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살고 있는 쪽방이 지옥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햇볕에 달구어진 옥상의 열기를 받아, 4층은 찜질방을 방불케 한다.

더운 바람만 돌리는 선풍기 소리마저 짜증스럽다.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지럽고 속도 울렁거려, 차라리 숨을 거두는 것이 나을 상 싶다.

폭염에 시달리는 현장 노동자를 생각하며 위안해야 했다.

 

엊저녁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쪽방상담소' 에서 얻어 온 '밤 더위 대피소' 이용권을 활용했다.

 모처럼 남대문사우나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는데, 생각 외로 활용하는 주민이 적었다.

 

새벽 일찍 나와, 서울역 고가로인 서울로로 들어서니, 별천지에 온 듯하다.

 

갖가지 식물 사이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는데, 신기하게 생긴 가시연 잎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울로를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호강도 누렸다.

 

그 아래 서울역광장에는 아침부터 노인들이 나와 있었다.

 

노숙인 틈에 끼어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동원한 신자 모임인 것 같았다.

 

건너편 동자동에는 잠을 설친 주민들이 바람 통하는 곳곳에 앉아 있었는데,

문 열지 않은 '대우정' 앞까지 터 잡고 있었다.

 

다들 지난밤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지긋지긋한 더위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방에 올라와 시원한 생수 한 병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동행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얻어 먹으려면, 세 시간은 방에서 지내야 했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정선에서 투병 중이던 소설가 강기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로 페북이 도배되어 있었다.

 

어제 새벽에 부고를 받아, 그의 흔적을 모아 올리며 추모했지만,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나을 것 같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무래도 내가 입주할 때부터 함께 지낸 정든 물건이지만, 선풍기를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온기창고로 갔더니, 일찍부터 주민들로 붐볐다.

 

한 달에 10만원 상당의 물품을 네 차례에 나누어 가져 갈 수 있다기에 선풍기를 가져온 것이다.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원하는 물품을 가져갈 수 있어 다들 만족한 표정이었다.

 

마침 온기창고를 찾은 쿠키뉴스김은빈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후, 매장에 나와 있던 유호연소장을 연결해 주었다.

 

유소장은 쪽방 무더위 해소를 위해 복도에 에어콘을 설치한다지만, 쪽방 특성상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속히 공공개발이 추진되어, 입주할 날을 앞당기는 일 뿐이다.

 

다들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열사병으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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