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30일 오후 4시무렵 이광수 교주께서 쪽방촌 성지순례 나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필이면 녹번동 파출부로 나가는 금요일이었다.
그날은 월말이라 ‘서울아트가이드’ 얻으러 인사동도 들려야 하고,
맡겨놓은 초상 사진 찾으러 충무로도 가야 해 오후 1시부터 서둘렀다.
안국역에 도착할 무렵 이광수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일이 빨리 끝나, 서울역 11번 출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큰일 이었다! 시원한 곳에서 잠시 기다리라 했으나 마음은 바빴다.
지하철을 탔으면 빨랐을 텐데, 마음이 급해 택시를 잡아탔으나 차가 밀려 더 늦었다.
간신히 후암동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작동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아나 내비는 안 되지만 거는 전화는 잘 되는 핸드폰인데,
전화가 걸리지 않아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선 자리에서 담배를 세 대나 피우며 우왕좌왕하는판에 이교주가 나타났다.
시원한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때까지 지하철 입구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 날따라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얼굴이 빨갛게 익었더라.
미안해 죽을 지경인데, 시원한 커피집에 안 가고 방으로 가잖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계단은 마치 저승가는 계단 같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내린 계단을 4층까지 올라간 것이다.
급히 방문을 열어 선풍기를 돌렸으나, 더운 바람이 감겼다.
수행하는 것 처럼, 덥고 비좁은 방에서 몸으로 느끼며 쪽방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요즘 한 달에 한 번씩 유튜브 강의 촬영하러 상경하는데,
출발하기 전 페북 메시지로 빨리 간다는 연락을 했다지만,
컴퓨터에서만 페이스북을 볼 수 있으니, 알 리가 없었다.
두서없는 쪽방촌 이야기를 했으나, 더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20분쯤 수행하다 내려왔는데, 시간이 어중간했다.
기어이 맛있는 고기를 사 주겠다며 고깃집을 찾았는데, 대개의 식당이 쉬는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돌고 돌아 찾아간 집이 ‘서래갈매기’란 고깃집인데, 처음 가 본 식당이었다.
손님 없는 텅 빈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지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을 마신 것이다.
이교주와 여러 차례 술자리를 했지만, 단둘이 앉아 마신 술은 처음이었다.
오래전 최민식 사진상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찍소리 못하는 썩은 사진판에 가슴이 뻥 뚫렸다.
시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이광수씨나 황정수씨,
그리고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안애경씨 같은 분이,
각 분야 열 명만 리드가 되어도 국민의 삶의 질은 물론 가치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오래 전 부터 교수가 아니라 교주로 깍듯이 모셨다.
나처럼 한번 물면 안 놓는 성질도 비슷했다.
옛날 사진계 이야기가 안주였으나, 다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기록사진을 아카이빙할 민간단체 설립의 절실함도 말했고,
스승 최민식선생에 대한 기록물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에 관한 논문이 니체와 닮았다는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딴 약속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선물로 담배까지 사 주었다.
가게에 담배가 몇 갑 없으면 있는 대로 사지, 기어이 다른 가게를 찾아 한 보루를 샀다.
찾아 준 것만도 황송하지만, 까발겨 두들겨 맞을 논문이 걱정이다.
아무튼, "억수로 고맙습니다.”
교주가 떠난 후 발동이 걸려 ‘새꿈공원’으로 담배 자랑하러 가다 이병호씨를 만났다.
그 양반은 담배보다 술이 더 절실하지만, 담배 밖에 줄 수 없었다.
알콜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준기씨가 날 나무란다.
“형님은 사진값도 안 받으면서, 돈은 왜 쓰냐?”는 것이다.
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길래, 꺼내 보니 만 원짜리 두 장이 있었다.
“문디 코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니 돈 묵고 내가 편하겠나?”
소주 한병 콜라 한 병 사고 남은 돈을 돌려주니, 씰데 없는 소리란다.
“날 우째 보고 그라요. 내가 준걸 다시 받것소. 사나 가오가 있지”
그래, 요즘 가오 있는 놈이 드물어 보호종으로 정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 보호종 개 목걸이 쟁취를 위해 “투쟁!”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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