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7시 무렵의 인사동은 주변 도로가 통제된 채,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근로자의 날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벌인 민노총 조합원들과 세월호 유가족 등 이천오백 여명의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려 안국동 방향으로 진입해 인사동 일대가 경찰과의 대치장소가 된 것이다.

‘무다헌’에서 장경호씨를 만나기로 하였으나 골목까지 봉쇄되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경찰저지선을 뚫고 들어갔는데, 강고운, 정희성시인, 장경호화백 등 몇 명이 앉아

바깥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술자리에 퍼져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급하게 소주 반병을 마시고 카메라만 챙겨 나갔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장 구조개악 폐기,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시위대는 경찰차에 밧줄을 매달고

경찰저지선을 흔들어 댔고, 경찰은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쏘는 등, 인사동 일대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오후 9시 40분 경 경찰은 1차 해산명령을 발표한 뒤 대열 맨 앞 참가자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 붙들린 참가자 한명은 머리가 땅에 떨어져 부상을 입어 실려 가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해산하지 않자 경찰은 살수차에서 물포를 시험 발사한 후,  연거푸 다량의 최루액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물포에는 다량의 캡사이신이 섞여 호흡곤란과 피부 고통을 유발했다. 

밤 11시 10분 경부터 약 40-50분 동안 경찰은 훨씬 강한 농도의 캡사이신이 섞긴 물포를 줄기차게 발사했다.

사람들은 물포의 물에 약간만 닿아도 “불에 데인 듯 쓰라렸다”면서,

군사독재 시절 거리에 쏟아진 최루탄 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최루탄은 바람이 불면 날라가지만 이번 최루액 물포는 물 방울이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코와 입을 계속 공격하고 피부에 흡수돼 직격으로 맞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통증을 초래했다.

마지막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나서 물포 발사 중단을 호소했지만, 그들에게도 물포를 쏘아댔다.

 

정말 오래 만에 맡아보는 지독한 최루 냄새였다. 87년도 민주항쟁 시절 당한 후 처음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한 건 없었다. 단지 최류탄에서 최류액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저지방법은 더 치밀해져 시위대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87민주항쟁으로 그 지긋지긋한 군인정치에서 벗어났지만, 그 뒤의 정권들도 별 수 없었다. 

오히려 빈부격차만 높아져 가난한 사람만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정치판은 재벌들과 협잡하느라, 민생은 뒷전이다.

더럽다고 내 버려둘 일도 아니니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물대포 한방 맞고 콜록대며 ‘무다헌’으로 기어들었지만, 술 취한 장경호씨 말대포에 또 한방 얻어 맞았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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