진 山水無盡 -20230904_금산, 석천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2.8cm_2023
한상진_산수무진 山水無盡 -20230905_금산, 석천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72.8cm_2023
한상진_무경계. No BOUNDARY-사성암四聖庵_구례-지리산 가는길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
한상진_길 위에서, 20221008 경북-문경에서

기억할 수 없는 타자,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살아 숨 쉬는 죽음의 순간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사진가 육명심(陸明心) 선생은 "나는 농경사회의 마지막 세대이다. 지난날 원시인들이 바위에 암각화를 남겼듯이, 그런 심정으로 우리 시대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사진집 백민(白民)에 수록된 윤세영 선생의 글을 참조하자면 1970년대 말 시작된 백민(白民)연작은 낮은 곳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지탱하고 있었던 기층민, 삼베나 모시옷을 입은 옛 삶의 원형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영적이고, 신비로운, 무속적이고, 토템적인 분위기는 사진들에서 보여주는 강렬한 정면성에 나타나 있고 바라봄과 보여짐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 서로를 마주하면서 발생하는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것으로 본다. 관계의 형성은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는 교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육명심 선생의 작품집 백민은 시대의 풍경을 호명하는 것이고 오늘날 기층민이란 의미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해준다. 나에게 존재란 그리고 그림이란 이름 없는 것들 속에서, 그 관계 속에서 삶-죽음을 호명하는 것이다. 나는 197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의 시대적인 상황을 묵시해 왔다. 정치적인 형세,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을 경험하였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적 풍경 속에서 자본의 흐름이 존재를 지배하는 방식은 우리의 삶을 서구의 그것보다도 더 비자연적으로 획일화시키고, 물질화된 환경 속으로 소외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생산과 소비 속에서 남겨진 잉여, 의미로부터 버려진 사물과 풍경들은 일렁이는 시선의 동일성 속에서 나를 애착(affection)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땅 위에 떨어진 열매, 투박하게 마모된 조약돌, 빛바랜 플라스틱이나 유리 파편들, 녹슨 쇠붙이, 바닷가에 떠내려온 부유목, 수변 풍경, 적벽... 풍상이 담긴 나무들, 나타나고 사라지는 하늘의 구름, 하늘과 땅의 경계가 그려내는 모호한 풍경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원초적이고, 거칠고, 아름답고, 숭고하고 강렬히 눈을 멀게 하고, 삶 속에서 헐벗은 파편으로 흐르며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텅 빔을 나로 하여금 반복-공유하게 한다. 위와 같은 여정 속에서 작품으로 등장하는, 오브제(objet), 최소한의 재료나 물질의 옷을 입은 형과 상의 속삭임들, 미완의 흔적들은 손에 잡을 수 없는 형상들이 되고 만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무경계(no boundary)란 완결되지 않은, 종결될 수 없는 이미지를 사로잡으려는 욕망으로부터 나를 내려놓는 것이다. 천천히, 목적 없이 걷는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과 사물들, 그러나 이러한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온다. 실패의 반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길을 나서며 풍경을 소요(逍遙)하는 것은 아무런 구분도 가능하지 않은 어둠, 바깥으로 열리는 텅 빔을 환대하려는 태도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한상진

 

추석을 이틀 앞두고 용인 천주교 성당묘지에 계신 김덕순 여사를 뵈러 갔다.

명절과 기일만 되면 정동지 따라 소풍 가듯 들리던 용인 성당묘지도

이젠 몸이 편치 않아 정동지의 조카 심지윤씨 차에 편승해 갔다.

그러나 운전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남의 차에 실려 가는 것은 더 힘들었다.

운전할 때는 운전만 신경을 써서 졸리는 것은 물론 아픈 것도 잊을 수 있지만,

뒷자리에 앉아가니 잠만 쏟아졌다. 졸다 깨기를 반복하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묘원에는 아직 성묘객이 많지 않아 한적했다.

운해가 자욱한 주변 풍경 속에 소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띄었다.

한때 장모였던 김덕순 여사는 낙락장송처럼 지조가 곧고 너그러운 인품을 갖고 계셨기에,

마치 고인이 지켜 서서 자식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묘원에는 정영신씨의 어머니 김덕순씨와 언니며 심지윤씨 어머니인 정정숙씨 유골함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챙겨간 국화를 영전에 놓고 모두의 안녕을 빌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날 24일 정오 무렵, 그랜드 하얏트 호텔 (2층 낙산홀)에서

박정숙씨 아들 최용석 군과 조정호, 김순화씨 딸 조은겸 양이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스러운 막내 조카 은겸이가 추석을 앞두고 시집을 간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너무 좋아 춤을 너울너울 추셨을 거다.

막내 손녀로 태어 나 어머니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많이 받아 그런지, 수많은 조카 중에 은겸이 처럼 인정 많고 착한 조카는 없다.

멀고도 먼 정선 만지산 할머니 묘소에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꽃을 사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 전시회는 어떻게 알았는지 매번 찾아온다.

 

지난달 인사동에서 열린 정영신의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 길전시에는

결혼할 최용석 군을 비롯하여 시어머니가 될 박정숙 여사도 모시고 왔었다.

결혼하기도 전에, 시어머니 될 분께서는 인정이 많다며 은겸이 칭찬을 한다.

 

지난 24일은 은겸이 시집가는 날이라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식장인 하얏트 호텔은 동자동에서 멀지 않지만,

정동지를 대동하려면 녹번동부터 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시간은 맞추었으나, 호텔이라 낯설기 그지없었다.

어떤 연유로 호텔 식장을 잡았는지 모르지만 지나친 낭비였다.

돈 한 푼 내지 않으면서 탓할 처지는 아니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식장에 들어가니, 반가운 이산가족이 다 모여 있었다.

결혼식 치루는 형님 댁 조카 조웅래, 조향, 조지향 가족을 비롯하여

돌아가신 형님 딸 조봉숙도 와 있었다.

 

조영희 누님의 조카 박형준, 박홍전, 박유전 가족을 비롯하여

남동생 조창호의 딸 조아라와 여동생 조진옥과 김종성의 딸 김소원,

아들 조햇님을 비롯하여 귀여운 손녀 하랑이까지 와 있었다.

집안 대사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가족 총 동원령이 발동한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신랑 신부가 입장하여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는데,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은겸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결혼식 주례도 따로 없이, 신부 아버지인 형님이 대신하여 서로 위해주며 잘 살라는 덕담을 했다.

축가에 이어 신랑 누님의 피아노 연주도 이어졌다.

 

예식이 끝난 후 기념사진을 찍는 중에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먹기 바쁘게 다른 음식이 나왔다. 부담스럽지만 맛은 있었다.

결혼식장을 장식한 수많은 생화도 하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싸 주었다.

 

마침 고향의 형님 친구 네 분이 찾아와 반겼는데, 누가 누구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릴 때 본 형님들이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어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 손에 꽃을 든 할아버지 기념사진만 찍었다.

형님들께 죄송하지만, 내가 더 늙은 것 같다.

세월이 참 무정 타.

 

그런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접수대에 타고 온 차량번호를 적었는데, 치매 끼가 있어 번호를 잘 못 적은 것 같다.

주차장 출구 차단막이 올라가지 않고, 주차비가 45천원이나 나왔다.

차를 되돌리고 싶지만, 대기한 차들 때문에 돌릴 수도 없었다.

반세기 동안 운전한 중에 최고로 많이 낸 주차비가 아닌가 생각된다.

더구나 없는 사람에게 보탠 것이 아니라 가진 놈 아가리에 털어 넣은 게 더 분했다.

“늙으면 죽어야지”를 곱씹는다.

 

최서방, 그리고 은겸아!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중요하단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

 

사진, / 조문호

 

 

 

 

지난 31일은 돌아가신 어머니 기일이었다.

20여 년 동안 정선 만지산에 어머니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냈는데,

묘지 벌초하는 모습을 지켜본 조카의 만류도 만류지만,

거리가 멀어 자주 올 수 없다는 가족들의 원망에 손을 들고 말았다.

 

어머니 유골을 일산 '하늘문 납골당에 모신 후, 제사마저 인천 형님 댁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인천 형님 댁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한쪽에서 예배를 보았으나

그 다음부터 아예 제사상을 차리지 않고 예배만 보아 발길을 끊은 것이다.

밥 한 그릇만 떠 놓아도 혼자 제사 지내는 게 속 편했다.

 

, 무신론자로 제사마저 부질없는 줄 알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제사로 어머니를 기리고 싶은 것이다.

결국 융통성 없는 기독교 교리가 가족 간의 마음을 상하게 한 촉매 역할을 한 셈이다.

 

이번 기일에는 어머니를 모셔 둔 하늘문납골당에서 가족들이 모이기로 했다.

누님 조영희를 비롯하여 형님 조정호, 동생 조창호, 조진옥, 매제 김종성,

그리고 정영신 동지를 비롯한 조카 박홍전, 조아라, 조은겸 등 10명이

 한자리에 모여 어머니를 기리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다들 사는 게 그렇게 바쁜지 집안에 길흉사가 없으면 일 년에 한 번도 만나기 어렵다.

모두 수도권에 살면서도 어찌 남보다 못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모처럼 집안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형수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마저 퇴원을 앞두고 한 것이다.

그리고 막네 조카 은겸이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도 주었다.

은겸이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끔찍이도 끼고 돌아, 누구보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실 것 같았다.

 

또 하나 놀라운 소식은 막내 여동생 진옥이가 화가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우연히 매제 김종성씨가 집사람이 상을 받았다며, 휴대폰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수상작보다 자신의 색깔이 뚜렷한 일련의 그림 이미지에 더 놀란 것이다.

남편 뒷바라지나 하며 자식을 키운 아낙으로 살아 온 줄 알았는데,

긴 세월동안 동생이 뭘 했는지도 모르고 살았으니, 귀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기야! 나 역시 여태 사진집을 출판하거나 여러 차례 전시를 열었지만,

한 번도 식구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를 내 세우기 싫어하는 집안 내력인 것 같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잠깐 문 닫았던 진주청국장 그만 두겠다는 조카 홍전의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진주에서 여의도로, 여의도에서 서초동으로 옮겨가며 돈을 많이 벌었으나, 미련 없이 손을 털기로 했단다. 

누님은 자신이 만들어 온 독특한 경상도 음식 맛이 사라질까 아쉬워하지만,

조카 홍전의 쉽지 않은 결단에 존경심이 일었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편히 쉬게 하려는 효도에서 비롯되었지만,

벌면 벌수록 강해지는 돈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무섭기 때문이다.

 

모처럼 이산가족이 한자리에 만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는데.

도대체 누굴 위해 사는지, 산다는 게 뭔 지 모르겠다.

고향도 가족도 잊은 채, 어찌 이리 비정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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