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어 치룬 아산 백암 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했다.

 

바쁜 중에도 어려운 걸음 해주신 분들과 멀리서 성원해 주신 많은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 하나의 빚을 짊어졌지만, 백암 길에서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넘치면 안 되듯, 행복도 과하면 힘들었다.

 

엊저녁에는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 서울로 올라와 자고 또 잤다.

죽으면 끝없이 잘 텐데, 무슨 잠이 그리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노닥거리던 컴퓨터조차 켜기 싫었지만,

일주일 동안 찍은 분들의 안부에 등 떠밀려 좌판기를 두드린다.

 

지난 화요일에는 늦게 사 일어나 아산 갈 준비를 서둘고 있었는데,

사진가 양시영씨가 넋전 춤 양혜경씨를 모시고 아산 백암길 전시장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야외에 걸린 사진 보러왔다면 양해를 구하겠으나,

사방에 길을 뚫는 굿을 하러 왔다는데, 어찌 그냥 보낼 수가 있겠나?

옆에 있는 현충사부터 구경하길 부탁해 놓고, 휴게소까지 마다하며 달려갔으나,

마음은 급한데 차까지 밀려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양혜경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양시영, 박종진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혜경씨는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이며 한국전통넋전춤연구소소장으로

긴 세월동안 용미리 무연고자 묘역의 합동 위령제를 백번이 넘도록 치룬 의인이다.

 

불쌍한 원혼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었으니, 그 춤이 어찌 영험하지 않겠는가?

 

함께 온 박종진씨는 얼마 전 펴낸 숙명에서 고려를 보다사진집 한권을 선물 했다.

 

김선우가 준비해 둔 음식으로 식사부터 한 후,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굿판을 벌였는데,

양혜경씨 어께에 앉은 앵무새가 길조를 예언하는 듯 했다.

 

양혜경씨가 직접 오려낸 종이각시를 들고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섰다.

산자와 죽은 자의 길을 터는 넋전 춤으로 사방에 길을 터는 도리뱅뱅이 굿을 시작한 것이다.

 

길을 열어 백암길사람사진관으로 사람이 몰려오기를 바라는 기원 굿이었다.

그녀의 간절한 염원이 한 자락 가을바람에 휘날렸다.

 

굿이 끝난 후,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힘들여 굿을 해 주셨지만, 사례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저녁 무렵에는 스마트협동조합서인형 이사장과 전방위예술가 이익태선생께서 오셨다.

 

귀한 술까지 챙겨 먼 길을 오셨는데, 삼겹살을 구워 대마불사주를 대접했다.

 

장작 타는 소리를 음악 삼아 저물어가는 가을밤 정취에 빠져들었으나,

운전에 발목 잡혀 술 한 잔 마시지 못하는 서인형씨가 마음에 걸렸다.

 

마침 양평에 사는 사진가 정인숙씨가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왔는데,

그 역시 느닷없는 병마에 시달리다 술을 끊은 처지라 술도 한 잔 권할 수 없었다.

일전에 인사동에서 만날 때보다 훨씬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았다.

 

다 떠나고 난 후, 정동지와 단둘이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지나가던 마을버스 기사가 차를 세우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고 손짓하니 시동을 켜둔 채 내렸는데,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대마불사주 한 잔 따라주었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술이 아까운 게 아니라 기사 술 먹이는 죄가 무서워 더 이상 권할 수도 없었다.

 

그 다음 날은 소설가 임헌갑씨가 친구 홍선생을 모시고 왔다.

마땅한 안주가 없어 시장에서 전어를 사와 구워 먹으면 어떨까?” 했더니.

홍선생께서 대신 갔다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무려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 전어가 없어 시장을 헤매고 다닌 것 같았다.

돌고 돌아 전어를 구해 왔는데, 괜히 전어 이야기를 꺼내 홍선생만 고생시켰다.

 

그런데다 사진집까지 여러 권 구입해 주셨는데. 고맙다는 인사가 고작 성적 말장난이었다.

임헌갑씨는 해학으로 돌리지만, 죽기 전엔 고치지 못할 큰 병이다.

오래된 영화제목이 생각난다. “다정도 병이련가?”

 

자고 일어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성이고 있었더니, 화가 류연복, 손기환, 김석환씨가 찾아왔다.

갑자기 찾아 온 손님이라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었는데,

어제 먹다 남은 전어 세 마리를 안주로 대마불사주 한 잔 했다.

 

부안에 갈 일이 있다며 일어서고 나니 성혜선씨가 다녀가셨다.

 

기아 노동자로 일하는 사진가 황상윤씨를 비롯하여 평택에 계신 임성일씨도 오셨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거리를 둔 채 지켜보던 마을 분들의 관심이었다.

단감을 선물하는 분도 있었고, 간간히 찾아와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에서 허튼 짓은 아니었다는 위안이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서울에서 정동지가 내려와 다 같이 쫑파티를 했다.

선우와 이현이가 준비해 온 돼지수육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으나, 다들 술은 마실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모닥불에 둘러앉아 김창복선생의 생명사상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전시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시켰지만, 다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전시는 끝났으나 다음 전시가 이어질 봄까지 사진은 걸려 있으니, 지나치는 걸음에 보셔도 됩니다.

술이나 차 한 잔 하시려면 제가 상주하는 목요일부터 주말에 오시면 됩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지난 24일 막을 올렸다.

전시를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이번 처럼 힘든 전시는 처음이다.

 

경비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몸이 송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전시는 열어놓고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눅들어,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전시장 찾은 손님 받는 게, 상가 문상객 받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대마불사주라도 마음껏 대접할 수 있고,

손님도 두 번 걸음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여러 사람 고생만 시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이곳까지 오라는 말도 부담스럽지만, 오셔도 손님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음식이야 김선우가 준비했지만, 술을 끊었으니 술 고문을 어떻게 당하느냐도 관건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오는 교통편과 숙박이었다.

 

승용차로 오면 술을 마실 수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일만 없다면 역까지 마중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일을 벌였으니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으나, 식구들이 고생 많이 했다.

전 날밤은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등 온 식구가 동원되었는데,

힘들게 길 낸 가마솥에다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전시 날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문 열자마자 세종시에 산다는 오세인씨가 오셨다.

 

이광수씨 페북을 보고 알았다는, 첫 손님의 진지한 관람에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 잔 드렸더니, ‘두메산골사람들사진집도 한 권 사주었다.

 

이어 홍유선, 김현아씨가 다녀가고 나니, 소설가 임헌갑씨가 심영태씨와 같이 오셨는데,

지리산 막걸리를 두 박스나 가져오셨다.

 

때맞추어 온 완주의 사진가 김종신씨는 오다 보니 안내 현수막이 없더라며

현수막 두 개를 주문해 주었다.

 

임헌갑씨 일행은 온천장에 숙소를 잡았으나,

김종신씨는 캠핑 카에서 지내기로 하고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모처럼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헌갑씨는 지난번에 주지 못한 책이라며, 인도로 가는 동안이라는 연작 소설을 한 권 주었다.

 

초대일인 26일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마산 중리 막걸리를 가져왔다.

유목민전활철씨가 준 '느린마을' 막걸리와 '송명섭' 막걸리 두 박스에다

우리가 준비한 소주와 맥주를 비롯한 대마불사주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명주가 다 준비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주막 같은데, 아무래도 술은 남아돌 것 같았다.

 

이튿날은 화가 신상덕씨와 정복수씨, ‘사진바다곽명우씨,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연이어 오셔서 전시장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었다.

 

정복수씨는 나무화랑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초상화를 전복하는 초상화 작품집을 선물했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광수교수로 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선물 '따마스' 사진집이었다.

 

무겁게 마음을 휘어잡는 사진에서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스토리의 연관성보다, 인간은 악이지만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기존의 전시형식에서 벗어난 좋은 사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게는 뮤아트김상현씨와 기타리스트 김병수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시작된 두 분의 협연은 가을밤의 정취를 무르익게 했다.

김상현씨의 아코디온 연주에 덧붙인 김병수의 기타 음율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데, 수술 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는 김상현씨가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예전보다 음색이 훨씬 깊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딱 맞았다.

특히 하얀 목련은 듣는이의 심금을 울려 준 절창이라, 우리 식구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모닥불 앞에서 듣는 협연이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새벽닭이 울어 시간을 보니, 새벽 네시가 훌쩍 넘었더라.

편치 않은 몸으로 먼 길까지 달려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너무 고생하셨다.

 

그들의 뜨거운 음악 사랑과 깊은 인정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깐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그다음 일요일에는 일찍부터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술안주를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좀 있으니 사진가 고영준씨는 친구들을 데려 왔고,

우기곤씨 역시 사우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뒤이어 전통무예가 하태웅씨가 지리산에서 오셨고,

시인 이은정, 전태수, 홍대춘, 서정란씨 등의 문인들과 사진가 마동욱, 김영숙 내외,

화가 칡뫼 김구, 함상규, 고선애, 최보현, 박효링, 권현석, 노인자, 송춘애,

박귀옥, 엄근배, 성혜선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가셨다.

 

오는 1113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황무지, 우상의 벌판개인전을 여는

화가 칡뫼 김구는 열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어렵사리 오셨는데, 가제본 된 책을 가져왔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지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손님 접대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떠나고 나니 죄송스러운 마음만 남았다.

 

오죽하면 전시 시작한 지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는 커녕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그 뒤 이틀 동안 오신 분 사진 역시, 정리할 시간이 없어 주말까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것이다.

끝나는 날까지 마무리하려면 두 번은 더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빚진 생각에 마음은 무겁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시간이 맞지 않은 분을 위해 주말인 1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니,

가을 가기 전에 나들이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다..

 

다들 성원해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깊어가는 현충사의 가을을 오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10월 24부터 아산 백암길사람사진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긴 세월 작업해 온 사진에서 추려낸 사람 사진으로.

백암길사람사진관개관과 함께 새로운 삶을 맞는 신고식이나 마찬가지다.

 

대형 이미지를 자연 속에 설치한 것은 기존 전시장에서 야외로 끌어내려는 시도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입체적 현장감도 맛볼 수 있다.

 

청량리에서 몸 팔던 소녀의 이야기에서 부터 독재에 저항한 시민이나,

살기 어려운 산골 농민들이나 장터 사람들의 하소연,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 인간애를 소환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증평장의 정숙현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등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애달픈 이야기다.

 

그리고 예술혼이 깃든 인사동 사람 등, 30여 점의 초상사진을 자연 속에 세웠다.

 

물질문명에 사람 사는 정이 매말라 가는 이 비정한 세상에,

그때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백암길사람사진관에 펼쳐 놓았다.

 

힘들었던 이야기지만, 따뜻한 인간애가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을이 무르익는 계절, 사람 냄새 맡으며 자연 속에서 차 한 잔 나누자.

 

'사람 사는 이야기' 사진 설치전은  31일까지 열린다.

 

음식을 준비하는 초대일은 주말 (26, 27)이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사진은 2025년 5월까지 걸려 있으니, 지나치는 걸음에 들려주시면 고맙겠다.

 

소재지는 아산시 염치읍 백암 길185’이며, 네비는 백암길185미술관으로 검색하면 된다.

 

사진, 글 / 조문호

 

 

 

전시 일자가 다가오나 준비작업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 잘 마무리했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는 기웅서씨가 앵글 작업을 마무리해주자,

오후에는 김창복씨와 양이현이는 물론 평이 까지 함께 도와 밤늦도록 일했다.

 

김창복씨는 감나무를 가리는 패널 제작 등 어려운 일을 맡아 주셨고,

이현이와 나는 현수막 사진 묶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어두워 머리에 전등을 달고 일했는데, 마무리하고 나니 자정이 가까웠다.

 

다들 24시 해장국집에서 자정 무렵이 되어 저녁 식사를 한 것이다.

이런 강행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나야 내가 벌인 일이라 감수해야 겠지만,

김창복씨와 이현이는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식사를 끝낸 후 정동지와 나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정동지도 아침 일찍 일이 있지만, 나역시 동자동에 볼일이 있었다.

늦게 먹은 저녁 탓에 졸음이 몰려오지만, 목숨 건 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개 명세에 가깝다.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일 만드는 천성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진 놈 탓에 주변 사람들만 힘들게 한다.

 

다들 불평 없이 도와주어 고맙고 고맙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감나무야 미안하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다. 문화란 이름으로 자연을 학대 한다.

설치전 한다며 만든 굴뚝이 감나무를 처다 봐, 가림 막을 세우고 이 글을 썼다.

생명체들이 인간의 이기에 의해 핍박 받는 일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인간보다 더 이기적이고 영악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광수교수는 인간을 악이라 규정하지만, 그런 악을 40여 년 찍어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었으나, 주변에 사람이 없다.

이런 저런 일에 마음 다쳐, 많은 사람이 멀어졌다.

잘 아는 가족이나 가까운 분일수록 그 폐해는 심했다.

남의 집 불 보듯 하는 세상에 나섰다가 독박 쓴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관이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술 취해 벌인 여러 가지 폐해를 생각하니, 남 탓할 자격도 없었다.

교육과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이지만, 벙어리가 되기로 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설치전은 상처 입힌 자연과 인간에게 사죄하는 마지막 전시다.

지난 시간을 불러내어, 힘겹게 살아 온 아픔 속의 인간애를 돌아본다.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렸다“는 청량리 소녀의 하소연에서부터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김세진 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장터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세상에 믿을 건 두 손 뿐이다“는 정선의 최종대씨,

”춥고 배 고프다“는 노숙인 이덕영씨의 절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애달픈 이야기다.

그리고 “몸은 저승에 보내고도 인사동에서 맴돈다”는 고)신경림 시인에서 부터

“예술은 오기, 무기, 놀기다“는 화가 박건씨의 말 등

인사동 사람들 이야기까지 곁들인 30여 점을 자연 속에 풀어 놓았다.

 

사람 사는 정이 메말라 가는 비정한 세상, 인간은 있으나 사람은 없다.

슬프지만 따뜻한 인간애가 모닥불처럼 피어오르는 한 가닥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 나면 차 한 잔 나누며 사람 사는 정을 나누자.

 

조문호

"전라도 닷컴"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경마 때문에 거리에 나 앉게 된 제단사 김계열씨

 

노숙인 복지향상을 주제로 정부가 주최한 소프트웨어 개발 공모전에서

노숙인의 위치 정보와 건강기록 등 개인정보를 손쉽게 공유하는 소프트웨어들이 선정되었는데,

시범이 예정된 이 사업은 심한 인권침해 우려를 낳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주최한 ‘2024 12회 아이시티(ICT)콤플렉스 소프트웨어 개발 공모전

올해 공모전 주제는 노숙인 생활개선 및 복지향상을 위한 솔루션 개발이었다.

수상 작들은 대개 노숙인 지원센터 관리자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들로,

노숙인의 개인정보를 수집·공유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방태원씨는 술 때문에 거리에 나온지 5년이 되었다는데, 아직 무탈한지 모르겠다.

 

수상작 중 하나인 알유오케이'는 거리에 머무는 노숙인의 위치와 상담 내용 등을 저장하고 공유하는데,

노숙인의 위치를 편리하게 파악하는 기능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활용하여 노숙인의 심박수, 호흡수 등 바이탈 사인을 측정한 뒤

이를 관리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건강 돋보기도 선정됐다.

 

특히 시설에 입소한 노숙인의 외출이나 외박, 복약 기록 등을 관리자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위급 상황 때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서울 지역 노숙인 지원센터 3곳에서

시범사업을 위한 활용 교육까지 마쳤다.

시범사업 적용 대상 기관인 노숙인 주거시설 서울시립 24시간 게스트하우스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시설에 입소한 노숙인들의 외출·외박은 현재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으나

노숙인들과 앱을 통해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주택 거주자 주거상향 지원이란 현수막을 무색케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효율적인 관리에만 무게를 두고 노숙인 인권 문제를 간과한다고 비판한다.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상임이사는 지원이 필요한 노숙인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는 강제되는

측면이 있다사회복지라는 이유로 상시감시의 대상이 되고 익명 행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개인정보 권리를 넘어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도 복지 사업의 편리성만을 위한 개인정보 축적은 노숙인들을

관리와 통제 대상으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들 정보 노출은 노숙인을 외려 지원 체계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한다.

쪽방에서 쫒겨 난 노숙인 이덕영의 집들이 / 좌로부터 이덕영, 이경환, 정용성, 김동진

 

'홈리스행동'에서도 성명을 내어 홈리스 당사자들은 홈리스 상태에 있다는 본인의 정보가 가족 등

주변에 유출될 수 있다는 막연한 우려만으로도 실명을 공개하거나, 노숙인 지원체계에 등록하거나,

극한의 고통에서도 의료서비스를 거부하곤 한다이런 현실에서 해당 소프트웨어들이 상용화된다면

복지 향상은커녕 상당 규모의 홈리스를 지원체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역효과만 거둘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자동에서 노숙한 지가 5년이 되었으나, 이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쪽방에 입주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개인의 사생활 모두가 노출되는 세상에서 기계처럼 살아야한다.

사람이 기계에 통제되며 끌려 다녀야 하니,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라 기계 세상이다.

 

사진, / 조문호

 

 

 

 

얼마 전 사진가 김영호씨가 페북에 올린 박광복 지상낙원전시리뷰에 무릎을 쳤다.

낙원동 골목도 누군가 기록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오랫동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벌려놓은 일이 많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보고만 있었는데,

박광복의 전시 소식은 너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사진전에 가지 않지만, 축하하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송상욱시인 추모 모임에 사용할 현수막도 찾을 겸,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브레송을 정동지와 함께 갔다.

전시장 문은 열렸는데, 식사하러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 찬찬히 돌아보았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아는 분도 여러 사람 등장하지만, 이런저런 오래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30년이 넘도록 인사동 사진 찍느라 오가며, 돈 떨어지면 갈 때가 낙원동뿐이었다.

지금이야 감시카메라가 있어 얼씬도 못하겠지만, 담장 넘어 탑골공원 잔디밭은 숙소나 마찬가지였다.

추운 날씨에는 월담할 자가 없지만, 여름에는 모기에 시달려도 잘만했다.

어떨 때는 남녀가 딩굴며 사랑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오백원짜리 동전 한 잎 챙겨 해장국 먹으러 가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이천 원으로 올랐지만, 그 부근의 음식 값은 싸고 맛있는 집이 많다.

낙원상가 지하의 일미식당으로부터, 탁자가 두 개뿐인 낙원상가 계단 밑에 자리 잡은 구멍가게도 좋다.

이름도 없는 대폿집을 통인의 관우선생이 다리 밑집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갈 때마다 자리가 없다.

북문 쪽의 유진식당도 자주 이용하는 술집이었다.

그러나 낙원동에 출입하는 대부분의 노인들은 맛보다 더 싼 집을 찾는다.

 

탑골공원으로 출근하는 노인이 많은 것은

무료급식도 있지만, 파격적으로 싼 식당이나 이발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현궁 맞은편에 있는 노인복지센터와 낙원상가에 있는 실버영화관 등

노인들이 시간 보낼 곳이 몰린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변한 것이 있다면 '박카스 아줌마'들이 종묘 쪽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나랑 연애 한번 할래요? 잘해 드릴게라며 박카스를 내미는 장면은 이제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볼 수 없다.

 

어쩌다 나이 드는 것이 사회적 문제의 고통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슬픈 것은 가족 부양하느라 정신없이 돈벌이에 급급하다

미처 재미있게 사는 '놀이'조차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몰입할 놀이도 없는 남자들에게 불어난 잉여 시간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남자 비극의 시작은 월급봉투가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가면서다.

경제권을 빼앗기며 집에서까지 밀려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노인 문제는 누구나 거쳐야 할 인생 행로다.

이곳 노인들은 대체로 이중적 존재 의식에 사로잡혀있다.

물리적 신체나이는 물론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된 상황을 심리적으로 거부한다.

이곳에 나와 있어도, 스스로는 철저히 '관찰자'라 여긴다.

돈이 없어 무료급식소를 이용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과거를 살아낸 시간에 의식의 끈을 묶어 두고 있다.

잘 나가던 지난 모습을 현재 시공간에 끊임없이 투영시킨다.

분명 현실과 괴리된 몽상임에도, 이런 의식이 이곳을 노인 전유 공간으로 변화시킨 힘이라 여겨진다.

 

다들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가면, 공원 주변엔 노숙자만 남는다.

리어커에 실고 다니는 노래방 기계로 노래 한 곡 뽑는 재미도 쏠쏠한데, 시끄럽다는 상인들 신고로 쫓겨났다.

낙원동이 노인들 도피처가 아니라 전시 제목처럼 지상낙원을 만들 수는 없을까?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술과 가무, 시비와 싸움 등 밑바닥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포착되었다.

스트로보를 동조시킨 강렬한 장면들은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액티브한 포즈가 경직된 그들의 삶을 말하는 것 같다.

언젠가 이곳도 밀려나게 되면, 박광복의 사진으로만 남아 추억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니겠는가?

 

사진도 사진이지만 외로운 노숙자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계속해서 낙원동 기록을 해 주었으면 고맙겠지만, 애로를 알기에 강요하지는 못하겠다.

그리고 완전한 기록을 위해 찍힌 분들의 성함도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이름 없는 사람 사진은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자부심을 갖도록 설득하는 것도 사진가가 해야 할 덕목으로 꼽힌다.

 

노숙인들과 함께하며 기록해낸 박광복의 지상낙원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전시는 갤러리 브레송에서 1016일까지 열리니 많은 관람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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