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답지 않게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강원산간에는 눈이 내렸단다.
세상이 왔다 갔다 하니 날씨마저 헷갈리는 것 같다.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고 하나
지금은 춘분도 한참 지난, 벚꽃이 만발하는 4월이다.

지난 7일, 날 풀려 내복 벗었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모처럼 인사동 나갔다 옛 속담을 실감한 것이다.

 
추워도 인사동거리의 관광객들은 여전했다.

인사동 유목민들도 여럿 만났다.
시인 강 민, 이행자, 김주대, 김명성씨 소설가 김승환선생,
민속학자 심우성선생, 장경호, 박진화 화백 등 

몸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했다.

사진, 글 / 조문호

 

 

 

 

 

 

 

 

 

 

 

 

 

 

 

 

 

 

 

 

 

 



 

피맛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맛길. 멋길이었다.

조선조 때 종로통은 양반이나 지체 높은 사람들이 말 타고 다니던 대로였다.
고관들을 만나면 엎드려 몸을 굽혀야 하기에 서민들은 그 뒤편에 있는 피맛골을 이용했다.

그래서 지명이 피맛(避馬)골이다.

80년대 피맛골 좁은 술집에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들어박혀 예술과 문학을 논했다.
그중 시인 박종수씨가 운영했던 '시인통신'은 인사동 예술가들의 숱한 전설을 만들어냈다.
'열차'집, 전봇대집 등 이 집 저집 다니며 빈대떡과 막걸리, 고갈비와 소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속을 풀던 곳이다.

이젠 그 추억의 피맛골이 개발과 화재로 인해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종로YMCA건물 뒤편에서 인사동 초입까지 이어지는

서피맛골이 아직 남았는데, 이 지역의 행정구역도 인사동이다.

퀴퀴하고 음산한 골목이지만, 오히려 고풍스럽다.

요즘 인사동과 북촌들이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북인사마당에서 예당과 포도나무집으로 들어가던 골목 옆 갈비탕집(옛 토아트)과

'통인가게' 옆집이 철거되어 공사 중이고, '로마네 꽁띠'로 가던 윤보선로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서피맛골 역시 머지않아 개발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쉬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차라리 인사동을 관광객들에게 빼앗긴 유목민들이 이 지역을 이용하면 어떨까 싶다.
한 후배가 얼마 전 개업한 '불타는 소금구이'는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고 들었다.
기회가 닿으면 한번 들려보고, 괜찮은 술집들도 찾아 볼 작정이다.


사진,글 / 조문호

 

 

 

 

 

 

 

 

 

 

 

 

 

 

 

 

 

 

 

신축을 위해 철거된 인사동 업소

 

 

 

 

 

변신하고 있는 북촌 윤보선로

 

 

 





 

지난 31일과 4월1일, 이틀 동안 연이어 인사동에 나왔다.  

 

첫 날은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려 술 생각나게 하더니,
이튿날은 화창한 봄볕으로  꽃놀이를 가고 싶었다.

31일 늦은 오후, ‘화신포차’에서 장경호씨를 만났는데,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신학철형이 차에 받혀 갈비뼈가 세대나 부러졌다는데,

사고차량은 돌려 보내고 입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형의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연세가 있어 쉽게 아물지 않을텐데 걱정스럽다.

 

그리고는 귀가 번쩍 떠이는 제안을 했다.

신학철형을 좌장으로 모시고, 마음 맞는 10여명이 ‘무다헌’에서 정기모임을 갖잖다.
모임 이름은 ‘노세! 노세!’가 어떠냐는 것이다.

요즘 인사동이 예전 같잖다.
거리는 관광객들로 들썩이고, 전시장은 많아도 텅텅 비어있다.
술 한 잔 마음 편히 마실 곳조차 없다.
인사동 마지막 낭만이 될지도 모를 ‘노세!’ 모임에 박수를 보냈다.

이튿날 한정식선생과의 오찬 약속으로 다시 나왔다.
밥 먹고 차 마시며 많은 말씀을 들었으나 기억에 남는 건, 딱 한가지였다.
혼자 사는 친구 소원이 저녁9시 뉴스를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란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런 말씀을 했을까?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라아트'의 '세월호 편지전'에 들렸으나 썰렁했다.

흐르는 세월에 모두들 세월호의 아픔조차  잊었나보다.

 

길거리에서 혼자 사는 이행자 시인도 만났다.


사진,글 / 조문호

 

 

 

 

 

 

 

 

 

 

 

 

 

 

 

 

 

 

 

 

 


 

요즘은 정선에서 서울을 오가며 바쁘게 산다.

 

지난 25일, 오찬약속으로 인사동에 나갔다.

어제 늦게 와서, 내일 다시 떠나야해 마음이 바빴다.
두 곳에서나 술 마실 기회가 있었으나 참았다.

인사동에서 온 종일 지내며, 술 없는 날을 별로 없었다.
술이 없으니, 인사동에 있어도 인사동 같지 않다.


허기야! 30여년전 인사동에 첫 발을 디딜 때부터 술로 시작했으니 오죽하랴!
벗이 그리워 인사동에 나왔고, 벗이 있으니 어찌 술을 마다 할 수 있었겠나.

천상병선생의 시도 낭만도, 모두 술에서 비롯되었다. 

 

술 때문에  먼저 떠난 이들이 눈에 밟히지만 어쩌랴!

인사동과 예술가들의 술에 얽힌 그 숱한 사연들도,

로움에 허기진 쟁이들의 주벽도 이제 전설이더냐?

 

 

 

시장흥행사 하재은씨와 봉평시장 사업단장으로 일하게 될 김윤희씨와
'지리산'에서 밥 먹고 '귀천'에서 차 마시며 여러가지 일들을 의논했다.
하재은씨는 '한국창업경영컨설팅협회' 회장직까지 맡아 더 바빠졌단다.

'아라아트' 사무실에서 전인미 감독과 '눈빛'의 안미숙 편집장도 만났다.
6월에 있을 다큐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기획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는 길에 '허리우드'에서 김명성씨와 권영진씨도 만났고,

인사동 변두리 골목들을 돌며 아련한 추억들도 주워 담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른 인사동은 한가하다.

그림 옮겨주는 배달꾼이나
장사꾼만 오 갈 뿐, 한가하다.

한가하니 인사동이 살아난다.
멈춰 선 사물까지 정겹다.

그립던 인사동 유령들도 보인다.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 전우익
박재삼 강용대 김종구 최영해
   김영수 김용태 여   운 이존수...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8일은 일기예보대로 인사동에도 봄비가 내렸다.

촉촉하게 젖은 거리는 우산 행렬로 알록달록 정겨웠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발길 사이로 반가운 화상이 보인다.

분단의 아픔을 노래 해 온, 강화의 박진화화백이 아닌가.

 

비는 핑게고, 갈 길이 바빠 이야기도 못 나누고 헤어졌다.

 

인사동을 돌다 가장 기분 좋은 일이, 이런 우연찮은 만남이다.

인사동 유목민을 만나야 인사동 실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점심 때 먹은 반주로 몸도 마음도 봄비에 젖었다.

 

 

사진,글 / 조문호

 

 

 

 

 

날씨는 봄인데, 나들이객들의 옷차림은 아직 한 겨울이다.
어저께만도 추워 싸매고 다녔는데, 곧 바로 여름으로 접어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지난 16일 오후6시 무렵, 카메라를 메고 사냥꾼의 심정으로 인사동을 돌아 다녔다.
약속시간이 좀 이른 것 같아, '툇마루‘ 앞 벤취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무는데,
카메라 화인더에 반가운 분들이 등장했다.

강선화씨와 김구, 임경일씨가 골목에 접어들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반가워 ‘툇마루’에서 막걸리 한 잔 했는데,

임경일씨는 ‘청량리588’ 책에 사인해 준 내용을 핸드폰으로 찍어 보여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마누라 열심히 꾹꾹 눌러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취중에 쓴 글이라 기억도 없었다.

‘화신포차’에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득달같아 오래 머물 시간은 없었다.
약속장소에는 장경호씨와 배성일씨가 먼저 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장경호씨의 모습이 확 달라졌다. 취기가 올라 홍조 뛴 얼굴에 부티가 났다.
이야기인 즉 선, 없었던 치아를 복구해 제 모습을 찾았다는데, 참 부러웠다.
나도 썩어 문드러진 이빨 다 뽑아버리고, 틀이라도 해 넣으면 좀 나아질까?

뒤이어 장 춘씨가 합류해 ‘무다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반주로 노래까지 한 곡씩 불렀으나,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전시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셔서 그런지, 요즘 조금만 취해도 맥을 못 춘다.
늦게까지 마셔야하는 장경호씨가 마음에 걸렸으나, 장 춘씨와 먼저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려는데, ‘인사동사람들’로 옮겼다는 장경호씨의 기별을 받았다.

사진, 글 / 조문호

 

 

 

 

 

 

 

 

 

 

 

 

 

 

 

 

 

 

 

 

 

 






 

날씨가 풀린 지난 주말의 인사동은 나들이객들로 넘쳤다.

그렇게 사람은 많지만, 왠지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서로 정을 나눌 마음의 여유도 없지만, 나그네들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거리에 사람이 많아도 전시장들은 텅텅 비어있다. 
대개 길거리 잡화상만 기웃거릴 뿐, 예술엔 관심조차 없다.

인사동을 오랜 세월 기록해 왔지만,
왜? 찍을 가치가 사라졌는데, 계속 찍느냐고 반문해 본다.

기록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수 없지 않은가?
세월이 지나면 나쁜 것도 역사라는 궁색한 변명을 한다.

언제까지 인사동을 짝사랑 할 건지 나도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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