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현의 사진일기

 

밭을 만들었습니다.

장마철 늦게 심은 들깨는 씨가 맺히고 오이를 심었던 밭에는 지지대가 꽂혀있습니다. 봄에 심었던 상추 밭에는 풀이 한가득 자라고 말라서 씨가 맺힌 채 빼곡히 덮여있습니다. 옥수수와 감자를 심었던 밭에는 콩을 심었는데 잎이 다 지고 잘 여물었습니다. 땅콩을 수확하고 나온 빈자리의 밭과 콩을 거두어 들이고 밭을 갈아야겠습니다. 풀이 난 곳은 예초기로 잘게 잘라서 밭을 갈 때 잘 섞어주면 좋은 거름이 됩니다. 관리기의 날이 땅 속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갑니다. 위에 있던 풀과 흙이 갈퀴가 지나가면 아래 흙이 올라와 골고루 섞입니다. 밭가장자리 끝에서 끝까지 오가다 보면 갈색이고 보드라운 흙이 나옵니다. 이 흙색깔을 무슨 색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저는 이때가 참 좋습니다. 울툴불퉁한 잔 곡선이 있고 돌멩이와 촉촉이 수분을 머금은 흙을 손으로 쥐어보면 시원하고 향긋한 흙냄새가 납니다. 

 

11.04

 

오늘은 양파와 마늘을 심을 것입니다. 양파와 마늘은 작물 중 제일 오랫동안 밭에 있는데 그만큼 밭을 만들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괭이로 밭고랑을 만들며 둑을 쌓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하면서 쭉 가야지 밭이 똑바로 나오는데 자꾸 몸이 흐트러지는지 밭이 삐뚤빼뚤하게 갑니다. 몇 번을 멈추고 쉬었다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한 줄을 완성했습니다. 비닐을 씌울 것이기 때문에 밭이 똑바로 나오지 않으면 비닐 씌우기가 안 좋다고 합니다.  비닐을 씌운 뒤 양파는 모종을 심고 마늘을 심습니다. 구멍에 마늘의 뿌리가 밑을 향하게 하여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었습니다. 밭이 보드라워서 마늘을 누르는데 쏙 잘 들어가니 땅이 얼마나 포근한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밭을 갈 때는 잘 갈아서 부드럽게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늘 심기도 안 좋고 나중에 마늘이 뿌리를 내릴 때 땅이 단단하면 솟아오른다고 합니다.

 

밭은 똑바로.. 부드럽고.. 평평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11.08 양파 모종

 

양파를 심을 때는 나무막대로 구멍을 파준 뒤 뿌리 흙이 다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눌러줍니다. 그다음에는 위에 흙을 덮어주는데 물 빠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래가 많이 섞인 흙으로 덮어주었습니다. 이날은 비가 오고 땅이 마르지 않아 흙이 많이 뭉쳤습니다.

 

양파
잔마늘

 

마늘은 남도마늘, 한지마늘, 빨간 마늘, 잔마늘을 심었습니다.  옛날에 이곳에 계신 선생님께서 어느 시골 할머니와 인연이 닿아 마늘을 받으셨는데 그게 이 잔마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마늘은 지금은 사라진 우리나라 토종마늘 입니다.  쉰 쪽마늘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름처럼 마늘 한 통이 수십 쪽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씨 뿌리듯이 훌훌 뿌려주고 싹이 나고 좀 자라면 먹을 수 있습니다. 봄 여름에 마늘이 없을 때 호미로 한 움큼씩 캐서 풋마늘로 먹으면 좋습니다. 알마늘은 껍질을 다 까지 않고 그대로 콩콩 쪄서 찌개에 넣어먹으면 보통 마늘처럼 똑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잔마늘

올해 농사의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니 많이 서운해집니다. 마늘은 싹이 올라올 거고 곧 있으면 부쩍 추워지겠지요. 간간히 밭에 오면 마늘밭의 비닐이 펄럭이고 벗겨지지 않았는지 싹은 잘 올라왔는지 돌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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