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공동체(이하 서미공)은 1983년 10월 창립 관련 논의를 시작하여 1984년 9월 정식회의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서미공의 첫 번째 활동은 『시와 판화』 달력(우리마당 발간, 1984.10) 제작이었다. 1985년 『을축년 미술대동잔치』를 통해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냈고, '취지문' 또한 이 시기에 발표했다. 1985~1986년 2년 동안 한국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키며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987년에 이르러 활동량이 줄어들다가 자연적으로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미공의 주요 인물들이 기획 개최한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은 1980년대 예술 검열과 민중미술 탄압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 건설의 계기를 마련한 전시로서 미술사적 의의를 가진다. 관훈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갑진년 미술대동잔치」는 서미공 창립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2023년 초 구성된 서미공 연구팀은 「계묘년 서미공 콜로키움 한마당」 행사를 개최하여 서미공 창립과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대 주무 최민화, 손기환, 류연복, 박진화뿐만 아니라, 김방죽, 김억, 박성조 등 서미공 활동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구술채록을 추진했다. 또 류연복, 손기환 등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1980년대 자료 등을 조사 발굴했다.
관훈갤러리 1층은 서미공 관련 사료와 전시 포스터 등을 정리한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되었다. 2023년 진행된 「계묘년 서미공 콜로키움 한마당」 또한 영상으로 관람 가능하도록 했다. 2층과 3층은 서미공 활동을 했던 작가들의 1980년대 작품뿐만 아니라 최근 작품도 함께 전시했다. 1980년대 서미공은 민중미술인들의 협의체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미 소집단에 소속이 있는 작가들도 중복으로 서미공 활동을 겸하곤 했다. 당대에는 참여 작가가 170여명에 이를 정도로 아주 큰 규모의 공동체였다. 하지만 올해 전시의 취지를 알리며 초대 공문을 발송했을 때 연락이 닿는 작가, 출품이 가능한 작가는 최종 19명으로 추려졌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 군사독재 정권 아래 미술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활동으로 한국미술사를 대표할 수 있는 독보적인 사례다. 하지만 현재 이와 관련한 조사와 연구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1980년대 한국미술사의 생동감과 풍부함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전시는 10월 16일 광대패 모두골의 열림굿 공연으로 개막하여 11월 5일까지 진행된다. / 서울미술공동체 연구팀
‘서울미술공동체’에 대하여
1983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경기도 가평의 대성리에서 '사흘 낮밤 토론회'가 있었다. 옥봉환의 주선으로 김봉준, 문영태, 장진영, 최민화, 최열, 홍선웅, 홍성담이 한자리에 모여 새롭게 태동하고 있는 미술운동의 성격과 방향, 그리고 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다.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대중적 미술운동을 펼쳐나가기로 결의하고, 민중적 현실주의에 기반한 지역별 '미술공동체'를 전국적으로 조직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최민화는 그달에 곧바로 류연복, 박진화와 함께 '미술공동체' 창립을 논의하고 각 매체별 담당을 지정했다. 만화 파트에 최민화, 벽화 파트에 류연복, 판화 파트에 이기정을 지정한 것이다. 1984년 1월부터 상반기 동안은 건강한 미술을 회복하고 건설하기 위한 토론회를 계속했다. 토론회 자료를 묶어 현대미술연구소 이름으로 『현대미술』 2백 권을 펴냈다. 그해 6월 회원들은 『105인의 작가에 의한 삶의 미술전』에 참여하고, 9월에는 '미술공동체' 발족을 위한 정식회의를 개최하여 제1대 주무(기획실장)로 최민화를 선출하였다. 10월에는 판화 달력 「시와 판화」(우리마당 발간)를 펴냈다. 그리고 1985년 2월에 '서울미술공동체 (서미공)'가 공식적으로 발족한다. 서미공에 참여한 소집단은 '그림동인 실천', '횡단', '목판모임 나무', '에스파', '시대정신', '벽화기획 십장생', '억새' 등이다.
취지문을 살피면 "시각예술이 갖고 있는 풍부한 형식 가치를 창조적으로 계발하"고,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제약하는 어떠한 요소와도 투쟁"하며, "예술품이 민중의 삶의 현장에 투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적고 있다. 서미공은 발족과 동시에 대중을 위한 미술장터인 『을축년 미술대동잔치』(2월)를 기획했다. 잔치는 대성공을 거뒀고, 연이어『강남판매장개관전』(3월)을 열었다. 4월에는 서미공 기관지 『미술공동체』를 펴냈고, 5월엔 '5.3인천노동자대회'에 걸개그림을 제작하여 게시했다. 6월엔 제1차 총회를 거쳐 제2대 주무로 손기환을 선출했다. 7월엔 손기환, 박진화, 박불똥의 기획으로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이 열렸으나, 경찰의 탄압으로 작가들이 연행되고 작품은 압류되었다. 그에 따라 민중미술탄압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8월엔 민족미술대토론회에 참석하고, 9월에는 서강대학교 신문사 연계 판화전, 외국어대학교와 문중문화협의회에서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 슬라이드 강연을 열었다. 12월에는 『미술공동체』3호를 펴냈는데, 1986년까지 총 다섯 권을 펴냈다. 1986년 2월에 『병인년 미술대동잔치』를 아랍미술관에서 개최했다. 3월에 제2차 총회에서 류연복을 제3대 주무로 선출했고, 1987년 제3차 총회에서는 박진화가 제4대 주무로 선출되었다.
1986년 6월 17일 신촌역 앞 건물에 '통일의 기쁨'이라는 벽화를 제작하고, 7월 26일에는 류영복 자택 담장에 '상생도' 벽화를 제작했는데, 두 벽화는 공권력에 의해 훼손된 바 있다. 또한 정릉벽화를 그린 작가들은 불구속 기소 되었다. 8월에는 『풍자와 해학展』을 기획하여 그림마당 민에서 전시하였고, 1987년 11월에는 『전환기의 위대한 미술1 정치와 미술展』을 기획하였다.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민족미술협의회는 내부 노선 투쟁이 격화되었고, 그에 따라 소집단들의 경향성과 활동 방향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8년 1월,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서미공은 발전적 해체를 논의한 뒤 해산하였다. 서미공에 참여한 작가들은 최민화, 류연복, 박진화, 손기환, 이인철, 박기복, 최정현, 유은종, 김낙일, 임승택, 홍황기, 박성조, 김기현, 이기정, 김억, 장명규, 김방죽, 곽대원, 박영률, 김준권, 조인수, 황세준, 주완수, 전승보 등이다. / 김종길 (기획 및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