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닷컴"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어쩔 수 없어 치룬 아산 백암 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했다.

 

바쁜 중에도 어려운 걸음 해주신 분들과 멀리서 성원해 주신 많은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 하나의 빚을 짊어졌지만, 백암 길에서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넘치면 안 되듯, 행복도 과하면 힘들었다.

 

엊저녁에는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 서울로 올라와 자고 또 잤다.

죽으면 끝없이 잘 텐데, 무슨 잠이 그리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노닥거리던 컴퓨터조차 켜기 싫었지만,

일주일 동안 찍은 분들의 안부에 등 떠밀려 좌판기를 두드린다.

 

지난 화요일에는 늦게 사 일어나 아산 갈 준비를 서둘고 있었는데,

사진가 양시영씨가 넋전 춤 양혜경씨를 모시고 아산 백암길 전시장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야외에 걸린 사진 보러왔다면 양해를 구하겠으나,

사방에 길을 뚫는 굿을 하러 왔다는데, 어찌 그냥 보낼 수가 있겠나?

옆에 있는 현충사부터 구경하길 부탁해 놓고, 휴게소까지 마다하며 달려갔으나,

마음은 급한데 차까지 밀려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양혜경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양시영, 박종진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혜경씨는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이며 한국전통넋전춤연구소소장으로

긴 세월동안 용미리 무연고자 묘역의 합동 위령제를 백번이 넘도록 치룬 의인이다.

 

불쌍한 원혼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었으니, 그 춤이 어찌 영험하지 않겠는가?

 

함께 온 박종진씨는 얼마 전 펴낸 숙명에서 고려를 보다사진집 한권을 선물 했다.

 

김선우가 준비해 둔 음식으로 식사부터 한 후,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굿판을 벌였는데,

양혜경씨 어께에 앉은 앵무새가 길조를 예언하는 듯 했다.

 

양혜경씨가 직접 오려낸 종이각시를 들고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섰다.

산자와 죽은 자의 길을 터는 넋전 춤으로 사방에 길을 터는 도리뱅뱅이 굿을 시작한 것이다.

 

길을 열어 백암길사람사진관으로 사람이 몰려오기를 바라는 기원 굿이었다.

그녀의 간절한 염원이 한 자락 가을바람에 휘날렸다.

 

굿이 끝난 후,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힘들여 굿을 해 주셨지만, 사례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저녁 무렵에는 스마트협동조합서인형 이사장과 전방위예술가 이익태선생께서 오셨다.

 

귀한 술까지 챙겨 먼 길을 오셨는데, 삼겹살을 구워 대마불사주를 대접했다.

 

장작 타는 소리를 음악 삼아 저물어가는 가을밤 정취에 빠져들었으나,

운전에 발목 잡혀 술 한 잔 마시지 못하는 서인형씨가 마음에 걸렸다.

 

마침 양평에 사는 사진가 정인숙씨가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왔는데,

그 역시 느닷없는 병마에 시달리다 술을 끊은 처지라 술도 한 잔 권할 수 없었다.

일전에 인사동에서 만날 때보다 훨씬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았다.

 

다 떠나고 난 후, 정동지와 단둘이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지나가던 마을버스 기사가 차를 세우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고 손짓하니 시동을 켜둔 채 내렸는데,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대마불사주 한 잔 따라주었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술이 아까운 게 아니라 기사 술 먹이는 죄가 무서워 더 이상 권할 수도 없었다.

 

그 다음 날은 소설가 임헌갑씨가 친구 홍선생을 모시고 왔다.

마땅한 안주가 없어 시장에서 전어를 사와 구워 먹으면 어떨까?” 했더니.

홍선생께서 대신 갔다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무려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 전어가 없어 시장을 헤매고 다닌 것 같았다.

돌고 돌아 전어를 구해 왔는데, 괜히 전어 이야기를 꺼내 홍선생만 고생시켰다.

 

그런데다 사진집까지 여러 권 구입해 주셨는데. 고맙다는 인사가 고작 성적 말장난이었다.

임헌갑씨는 해학으로 돌리지만, 죽기 전엔 고치지 못할 큰 병이다.

오래된 영화제목이 생각난다. “다정도 병이련가?”

 

자고 일어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성이고 있었더니, 화가 류연복, 손기환, 김석환씨가 찾아왔다.

갑자기 찾아 온 손님이라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었는데,

어제 먹다 남은 전어 세 마리를 안주로 대마불사주 한 잔 했다.

 

부안에 갈 일이 있다며 일어서고 나니 성혜선씨가 다녀가셨다.

 

기아 노동자로 일하는 사진가 황상윤씨를 비롯하여 평택에 계신 임성일씨도 오셨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거리를 둔 채 지켜보던 마을 분들의 관심이었다.

단감을 선물하는 분도 있었고, 간간히 찾아와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에서 허튼 짓은 아니었다는 위안이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서울에서 정동지가 내려와 다 같이 쫑파티를 했다.

선우와 이현이가 준비해 온 돼지수육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으나, 다들 술은 마실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모닥불에 둘러앉아 김창복선생의 생명사상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전시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시켰지만, 다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전시는 끝났으나 다음 전시가 이어질 봄까지 사진은 걸려 있으니, 지나치는 걸음에 보셔도 됩니다.

술이나 차 한 잔 하시려면 제가 상주하는 목요일부터 주말에 오시면 됩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이광수의 “따마스“사진집 (눈빛출판사 : 240면, 양장 : 가격 4만원)

 

부산 이광수씨가 마련한 자리가 지난 28일 오후 갤러리 브레송에서 있었다.

 

마침 그날이 아산 전시가 쉬는 날이라 전날 밤 올라와 동자동에서 점심때가 되도록 퍼져 잤다.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은 후, 모처럼 컴퓨터를 끼고 노닥거릴 수 있었다.

 

팔 년 넘도록 쪽방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쪽방 환경에 길들어 버렸다.

왠지 밀폐된 좁은 공간이 마음 편한 것이다.

 

네 시 무렵에야 녹번동에 들려 정영신 동지를 태워 충무로로 갔더니,

약속 장소인 갤러리 브레송에는 이광수 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 관장, 김문호, 김영호,

고정남, 이세연씨 등 여섯 분이 있었고, 전시장에는 김미경씨의 타자의 숲이 전시되고 있었다.

 

다들 충무로 김삼보 집으로 옮겨 갔으나, 술을 마실 수 없어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날 모임은 이광수씨가 새로 나온 따마스사진집을 선물하며 전시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본인은 책으로 보여주면 되지 굳이 전시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한다면 기존 전시 방법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사진을 바닥에 깔거나 빨래 줄에 거는 식으로 펼치는 방법에서,

악의 소굴처럼 어두침침한 터널식으로 전개해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그 문제는 김남진 관장이 효과적으로 설치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날 나누어 준 인간은 악이라는 따마스사진집은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는 인문학자가

사진으로 서술한 인간 속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열두 편으로 나눈 사진집은 사진으로 만든 문학이나 마찬가지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몇 번이나 다시 보게 만들었다.

 

보는 이마다 해석하는 바가 다르겠으나,

어둡고 붉은색이 강한 다양한 이미지에서 인간의 본성인 이글거리는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인은 물론 타 분야 예술가를 비롯한 사진에 관심 있는 모든 분 들이 보아야 할 사진집이었다.

 

사진으로 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진적 지식 보다 찍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집이기 때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고정남촬영

 

손기환 추진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갑진년 미술대동잔치가 지난 16일부터 115일까지 인사동 관훈미술관에서 열린다.

열림굿-1985년 을축년 미술대동잔치 개막식 굿 오마주_광대패 모두골의 공연

 

주최는 서울미술공동체이고 주관은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손기환, 추진위원: 박진화 류연복 이인철)로 지난 16일 열린 개막식에는 광대패 모두골이 열림굿을 열었다.

열림굿-1985년 을축년 미술대동잔치 개막식 굿 오마주_광대패 모두골의 공연

 

참여작가는 손기환씨를 비롯하여 김준권, 김방죽, 김억, 김기현, 류연복, 문영태, 박기복, 박건, 박불똥, 박영률, 박진화, 유은종, 이기정, 이인철, 장명규, 주완수, 홍황기, 황세준씨 등 19명이다.

참여작가 김방죽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 특별전

 

서울미술공동체(이하 서미공)198310월 창립 관련 논의를 시작하여 19849월 정식회의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서미공의 첫 번째 활동은 시와 판화달력(우리마당 발간, 1984.10) 제작이었다. 1985을축년 미술대동잔치를 통해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냈고, '취지문' 또한 이 시기에 발표했다. 1985~19862년 동안 한국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키며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987년에 이르러 활동량이 줄어들다가 자연적으로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미공의 주요 인물들이 기획 개최한 1985, 한국미술, 20대의 힘전1980년대 예술 검열과 민중미술 탄압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 건설의 계기를 마련한 전시로서 미술사적 의의를 가진다. 관훈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갑진년 미술대동잔치는 서미공 창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2023년 초 구성된 서미공 연구팀은 계묘년 서미공 콜로키움 한마당행사를 개최하여 서미공 창립과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대 주무 최민화, 손기환, 류연복, 박진화뿐만 아니라, 김방죽, 김억, 박성조 등 서미공 활동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구술채록을 추진했다. 또 류연복, 손기환 등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1980년대 자료 등을 조사 발굴했다.

왼쪽부터 유연복 이인철 김방죽 손기환 박진화

 

관훈갤러리 1층은 서미공 관련 사료와 전시 포스터 등을 정리한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되었다. 2023년 진행된 계묘년 서미공 콜로키움 한마당또한 영상으로 관람 가능하도록 했다. 2층과 3층은 서미공 활동을 했던 작가들의 1980년대 작품뿐만 아니라 최근 작품도 함께 전시했다. 1980년대 서미공은 민중미술인들의 협의체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미 소집단에 소속이 있는 작가들도 중복으로 서미공 활동을 겸하곤 했다. 당대에는 참여 작가가 170여명에 이를 정도로 아주 큰 규모의 공동체였다. 하지만 올해 전시의 취지를 알리며 초대 공문을 발송했을 때 연락이 닿는 작가, 출품이 가능한 작가는 최종 19명으로 추려졌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아래 미술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활동으로 한국미술사를 대표할 수 있는 독보적인 사례다. 하지만 현재 이와 관련한 조사와 연구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1980년대 한국미술사의 생동감과 풍부함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전시는 1016일 광대패 모두골의 열림굿 공연으로 개막하여 115일까지 진행된다. / 서울미술공동체 연구팀

 

서울미술공동체에 대하여

 

1983101일부터 3일까지 경기도 가평의 대성리에서 '사흘 낮밤 토론회'가 있었다. 옥봉환의 주선으로 김봉준, 문영태, 장진영, 최민화, 최열, 홍선웅, 홍성담이 한자리에 모여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미술운동의 성격과 방향, 그리고 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대중적 미술운동을 펼쳐나가기로 결의하고, 민중적 현실주의에 기반한 지역별 '미술공동체'를 전국적으로 조직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최민화는 그달에 곧바로 류연복, 박진화와 함께 '미술공동체' 창립을 논의하고 각 매체별 담당을 지정했다. 만화 파트에 최민화, 벽화 파트에 류연복, 판화 파트에 이기정을 지정한 것이다. 19841월부터 상반기 동안은 건강한 미술을 회복하고 건설하기 위한 토론회를 계속했다. 토론회 자료를 묶어 현대미술연구소 이름으로 현대미술2백 권을 펴냈다. 그해 6월 회원들은 105인의 작가에 의한 삶의 미술전에 참여하고, 9월에는 '미술공동체' 발족을 위한 정식회의를 개최하여 제1대 주무(기획실장)로 최민화를 선출하였다. 10월에는 판화 달력 시와 판화(우리마당 발간)를 펴냈다. 그리고 19852월에 '서울미술공동체 (서미공)'가 공식적으로 발족한다. 서미공에 참여한 소집단은 '그림동인 실천', '횡단', '목판모임 나무', '에스파', '시대정신', '벽화기획 십장생', '억새' 등이다.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취지문을 살피면 "시각예술이 갖고 있는 풍부한 형식 가치를 창조적으로 계발하",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제약하는 어떠한 요소와도 투쟁"하며, "예술품이 민중의 삶의 현장에 투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적고 있다. 서미공은 발족과 동시에 대중을 위한 미술장터인 을축년 미술대동잔치(2)를 기획했다. 잔치는 대성공을 거뒀고, 연이어강남판매장개관전(3)을 열었다. 4월에는 서미공 기관지 미술공동체를 펴냈고, 5월엔 '5.3인천노동자대회'에 걸개그림을 제작하여 게시했다. 6월엔 제1차 총회를 거쳐 제2대 주무로 손기환을 선출했다. 7월엔 손기환, 박진화, 박불똥의 기획으로 1985,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이 열렸으나, 경찰의 탄압으로 작가들이 연행되고 작품은 압류되었다. 그에 따라 민중미술탄압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8월엔 민족미술대토론회에 참석하고, 9월에는 서강대학교 신문사 연계 판화전, 외국어대학교와 문중문화협의회에서 1985,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슬라이드 강연을 열었다. 12월에는 미술공동체3호를 펴냈는데, 1986년까지 총 다섯 권을 펴냈다. 19862월에 병인년 미술대동잔치를 아랍미술관에서 개최했다. 3월에 제2차 총회에서 류연복을 제3대 주무로 선출했고, 1987년 제3차 총회에서는 박진화가 제4대 주무로 선출되었다.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1986617일 신촌역 앞 건물에 '통일의 기쁨'이라는 벽화를 제작하고, 726일에는 류영복 자택 담장에 '상생도' 벽화를 제작했는데, 두 벽화는 공권력에 의해 훼손된 바 있다. 또한 정릉벽화를 그린 작가들은 불구속 기소 되었다. 8월에는 풍자와 해학을 기획하여 그림마당 민에서 전시하였고, 198711월에는 전환기의 위대한 미술1 정치와 미술을 기획하였다. 1987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민족미술협의회는 내부 노선 투쟁이 격화되었고, 그에 따라 소집단들의 경향성과 활동 방향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81,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서미공은 발전적 해체를 논의한 뒤 해산하였다. 서미공에 참여한 작가들은 최민화, 류연복, 박진화, 손기환, 이인철, 박기복, 최정현, 유은종, 김낙일, 임승택, 홍황기, 박성조, 김기현, 이기정, 김억, 장명규, 김방죽, 곽대원, 박영률, 김준권, 조인수, 황세준, 주완수, 전승보 등이다. / 김종길 (기획 및 감독)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2024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展 / 갑진년 미술대동잔치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지난 24일 막을 올렸다.

전시를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이번 처럼 힘든 전시는 처음이다.

 

경비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몸이 송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전시는 열어놓고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눅들어,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전시장 찾은 손님 받는 게, 상가 문상객 받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대마불사주라도 마음껏 대접할 수 있고,

손님도 두 번 걸음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여러 사람 고생만 시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이곳까지 오라는 말도 부담스럽지만, 오셔도 손님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음식이야 김선우가 준비했지만, 술을 끊었으니 술 고문을 어떻게 당하느냐도 관건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오는 교통편과 숙박이었다.

 

승용차로 오면 술을 마실 수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일만 없다면 역까지 마중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일을 벌였으니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으나, 식구들이 고생 많이 했다.

전 날밤은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등 온 식구가 동원되었는데,

힘들게 길 낸 가마솥에다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전시 날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문 열자마자 세종시에 산다는 오세인씨가 오셨다.

 

이광수씨 페북을 보고 알았다는, 첫 손님의 진지한 관람에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 잔 드렸더니, ‘두메산골사람들사진집도 한 권 사주었다.

 

이어 홍유선, 김현아씨가 다녀가고 나니, 소설가 임헌갑씨가 심영태씨와 같이 오셨는데,

지리산 막걸리를 두 박스나 가져오셨다.

 

때맞추어 온 완주의 사진가 김종신씨는 오다 보니 안내 현수막이 없더라며

현수막 두 개를 주문해 주었다.

 

임헌갑씨 일행은 온천장에 숙소를 잡았으나,

김종신씨는 캠핑 카에서 지내기로 하고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모처럼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헌갑씨는 지난번에 주지 못한 책이라며, 인도로 가는 동안이라는 연작 소설을 한 권 주었다.

 

초대일인 26일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마산 중리 막걸리를 가져왔다.

유목민전활철씨가 준 '느린마을' 막걸리와 '송명섭' 막걸리 두 박스에다

우리가 준비한 소주와 맥주를 비롯한 대마불사주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명주가 다 준비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주막 같은데, 아무래도 술은 남아돌 것 같았다.

 

이튿날은 화가 신상덕씨와 정복수씨, ‘사진바다곽명우씨,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연이어 오셔서 전시장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었다.

 

정복수씨는 나무화랑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초상화를 전복하는 초상화 작품집을 선물했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광수교수로 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선물 '따마스' 사진집이었다.

 

무겁게 마음을 휘어잡는 사진에서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스토리의 연관성보다, 인간은 악이지만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기존의 전시형식에서 벗어난 좋은 사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게는 뮤아트김상현씨와 기타리스트 김병수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시작된 두 분의 협연은 가을밤의 정취를 무르익게 했다.

김상현씨의 아코디온 연주에 덧붙인 김병수의 기타 음율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데, 수술 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는 김상현씨가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예전보다 음색이 훨씬 깊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딱 맞았다.

특히 하얀 목련은 듣는이의 심금을 울려 준 절창이라, 우리 식구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모닥불 앞에서 듣는 협연이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새벽닭이 울어 시간을 보니, 새벽 네시가 훌쩍 넘었더라.

편치 않은 몸으로 먼 길까지 달려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너무 고생하셨다.

 

그들의 뜨거운 음악 사랑과 깊은 인정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깐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그다음 일요일에는 일찍부터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술안주를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좀 있으니 사진가 고영준씨는 친구들을 데려 왔고,

우기곤씨 역시 사우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뒤이어 전통무예가 하태웅씨가 지리산에서 오셨고,

시인 이은정, 전태수, 홍대춘, 서정란씨 등의 문인들과 사진가 마동욱, 김영숙 내외,

화가 칡뫼 김구, 함상규, 고선애, 최보현, 박효링, 권현석, 노인자, 송춘애,

박귀옥, 엄근배, 성혜선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가셨다.

 

오는 1113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황무지, 우상의 벌판개인전을 여는

화가 칡뫼 김구는 열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어렵사리 오셨는데, 가제본 된 책을 가져왔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지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손님 접대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떠나고 나니 죄송스러운 마음만 남았다.

 

오죽하면 전시 시작한 지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는 커녕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그 뒤 이틀 동안 오신 분 사진 역시, 정리할 시간이 없어 주말까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것이다.

끝나는 날까지 마무리하려면 두 번은 더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빚진 생각에 마음은 무겁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시간이 맞지 않은 분을 위해 주말인 1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니,

가을 가기 전에 나들이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다..

 

다들 성원해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깊어가는 현충사의 가을을 오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10월 24부터 아산 백암길사람사진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긴 세월 작업해 온 사진에서 추려낸 사람 사진으로.

백암길사람사진관개관과 함께 새로운 삶을 맞는 신고식이나 마찬가지다.

 

대형 이미지를 자연 속에 설치한 것은 기존 전시장에서 야외로 끌어내려는 시도다.

 

거리를 지나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기도 하지만, 입체적 현장감도 맛볼 수 있다.

 

청량리에서 몸 팔던 소녀의 이야기에서 부터 독재에 저항한 시민이나,

살기 어려운 산골 농민들이나 장터 사람들의 하소연,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 인간애를 소환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증평장의 정숙현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등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애달픈 이야기다.

 

그리고 예술혼이 깃든 인사동 사람 등, 30여 점의 초상사진을 자연 속에 세웠다.

 

물질문명에 사람 사는 정이 매말라 가는 이 비정한 세상에,

그때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백암길사람사진관에 펼쳐 놓았다.

 

힘들었던 이야기지만, 따뜻한 인간애가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을이 무르익는 계절, 사람 냄새 맡으며 자연 속에서 차 한 잔 나누자.

 

'사람 사는 이야기' 사진 설치전은  31일까지 열린다.

 

음식을 준비하는 초대일은 주말 (26, 27)이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사진은 2025년 5월까지 걸려 있으니, 지나치는 걸음에 들려주시면 고맙겠다.

 

소재지는 아산시 염치읍 백암 길185’이며, 네비는 백암길185미술관으로 검색하면 된다.

 

사진, 글 / 조문호

 

 

 

전시 일자가 다가오나 준비작업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 잘 마무리했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는 기웅서씨가 앵글 작업을 마무리해주자,

오후에는 김창복씨와 양이현이는 물론 평이 까지 함께 도와 밤늦도록 일했다.

 

김창복씨는 감나무를 가리는 패널 제작 등 어려운 일을 맡아 주셨고,

이현이와 나는 현수막 사진 묶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어두워 머리에 전등을 달고 일했는데, 마무리하고 나니 자정이 가까웠다.

 

다들 24시 해장국집에서 자정 무렵이 되어 저녁 식사를 한 것이다.

이런 강행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나야 내가 벌인 일이라 감수해야 겠지만,

김창복씨와 이현이는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식사를 끝낸 후 정동지와 나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정동지도 아침 일찍 일이 있지만, 나역시 동자동에 볼일이 있었다.

늦게 먹은 저녁 탓에 졸음이 몰려오지만, 목숨 건 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개 명세에 가깝다.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일 만드는 천성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진 놈 탓에 주변 사람들만 힘들게 한다.

 

다들 불평 없이 도와주어 고맙고 고맙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감나무야 미안하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다. 문화란 이름으로 자연을 학대 한다.

설치전 한다며 만든 굴뚝이 감나무를 처다 봐, 가림 막을 세우고 이 글을 썼다.

생명체들이 인간의 이기에 의해 핍박 받는 일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인간보다 더 이기적이고 영악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광수교수는 인간을 악이라 규정하지만, 그런 악을 40여 년 찍어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었으나, 주변에 사람이 없다.

이런 저런 일에 마음 다쳐, 많은 사람이 멀어졌다.

잘 아는 가족이나 가까운 분일수록 그 폐해는 심했다.

남의 집 불 보듯 하는 세상에 나섰다가 독박 쓴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관이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술 취해 벌인 여러 가지 폐해를 생각하니, 남 탓할 자격도 없었다.

교육과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이지만, 벙어리가 되기로 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설치전은 상처 입힌 자연과 인간에게 사죄하는 마지막 전시다.

지난 시간을 불러내어, 힘겹게 살아 온 아픔 속의 인간애를 돌아본다.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렸다“는 청량리 소녀의 하소연에서부터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김세진 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장터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세상에 믿을 건 두 손 뿐이다“는 정선의 최종대씨,

”춥고 배 고프다“는 노숙인 이덕영씨의 절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애달픈 이야기다.

그리고 “몸은 저승에 보내고도 인사동에서 맴돈다”는 고)신경림 시인에서 부터

“예술은 오기, 무기, 놀기다“는 화가 박건씨의 말 등

인사동 사람들 이야기까지 곁들인 30여 점을 자연 속에 풀어 놓았다.

 

사람 사는 정이 메말라 가는 비정한 세상, 인간은 있으나 사람은 없다.

슬프지만 따뜻한 인간애가 모닥불처럼 피어오르는 한 가닥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 나면 차 한 잔 나누며 사람 사는 정을 나누자.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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