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세면도구를 챙겨 호젓한 남산 길을 걸어 ‘남대문사우나’에 갔다.
서울시에서 나누어 준 무료 목욕권 덕에 톡톡히 호사를 한다.
예전에는 명절에나 찾았던 목욕탕이 아니던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어 눈을 지긋이 감고 있으니, 찌푸둥한 몸이 풀렸다.
목욕탕에서 나와 ‘문화역서울’에서 열리는 공예특별전을 보러갔다.
‘남대문사우나’에서 서울역으로 가려면 ‘서울로7017’ 고가가 지름길이다.
‘서울로7017’은 많은 원형 화분들이 놓인 휴식공간이라 남산 길보다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늘 보던 서울역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제법 그럴싸하다.
와이티엔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서울역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다양한 식물이 있어 가끔 찾는다.
비록 사는 곳은 쪽방이지만, 이렇게 좋은 환경에 산다는 자랑질이다.
서울역 방향으로 내려가 ‘문화역서울’로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어떻게 왔느냐?“며 막았다.
”전시장에 전시 보러 왔지 뭐 하러 왔겠냐?”고 쏘아붙이며 들어갔다.
행색이 노숙인처럼 보인 모양인데, 노숙인은 전시 보면 안 되는가?
사람 차별하는 인간들 보면 간이 뒤집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공예기획전은 ‘다시,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자연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간별로 달리 배치해 관람객이 편지의 주체이자 전시의 부분이 될 수 있도록 연출해 놓았더라.
총 7개의 주제 공간과 1개의 공예전으로 구성되었는데, 기성 작가 60명과 학생 29명이 참여한 대규모 기획전이었다.
찍은 사진이 많아 구체적인 리뷰는 천천히 올리기로 하고 이만 줄이겠다.
전시장을 나오니,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려 온 기분이었다.
길에 쓰러져 잠들거나, 구걸하지 않으면 술 마시는 노숙인이 곳곳에 널렸는데,
술로 사는 사람들이 편히 쉴 곳조차 없으니,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다.
쪽방사는 빈민과 노숙인들의 가깝지만 먼 차이를 새삼 절감하며, 동자동 '완도식당'으로 갔다.
하루 한 끼만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무료식권 조차 노숙인은 받을 수 없으니, 뭔가 잘 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임백수씨와 젊은 친구 한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밥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술 안주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씨가 나더러 하는 말이 아무리 얻어먹는 거지지만, 옷은 잘 입어야 한단다.
구질구질하게 다니면 반기는 곳이 없다는데, 마치 전시장에서 막는 걸 본 것 같았다.
그가 사는 방은 지저분해도 항상 옷은 말끔하게 차려입는 이유를 알겠더라.
임씨는 술 끊은 지 몇 개월이 되었으나, 도저히 사람구실을 할 수 없어 다시 마신다고 했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술친구와 어울릴 수 없어 외로워 못 살겠더라는 것이다.
당뇨가 심해 죽을 때 죽더라도 사람답게 살다 죽겠단다.
나는 살기 위해 밥을 먹고, 임씨는 죽기 위해 술을 마셨다.
허기진 배를 채워 쪽방으로 올라갔더니, 누군가 계단에 피를 토해 놓았다.
머지않아 또 한 사람 떠날 것 같다.
그래! 더러운 세상 오래 살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저승이 극락인데...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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