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씨는 37년 동안 전국 장터만 돌아다닌 미친 여자다.

그런 미친 여자를 만난 지도 어언 20여 년이 가깝건만,

여태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어 천생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왕 장터를 찍으려면 전국 오일장을 다 돌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거절은 커녕 실행에 옮기려고 전국 6백 개가 넘는 오일장 장터 동선을 파악해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사진 작업에 대한 집념과 투지만은 막상막하였다.

 

몇 년이 걸렸는지 기억조차 아련하지만, 그녀와의 장터 여행은 길고 긴 신혼여행이 되었다.

그러나 두 미친 인간이 벌인 행각은 늙은이 말처럼 ‘밥 팔아 똥 사먹는’ 일이었다.

돈 한 푼 없는 거지가 장에만 가면 신나고 사진만 찍으면 좋아하니 어른으로 보였겠나?

 

긴 세월 장돌뱅이로 살았으면 장삿속도 밝을만한데, 돈 쓸 줄만 알지 벌 줄을 몰랐다.

먹고 사는 것보다 찍는 대상이 먼저다 보니, 거지로 사는 게 따 놓은 당상이었다.

결국 그 엄청난 일을 마무리하여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란 책을 완성했다.

그뿐 아니라 ‘장날’과 ‘전국오일장 순례기’, ‘장에 가자’ 등을 연이어 펴내며

장터에 관한 사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미 사라진 시골장들은 그녀의 사진으로 남아 역사가 되었다.

 

나 역시 한가지 일에 매달리면 가족도 보이지 않는다. 

쪽방 살려고 이혼을 요구했는데,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을 위해서라면 결혼하자 면 결혼하고, 이혼하자면 이혼하는 바보다.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 바보가 착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요즘 그런 여자 보기 힘들다.

 

'사진을 위해서라면 부부면 어떻고 동지면 어떠냐?는 것이다.

우린 세상이 만든 굴레는 벗어 던진 지 오래다.

난, 그녀 방패막이 되어 그녀를 힘들고 슬프게 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쳤다.

위태로운 삶을 살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감은 최고로 친다.

 

그런데, 장돌뱅이 정동지가 또 사고를 쳤다.

팬데믹으로 사람을 피해 다닌 2년 동안,

날 따 돌리고 천안 입장장에서 서천 장항장까지 장터를 떠돌아다니며 바람을 피운 것이다.

‘혼자 가본 장항선 장터길’이란 책을 내려고 기차 타고 혼자 돌아다닌 것은 좋으나,

그 고생길은 보나 마나 뻔하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 메고 장꾼들처럼 버스 기다려가며 돌아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히려 장꾼들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늦은 밤 용산역으로 마중을 가면 항상 곤죽이 되어 돌아왔다.

매번 위로는 커녕 ‘사서 고생 한다’는 핀잔을 주었지만, 타고난 업이라 여겼다.

 

드디어 장항선 주변의 충청도 장 21곳의 장터 순례를 억척스럽게 끝냈다,

책을 만들고 전시회도 연다지만, 누가 책은 그냥 만들어주며, 전시는 그냥 열어준다 드냐?

그렇다고 돈 잘 버는 서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려받은 유산 한 푼 없는 거지가 말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벌리고 보는 뱃심 하나는 존경하지만, 빚 갚을 걱정이 태산 같다.

그래서 쪽팔려도, 책 팔려고 매주알 고주알 약을 파는 것이다.

 

어제 출판사에서 보내온 200권의 책을 보니, 책더미에 깔려 죽더라도 기분은 좋았다.

일단 한 권을 꺼내 살펴보니, 헛고생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청도 장꾼들이 푸는 느릿느릿한 사투리의 글도 정겹지만,

사람이나 사물을 찍은 사진들이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여태 흑백 장터 사진에 익숙했지만, 이번에 만든 컬러 사진집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장터 분위기가 마치 펄떡이는 생선처럼 꿈틀거렸다.

역시 사진의 리얼리티는 흑백보다 컬러가 강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장꾼을 대하는 사진가의 시선이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감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이만하면 책을 권해도 손해 볼 일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 감히 책을 추천 한다.

백 마디의 인사나 술보다 한 권의 책을 사 주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책값 25,000원을 정영신 계좌 (하나은행 593-810222-39907)로 보내주시고,

정영신 핸드폰에 (010-2955-8926) 주소를 남겨주면 된다.

기념으로 작가가 서명한 조그만(5X7인치) 작품 사진도 함께 보내 드린다.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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