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갤러리브레송 오는 20일까지




후덥지근한 장마철에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전이 열렸다.

오는 2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는 양승우의 ‘청춘길일’이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숱한 전시를 하였건만, 고국에서는 처음 있는 전시다.


몇 일전,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들을 보아 기대는 했으나, 사진들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전시장 가득 돈 냄새와 여자냄새, 마약 같은 찐득한 냄새들이 진동했는데, 인간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 듯,

내면에 숨어있는 원초적 욕망을 꿈틀거리게 했다.


전시를 보고 말한 미술학자 이태호 교수의 말이 적확했다.

“고급스런 하위문화가 넘쳐나는 세상에 저질스런 고급문화를 본다.

양승우의 사진을 보면 그동안 우리 다큐가 세상의 한쪽 구석에서 참으로 소심하고

착하게만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본 작가의 첫인상은 폭력배처럼 우락부락한 것이 아니라, 내성적이고 온순한 사람이었다.

또 겸손했다. 단지 그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력을 읽었을 뿐이다.






조직 폭력배로 삶을 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친구가 사진 찍는 동기부여를 했다고 한다.

대개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내세우는 사회에 감춰진 이면을 기록하려는 사명감에 앞서,

사진가로서 죽은 친구 사진이 한 장도 없음을 후회하며 살아남은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솔직한 말인가? 사실, 잘 모르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을 찍는 게 스스로에게 더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명분 있는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양승우 사진에 등장하는 조직폭력배들도 돈 없는 죄와 못 배운 죄를 짊어 진

사회적 약자에 다름 아니며, 똑 같은 인간일 뿐이다.

사진에 드러난 찐득한 모습 뒤에 인간적인 애잔함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양승우의 사진이 껄끄럽거나,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을 손가락질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밖으로 들어내지 않아 그렇지, 어느 정도의 양면성은 다 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고, 섹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전시장에 오는 도중 충무로 역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차가 밀려 내려가 앞 차를 받았다.

경미한 충격이라 내려 보니 차에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러나 당연한 듯 인사사고를 접수하라는 것이다.

영업용기사야 힘들게 일하는 것 보다 병원에서 지내며 일당을 받을 욕심인지 모르지만,

뒷자리에 앉은 보험회사원까지 병원에 가겠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예전에는 목이라도 움켜지며 아픈 척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런 지저분한 세상에, 의리 하나로 뭉쳐 사는 그들을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양승우는 2006년 도쿄공예대학 미디어아트 박사전기과정을 수료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청소를 비롯하여 온갖 잡일에 전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 사이 가부키초의 야쿠자를 시작으로 고토부키초의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 곤타씨 등 서너 개의 테마를 동시에 찍었다.




20여 년 동안 열 번 이상의 사진전과 네 권의 사진집을 냈고, 열 번 이상의 사진상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 도쿄의 ‘젠 포토 갤러리’와 프랑스 파리의 ‘인 비트윈 아트 갤러리’ 소속작가지만,

여전히 일용직 노무자로 일하고 있다. 이것이 다큐멘터리사진의 비참한 현실이다.





언급한 이력이나 유명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진들이 주변을 오가며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찍었다는 것이다.

함께 즐기며 찍지 않고는 이렇게 강력한 소구력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교도소는 물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각오로 온 몸을 바쳐 즐기는 사진가가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전시된 사진들은 옛 친구들과 놀던 2003년부터 2006년 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은

우리나라 조폭집단의 실상이지만, 일본의 야꾸사들을 찍은 사진집도 펴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선 조직폭력배 친구들이 많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본은 달랐다.

찍으려는 작가의 진정성을 알아보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와 작가의 경계가 없다. 그리고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마저 허문 독창성이 있다.

주변의 누군가에 카메라를 쥐어 주고는 자신이 사진화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혹자는 “그게 어떻게 양승우의 사진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누가 셔터를 눌렀나 보다 함께 교감하는 작가의 의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사진가가 찍어 온 야쿠샤, 노숙자, 동성애자 사진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듯 친밀하게 다가 온다.

어디가 진실이고 허구인지가 궁금할 정도로 기록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자신이 당하는 현실 속의 분노와 욕망의 찌꺼기까지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밑바닥 인생의 솔직하고 과감한 접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우리사회의 숨겨진 일면을 담아낸 이 자전적 기록들은 누가 뭐래도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이토록 훌륭한 사진가이건만, 살아가는 현실은 비참하다. 한국에 들어 와 살고 싶지만,

한국에는 일거리 얻기가 힘들어, 그나마 아르바이트 일거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본에서 산단다.

그 것도 몇 년 동안 길거리에 노숙하며 살았는데, 사진과 재학 때 후배였던 지금의 아내가 결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사진가 양승우

전시 개막식에서 했다는 그의 말에서 고집스런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오늘 여기 오신 여성분들이 볼 때는 제 사진이 좀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사진이냐? 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면 싸울 수 밖 에 없습니다. 예술이란 답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앞으로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의 ‘눈빛사진가선 27집’ 양승우사진집 “청춘길일”이 나왔다,

가격은 12,000원이다.











덥지근한 장마철에 눈이 번쩍 뜨이는 사진전이 열렸다.
오는 2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는 양승우의 청춘길일이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숱한 전시를 하였건만, 고국에서는 처음 있는 전시다.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내가 쉬는 날을 택해  함께 전시장을 찾았다.

여기 저기 볼일이 많아 차를 끌고 나왔는데, 정차 중에 브레이크가 밀려 경미한 접촉사고가 난 것이다.

간신히 처리하고 전시장에 들렸더니, 양승우씨 내외를 비롯하여 김남진 관장도 있었다.



몇 일전,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들을 보아 기대는 했으나, 전시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전시장 가득 돈 냄새와 여자냄새, 마약 같은 찐득한 냄새들이 진동했는데,

인간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 듯, 내면에 숨어있는 원초적 욕망을 꿈틀거리게 했다.

오랜만에 사진다운 사진을 보았다.





시를 보고 말한 미술학자 이태호 교수의 말이 적확했다.
고급스런 하위문화가 넘쳐나는 세상에 저질스런 고급문화를 본다.

양승우의 사진을 보면 그동안 우리 다큐가 세상의 한쪽 구석에서 참으로 소심하고

착하게만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본 작가의 첫인상은 폭력배처럼 우락부락한 것이 아니라, 내성적이고 온순한 사람이었다.

또 겸손했다. 단지 그의 눈빛에서 강한 의지력을 읽었을 뿐이다.






조직 폭력배로 삶을 살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친구가 사진 찍는 동기부여를 했다고 한다.

대개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이 내세우는 사회에 감춰진 이면을 기록하려는 사명감에 앞서,

사진가로서 죽은 친구 사진이 한 장도 없음을 후회하며 살아남은 친구들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솔직한 말인가? 사실, 잘 모르는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을 찍는 게 스스로에게 더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명분 있는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양승우 사진에 등장하는 조직폭력배들도 돈 없는 죄와 못 배운 죄를 짊어 진

사회적 약자에 다름 아니며, 똑 같은 인간일 뿐이다.

사진에 드러난 찐득한 모습 뒤에 인간적인 애잔함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양승우의 사진이 껄끄럽거나, 그 사진 속의 사람을 손가락질 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밖으로 들어내지 않아 그렇지, 어느 정도의 양면성은 다 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고, 섹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앞서 언급했지만, 충무로 역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차가 밀려 앞 차를 받은 일이 있었다.

경미한 충격이지만 내려 보니, 차에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러나 당연한 듯 인사사고로 접수하라는 것이다.

영업용 기사야 힘들게 일하는 것 보다 병원에서 지내며 일당을 받아 낼 욕심인지 모르지만,

뒷자리에 앉은 보험회사원까지 병원에 가겠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예전에는 목이라도 움켜지며 아픈 척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런 지저분한 세상에, 의리 하나로 뭉쳐 사는 그들을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양승우는 2006년 도쿄공예대학 미디어아트 박사전기과정을 수료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청소를 비롯하여

온갖 잡일에 전전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 사이 가부키초의 야쿠자를 시작으로 고토부키초의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 곤타씨 등 서너 개의 테마를 동시에 찍었다.


20여 년 동안 열 번 이상의 사진전과 네 권의 사진집을 냈고, 열 번 이상의 사진상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 도쿄의 젠 포토 갤러리와 프랑스 파리의 인 비트윈 아트 갤러리소속작가지만,

여전히 일용직 노무자로 일하고 있다. 이것이 다큐멘터리사진의 비참한 현실이다.






언급한 이력이나 유명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진들이 주변을 오가며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찍었다는 것이다.

함께 즐기며 찍지 않고는 이렇게 강력한 소구력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교도소는 물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각오로 온 몸을 바쳐 즐기는 사진가가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전시된 사진들은 옛 친구들과 놀던 2003년부터 2006년 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은

우리나라 조폭집단의 실상이지만, 일본의 야꾸사들을 찍은 사진집도 펴낸 적이 있었다.

한국에선 조직폭력배 친구들이 많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본은 달랐다.

찍으려는 작가의 진정성을 알아보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피사체와 작가의 경계가 없다

주변의 누군가에 카메라를 쥐어 주고는 자신이 사진화면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혹자는 그게 어떻게 양승우의 사진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가 셔터를 눌렀나 보다 함께 교감하는 작가의 의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사진가가 찍어 온 야쿠샤, 노숙자, 동성애자 사진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듯 친밀하다.

어디가 진실이고 허구인지가 궁금할 정도로 기록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자신이 당하는 현실 속의 분노와 욕망의 찌꺼기까지 과감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밑바닥 인생의 솔직하고 과감한 접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충격을 안겨 준다.
우리사회의 숨겨진 일면을 담아낸 이 자전적 기록들은 누가 뭐래도 역사로 길이 남을 것이다.

이토록 훌륭한 사진가이건만, 살아가는 현실은 비참하다. 한국에 들어 와 살고 싶지만,

한국에는 일거리 얻기가 힘들어,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본에서 산단다.

그 것도 몇 년 동안 길거리에 노숙하며 살았는데, 사진과 재학 때 후배였던 지금의 아내가 결혼을 서둘렀다고 한다.

 


 


전시 개막식에서 했다는 그의 말에서 고집스런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오늘 여기 오신 여성분들이 볼 때는 제 사진이 좀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사진이냐? 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면 싸울 수 밖 에 없습니다.

예술이란 답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앞으로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의 눈빛사진가선 27양승우사진집 청춘길일이 나왔다,
가격은 12,000원이다.


글 / 조문호








좌로부터 필자 조문호, 양승우 부부, 뒷줄 김남진 브레송관장과 장터사진가 정영신


 



가부키초

가부키초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여섯 번 째 작가로 ‘권철 론’이 전시되고 있다. 6월20일 오후6시30분에 개막된 권철의 사진전은 오래 전부터 기다려 온 전시였다.

개막시간을 맞추려고 기다리는 중에 ‘아라아트’ 김명성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미스터 브레인워시전' 기자회견이 열리는데, 왜 오지 않냐는 것이다. ‘브레송’가는 길에 들릴 생각으로 서둘러 나갔으나, 전시장은 기자들로 만원이었다. 그 많은 기자들이 취재하는데, 나 까지 끼어들 필요가 있나 싶었으나, 인사동에서 열리는 대형전시라 사진만 찍고 충무로의 ‘갤러리 브레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로 가는 중에 아내로부터 독촉이 왔다. 개막식을 못하고 기다리니, 빨리 오라는 것이다. 사진판의 기록자 곽명우씨가 늦어, 대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데, 사진도 사진이지만, 시간이 늦어 마음이 바빴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주인공 권 철을 비롯하여 ‘브레송’ 김남진 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교수,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사진가 김문호, 성남훈, 강제욱, 신동필, 마동욱, 양시영, 이한구, 이일우, 김 원, 정영신, 김지연, 이정용, 이주영, 김진석, 송주원, 나떠구, 홍윤하, 김영호, 박영환, 마기철, 김주혁씨 등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중에는 하재은, 구자호, 곽명우씨도 나타났다.

개막식에서 이광수교수의 작가론과 작가 권철의 힘들게 사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라앉았던 분노가 또 다시 치밀어 올랐다. 한 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와 사진판 비리에 목소리를 높여 왔던 것도 권철 같은 고통 받는 다큐멘터리사진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민식 사진상이 끼리끼리 해 처먹는 것도 모르고, 작년에 권철씨가 들러리를 선 적도 있었다. 사진을 모르는 어린애가 보아도 수상작보다는 권철의 사진이 뛰어나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사진도 사진이지만, 권철은 어렵게 작업을 이어가는 의지의 사진가가 아니던가?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야스쿠니. 군국주의의 망령



'브레송'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사진인을 찾아서’란 이 기획전은, 사진은 좋지만, 속칭 진골 성골에 가려있는 진정한 사진가를 찾아 내어 작가의 전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라, 한 가지 주제로  보여주는 일반 전시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보아왔던 회고전 형식의 원로전과도 다른 것은 이건 종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생각이나 형식들이 변해가는, 작가들의 주제와 접근방식, 그리고 진전하는 과정들을  한 눈에서 본다는 것은 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안성마춤인 것이다.


이번에 초대된 다큐사진가 권철은 못 말리는 독고다이다. 이십대 중반에 사진 공부하러 일본 들어가 환락가 신주쿠 가부기초를 촬영했다. 보통 깡다구가 아닌 것이다. 자칫하면 야쿠자 한데 맞아 죽는다. 18년 동안 기록한 그 사진으로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도 수상했다. 그렇다고 주먹들의 세계만 보여주는 소재주의에 빠진 사람도 아니다.


그는 모두가 외면하는 한센병회복자의 삶은 담은 ‘텟짱’으로 데뷔한 인간미 넘치는 사진가다. '텟짱'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이 진실을 찾아내어 밝히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었다. ‘텟짱’은 소외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에서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일본 한센병회복자 요양원에서 찾았는데, 주인공은 요양소에 살았던 시인이자 한센병 회복자인 텟짱이었다. 권철은 텟짱이 사망하기 까지, 14년 동안 그의 삶을 사진으로 담아 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권철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헌신적인 정신으로 무장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결정적인 사진 한 두 장만 찍으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안정된 기자 자리를 사진을 위해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취재하다, 무너진 건물에 끼여 양 다리를 절단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한계를 느낀 것이다. 사람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밥벌이라는데, 어찌 회의감이 들지 않았겠는가?

 


이호테우

이호테우

이호테우




저널리즘 사진기자는 뉴스를 찾아가지만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권철은 조직이나 배경보다 세상과 독대하며 세상을 찍어 왔다. 그러면서도 외양이나 현상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그리고 구조와 본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자신의 주제로 삼았는데, 가부키초, 야스쿠니, 오오쿠보 코리안타운, 우토로 등 모두가 일제 식민 경험과 연결된 사건들이다.

그 이후, 그의 자식이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다, 가족을 위해 안정된 생활권을 모두 버리고, 무작정 한국으로 귀국하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와 사진계의 현실을 주위에서 알려주었으나, 그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제주 거리에서 풀빵 장사로 연명하며 어려운 작업을 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제주에 정착하며 시작한 ‘이호테우’작업은 중국 자본 침탈의 역사를 한 해녀를 통해 풀어 간 것이다, 돈이 얽히면서 뺏고 빼앗기는 추악한 인간 세계를 들춰내는 작업이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평생을 살아 온 해녀 할망의 집념과 쓸쓸함이 사진에 묻어있다.

그리고 신 자유경제 물결로 인해 서서히 중국인들이 점령해가는 제주의 모습을, 바다 멀리 중국인 관광객들을 가득 실은 어마어마한 크루즈선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권철은 작년 여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기도 했다.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사진으로 고발하기 위해 제주시 제주목관아 안에서 사진전을 열겠다고 요청하자 제주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허가 해줬다. 그런데 광복회 회원 몇 명이 나타나 일장기가 드러난 사진을  광복 70주년에 걸려 하느냐고 항의하자, 제주시는 그 항의를 받아들여 사진전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린 것이다. 일장기가 있으면 친일이라는 그 단순 무지한 문맹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어찌해야 좋은가?,

그래서 야스쿠니 사진들을 이호테우 해변 길거리에서 전시 한 후, 모두 불태워버렸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항거였지만,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항거의 뜻도 담겨있다. 그는 있는 사건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있는 사건을 이미지화 한 후 그것을 퍼포먼스를 통해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어가는 사진가다.


그는 야스쿠니 사진을 불 태웠던 곳 이호테우 매립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주 전 지역을 순회 전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에서 행동하는 사진가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권철이 세상을 독대한다는 것은 곧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망각해버린 역사에 대해서만도 아니다. 자기들끼리 나눠 먹고, 예술이라 이름붙여 노닥거리는 한국 사진판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있다. 




텟짱

텟짱



권철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걸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진판 자체가,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그가 20년간 살아온 일본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나쁘고, 무식한 나라가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제국주의적 근성을 버리지 못해 판을 깨고 욕을 먹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 대해 배려할 줄 알고, 돈이 없거나 힘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무시하지 않는다. 실력이 있으면 그만큼의 대접을 해 준다.


그렇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약육강식의 정글이고, 철면피의 세계다. 비단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판은 더욱 심하다. 권력 있는 기득권자는 자기 패 끼리 판을 짜고, 어중간한 사진가는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온갖 추파를 보낸다. 권철이 좌절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한국 사진계의 연줄과 인맥이었다. 실력은 뒷전이고, 줄서기를 잘 해야 하는 이 썩어 문드러진 사진판에 어찌 구역질이 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의 작업은 중단되지 않는다. 2011년 일본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와 후쿠시마 원전을 취재한 후 국내 노후 핵발전소도 찍는 중이다. 두 나라의 핵발전소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 메시지 전달은 분명하다. 그의 다음 작업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에서 땅을 침탈하는 중국인들이라고 한다.

비평가 이광수교수는 권철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면서  문학적으로 약간의 표현 방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개 두 마리가 서성거리는 이미지에서 세상이 망해 인류가 사라진 후의 지구를 암시하고, 새끼줄에 묶인 죽은 굴비의 쭈그러진 모습에서 인간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미래를 말한다는 것이다. 


갤러리 브레송’ (02-2269-2613)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630일까지 이어진다.

 


글 : 조문호 / 아래사진 : 정영신, 조문호




-권 철 사진전 개막식과 뒤풀이 사진이다-






























































































































다큐 사진가 마동욱의 '고향의 사계'사진전이 지난 15일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이었으나, 전시장엔 축하객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장흥에서 올라 온 고향 분들이었다. 대단한 고향사랑에, 대단한 인정이었다.

 

여지 것 전시장 개막식에 그리 많이 돌아다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동내 이장에서부터 방귀깨나 뀌는 분들은 다 왔더라.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귀남씨를 비롯하여

정동영, 이종걸, 윤호중, 황주홍의원 등 국회의원만 네 명이고, 오명준 장흥 향우회장,

이금호 장흥문화원장, 장흥신문 김선욱 편집인 등 내노라하는 분들이 줄줄이 나와 전시를 축하했다.

작가가 재벌이나 권력자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개뿔도 없는 사진가에 불과하다.

이 건 고향사랑도 사랑이지만, 마동욱의 헌신적인 인간성에 매료된 것 같았다.

 

오히려 사진가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엄상빈씨를 비롯하여 이규상, 김보섭, 이기명, 김영태, 고정남,

김형진, 김남진, 남 준, 곽명우, 정영신씨 등 여러 명이 참석했으나, 고향사람들에 가려 버렸다.

 

사진가 마동욱의 고향을 사랑하는 사진작업은 30여년에 걸쳐 이어져 왔다.

그는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에서 태어나 교도관과 소방관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아예 고향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찍는 사진은 돈벌이와 전혀 거리가 먼 사진이다.

안정된 직장 버리고, 돈 안 되는 사진가의 길을 택한 배짱이 도대체 뭘까?

그를 돈키호테라 칭한 어느 기자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누군들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여지 것 시골을 찍어 고향이란 주제로 책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한 사진가는 더러 있지만,

자신의 고향에 30 여 년 동안 메 달려 온 사진가는 처음이다,

마동욱의 작업이 높게 평가받는 것도 일회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지속성에 있는 것이다.

그게 다큐멘터리사진의 가치다.

 

장흥댐 건설로 수몰될 수밖에 없었던 유치면 일대도 샅샅이 기록해 두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의 한이 응축된 사진들이다.

그 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나,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기록해 왔다.

그의 사진 자체가 장흥의 역사나 다름없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묵묵히 해 온 것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고향으로, 시골 들판이나 정겨운 마을들이 마치 도면처럼 펼쳐져 있다.

드론(Drone) 을 이용해 찍은 300여개 마을 사진을 이어 붙인다면, 한 편의 장흥여지도나 다름없다.

그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전경을 담으려 수없이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새처럼 날아 조감도를 찍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드론장비가 나오자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가난한 사진가의 형편으론 버거운 일이었으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조종이 쉽지 않아 바다 속으로 빠지거나 추락해 파손된 드론만 네 대나 된다고 했으니,

그 경제적 어려움이야 보나마나다.

 

전시된 마동욱 사진은 많은 사진인 들에게 사진하는 의미를 되묻게 했다.

사실적인 현실이 배제된 채,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사진들이 판치고 있다.

예술이란 이름에 포장되어 허구의 이미지만 양산하는 세태라,

작가는 많지만 정작 사진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본질에 대한 사실적 관찰을 중시하는 마동욱의 사진은 정직하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의 사진들은 연출이나 트릭이라고는 전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직관과 정확한 기록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작가적 권위나 개인의 주장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작가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진도 사진이지만, 마동욱의 남을 배려하는 인간성이다.

작품에 앞서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선배들로 부터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싸늘한 가슴으로 머리만 굴리는 작가들이 득실대는 현실이라, 따뜻한 심성을 가진 마동욱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일례로, 장흥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어딘데, 전시마다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며 알아차렸다.

이건 단지 돈과 시간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이번에 펴낸 하늘에서 본 고향마을고향사진집 두 권을 비롯하여 ! 물에 잠긴 내고향”,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 “그리운 추억의 고향마을”, “탐진강의 속살등 아홉 권의 사진집을 펴냈다.

가난한 살림에 잘 팔리지도 않는 사진집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단순한 애향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명감이었다. 그래서 2012전남문화상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동욱이 사진으로 애써 남기려고 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잊고 있는 마음의 고향 이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시골마을의 공동화는 가속화 되고 있다. 점점 사라져 가고 변해가는

시골마을을 되살려야 하는 사회적 운동이 절실한 때다.

만약 사진인 들이 힘을 모아 각자의 고향을 찍는다면, 신판 대동여지도도 가능할 것이다.

마동욱의 고향 사진전을 계기로 모든 국민들의 애향심에 불이 붙었으면 좋겠다.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에서 '고향의 사계‘ -드론으로 본 내 고향 장흥-

'하늘에서 본 장흥’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두 권의 사진집도 나왔다.

'고향의 사계'256, 6만원. '하늘에서 본 장흥'4484만원이다.

 

전시는 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전시 개막식 사진과 '사동집' 뒤풀이 사진들인데, 무려 180여장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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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빠션 죽입니더!










































































































































































지난23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이재갑 사진전 ‘역사, 사진을 만나다’ 개막식에 갔더니, 전시와 함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란 사진집이 나왔더라. 난, 가난한 사진쟁이라 비싼 사진집은 엄두도 못내지만, 전시 때는 10,000원에 팔아 꾸준히 구입해 온 사진집이다. ‘눈빛사진가선’시리즈로 나오는 이 책은 내용도 알찬데다 판형 도 적어 휴대하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집을 펼쳐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사진집은 베트남전에서 학살된 원주민들의 증오비를 찾아 기록한 책이었다. 한국에는 월남전 참전 기념비가 백여 개나 되지만, 대신 베트남 학살지에 세워 둔 증오비도 숱하게 많았다. 내 나이와 비슷한 세대야 월남전에 직간접으로 관여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원주민들이 한국군을 증오하는 것은 미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끌어들인 것도 그들이지만, 원주민들과 직접 마주치는 마을 수색작전은 대부분 한국군에 맡겼다고 한다. 반공이념이 확고한 국가관과 낯선 환경, 그리고 전쟁이라는 긴장감 속에 전개된 수색작전은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각 지에 세워진 증오비의 대부분이 한국군의 만행에 대한 기록과 죽은 이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 사건을 천대만대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내용이라 한다. 물론 참전한 한국군도 오천여명이나 사망하고 만 여명이 고엽제와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죄 없는 원주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 당시 한국군 학살 유형 가운데 전략촌 학살이라는 것이 있었다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략촌이란 게릴라가 아닌 순수한 양민들을 전략촌이라 부르는 철조망 안으로 몰아넣고, ‘철조망 밖은 모두 게릴라라는 흑백논리로, 주민을 힘으로 다스리기 위한 강제이주정책이었다. 1962년부터 시행된 이 전략촌은 마을이라기보다는 포로수용소처럼 만들어 운영하였다고 한다. 한국군이 원주민을 많이 죽인 유형의 하나였던 전략촌 학살은 비참했다. 한국군이 사상을 당하면 전략촌내에 수용된 열 명을 끄집어내 보복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의 심리적 효과를 노려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증오심에 불타게 했던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비실비실한 보충역이라 실전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여러 명의 친구들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들로부터 한국군의 용맹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 친구는 베트콩을 많이 죽인 포상으로 특별휴가까지 왔다며 선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그 때만해도 격전 속의 전과라고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많이 죽였다고 포상과 함께 특별휴가까지 보내 준다는 것은 그만큼 학살을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잔인하게 죽였다는 무용담을 입버릇처럼 자랑한 것으로 보아 학살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집에 실린 구수정씨와 유이탄 학살의 생존자인 찐프억의 구술 인터뷰를 보니 더 귀가 막혔다. 한 번 들어보라.

“두려워서였을 거야. 그러니까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마구 총질을 해댄게지. 반대로 베트콩들은 침착했어. 그들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명중에 확신이 설 때만 방아쇠를 당겼지. 총알 하나라도 아껴야만 했으니까. 총소리만 들어도 한국군인지 베트콩인지 알 수 있었어. 베트콩 총소리는 ”따콩!“했는데 한국군 총소리는 ‘드드드드득 꽝’하고 들렸지. 미군들은 항상 통역병을 달고 다니며 베트콩 용의자를 가려내 포로로 잡아갔지. 그러나 한국군들은 확인도 않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갓난아이든 가리지 않고 쏘아 죽였어”

“어차피 당할 학살이었다면 차라리 미군에게 당하는 편이 낫지.. 밀하이에는 미국에서 동네마다 학교도 세워주고 병원도 지어주고 개인 보상도 다 했어. 아, 말해 뭐해. 밀라이 위령제는 미국 참전 군인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고 시민들도 줄줄이 와서 참배하고... 우리가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도 어떻게 한국 사람은 45년 동안 코빼기도 한 번 비치질 않냐고!”

부끄러웠다.
나라가 반 토막으로 갈라지며 생겨 난 이데올로기가 대관절 무엇이기에 우리민족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 것인가? 제주4,3사건에서 부터 여수반란사건 등 모든 잔인한 학살은 거기서 비롯된 것 아니던가?
늦었지만 과오를 반성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주민들에게 사죄하자. 그 참상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사진집도 구입하고, 베트남에 갈 기회가 있다면 증오비를 찾아 추모의 꽃송이도 올리자. 우리민족이 그토록 잔인한 민족은 아니잖은가?




글 / 조문호 (사진집에 게재된 이재갑 작업노트와 정훈 해설에서 일부 옮김)










지난23일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 이재갑 사진전 ‘역사, 사진을 만나다’ 개막식에 갔더니, 전시와 함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란 사진집이 나왔더라. 난, 가난한 사진쟁이라 비싼 사진집은 엄두도 못내지만, 전시 때는 10,000원에 팔아 꾸준히 구입해 온 사진집이다. ‘눈빛사진가선시리즈로 나오는 이 책은 내용도 알찬데다 판형이 적어 휴대하기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집을 펼쳐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사진집은 베트남전에서 학살된 원주민들의 증오비를 찾아 기록한 책이었다. 한국에는 월남전 참전 기념비가 백여 개나 되지만, 대신 베트남 학살지에 세워 둔 증오비도 숱하게 많았다. 내 나이와 비슷한 세대야 월남전에 직간접으로 관여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원주민들이 한국군을 증오하는 것은 미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전쟁을 일으키고 끌어들인 것도 그들이지만, 원주민들과 직접 마주치는 마을 수색작전은 대부분 한국군에 맡겼다고 한다. 반공이념이 확고한 국가관과 낯선 환경, 그리고 전쟁이라는 긴장감 속에 전개된 수색작전은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 각 지에 세워진 증오비의 대부분이 한국군의 만행에 대한 기록과 죽은 이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 사건을 천대만대 기억하고 잊지 말자는 내용이라 한다. 물론 참전한 한국군도 오천여명이나 사망하고 만 여명이 고엽제와 부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죄 없는 원주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 당시 한국군 학살 유형 가운데 전략촌 학살이라는 것이 있었다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략촌이란 게릴라가 아닌 순수한 양민들을 전략촌이라 부르는 철조망 안으로 몰아넣고, ‘철조망 밖은 모두 게릴라라는 흑백논리로, 주민을 힘으로 다스리기 위한 강제이주정책이었다. 1962년부터 시행된 이 전략촌은 마을이라기보다는 포로수용소처럼 만들어 운영하였다고 한다. 한국군이 원주민을 많이 죽인 유형의 하나였던 전략촌 학살은 비참했다. 한국군이 사상을 당하면 전략촌내에 수용된 열 명을 끄집어내 보복으로 죽였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의 심리적 효과를 노려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증오심에 불타게 했던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비실비실한 보충역이라 실전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여러 명의 친구들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들로부터 한국군의 용맹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 친구는 베트콩을 많이 죽인 포상으로 특별휴가까지 왔다며 선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는데, 그 때만해도 격전 속의 전과라고만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많이 죽였다고 포상과 함께 특별휴가까지 보내 준다는 것은 그만큼 학살을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잔인하게 죽였다는 무용담을 입버릇처럼 자랑한 것으로 보아 학살이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집에 실린 구수정씨와 유이탄 학살의 생존자인 찐프억의 구술 인터뷰를 보니 더 귀가 막혔다. 한 번 들어보라.

“두려워서였을 거야. 그러니까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마구 총질을 해댄게지. 반대로 베트콩들은 침착했어. 그들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명중에 확신이 설 때만 방아쇠를 당겼지. 총알 하나라도 아껴야만 했으니까. 총소리만 들어도 한국군인지 베트콩인지 알 수 있었어. 베트콩 총소리는 ”따콩!“했는데 한국군 총소리는 ‘드드드드득 꽝’하고 들렸지. 미군들은 항상 통역병을 달고 다니며 베트콩 용의자를 가려내 포로로 잡아갔지. 그러나 한국군들은 확인도 않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갓난아이든 가리지 않고 쏘아 죽였어”

“어차피 당할 학살이었다면 차라리 미군에게 당하는 편이 낫지.. 밀하이에는 미국에서 동네마다 학교도 세워주고 병원도 지어주고 개인 보상도 다 했어. 아, 말해 뭐해. 밀라이 위령제는 미국 참전 군인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고 시민들도 줄줄이 와서 참배하고... 우리가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도 어떻게 한국 사람은 45년 동안 코빼기도 한 번 비치질 않냐고!”

부끄러웠다.
나라가 반 토막으로 갈라지며 생겨 난 이데올로기가 대관절 무엇이기에 우리민족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 것인가? 제주4,3사건에서 부터 여수반란사건 등 모든 잔인한 학살은 거기서 비롯된 것 아니던가?

늦었지만 과오를 반성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원주민들에게 사죄하자.
그 참상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사진집도 구입하고, 베트남에 갈 기회가 있다면 증오비를 찾아 추모의 꽃송이도 올리자. 우리민족이 그토록 잔인한 민족은 아니잖은가?

글 / 조문호 (사진집에 게재된 이재갑 작업노트와 정훈 해설에서 일부 옮김)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다섯 번째 사진가,
이재갑의 ‘역사, 사진을 만나다“ 전이 지난 23일부터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전시와 함께 ‘눈빛사진가선 24호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사진집도 출판됐다.

지난 23일 오후6시30분부터 열린 개막식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 김남진관장,

사진비평가 이광수씨를 비롯해 구자호, 엄상빈, 정진호, 김문호, 박신흥, 성남훈, 이상엽,

강제욱, 마동욱, 방종모, 하지권, 이경문, 정재열, 노승장, 이은숙, 윤승준, 남 준, 곽명우,

이한구, 오혜련, 이혜숙씨등 많은 사진가 들이 참여해 전시를 축하했다.

개막식에서 사진비평가 이광수, 이규상대표가  말했듯이. 사진이 너무 좋았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들이 독버섯처럼 피어 있었다.
일제의 잔재와 한국전쟁에 의해 희생된 동족의 처참한 학살현장,
베트남에서 저지른 잔혹행위와 우리민족 치욕의 현장들을 샅샅이 찾아냈다.


이재갑의 사진들은 자극적이거나 이상적으로 치장되지 않고,
조용히 대상을 관조하며 사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사진작업들은 하나같이 역사의 이면을 조명했다.
정면에 기록된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묻힌 침묵의 역사였다.
바로 국가가 감춘 치욕의 역사였다.


또한 사족을 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울림이 더 크다.
울분을 삼켜야 했던 사진가의 감정이 보는 이에게 바로 전달되었다.
이건 예술지상주의에 빠진 사진가들에 대한 일대 경종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부터 광대들의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무대 뒤의 쓸쓸한 풍경을 보여주며 사진판에 등장했다.
모두들 무대의 화려함에 관심 가질 때, 그는 뒤에 숨겨진 것들을 보여준 것이다.

사회적 소수인 혼혈인 역시 냉담하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세상에 항변했다.
경산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현장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과 일본에 흩어진 조선인들의
유산 작업, 베트남의 증오비 등 하나같이 패자의 한을 들춰냈다.

그는 머리로 찍은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작업해 왔다. 
상처투성이의 현장과 정면으로 맞서는 아픔 또한 컸을 것이다.
그 트라우마에 벗어나려 시작한 ‘뇌안의 풍경’ 역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 건 기록과 기억의 역사를 넘어 개인의 주관적 기억을 담은 역사였다.   

가슴아픈 역사를 담은 대 서사시,  이재갑 ‘역사, 사진을 만나다“ 전은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눈빛출판사 발행, 12,000원














개막식과 뒤풀이의 이모 저모










































































































2016년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다섯번째 '이재갑 론'이 5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시된다.


글 /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대교수)


사진가 이재갑의 작업은 과거와의 대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지금까지 30년을 이어 왔다. 그가 대면하는 과거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여러 작은 목소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일반화 할 수 없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그마저도 글이나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질적이고 중층적인 과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록과 기억 그리고 역사의 재구성에 관해 분명하고 확실한 인식이다.

이재갑 작업은 세 개의 솥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역사'다. 역사 가운데 아픈 역사, 그 아픈 역사는 사람을 억압하고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식민과 전쟁에 관한 역사다. 그가 구성하는 역사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전면에 등장한 것은 승리의 역사고, 환호의 역사일 뿐이다. 아픈 역사는 드러나지 않고 묻혀버린 침묵의 역사다. 이면의 역사, 이것이 이재갑 작업의 두 번째 솥발이다. 세 번째는 기억이다. 기록할 수 없는, 그렇다고 토해낼 수도 없는 트라우마. 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 이 기억에 대한 담론을 사진으로 작업한다. 이 셋이 모여 이재갑의 사진을 이루니 그것은 '아픈 역사를 이면과 기억으로 엮는 서사시'다.





1. 역사를 공유하는 방식

사진가 이재갑의 아픈 역사에 대한 작업은 논리적으로 매우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이 땅에 미국이 주둔하며 생겨난 혼혈인들에 대한 사진 작업으로 전쟁의 아픈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혼혈인'으로 출발한 그의 아픈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기원을 찾는 방향으로 가면서 경산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과 일제강점기 그들이 이 땅에 남기고 간 건축물 유산에 대한 작업과 일본 내 흩어져 있는 조선인 강제 연행과 관련된 유산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전쟁으로 간다. 그는 역사를 말하되 아픈 역사를 말하고, 아픈 역사를 말하되 그것이 남기고 간 유산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 유산이라는 것은 여러 역사가 이질적으로 섞여 있는 것들이다. 그것을 국가가 정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잊어라 해서 잊히는 것도 아니다. 이재갑이 사진으로 역사를 말하는 방식은 그 아픈 역사에 담긴 중첩과 이질의 여러 면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사진가 이재갑이 그리는 아픈 역사는 항상 두 개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의 '혼혈인'은 국가가 자유를 수호했다는 '국민'이 갖는 시선이 가려버리는 또 하나의 다른 시선을 말하고자 한다. 미군이 공산당 빨갱이들의 침략을 지켜내는 은혜를 베풀어주었다는 국가 중심의 거시사에 던지는 의문이다.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 관한 두 개의 시선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작품,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남의 나라 민간인을 몰살한 것에 대해 이쪽에서는 영웅으로 기념을 하고, 저쪽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증오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개의 시선은 반드시 특정한 시선 둘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정된 둘이 아닌 드러나지 않은 여럿을 의미한다. 그것이 '혼혈인'에 관한 것일 때는 그들을 비정상 존재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는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된 그 피해자들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진가 이재갑이 말하는 아픈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중첩되어 있다. 그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들의 문제일 수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역사를 표상하는 대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할 뿐, 작가로서의 메시지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사진은 중의적이다. 보여진 그 이미지에는 보여진 것과 감추어진 것, 그 둘의 의미를 동시에 담는다. 역사를 다루되 아픈 역사를 다루고 그 아픔을 사진가가 웅변하지 않고 독자가 그 안에 들어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사진가가 그 아픔을 우선 가져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다.

사진가에게는 작업 때마다 부닥쳐야 하는 고통의 대면이다. 치부든 연명이든 자신의 사진이 삶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스러울 정도의 작가 정신을 가진 터라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고통을 감내한다. 그래서 아픈 역사를 다룬 사진가가 못내 아프다. 그의 사진을 읽는 독자들도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2. 이면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

아픈 역사는 이면에서 침묵하고 있는 역사다. 침묵하다 보니 존재하지 않는 듯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하다. 크고 강하고 진지한 다수의 목소리에 눌려 작고 약하고 사소한 듯한, 여러 목소리들이다. 사진가는 그것들을 듣고 싶어한다. 사진가 이재갑의 첫 작업은 무대 뒤의 모습을 담은 1991년의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 앞이 보여주는 그 화려함에 관심을 가질 때 그는 그 뒤에 숨겨진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러운 연습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군상들의 모습이다. 그것이 무대든, 전쟁이든, 식민이든 이재갑은 드러난 것, 앞면, 승자의 모습 등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 것, 기록이 아닌 기억, 기록이 언급하지 않으나 분명 실재한 것들, 사건이 남기고 간 이면에서 역사를 찾는다. 






  역사의 이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7년에 발표한 '혼혈인, 내 안의 또 다른 초상'부터다. 이 작업은 전쟁을 하러 (혹은 못 하게 하러) 온 미군이 남기고 (혹은 버리고) 간 그의 '사람'에 대한 작업이다.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의 이면이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 '혼혈인'에 대한 존재론적 기록인데, 그 기록의 형식과 제기하는 문제의 깊이가 시간이 가면서 바뀐다. 초기의 작업은 혼혈인의 일상을 중심으로 찍었다. 사진의 초점은 얼굴 모습이나 그들 생활의 주변성에 맞추어진다. 1992년 2월부터 작업한 이 작업은 15년의 작업 끝에 '또 하나의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2006년에 발표된다. 사진은 냉담하고 무표정한, 메시지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재현했다. 어떻게 보면 토종 한국인이고 어떻게 보면 백인이거나 흑인이기도 하는 듯한 모습들이다.

그들이 순종과 잡종, 도덕과 부도덕의 이분법에서 후자로 분류되고 그래서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취급되어 '우리' 아닌 '남'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혼혈의 문제를 이른바 정체성의 문제로 올려 한국 사회의 병리를 지적함과 동시에 한강의 기적을 가져다 준 천조국 미국의 은혜에 묻혀 애써 쉬쉬했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낸 작업이다. 그런데 얼굴 사진 밑에 그 '혼혈인'이 소지하는 주민등록증이 제시되어 있다. 주민등록증은 공식적 정체성의 표상이다. 공식적 기록으로 명토 박아준 그의 한국인임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이재갑이 역사를 다루면서 처음 대상으로 삼은 혼혈이나 현재 가장 치열하게 작업하는 기념물의 공통점은 역사가 남긴 흔적 즉 이면이라는 사실이다. 사진가가 이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라는 건 전면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이면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승자의 기록이 진실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패자의 말, 기억의 말, 기념의 말 등이 모두 진실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재갑의 이면의 역사학은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사진가가 찾아가는 '진실'을 찾으러 떠나는 과정을 함께 보여줘야 사진의 역사학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전시라는 것이 그에게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독자가 진실을 찾는데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그 전시 안에는 사진가가 작업한 즉 진실과 만나러 갔던 길에서 사용했던 여러 가지 오브제가 설치된다.

그의 설치 전시가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말하는 장르의 크로스 오버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사진을 '진실'을 드러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거기에서 다른 오브제도 반드시 사용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재갑은 예술 지상주의에 철저히 떨어져 있는 사진가가 된다.

3. 기억을 끄집어내 상생하는 방식

이재갑의 이면으로 하는 역사 작업은 기억 문제로 연계된다. 기억을 문제 삼아 사진 작업을 하는 것은 대개 사건의 현장이나 유물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여주거나 기념물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이나 유품과 같은 1차 자료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불규칙적이고 이질적인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시도이다. 유물이나 유적이 가해자의 것이든 피해자의 것이든 그 역사적 경험을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기념물 같은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국가나 관(官)이 기억을 배제하고 역사를 하나의 기록으로 지배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재갑은 이 두 가지의 방식을 모두 사용하였다. 전자에 속하는 것은 식민 일본이 한국에 남기고 간 적산가옥과 일본에 남긴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의 유산에 대한 작업이다.



역사를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적산가옥과 서대문형무소 등 일제가 남긴 유산을 작업하면서 이재갑은 그 역사 안에 있을 한(恨)과 아픔을 기록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서 기억의 문제를 끄집어냈다.


역사의 현장에서 기억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 작업은 2008년의 한국전쟁 중 경북 경산의 한 코발트 광산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잃어버린 기억'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후 2012년의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 문제를 그들이 남긴 유적을 촬영하여 다룬 '상처 위로 핀 풀꽃'에서 그 작품의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

그 사진들은 모두 어둡고, 음산하다. 대상이 어둡고 음산하여서가 아니다. 국가에 의해 학살되거나 국가가 방치한 채 끌려가 죽고 잊힌 그 죄 없는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사진가가 어둡고 음산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사람들의 비명이 있고, 물속에 수장돼버린 징용자들의 피울음이 있다. 동굴과 돌무덤에 갇혀 버린 한 맺힌 절규가 있다. 멈춰선 나가사키의 괘종시계에는 추모라는 이름 아래 애도는 없고 의례만 남은, 망각해가는 훼손된 역사의 시간이 있다.

이재갑은 2015년에 발표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을 통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 문제를 작업하면서부터는 기념물을 대상으로 기억의 역사를 작업하기 시작한다. 아픈 역사가 기념의 대상이 되면 그것은 이제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순간 이후부터는 각 개인의 잡다한 기억들은 모두 망각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된다. 사진가 이재갑은 바로 이 국가에 의한 역사 독점이 갖는 폭력성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에 이 시대의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추구하는 어떤 특별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기념물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사진가는 별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 대상 그 자체가 국가주의의 폭력성을 충분히 갖기 때문에 그보다 더 극적인 어떤 요소들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다.





이 맥락에서 이재갑이 굳이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게 있다면, 베트남 전쟁을 놓고 한국과 베트남 두 국가가 역사를 어떻게 이미지화 하고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삼는지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 사진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지만,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갖추지도 않는다. 결정적 순간을 담은 이미지도, 일부러 비틀어보는 프레이밍도 없다. 구조를 버리고 미시와 일상에서 역사성을 찾으려는 방편 같은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예의 이재갑만의 독특한 컬러를 쓰지만, 화각이나 앵글 등 사진을 구성하는 물성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베트남 기념물을 찍은 경우 일부에서는 셔터 스피드를 길게 잡아 마치 어떤 혼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정도가 다를 뿐, 기본적으로 둘의 재현 양식은 동일하다. 기념물은 권력의 이데올로기이다.

그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재현하고 구축해내는지를 독자들이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가 하는 두 나라의 기념물을 찍은 사진을 비교해서 보면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국가가 전유하여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국민을 의식화 하는 행위는 한국의 경우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기념물로 영웅 신화 만들기에서 한국이 훨씬 탁월함을 사진가가 드러내주는 것이다.

참전 군인이 아기를 안고 걸어 나오는 장면 같은 게 기념물에 조각되어 있는 것이 아주 좋은 예다. 사진가는 그 장면을 그냥 찍어 보여줄 뿐, 특별히 다른 메시지를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때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사진가가 굳이 다른 짓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이재갑이 20년 넘게 천착해 온 식민과 전쟁은 결국 사람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사진가로선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으로 매우 힘든 작업이다. 역사가 말해주지 않고 국가가 묻어버린 그 아픈 과거의 한(恨)에 대한 기록을 20년 동안 작업해 왔다는, 그것도 역사학자들이 하듯 냉정한 이성으로 한 것도 아니고 뜨거운 가슴으로 해왔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더 이상 그러한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만큼 정신적으로 한계에 당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는 최근 '나'에게 다가서는 중이다


'뇌(腦) 안의 풍경', 사회와 역사에 대한 사진가로서가 아닌 '나'에 대한 주체로서의 사진가가 보는 풍경을 작업하는 중이다. 사진가 이재갑 개인이 주관적으로 하는 기억을 담은 풍경이다. 그의 뇌는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사진가의 그 풍경들은 이성을 떠나 보고, 듣고, 느끼면서 철저히 자기 자신만의 감정들을 자아낸 것들이다. 기록의 역사에서 기억의 역사를 넘어 '나'의 역사로 가는 사진가의 길,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 누구도 밟지 않은 길에 이재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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