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는 쪽방 사는 빈민들이 힘들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노숙인이 버텨내기 힘들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보호시설을 비롯하여 서울역 인근에 응급 잠자리 65개를 준비하는 등

서울시의 대처로 예년에 비해 추위에 노출된 노숙인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해 시설 입소를 거부하는 노숙인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에는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추운 날씨였다.

 

서울역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노숙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지하도는 단속이 심해 그런지 비둘기 한 마리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양지바른 다시서기건물 벽에 서너 명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외국인 한 사람이 침낭을 몇 개 가져와 나누어 주었다.

 

다시 동자동으로 건너와 새꿈공원에 갔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공원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공원입구에 처음 보는 노숙인이 찬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좀 있으니, 지나가던 선교사가 이대로 자면 얼어 죽는다며 깨웠다.

춘천에서 왔다는데, 넘어졌는지 얼굴에 피멍이 들어있었고 술도 좀 마신 것 같았다.

덮고 있는 외투를 들치니 내복을 입지 않아 양팔이 그대로 노출된 체, 찬 바닥에 누워있었다.

선교사가 가까운 여인숙에 방 하나 얻어 주겠다며 끌었지만 한사코 사양했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방에 왜 갇히고 싶겠는가?

눈치 챘는지 나중에 다시 오겠다며 선교사는 가버렸다.

알콜 중독자의 구걸 속성을 아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지만, 잘 모르는 사람은 가끔 베푸는 경우가 있다.

주면 안 된다지만, 당장 돈이 절실한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구걸할 수 없으니 그 짓을 하는 것이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피차 마음 편한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몇 푼 되지 않지만, 꼬깃 꼬깃 접어 손에 끼어주니 움켜잡았다.

부디 부디 찬 바닥에서 일으나 무탈하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지난 9일은 용산보건소에서 동자동에 밀집한 쪽방 건물 64개동을 대상으로 빈대방역을 실시했다.

 

내가 사는 4층은 빈대가 발견되지 않아 3층까지만 했는데

스팀 소독기로 방구석 구석을 비롯하여 옷가지와 침구까지 뿌려 바퀴벌레까지 씨를 말릴 것 같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옛 속담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데, 방역하는 걸 보아서인지 아무렇지도 않던 내 몸까지 가려웠다.

 

사실 빈대가 문제가 아니라 쪽방 빈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건물주 빈대가 더 문제다.

그토록 사유재산 침해라며 난리를 치더니, 공공주택지구내에 거주하지 않는 쪽방 소유주도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이 마련되니 조용해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착공하여 한창 공사 중이어야 하는데 

그들 때문에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 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2 7개월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이던 공공개발의 실마리는 푼 셈이다.

 

  쪽방촌 공공주택 사업의 보상 확대 내용을 담은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고 이달 중에 열릴 본회의 문턱만 남았다고 한다.

 

  그 개정안은 쪽방 밀집 지역을 포함한 공공주택지구 토지 또는 건축물 소유자에게 

현물보상  '아파트 분양권을받을  있도록 하는 특례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공공주택이 성사되어도 입주하려면 아직 몇 년이 더 걸릴지 몰라

죽기 전에 입주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 마음편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속히 공공임대주택이 마련되어 다들 다리 뻗고 잘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며칠 전 초상사진에 사용할 액자를 구하러 일산 이케아에 갔다.

8X10규격이지만, 매트 여백도 좀 있어야 하고 프레임의 재질이나

색깔이 마음에 들어야 했는데, 액자는 골랐으나 수량이 모자랐다.

재고량을 전부 구입한 후 부족분은 다음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액자매장에서 침대매장 쪽으로 들어서니 쪽방에 꼭 맞는 침대가 있었다.

나도 몇 년 전 허리 협착증이 생겨 꼼짝 못 할 때가 있었는데,

그 사연을 알게 된 안애경 작가가 함께 일하던 필란드 목공예가를 데려와

즉석에서 목침대를 만들어주어 잘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천국으로 떠났지만...

 

방이 비좁은 쪽방에 무슨 침대를 들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침대 크기만 줄인다면 비좁은 방일수록 더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침대 밑은 책장이나 설합장으로 활용해 너절한 짐은 그 속에 집어넣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침대를 이케아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도 145,000원이면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침대 필요한 쪽방 주민이 많다면 일괄적으로 주문 제작하면 가격도 더 낮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사용하는 목침대는 별도의 쿠숀 없이 이불로 쿠숀을 대신하지만, 아주 편하고 좋다.

아무래도 별도의 쿠숀이 있다면 침대 밑 수납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단점도 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선반은 물론 작은 수납장도 필요하다.

한 달 전에는 누가 버린 삼단 코너장을 주워 사용하는데, 복잡한 공간이 단출해 졌다.

 

침대는 다른 곳으로 이사해도 사용할 수 있기에 쪽방 사는 노약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온종일 방에서 지내는 쪽방 주민으로서는 잠자리가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느끼는 행복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특히 허리가 불편한 분들은 필수품에 가깝다.

물론 개인이 그곳에 사러 간다거나 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현실인 만큼,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께 설문을 돌려 일괄 구입하거나 제작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냉온열의자를 동자동 새꿈공원에도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노약자들이 공원에서 오들오들 떨며 시간을 보내는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장치라고 생각되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서울시청담당자에게 건의해 주길 바란다.

 

사진, / 조문호

 

 

말 뿐인 약자복지, 거짓 정권 물러가라.

매년 1017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에서는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앞둔

지난 14일 오후2시부터 한 시간 가량, 사전집회를 가졌다.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사전집회에는 400여명이 참가했다.

 

이날 집회에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을 비롯하여 장애인, 노동자,

종교인 등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단체 회원들이 모여

주거권을 당장 보장하라고 외치며 거리에 나섰다.

 

코로나로 인하여 의료와 간병, 보육 등 사회서비스의 필요성은 확대되었으나,

윤석렬 정권의 사회서비스 확대 정책은 민영화로 기울고 있다.

지금까지 여성에게 전가하여 유지됐던 돌봄, 시장공급에 의존해 온 주거,

의료가 절실한 빈민들의 기본권 박탈 등은 더 이상 두고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의 재난은 일상화되었다.

이에 자본주의의 모순은 더욱 극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

지난 해 우리가 경험한 반 지하 수해 참사, 최근 오송 지하차도 침수,

경북 산사태, 등 며칠 간격으로 반복하는 폭염과 폭우의

기후재난 일상화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빈곤철폐의 날 슬로건은 주거권 지금 당장이다.

빈곤과 불평등은 날로 심각해져, 이주대책 없는 재개발로

철거민은 속수무책 쫓겨나고, 반 지하 거주자는 수해로 목숨을 잃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는 가난한 사람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개발도 3년째 밀쳐놓고 눈치만 보고 있고.

장애인은 집이 아닌 시설에 감금하여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한다.

 

윤석렬정권은 약자복지를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어려운 분들을 돕겠다고 강변하지만, 입에 발린 헛말일 뿐이다.

여태까지 약자복지 운운하며 가난한 이를 들러리 세워,

권리를 요구하는 약자를 탄압해 오지 않았던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거짓 정권에 철퇴를 내리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자.

 

이날 거리대행진에 앞서 열린 사전집회는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집회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노점상, 전세사기 피해자, 철거민들의 현장 발언으로 이어졌다.

 

박경석 빈곤사회연대 공동대표는 주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자며 독려했다.

이 사회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게으르네. 너 능력 없네. 너 못 배웠네. 너 여자네. 너 나랑 다르네.’

이게 바로 낙인이자 차별이고 격리이자 감금이라며 가난을 이유로, 못 배움을 이유로,

장애를 이유로 우리를 공격하는 권력자와 자본가들과 함께 싸우자고 촉구했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국가가 정한 법과 제도

안에서 국가가 공인한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을 계약했다. 그런데 전세사기의 책임은 피해자가 다 진다.

국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건 무이자로 대출해 줄 테니 성실히 갚아라고만 한다며,

국가 제도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임대인만 보호 하나?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게 어떻게 개인의 거래? 윤석열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병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중랑지역장은 동대문구에서 벌어진 노점 강제철거 폭력을 고발했다.

지난 316일 새벽, 동대문구청에서 노점 리어카를 탈취해 갔다고 했다.

80대 할머니 노점상들이 어렵게 마련한 리어카를 도둑맞았는데.

노점상을 몰아낸 자리에다 화단을 깔아 놨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노점상의 생존권을 탄압하는 이필형 구청장은 각성하라,

끝까지 투쟁하여 노점상 생존권을 쟁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자동 쪽방촌의 정대철씨를 비롯하여 홈리스 주거팀 활동가인

림보, 로즈마리, 요지, 달자씨가 등장하여 단막극을 선보였다.

 

줄거리는 정대철씨가 동자동 쪽방촌에 들어와 겪은 나날을 극화했는데,

동자동공공개발 발표에 따른 희망에서 점점 기대치가 줄어가며, 절망에 빠져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로인해 투쟁의 의지를 다지는 과정을 연출한 극인데, 장애에 의한 정씨의 어눌한 말투가 웃프기도 했으나,

어느 연극이 삶의 현실을 토해 내는,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겠는가?

 

그 외에도 기후단체, 공공운수노조의 연대발언과 민중가수의 열창도 있었다.

 

조직위는 투쟁결의문을 통해 더 높아지는 건물이 더 깊어지는 절망만을 의미할 때,

우리는 세상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노점상이 사라진 도시를 발전한 도시라고 말하지 말자.

휠체어를 외면하는 버스와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는 노동을 묵인하지 말자.

가난한 이들을 빗물과 더위, 추위에 죽어가도록 방치하지 말자.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

 

집회가 끝난 후 서울시 종로구 공평동, 안국동, 낙원동, 종로2가를 거치는 2km가량을 거리 행진했다.

캐리어를 끄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탈 가정 청소년, 강아지와 함께 행진한 시민,

돼지 분장을 하고 동물권을 외친 활동가 등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빈곤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우리의 요구

기만적인 약자복지 반대한다. 차별과 동정 말고 가난 이들에게 권리를!

기후위기 시대 주거는 기본권이다. 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

우리에게 더 많은 평등한 땅을, 공동 토지 민간매각 금지, 공공임대주택 확대!

 

사진, / 조문호

 

지난 12일은 이른 아침부터 아산에서 김선우가 올라왔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선우가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

병원 두 곳에다 예약까지 해 두고,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강제로 한의원에 데리고 가, 복에 없는 한약을 먹게 하는 등

선우의 극성은 정동지도 못 말릴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그날은 '경노의 달'을 맞아 용산구에서 마련한 찾아가는 어르신 문화행사'가

열리는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 가기로 되어있어 입장이 난처했다.

 

  문화행사 취재보다 병원부터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신사동 이비인후과부터 데려갔다.

한 쪽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고, 한 쪽마저 청력이 가물가물한 심각한 상태다.

상대방의 입을 보고 말을 알아들을 정도의 귀머거리 행세를 한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귀에 문제가 있으면 어지럼증을 동반한다는 말에 보청기라도 구할 작정이었다.

 

 의사 앞에  죄인처럼 불려 앉았는데, 왼 쪽 귀는 귀지 덩어리가 막고 있어 귀지 빼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귀지를 녹여 간신히 빼 냈는데, 그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들리는 데는 전혀 도움 되지 않아 청력검사를 했더니,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5개월 후에 다시 청력검사를 해도 그대로라면

장애진단을 내려 줄 수 있다는 의사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텅 빈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고도 차 댈 곳이 없어 헤매는 어려움은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두 번째 예약병원인 '청구성심병원' 으로 갔다.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는 곳이라 별도의 검진 없이 술과 담배를 끊으라는 유의사항만 들었다.

선우와 정동지는 집으로 가고, 난 행사장으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100여명의 노인들이 나와 공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판소리 수궁가가 장내를 뒤덮었으나, 추임새는 커녕 관람석은 조용했.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동자동 쪽방촌에서 온 노인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방에 갇혀 있는 것보다 사람들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다,

선물까지 준다는데 왜 오지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는 듯해 더 짠했다.

 

  노래는 뭐니뭐니해도 신나는 유행가가 최고였다.

두 번째로 등장한 가수의 남행열차노래 가락에 노인들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예쁜 가수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손까지 잡아주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어 퀴즈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어떤 여자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갔는데,

그 여자를 세 글자로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대답하는 분이 없어 웃기려고 미친년이라고 말했더니 맞단다.

그다음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 온 여자를 네 글자로 말하라는 퀴즈가 나왔는데,

별의 별 답이 다 나왔으나 마지막에 손든 분의 아까 그년이 정답이란다.

 

  오후330분부터 시작된 노인잔치는 한 시간 가량 이어졌는데, 덕분에 건강곡물을 퀴즈상품으로 받았다.

겨울용 상의와 먹거리 등 얻어 온 선물도 한 보따리나 되었다.

 

자랑하러 녹번동부터 달려갔는데, 정동지와 선우는 짐 옮기느라 정신없었다.

계절이 바뀌면 발동하는 정동지의 세간살이 옮기는 병이 도진 것 같았다.

비좁은 집에서 옮겨보았자 거기가 거기건만, 그 무거운 책과 장을 이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가며

환경에 변화를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정동지의 취미생활은 못 말린다.

 

  다른 때는 내가 없을 때 혼자 낑낑거리며 하는데, 이번에는 선우 온 틈을 이용하여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선우는 늦게까지 붙잡혀 일하다 밤늦게 아산으로 떠나는 모습이 영 안 서러웠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은 건강하게 사는 것뿐인데,

몸이 송장이나 마찬가지니 이를 어쩌겠는가?

 

사진, / 조문호

 

 

 

전시 작품 앞의 윤용주씨

장애 화가 윤용주씨의 ‘쪽방촌의 봄’이 지난 8월5일 충무로 ‘갤러리 꽃피다’에서 열렸다.

 

동자동의 봄, 64.5X54.0 / 80만원

‘쪽방촌의 봄’은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작품이라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달빛 비친 가을날, 48.0X47,5 / 50만원

윤용주씨가 동자동 쪽방 촌에 들어 온 지도 어언 20년이 지났다.

그는 30대부터 그림을 그렸으나, 전업작가로 살기가 만만찮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위해 건설 하청 업체를 운영했으나, IMF를 맞아 부도를 낸 것이다.

 

동자동의 저녁, 67.5X64.5 / 80만원

어렵게 이어가던 일용직마저 끊기자 술에 빠져 살았다.

노숙과 고시촌, 쪽방 촌을 전전한 체념의 세월은 몸을 보살필 겨를조차 없었다.

천식과 고혈압, 신장질환, 뇌전증, 폐기종, 당뇨 등 온갖 질환에 시달렸는데,

8년 전부터 합병증으로 혈관이 막혀 다리가 썩기 시작한 것이다.

 

고가도로, 64.5X54.0 / 80만원

윤용주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추석 무렵이었다.

그때만 해도 왼쪽 다리는 남았으나, 점점 썩어 들어가 체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것은 예술의 힘이었다.

한 사람 눕기도 빠듯한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만난 2016년 9월의 윤용주씨 모습

작업공간도 열악하지만, 20여 년 동안 손을 놓았던 그림이 쉬울 리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매달린 결과 서서히 빛을 발하며,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났다.

 

쪽방에서 그림 그리는 윤용주씨 모습, 2017년 5월,

그림에 옛 솜씨가 살아나며 한의 무게까지 실렸다.

2017년 8월,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이 특선을 수상하며 재기한 것이다.

 

후암동성당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찾은 동자동 사람들과의 기념촬영. 2017년12월

그해 12월 ‘후암동성당’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어려운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라 더 아름다웠다.

 

산수유마을 / 128,5X90.7 / 200만원

그가 그려낸 붉은 꽃은 아름답다 못해 처절했다.

그림 한 점 한 점에 다시 일어서려는 결기가 엿보였다.

 

이번에 마련한 ‘쪽방촌의 봄’은 세 번째 열린 개인전이다.

지난 5일 열린 개막식에는 아산농장 가는 주말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충무로의 '갤러리 꽃피다'

월요일 오후 무렵 전시장에 들렸는데, 마침 작가가 지키고 있었다.

예전부터 그려 온 산수화나 꽃그림에서 진일보한 삶의 주변풍경도 여러 점 걸렸다.

그림도 좋아졌지만, 군데군데 팔려 나간 빨간딱지가 붙어 더 좋았다.

 

진달래의 꿈 외 / 54,3 X 48.0 / 각 50만원

윤용주씨는 2년 전부터 ‘동자동 사랑방’ 대표를 맡으며, 어려운 노숙인을 돕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이번 전시도 주민자치단체인 ‘동자동 사랑방’ 기금 마련이 목적이다.

 

구례의 봄 (좌측) 97.5X 67,7 / 100만원

그리고 윤용주씨가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사진가 김 원씨 덕이다.

화구를 사주며 재기의 불을 지핀 것도 그였지만, 세 차례의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이보다 더한 자선이 어디 있겠는가?

 

동자동에 살다 보면 여기저기 먹거리를 갖다 주거나 빈민을 돕는 자선가들이 더러 있지만,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런 자선은 흔치 않아, 귀감이 될만하다.

 

월하(왼쪽 첫째) 70,0X63,8 / 80만원

26점이 전시된 ‘쪽방촌의 봄’은 오는 17일까지 열린다.

많은 관람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살고 있는 쪽방이 지옥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햇볕에 달구어진 옥상의 열기를 받아, 4층은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더운 바람만 돌리는 선풍기 소리마저 짜증스럽다.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지럽고 속도 울렁거려, 차라리 숨을 거두는 것이 나을 상 싶다.

폭염에 시달리는 현장 노동자를 생각하며 위안해야 했다.

 

엊저녁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쪽방상담소' 에서 얻어 온 '밤 더위 대피소' 이용권을 활용했다.

 모처럼 남대문사우나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는데, 생각 외로 활용하는 주민이 적었다.

 

새벽 일찍 나와, 서울역 고가로인 서울로로 들어서니, 별천지에 온 듯하다.

 

갖가지 식물 사이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는데, 신기하게 생긴 가시연 잎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울로를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호강도 누렸다.

 

그 아래 서울역광장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나와 있었다.

 

노숙인 틈에 끼어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동원한 신자 모임인 것 같았다.

 

건너편 동자동에는 잠을 설친 주민들이 바람 통하는 곳곳에 앉아 있었는데,

문 열지 않은 '대우정' 앞까지 터 잡고 있었다.

 

다들 지난밤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방에 올라와 시원한 생수 한 병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동행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얻어 먹으려면, 세 시간은 방에서 지내야 했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정선에서 투병 중이던 소설가 강기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로 페북이 도배되어 있었다.

 

어제 새벽에 부고를 받아, 그의 흔적을 모아 올리며 추모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나을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무래도 내가 입주할 때부터 함께 지낸 정든 물건이지만, 선풍기를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온기창고로 갔더니, 일찍부터 주민들로 붐볐다.

 

한 달에 10만원 상당의 물품을 네 차례에 나누어 가져 갈 수 있다기에 선풍기를 가져온 것이다.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물품을 가져갈 수 있어 다들 만족한 표정이었다.

 

마침 온기창고를 찾은 쿠키뉴스김은빈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후, 매장에 나와 있던 유호연소장을 연결해 주었다.

 

유소장은 쪽방 무더위 해소를 위해 복도에 에어콘을 설치한다지만, 쪽방 특성상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속히 공공개발이 추진되어, 입주할 날을 앞당기는 일 뿐이다.

 

다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열사병으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동자동 황춘화씨

제목의 노래를 누가 불렀는지 모르지만, 여자란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렌다,

그놈의 미투 바람에 요물 같아 거리 둔 지 오래되었지만...

 

동자동 쪽방촌에는 여자가 별로 많지 않다.

내가 사는 4층에는 유일하게 할멈하고 같이 사는 정선덕씨가 있다.

할멈이 병원에 입원하여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을 들락거리더니,

아직 완쾌되지 않았는데도 병원비가 없어 퇴원시켰다고 한다.

 

  늙으면 허리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4층이라 감옥이 따로 없다.

외출하려면 정씨가 업고 가야 되지만, 퇴원하자 마자 머리 염색부터 해 준다.

쪽방 촌에서는 보기 힘든 정겨운 모습이다.

 

  얼마 전에는 3층에도 아줌마 한 분이 입주했다.

그런데, 쪽방 복도에 물걸레질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방도 남정네 방 보다 훨씬 정리가 잘 되었더라.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왔는지 모르겠으나, 얼굴에는 그늘이 짙었다.

 

'새꿈공원'에는 허리가 아파, 지지대를 끌고 다니며 청소하는 할멈도 있다.

황옥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이분이 청소하는 걸 종종 본다.

그걸 보면서도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인간들이 많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다.

 

공원 입구에는 한동안 보이지 않던 경학이가 자리 깔고 앉았다.

오랜 노숙생활에서 졸업하여 쪽방에 들어온 지가 한참 되었다.

고시 합격하기보다 어렵다는 수급자가 된 후로는 영 만나기 힘들었는데,

모처럼 노숙하는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구질구질한 꼴은 보았으나, 면도까지 한 말끔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이제 장가가도 되겠네라고 했더니,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른다.

모기만한 소리로 여자가 있어야지요?’ 하는 걸 보니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무슨 놈의 팔자가 그리 기구해 오십이 넘도록 여자 한 번 안아보지 못했을까?

 

  돈은 없어도 되지만 여자는 없으면 안 되는데, 돈이 없으니 여자가 있을 리 없다.

돈과 여자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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