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유산 '영산줄다리기' 명예보유자인 신수식씨가 어제 저녁 운명했다는 비보를 받았습니다.

갑작스런 부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으나, 어차피 한 번은 떠나야 할 여정이 아니겠습니까?

단지 먼저가고 뒤에 가는 것뿐인데, 이제 모든 것 잊고 편히 쉬시기 바란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조성국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국가무형유산인 ‘영산줄다리기’를 반석위에 앉힌 공적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빈소 : 영산요양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 11월26일, 장지 : 도천선영

연락처 : 신용우 010-2881-1566 (농협 : 81312205030)

지난 사진들로 고인을 추억하며 편안한 안식을 빌어주세요.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목요일에는 가을걷이하러 내려갔다.

며칠 만에 아산 왔는데, 방명록에 수원의 김지식씨와 천명철씨가 다녀가셨다.

전시장을 비워 차도 한 잔 대접하지 못했으나, 방문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추수래야 배추와 무, 당근, 들깨 등 몇 가지 되지 않고 양도 얼마 되지 않지만,

서리맞아 언덕에 웅크린 대마는 행복을 전해 줄 신의 선물이 아니던가?

 

손이 많이 가기로는 무 잎 삶아 말리는 일이었다.

일단 땔감도 할 겸, 들깨와 시든 꽃대부터 수거했다.

 

들깻잎은 올여름 내 입을 즐겁게 해주었고, 꽃은 눈을 즐겁게 해주지 않았던가?

사람이나 식물이나 수명을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 야속하지만 다 뽑았다.

 

코스모스는 말라 죽어 괜찮았으나, 시들어 고개 숙인 국화를 뽑으려니 마음이 영 켕겼다.

하는 김에 설치물 주변을 어지럽게 만드는 꽃대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할 때만 써먹고 활용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인간 자체가 악인 걸 어쩌겠는가?

그래도 서리 내릴 때 피는 국화만 남아 있었다.

 

꽃을 태우면서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화장해준다며, 생색까지 낸다.

 

가마솥에 물 끓이느라 숱한 꽃을 태웠으나 그래도 남았다.

한 번은 더 사용할 수 있는 양인데, 꽃대 무덤처럼 가마솥을 지키게 했다.

 

삶아 낸 무청을 빨랫줄에 늘었는데, 빨랫줄과는 인연이 많다.

동자동 사진 나누어 줄 때도 빨랫줄에 걸었으니까...

 

들깨를 정리하고 나니 서서히 어둠이 몰려왔다.

 

무청을 삶아 거무튀튀한 물로 세수하기는 꺼림직했으나,

날씨가 쌀쌀해 따뜻한 물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수확한 대마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마르기만 기다리는데,

김창복씨와 이현이 그리고 평이가 찾아왔다.

 

내일 농장에서 김장한다며 수확한 배추 가지러 온 것이다.

갖고 온 떡을 먹으며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해 이현이는 인사동 사람들블로그 전체를 다운받기 위해 안달이다.

블로그에서 쫓겨난 지 일 년이 가까워서야 살려냈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고마움을 뭣으로 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하기야, 고맙기로는 어디 그뿐이랴!

인덕이 많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들었는데, 그 많은 분에게 갚지도 않고 죽을 날만

기다리다니... 죽어도 편하게 죽기는 글렀다.

 

사진,글 / 조문호

 

 

 

당분간 아산을 떠나겠다며 동자동으로 돌아왔으나 며칠을 넘기지 못한다.

 

주말에는 서울 볼 일이 많기도 하지만, 언덕에 고개 숙인 대마가 눈에 밟혀서다.

서리 맞기를 기다렸으나, 욕심이 또 다른 욕심을 부를 것 같았다.

 

지난 일요일 상경했으나 이틀 후에 다시 아산 작업실로 달려간 것이다.

사람들로 부산한 시간보다 혼자 즐기는 소소함이 행복하다.

 

아침 햇살 사이로 내리 깔리는 음악도 감미롭지만,

여기저기 흐트러진 식물이나 사물에서 이런저런 사유의 늪에 빠져든다.

 

빛바랜 백일홍의 모양에서 허물어져 내리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서리 내리기를 기다리는 국화 봉우리에서 실 날 같은 소망도 가져 본다.

 

화려하게 핀 꽃보다, 지는 꽃의 애잔함이 더 가슴을 파고든다.

 

일산 사는 동생이 조카 지향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하다 눈을 감아 편안한 안식을 빌었지만,

남은 가족들의 아픈 상처를 어쩌랴!

 

아픈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

친구 한봉림씨가 작업실을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했다.

 

그래, 옛이야기나 나누며 못다 한 정이나 나누자.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 인생이 아니던가?

 

사진, / 조문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설치전은 지난 3일로 끝났지만,

사진은 그대로 걸려 있어, 간간히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내가 방에 있으면 자유롭게 사진들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다 가지만,

마당에 나가 있으면 길거리 주변 사진만 돌아보고 가 버린다.

 

낯선 늙은이와 대면하는 것이 편할 리야 없겠지만, 그렇다면 내가 전시장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약속이 생기면 다시 내려오더라도 당분간 동자동에 머물며 그동안 못 다한 일에 매달려야겠다.

 

이번 주말에는 이광수교수의 따마스사진집 출판을 기념하는 특강이 갤러리브래송에서 열리기도 하지만,

그동안 시간 내지 못했던 윤석렬 탄핵 집회에도 한 번 가봐야겠다.

참고 견디는 것도 한계에 달했는데, 그냥 두면 나라 망할 것 같다.

 

전시장을 떠나기 전에 그동안 한 번도 들려 보지 못한, 맞은편에 자리 잡은 과수원 길을 걸어 보았다.

 

가끔 승용차가 들락거려 과수원길 안쪽에 근사한 저택이 있을 것으로 지레 겁먹었는데,

가보니 초라한 스레트집과 조그만 닭장이 있었다.

 

사람이 살아 주변이 어지럽기는 하지만 그나마 자연이 보존되어 있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정취도 좋지만, 곳곳에 섞은 나무둥치들이 늘렸는데,

땔감으로 주워오고 싶지만 가져올 수 없었다.

 

어제는 나무가 없어 현충사 산길로 올라가 나무를 주워온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어느 페친이 올린 불법이라는 댓글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어린 시절 산에서 자유롭게 나무했던 생각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는데, 세상이 많이 바뀐 것이다.

 

내 딴에는 산책길에 넘어져 걸리적거리는 나무를 정리해 준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리를 해도 산림청에서 하지 개인이 가져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이란 게 흉통성도 없지만, 법을 다루는 놈들이 깽판 쳐 놓아,

법을 우습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겨울이 오면 쪽방촌은 추위보다 화재가 무섭다.

추위를 막는 대부분 물품이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는 소재인데다,

주방이 없어 방 안에서 부탄가스로 밥을 한다.

전선도 대부분 노후화되어 아슬아슬한데다, 끼고 사는 전기장판도 너무 오래되어 위험하다.

 

방과 방 사이 사람 한 명이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다닥다닥 붙은

쪽방 구조 자체가 불에 취약한데다 불이 나도 소방차가 진입하기도 어렵다.

동자동 쪽방촌은 해마다 화재로 골머리를 앓는데, 사흘 전에도 불이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으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동자동 재개발을 계속 미루는 것도, 화재로 모두 사라지기만 기다리는 건가?

 

나 역시 정선 살 때 옆집에서 옮겨 붙은 불로 모든 걸 태웠지만, 아산으로 옮기고 나서도 불을 끼고 산다.

장작 타 들어 가는 불길이 좋아 하염없이 지켜보는 것이 낙이라면 낙인데,

활활 타오르다 한 줌의 재로 사는지는 것을 보면 마치 인생을 보는 듯 하다,

집에 손님만 오면 불을 피워 고기나 고구마를 구워 먹는데, 문제는 태울 나무가 넉넉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 목요일도 서둘러 아산으로 내려가 필요한 생필품을 사려고 '하나로마트'부터 들렸는데,

완주의 김종신씨가 백암길 전시장에 와 있다는 연락을 했다.

부리나케 달려갔더니 부안의 김영숙씨와 같이 와 있었다.

 

땔감이 부족해 걱정했는데, 캠핑 카에 있던 참나무부터 꺼내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나무가 적게 들어가는 화덕을 사용해 한숨 돌렸다.

아담한 불길에 삼겹살과 고구마를 구워 술판을 벌였으나, 나는 안주만 축낼 팔자가 되고 말았다.

20여일 전부터 금주를 시작했으나 전시 중 딱 한 차례 유혹에 못 이겨 술을 마셨는데,

술이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음담패설을 즐기던 예전 버릇이 도졌다.

그 이후로 술을 마시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다짐했으니, 그들의 건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술 고문이나 다름 없으나, 기어이 떨쳐 낼것을 다짐하며 죄 없는 담배만 피워댔다.

유일하게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던 술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애인을 잃은 듯 허전한데,

블루투스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악장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반가운 벗들과 옛 이야기 나누는 정겨움에 위안받고,

타오르는 불길에 음악 날리는 행복감에 젖었다.

하늘에 걸린 초승달 또한 얼마나 매혹적인지, 예쁜 여인네 눈웃음을 닮았다.

김영숙씨는 김종신씨 술 덜 먹이기 위해 마시다 보니 주량이 늘었다며, 연이어 술 잔을 부딪혔다.

홀 애비와 과부가 서로 사랑하며 의지하지만, 자식들 눈치 보여 결혼 못한다니, 답답한 분들이다.

자식들이 평생 같이 살아줄 것 같은가?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버스가 멈추며 운전기사 김재돌씨가 내렸다.

유달리 사진을 좋아하는 분이라 반겼는데, 운전하는 애주가에게 술을 권할 수 없어 난감했다.

꼬불쳐 둔 대마불사주를 한 잔만 따라 주었는데, 단숨에 들이킨 후,

고기 던져 주기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들고양이처럼 애절한 눈길을 보냈다.

건달로 살아오다 우연히 마을버스 기사 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지난 이야기를 하염없이 풀어 대는 바람에 분위기를 깨버렸다.

 

술자리가 파한 후 김종신씨 내외는 캠핑 카에 자러 갔으나,

잠이 오지 않아 첫닭이 울 때까지 뒤척이다 늦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떠 보니 해가 중천에 걸렸고, 김종신씨도 그때 사 일어나 떠날 준비를 했다.

선우가 끓여 놓은 시락국으로 속 달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요즘은 텃밭의 채소가 다 자라 나무하는 것이 일이다.

주변에서 주워 사용하던 나무가 바닥나, 당장 급한 일은 땔감을 구해야 했다.

 

현충사 둘레길로 이어진 산길로 차를 끌고 가 넘어진 소나무 가지를

조그만 톱으로 잘라 오기란 만만찮았다.

 

그렇지만, 모닥불에 둘러앉아 보내는 행복한 시간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차례나 오르내리며 정신 없이 실어 나른 후, 일을 끝 내려는데 톱이 보이지 않았다,

다닌 곳을 삼십 분 가량 찾아 헤매다, 포기하고 차로 돌아와 보니 짐칸 나무에 걸려 있지 않겠는가?

어이 없지만, 이런 치매 현상이 어제오늘 만의 일도 아니다.

 

실어 온 나무도 제법 많은 것 같았으나,

잘라 정리해보니 두세 차례 땔거리밖에 되지 않지만, 보리 슝년에 이기 어디고?

 

마당을 청소하며 돌아보니 오래전 김창복씨가 옮겨 심은 국화가 이제 사 봉우리를 맺기 시작했다.

 

서리 올 때 핀다는 말은 들었으나,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모든 꽃이 시드는 늦가을의 아쉬움을 이 국화가 달래 주었다.

마치, 너도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는 듯...

 

사진, 글 / 조문호

 

다시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보여주기식 전시나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며칠 전에는 온 식구가 동원되어 전시 준비 작업에 나섰다.

선우만 가게 일 하느라 동참하지 못했지, 다들 솥을 걸거나 칠을 하는 등 정신없이 바빴다.

김창복씨는 목공 일을, 기웅서씨는 용접일을, 이현이는 조경 일로 다들 고생했다.

용접할 자제가 부족해 마무리는 못했지만, 대략의 가닥은 잡혔다.

 

거지 처지에 남의 돈 까먹는 이 힘든 일을 왜 하는지, 하면서도 고개를 흔들어 댔다.

발단은 김선우가 만들어 준 아산 백암길 사람사진관의 개관식을 겸한 전시도

한번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선 집 화재 때 도움 주신 많은 분에게 드리는

보고 형식의 자리도 필요했다.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마침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신청해 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24 예술활동준비지원사업

선정되어 진행하였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원금 삼백만원으로 준비하기도 부족하지만,

동자동에서 아산 백암길을 드나들며 준비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보다 무슨 사진으로 무슨 말을 할지가 관건이었다.

전시 기획안부터 마련되어 추진하는 것이 순서겠으나.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그래서 삼십 년 전에 찍었으나 제대로 발표하지 못한 신체발언사진을 꺼내

사회적 문제로 꼽히는 미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는데,

시골인 것도 걸리지만, 사진관을 만들어 준 선우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긴 세월 작업해 온 전체 사진에서 주요 사진만 추려내어 그때 말을 되새기는

말한다사진 설치전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지 신체발언사진은 내 사진 한 점만 숲속에 내걸어 당사자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진안 계남정미소에서 열린 정영신의 진안 그 다정한 풍경

작가와의 대화에 따라갔는데, 그날 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오래된 사우 김종신씨를 만나 완주 자택에서 자기로 하고 술을 마셨는데,

술만 마시면 발동하는 성적 발언이나 장난 끼가 도진 것이다.

그것도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딸 같은 선우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 당시는 심각한 상황도 인식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는데,

뒤늦게 선우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을 받아 보며 화들짝 놀란 것이다.

선우에게 사죄하고, 앞으로 술을 완전히 끊기로 하고 덮었으나,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난, 성 개방주의자로 성 문제를 경직시키는 현실에 늘 불만을 가진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좌중을 웃기려고 가끔 성 문제를 거론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오래된 술버릇이라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평상시에는 샌님처럼 말도 잘 하지 않다가

술만 한 잔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바뀌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술 취해 돼지 목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성을 안주 삼아 별 지랄을 다 한다.

다행히 돈도 권력도 명예도 없어 살아남았지,

아니었다면 벌써 미투에 걸려 매장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크게 깨달은, 뒤늦은 반성으로 평생 즐겨온 술마저 끊었지만,

미력하지만 그 문제를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사회적 문제가 된 미투가 성 의식을 바로잡아 성차별을 없애는 데는 이바지했으나,

정치적이거나 개인적 목적에 의해 생사람 잡는 경우도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아름다운 성 문제를 경직시켜 남녀 간의 큰 벽을 만들었다.

사람답게 살자는 바람직한 운동이 남녀 간의 애정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일단 이번 전시에 내 걸기로 한 사내 알몸 사진은 걸지 않기로 했지만,

언젠가 다시 보충 사진을 찍어 제대로 된 전시와 심포지움을 열어,

페미니즘 문제의 가해자로 낱낱이 고백하는 단두대에 서겠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

경직된 남녀 문제에 봄바람을 일으키고 싶다.

 

건강이 그때까지 지탱해 줄지 모르겠으나 돌팔매는 나중에 맞기로 하고,

이번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전시를 치루게 되었다.

 

평생 작업해 온 사진에서 추려 내 자연 속에 설치하는 전시인데,

전시장에 갇힌 사진에서 야외로 끌어내는 전시다.

동자동 빨래 줄 사진전에서 인사동 담벼락 전시에 이은 야외 전 행보다.

 

청량리에서 몸 팔던 소녀의 이야기에서부터 독재에 저항한 시민이나

살기 어려운 산골 농민이나 장터 사람들의 하소연,

거리에 내몰린 노숙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의 인간애를 소환하는 전시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김세진 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있고,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렸다오팔팔김정숙씨의 하소연,

춥고 배 고프다는 노숙인 이덕영씨의 절규도 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증평장의 정숙현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세상에 믿을 건 두 손 뿐이다

정선의 최종대씨 등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술은 오기, 무기, 놀기다는 화가 박건씨의 사진이나

막사발로 세계를 제패하고 싶다는 도예가 김용문씨 등

인사동 사람들의 투지가 포함된 30여 점의 사람사진이 자연 속에 설치된다.

 

사람 사는 정이 메말라가는 이 에이아이유령 세상에,

힘든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지나치는 걸음에 들려 차 한잔 드시며 사람 사는 정이나 나누자.

 

가을이 무르익는 24일부터 31일까지 백암길 사람사진관에 술상 차린다.

 

사진,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본 블로그는 지난 2023년 11월 27일  '네오록'에 소개된 김남진전시 리뷰를 올렸다가

티스토리로 부터 청소년 유해 정보라는 사유로 '영구 로그인 제한'이라는 극단적인 규제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지속적인 이의제기와 항의로 약11개월만에 규제가 해제되어 재개하게 된 점을 알려드립니다.

그 동안 불편을 끼쳐드린 점 사과드리며,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운영자 조문호 올림

 

추석을 맞아 미국계신 매형이 귀국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귀국모임에는 사정에 의해 만날 수 없었지만,

지난 6일 어머니를 모신 일산 추모공원 하늘문에서 만난 것이다.

 

누님 조미희는 암에 걸려 8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누님 생전에, 미국으로 이민가기 위해 모든 가산을 정리한 적도 있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근무하던 매형께서 직장까지 그만두고 준비를 했으나,

출국장에서 제동이 걸려 이민을 포기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이민 길에 올라 외로운 이국생활에 적응해 갔으나,

느닷없는 병마를 만나 오랜 세월 키워 온 행복의 꿈이 풍비박산 난 것이다.

혼자 미국에 남게 된 매형은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직장에 나갔으나, 팔순을 맞은 올해부터 일손을 놓았단다.

 

누님께서 세상을 떠날 때와 3년 전 귀국 때 뵙고 처음인데, 건강은 여전하셨다.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도, 내가 더 늙어보였다.

매형과 일산 사는 동생 조창호를 추모공원에서 만나

납골당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며, 오랜만의 해후를 풀었다.

 

  인근에 있는 식당 강강수월래로 옮겨 회덮밥에 소주 한잔 했다.

5년 후에 살아 있다면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받았으나, 아무래도 마지막인사가 될 것 같았다.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사진, / 조문호

 

장소가 생각나지 않는데, 지난 번 귀국 때 찍은 사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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