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30일 오후 4시무렵 이광수 교주께서 쪽방촌 성지순례 나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필이면 녹번동 파출부로 나가는 금요일이었다.

 

그날은 월말이라 ‘서울아트가이드’ 얻으러 인사동도 들려야 하고,

맡겨놓은 초상 사진 찾으러 충무로도 가야 해 오후 1시부터 서둘렀다.

안국역에 도착할 무렵 이광수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일이 빨리 끝나, 서울역 11번 출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큰일 이었다! 시원한 곳에서 잠시 기다리라 했으나 마음은 바빴다.

 지하철을 탔으면 빨랐을 텐데, 마음이 급해 택시를 잡아탔으나 차가 밀려 더 늦었다.

 

간신히 후암동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작동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아나 내비는 안 되지만 거는 전화는 잘 되는 핸드폰인데,

전화가 걸리지 않아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선 자리에서 담배를 세 대나 피우며 우왕좌왕하는판에 이교주가 나타났다.

시원한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때까지 지하철 입구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 날따라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얼굴이 빨갛게 익었더라.

미안해 죽을 지경인데, 시원한 커피집에 안 가고 방으로 가잖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계단은 마치 저승가는 계단 같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내린 계단을 4층까지 올라간 것이다.

급히 방문을 열어 선풍기를 돌렸으나, 더운 바람이 감겼다.

 

삼층 사는 박씨 아지매는 계단을 기어 오른다.

수행하는 것 처럼, 덥고 비좁은 방에서 몸으로 느끼며 쪽방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요즘 한 달에 한 번씩 유튜브 강의 촬영하러 상경하는데,

출발하기 전 페북 메시지로 빨리 간다는 연락을 했다지만,

컴퓨터에서만 페이스북을 볼 수 있으니, 알 리가 없었다.

두서없는 쪽방촌 이야기를 했으나, 더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20분쯤 수행하다 내려왔는데, 시간이 어중간했다.

기어이 맛있는 고기를 사 주겠다며 고깃집을 찾았는데, 대개의 식당이 쉬는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돌고 돌아 찾아간 집이 ‘서래갈매기’란 고깃집인데, 처음 가 본 식당이었다.

손님 없는 텅 빈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지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을 마신 것이다.

 

이교주와 여러 차례 술자리를 했지만, 단둘이 앉아 마신 술은 처음이었다.

오래전 최민식 사진상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찍소리 못하는 썩은 사진판에 가슴이 뻥 뚫렸다.

 

시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이광수씨나 황정수씨,

그리고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안애경씨 같은 분이,

각 분야 열 명만 리드가 되어도 국민의 삶의 질은 물론 가치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오래 전 부터 교수가 아니라 교주로 깍듯이 모셨다.

나처럼 한번 물면 안 놓는 성질도 비슷했다.

 

옛날 사진계 이야기가 안주였으나, 다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기록사진을 아카이빙할 민간단체 설립의 절실함도 말했고,

스승 최민식선생에 대한 기록물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에 관한 논문이 니체와 닮았다는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딴 약속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선물로 담배까지 사 주었다.

가게에 담배가 몇 갑 없으면 있는 대로 사지, 기어이 다른 가게를 찾아 한 보루를 샀다.

찾아 준 것만도 황송하지만, 까발겨 두들겨 맞을 논문이 걱정이다.

아무튼, "억수로 고맙습니다.”

 

교주가 떠난 후 발동이 걸려 ‘새꿈공원’으로 담배 자랑하러 가다 이병호씨를 만났다.

그 양반은 담배보다 술이 더 절실하지만, 담배 밖에 줄 수 없었다.

알콜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준기씨가 날 나무란다.

“형님은 사진값도 안 받으면서, 돈은 왜 쓰냐?”는 것이다.

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길래, 꺼내 보니 만 원짜리 두 장이 있었다.

“문디 코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니 돈 묵고 내가 편하겠나?”

소주 한병 콜라 한 병 사고 남은 돈을 돌려주니, 씰데 없는 소리란다.

“날 우째 보고 그라요. 내가 준걸 다시 받것소. 사나 가오가 있지”

그래, 요즘 가오 있는 놈이 드물어 보호종으로 정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 보호종 개 목걸이 쟁취를 위해 “투쟁!”

 

사진,글 / 조문호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할 길이지만, 한평생 사람답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혼자 살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서 더 가슴 아프다.

 

지난 달에는 동자동 공원 지킴이처럼, 오랜 세월 주변 청소를 하며

사신 황옥선(83세)씨가 세상을 떠나 놀라게 하더니,

며칠 전에는 ‘사랑방마을협동회’ 이사장인 김정호(62세)씨가 황옥선씨 뒤를 이었다.

 

돌아가신 김정호이사장은 빈민의 자립을 위해 싸운 전사였다.

두 분 모두 약방의 감초처럼 동자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들인데,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세상을 떠나, 삶의 무상함을 실감한다.

 

황옥선씨는 연세라도 많지만, 김정호씨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은 분이라 더 안타깝다.

한 달 전에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촉구하는 '주거권 행진’ 기자회견 전에 만나지 않았던가?

주거권 행진 출발에 앞서 편치 않은 몸으로 새꿈공원까지 나와,

기자회견과 거리 행진을 잘하라며 주민들을 격려했다.

 

황옥선씨가 돌아가신 줄은 알았지만, 김정호씨가 돌아가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13일 우연히 사랑방 앞을 지나치는데, '謹弔'라는 글이 문 앞에 붙어있었다.

사랑방 사무실에 김정호씨 빈소가 마련되어 깜짝 놀란 것이다.

 

빈소에는 호상인 김호태씨와 선동수 간사장, 정대철이사 등 몇몇 분이 지켰는데, 영문도 모른체 문상했다.

지난 6월 10일 새벽 무렵 폐암으로 돌아가셨으나, 아직 연고자를 못 찾아 장례 날도 못 잡고 있었다.

 

대신 황옥선씨 장례는 연고자를 기다리는 시한인 30일이 지나,

6월 14일 오전 10시 무렵, 벽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했다.

 

동자동에서 오전 9시 직전에 출발한 승합차에 선동수간사장을 비롯하여

조인형, 정대철, 박희봉, 김영국, 정재은씨 등 아홉 명이 갔다.

 

 

화장에 앞서 백제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그리다’ 추모 공간에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간단한 장례를 치루었다.

 

공영장례장인 ‘그리다’는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와

장례를 치루지 못하는 빈민들을 위해 박원순 시장 때 마련했던 고마운 자리다.

 

추모 공간에는 황옥선씨와 노병천씨, 두 분의 위패가 안치되었다.

노병천씨는 영정사진도 없는 데다, 실무자 뿐인 것으로 보아 노숙한 분 같았다.

 

동자동 추모객 중 정재은씨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장 절절한 것 같았다.

누구보다 황옥선씨와 쌓은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차례대로 술잔을 올린 후 먼 길 떠나는 고인을 배웅했다.

살아남은 자는 슬프지만, 세상을 떠난 자는 편할 것 같다.

부디 편히 잠드시길....

 

사진, 글 / 조문호

 

동자동 새꿈공원 지킴이, 황옥선(83)씨가 세상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사랑방마을협동회이사장인 김정호(62)씨도 운명하셨다.

두 분 다 약방의 감초처럼 동자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들인데,

약속이나 한 듯 연이어 세상을 떠나 너무 허망하다.

 

황옥선씨는 연세라도 많지만, 김정호씨는 할 일이 많은 분이라 더 답답하다.

고인은 한 달 전 '주거권 행진기자회견 직전에 만나지 않았던가?

주거권 행진 출발에 앞서 편치 않은 몸으로 새꿈공원까지 나와,

기자회견과 거리 행진을 잘하라며 주민들을 격려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이 추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 더 안타깝다.

 

두 분의 지난 사진을 돌아보며,  고인을 추모하며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글 / 조문호

 

황옥선씨는 사진찍기를 싫어하시어 사진이 몇 장 되지 않습니다.

 

 

 

 

윤석렬 정부 취임 1주년을 맞았지만, 동자동 공공개발은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지난 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는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 안을 내 놓으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국토부는 연 초 보도자료를 통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과 공공임대 이주지원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발표했으나.

모두 입에 발린 소리라 하나도 실행에 옮긴 것은 없다.

 

공공주택을 기다리다 지친 빈민들이 힘을 모았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동자동사랑방’ 등 여러 모임에서

반 빈곤 사회운동 시민단체가 모인 ‘홈리스행동’과 연대하여 거리로 몰려나왔다.

 

윤석렬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은 지난 16일 오후2시, 용산 전쟁기념관 상징탑 앞에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추진을 촉구하는 '주거권 행진’ 기자회견을 열어,

“약자 주거복지 빵점!”이라며 정부를 규탄하고,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동자동 재개발을 발표한 후로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열악해져 사람 살 곳이 아니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이라, 하루속히 주거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추진 위원회’ 김영국 위원장은 “국토부는 2021년 2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공공주택 임대 1250호,

분양 200호와 민간분양주택 960호를 건설함과 동시에 임시 거주지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업 시행을 위한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최갑일 이사는 “동자동 쪽방 주민은 1년에 약 50명이 죽어 가고 있는데,

최근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보수공사를 이유로 주민에게 퇴거를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21년 말 동자동 주민 수가 1063명에서 지난해 말 886명으로 약 17% 감소했다며,

서울시에서 조사한 실태조사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공공주택사업이 ‘멈춰진 시간’은 쪽방에서 주민들을 하나 둘 내모는 ‘퇴거의 시간’이 되고 있다.

 

이들은 국토부가 3년 전 내건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약속을 하나도 지킨 것이 없다며,

공공주택 사업 추진이 지연되는 사이 주민들은 보수도 해주지 않는 열악한 쪽방에서 ‘희망고문’을 당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동자동 공공주택 사업의 ‘첫삽’을 뜨라는 ‘첫 삽’ 증정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공공주택 첫 삽 떠라’는 문구가 적힌 모형 삽을 윤석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실로 향했으나

경찰이 제지하며 대신 전달해 주기로 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지하철 삼각지역과 한강대교를 지나, 동작구 본동에 위치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 자택까지 향하는 ‘쪽방 주민 주거권 행진’이 시작되었다.

“헌집 새집 손수레”와 손 피켓이나 현수막을 펼쳐들고 거리 행진에 나선 것이다.

 

선두에는 종이로 만든 쪽방 모형을 앞 세웠는데, 국토부장관에게 쪽방을 전달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연세가 많은 주민들이 많은데다, 그날따라 날씨마저 더워 사고라도 날까 걱정했으나,

악에 받쳐 그런지 쓰러지는 분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국토부장관 자택이 있는 노들역 주변의 아파트 앞에서 행진을 마무리하고,

결의대회를 열어 국토부의 공공주택지구 지정을 재차 촉구했다.

 

동자동 주민들이 차례대로 나와, 사람 살기 어려운 여건이나 연대발언과 투쟁 결의문도 낭독했다.

 

마지막으로 ‘헌집 새집 손수레’를 국토부장관에게 전달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바꾸어 ’희룡아 희룡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가사를 아래처럼 바꾸어 불렀다.

 

“야-야-야- 공공주택 어때서

발표하고 나몰라라 하-나-요

사람은 하나요. 우리도 국민인데

공공주택 약속 왜 안지키나요

눈물이 나네요, 나몰라라 하니까

공공주택사업 딱 좋은 계획인데

원희룡 장관님 집은 정말 좋군요

우리 집은 쪽방 단 한 칸, 건물주야 비켜라

우-리가 주민이다. 내 주거권 내가 지킨다“

 

아래는 그날 낭독한 투쟁결의문이다.

(투쟁결의문)

지난 5월10일, 윤석렬 정부는 취임 1년을 맞았다. 취임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의 열 번째로 “촘촘하고 든든한 주거복지 지원”을 내세우며 “취약계층에 대한 안정적 주거환경 보장”을 공언하였다. 그러나 우리 동자동 쪽방 주민들의 주거 상태는 더욱 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1년을 맞는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초 보도 자료를 내 “쪽방촌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고, 쪽방촌 정비사업, 공공 임대 이주지원 등은 조속히 추진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 하였으나,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은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만 2년이 지난 2021년 2월5일, 국토교통부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통해 동자동에 공공임대주택 1,250호를 건설함은 물론, 공사기간 중에 머물 임시 거주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발표한 일정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공공주택 건설이 시작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소유주들의 반발을 핑계 삼을 뿐, 사업 시행의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조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일하기를 멈춘 사이, 동자동 주민들은 낡아만 가는 쪽방에서 위태로운 삶을 부여잡고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 한 해에 수십 명의 주민들이 가난과 취약한 주거환경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1,083명, 2021년 1,063명이던 주민은 2022년 886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일부 쪽방 건물주들이 건물 공사 등을 빌미로 주민들에게 재계약 거부와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을 내몰고 부동산 개발이윤을 쌓는 일, 이것이 건물주들이 하겠다는 “아름다운 민간개발”의 본질이다.

 

우리는 오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1년을 맞아 장관의 집을 찾았다.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이 집이 보금자리이듯, 우리에게 동자동 쪽방과 그곳에서 일군 이웃들과의 관계들 역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1년, 우리 쪽방 주민들에게는 기념할 것 없는 배제와 설움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생명과도 같은 우리의 주거권을, 부동산 개발 이익을 위한 건물주들의 탐욕에 결코 헌납하지 않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약자 주거복지 빵점 1년을 속죄하고, 동자동 쪽방 주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공공주택 사업에 당장 나서라.

 

쪽방 주민 주거권 보장, 공공주택사업으로 응답하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공공주택사업 시행하라!

2023년 5월16일

“쪽방주민 주거권 행진” 참가자 일동

사진, 글 / 조문호

 

[2023.5.23작성]

날이 갈수록 빈민들의 삶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2020년만 해도 1,083명이던 동자동 주민이 2022년 말까지 886명으로 대폭 줄어 들었다.

건물주들의 압력에 내몰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 년에 평균 오십 여 명씩 목숨을 잃는 것이다.

 

2년 전 정부의 동자동 공공개발 발표에 마음이 들떠 죽기 전에 잠시나마 집 같은 집에서 한 번 살아 보겠다며

꿈에 부풀었으나, 아직까지 지구지정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한 사이 빈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희망에서 절망감으로 변해가며, 점차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술을 끊었던 사람도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지병을 가진 사람은 병이 더 깊어져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상태로 몇 년 만 더 간다면 화병으로 다 죽어 나갈 것만 같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걸 바라는 걸까?

 

며칠 전에도 쪽방촌에서 또 한사람 죽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시신을 두고 경찰이 들락거리더니, 구급차에 실려나갔다.

그 건물은 지난겨울 수도관이 터져 온 계단이 빙판으로 변해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건물인데,

마치 귀신 나올 것 같은 건물에서 진짜 귀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외부와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86세라니 살만큼 사셨지만, 죽어서도 저승으로 바로 떠나지 못한 채,

행여 가족이 나타날까 한 달 동안 냉동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아무도 슬퍼하는 이 없고, 남긴 것 하나 없이 바람처럼 떠나 버렸다.

 

요즘 들어 부쩍 술이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자동 주민들을 종종 본다.

술을 많이 마셨다기 보다 기력이 없어 조금만 마셔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워버린다.

하기야! 더운 쪽방보다 바깥이 시원한데다 죽어도 빨리 알것이니, 정신 줄을 놓는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 동자동 주민들의 주거권 결의대회가 열렸다.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에서 국토부장관 집이 있는 동작구 노들역까지 거리행진이 있다기에

집결지인 ‘새꿈공원’으로 나갔다.

 

“주민협동회” 김정호이사장이 행진 참여자들에게 협조사항을 알리고 있었는데,

공원 한 쪽에 있던 김상진씨가 반가워하며 내 손을 부여잡았다.

 

한 동안 보이지 않던 그 분은 변두리 임대 주택으로 옮겨 간지가 좀 되었다고 했다.

산전수전 다 겪다 동자동에 들어 와 살았으나, 집 같은 집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떠난 것이다.

그가 뱉은 첫마디는 ‘방이 넓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일거리 없고 아는 사람하나 없는 그곳은 외딴 섬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동자동 쪽방 주민들을 내 보내려는 술수에 떠밀렸으나, 사람이 그리워 동자동을 찾은 것이다.

빈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동자동 공공주택을 하루속히 건설하는 방법뿐이다.

 

더 이상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어 주민들과 함께 기자회견 장소인 용산으로 가야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에서 동작동 국토부장관 집까지 이어지는 거리행진이 걱정스러웠다.

 

난, 오래전 뺑소니차에 치어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는데, 수술을 잘 못하여 많이 걷지를 못한다.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파 차를 휠체어처럼 끌고 다녀야 하는데, 먼 거리라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 차라리 길에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힘든 고행의 거리행진을 무사히 끝내기는 했으나, 돌아오자마자 뻗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당장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시행하라!“

 

사진, 글 / 조문호

 

[2023.5.17작성]

어버이 날이 되면 쪽방촌 어르신을 위한 잔치가 동자동 '새꿈공원’에서 열린다.

 

해마다 ‘동자동 사랑방’에서 마련하는 잔치지만, 코로나에 발목잡혀 3년 만에 열려 더 반가웠다.

 

동자동 쪽방 촌에 사는 분은 대부분 가족과 연락이 끊겼거나,

있어도 찾아오지 않아 어버이날이 되면 외로움을 더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텅빈 가슴에 꽃 한송이 달아드리며 술과 음식을 나누니, 이보다 좋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조화에 불과한 카네이션이지만, 삶에 찌든 어두운 그늘을 지우고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잔치도 자선단체에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음식을 장만한 자리라 더 의미 있다.

 

‘서울역쪽방상담소’의 나눔과 또 다른 것은 줄 세우지 않는데 있다.

주민들에게 음식을 차려줄 뿐 아니라, 이날만은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머릿 고기에다 각종 부침개, 떡과 소주, 음료수 등을 사랑방 식구들이 부지런히 날랐고,

동네 어르신들은 깔아놓은 자리에서 이웃과 정겹게 술잔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도 어버이날과 추석뿐이다.

 

예전에는 잔칫날이 되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빨랫줄에 걸어 나누어 주기도 했으나,

그마저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만 두었는데, 어딜 가나 시기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후로는 찍힌 분을 언제 만날지 몰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불편은 따르지만, 그 또한 내가 짊어져야 할 업이다.

 

잔칫날이 되면 평소 잘 보이지 않는 분도 더러 뵐 수 있는데,

이날은 한 때 동네 사발통문처럼 쏘다니며 도시락을 전해주던 원용희씨를 만났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그동안 어디 아팠냐고 물었더니 죽다 살아났단다.

멀지않은 해방촌으로 이사를 갔다는데, 어버이 잔칫날이라 찾아 왔으나 술은 끊었다고 한다.

 

공원에는 술에 취해 여기저기 드러눕는 사람도 생겨났으나,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다.

기력이 없으니 조금만 마셔도 쓰러지는 것이다.

 

하기야! 답답한 쪽방에 눕는 것보다 시원한 공원에 드러눕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날 잔치에는 ‘동자동사랑방’ 윤용주 회장과 김호태씨가 주민들께 인사드리며 어르신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잔치가 끝난 뒤, 교회 봉사단체에서 나와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으나, 다른 때와 달리 남아 돌았다.

요즘은 도시락 인기가 무료식권에 밀려나 예전같지 않다.

 

뒤 따라 쪽방상담소에서도 마스크와 꽃을 나누어 준다며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는 대로 주면 될 텐데, 시간을 정해놓고 기다리게 하니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줄 세워 거지 취급하는 나눔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아무리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재미있게 즐기며 살자.

 

대개 기초생활 수급자라 술과 담배만 즐기지 않는다면, 살아가는데는 별 지장이 없다.

문제는 돈을 쓰지 않고 이불밑에 넣어 두다 남 좋은 일 시키는데 있다.

 

돈을 아끼고 저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도 가난한 독거노인은 해당되지 않는다.

평생 고생하다 죽을 날도 얼마 남지않았는데, 누굴 위해 저축한단 말인가?

 

문제는 수급비를 받는 대부분의 독거노인들이 돈 쓸 줄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른다는데 있다.

돈도 쓰 본 사람이 잘 쓰지, 돈이 없어 쓰 보지를 못했으니 돈 쓸 줄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돈 쓰는 방법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정말 돈 쓸 곳이 없다면 수급비도 받지 못하는 노숙인에게 적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부디 내년에도 건강하게 어버이날을 맞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사진, 글 / 조문호

 

[2023,5,10작성]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세면도구를 챙겨 호젓한 남산 길을 걸어 남대문사우나에 갔다.

서울시에서 나누어 준 무료 목욕권 덕에 톡톡히 호사를 한다.

예전에는 명절에나 찾았던 목욕탕이 아니던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어 눈을 지긋이 감고 있으니, 찌푸둥한 몸이 풀렸다.

 

목욕탕에서 나와 문화역서울에서 열리는 공예특별전을 보러갔다.

남대문사우나에서 서울역으로 가려면 서울로7017’ 고가가 지름길이다.

서울로7017’은 많은 원형 화분들이 놓인 휴식공간이라 남산 길보다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늘 보던 서울역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제법 그럴싸하다.

와이티엔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서울역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다양한 식물이 있어 가끔 찾는다.

 

비록 사는 곳은 쪽방이지만, 이렇게 좋은 환경에 산다는 자랑질이다.

 

서울역 방향으로 내려가 ‘문화역서울’로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어떻게 왔느냐?“며 막았다.

”전시장에 전시 보러 왔지 뭐 하러 왔겠냐?”고 쏘아붙이며 들어갔다.

 

행색이 노숙인처럼 보인 모양인데, 노숙인은 전시 보면 안 되는가?

사람 차별하는 인간들 보면 간이 뒤집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공예기획전은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였.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간별로 달리 배치해 관람객이 편지의 주체이자 전시의 부분이 될 수 있도록 연출해 놓았더라.

 

7개의 주제 공간과 1개의 공예전으로 구성되었는데, 기성 작가 60명과 학생 29명이 참여한 대규모 기획전이었다.

찍은 사진이 많아 구체적인 리뷰는 천천히 올리기로 하고 이만 줄이겠다.

 

전시장을 나오니,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려 온 기분이었다.

길에 쓰러져 잠들거나, 구걸하지 않으면 술 마시는 노숙인이 곳곳에 널렸는데,

술로 사는 사람들이 편히 쉴 곳조차 없으니,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쪽방사는 빈민과 노숙인들의 가깝지만 먼 차이를 새삼 절감하며, 동자동 '완도식당'으로 갔다.

하루 한 끼만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무료식권 조차 노숙인은 받을 수 없으니, 뭔가 잘 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임백수씨와 젊은 친구 한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밥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술 안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씨가 나더러 하는 말이 아무리 얻어먹는 거지지만, 옷은 잘 입어야 한단다.

구질구질하게 다니면 반기는 곳이 없다는데, 마치 전시장에서 막는 걸 본 것 같았다.

그가 사는 방은 지저분해도 항상 옷은 말끔하게 차려입는 이유를 알겠더라.

 

임씨는 술 끊은 지 몇 개월이 되었으나, 도저히 사람구실을 할 수 없어 다시 마신다고 했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술친구와 어울릴 수 없어 외로워 못 살겠더라는 것이다.

당뇨가 심해 죽을 때 죽더라도 사람답게 살다 죽겠단다.

나는 살기 위해 밥을 먹고, 임씨는 죽기 위해 술을 마셨다.

 

허기진 배를 채워 쪽방으로 올라갔더니, 누군가 계단에 피를 토해 놓았다.

머지않아 또 한 사람 떠날 것 같다.

그래! 더러운 세상 오래 살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저승이 극락인데...

 

사진, 글 / 조문호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돌다릿골 빨래터’에서 이불세탁을 받지 않은지가 한참되었다.

겨울 내내 찌든 이불을 세탁하려고 줄을 잇는 봄철에 한 달 가까이 이불세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다.

세탁기를 수리중 이라 말했다가, 서울시의 예산이 없다는 등 말도 되지 않는 변명만 늘어 놓는데, 이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지난 3월29일 이불을 가져가 헛걸음 친후, 그 뒤 몇 차례나 찾았으나 똑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영업용 세탁소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할 수 있겠는가?

이젠 부피가 큰 이불은 받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더 이상 주민들을 무작정 기다리게 하지 말고,

세탁기를 가동하지 못하는 분명한 사유를 밝히고 대책을 강구하라.

 

동자동 쪽방촌의 ‘돌다릿골 빨래터’는 2018년 여름, 서울시에서 KT의 세탁기 후원을 받아 동자동 새꿈공원 맞은편에 설치한 것이다.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박원순씨에 의해 성사된 일로, 빈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어 주민들로 부터 고마움을 한 몸에 샀다.

 

쪽방에 살려면 빨래가 제일 골칫거리였으나, 덕분에 한시름 놓게 된 것이다.

박원순씨는 옥탑 방에 직접 살아 보는 등 빈민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많은 개선을 이루어내었으나,

더러운 세상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운의 정치인이다.

서울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 빈민들의 삶이 곤두박질 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한 때는 세탁에 의한 소음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했으나,

지금의 ‘서울역쪽방상담소’건물이 완공됨에 따라 같이 옮겨 운영하는 것이다.

 

비좁은 쪽방은 이불장이 없어 항상 이불을 바닥에 펴놓고 살아 불결하기 짝이 없다.

작은 세탁물이라면 쪽방 화장실에서라도 세탁할 수 있겠으나, 덩치가 큰 이불은 어쩔 도리가 없다.

예전에는 때에 찌들어 시커먼 이불이 행여 얼굴에라도 닿을까 노심초사 했으나, 지금은 죽었으면 죽었지 그렇게는 살지 못한다.

 

서울시와 서울역 쪽방상담소는 하루속히 '돌다릿골 빨래터'를 정상화하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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