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갤러리 브레송 기획전 사진인을 찾아서 다섯번째 '이재갑 론'이 5월 23일부터 5월 31일까지 전시된다.


글 /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대교수)


사진가 이재갑의 작업은 과거와의 대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지금까지 30년을 이어 왔다. 그가 대면하는 과거는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여러 작은 목소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일반화 할 수 없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그마저도 글이나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이질적이고 중층적인 과거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록과 기억 그리고 역사의 재구성에 관해 분명하고 확실한 인식이다.

이재갑 작업은 세 개의 솥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역사'다. 역사 가운데 아픈 역사, 그 아픈 역사는 사람을 억압하고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식민과 전쟁에 관한 역사다. 그가 구성하는 역사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전면에 등장한 것은 승리의 역사고, 환호의 역사일 뿐이다. 아픈 역사는 드러나지 않고 묻혀버린 침묵의 역사다. 이면의 역사, 이것이 이재갑 작업의 두 번째 솥발이다. 세 번째는 기억이다. 기록할 수 없는, 그렇다고 토해낼 수도 없는 트라우마. 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 이 기억에 대한 담론을 사진으로 작업한다. 이 셋이 모여 이재갑의 사진을 이루니 그것은 '아픈 역사를 이면과 기억으로 엮는 서사시'다.





1. 역사를 공유하는 방식

사진가 이재갑의 아픈 역사에 대한 작업은 논리적으로 매우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이 땅에 미국이 주둔하며 생겨난 혼혈인들에 대한 사진 작업으로 전쟁의 아픈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혼혈인'으로 출발한 그의 아픈 역사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기원을 찾는 방향으로 가면서 경산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과 일제강점기 그들이 이 땅에 남기고 간 건축물 유산에 대한 작업과 일본 내 흩어져 있는 조선인 강제 연행과 관련된 유산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전쟁으로 간다. 그는 역사를 말하되 아픈 역사를 말하고, 아픈 역사를 말하되 그것이 남기고 간 유산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 유산이라는 것은 여러 역사가 이질적으로 섞여 있는 것들이다. 그것을 국가가 정리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잊어라 해서 잊히는 것도 아니다. 이재갑이 사진으로 역사를 말하는 방식은 그 아픈 역사에 담긴 중첩과 이질의 여러 면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사진가 이재갑이 그리는 아픈 역사는 항상 두 개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의 '혼혈인'은 국가가 자유를 수호했다는 '국민'이 갖는 시선이 가려버리는 또 하나의 다른 시선을 말하고자 한다. 미군이 공산당 빨갱이들의 침략을 지켜내는 은혜를 베풀어주었다는 국가 중심의 거시사에 던지는 의문이다.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에 관한 두 개의 시선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작품,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남의 나라 민간인을 몰살한 것에 대해 이쪽에서는 영웅으로 기념을 하고, 저쪽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증오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두 개의 시선은 반드시 특정한 시선 둘 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정된 둘이 아닌 드러나지 않은 여럿을 의미한다. 그것이 '혼혈인'에 관한 것일 때는 그들을 비정상 존재로 간주하는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베트남 전쟁에 관해서는 국가에 의해 동원되어 어쩔 수 없이 가해자가 된 그 피해자들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진가 이재갑이 말하는 아픈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중첩되어 있다. 그들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들의 문제일 수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역사를 표상하는 대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재현할 뿐, 작가로서의 메시지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사진은 중의적이다. 보여진 그 이미지에는 보여진 것과 감추어진 것, 그 둘의 의미를 동시에 담는다. 역사를 다루되 아픈 역사를 다루고 그 아픔을 사진가가 웅변하지 않고 독자가 그 안에 들어가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사진가가 그 아픔을 우선 가져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다.

사진가에게는 작업 때마다 부닥쳐야 하는 고통의 대면이다. 치부든 연명이든 자신의 사진이 삶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결벽스러울 정도의 작가 정신을 가진 터라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고통을 감내한다. 그래서 아픈 역사를 다룬 사진가가 못내 아프다. 그의 사진을 읽는 독자들도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2. 이면의 목소리를 듣는 방식

아픈 역사는 이면에서 침묵하고 있는 역사다. 침묵하다 보니 존재하지 않는 듯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하다. 크고 강하고 진지한 다수의 목소리에 눌려 작고 약하고 사소한 듯한, 여러 목소리들이다. 사진가는 그것들을 듣고 싶어한다. 사진가 이재갑의 첫 작업은 무대 뒤의 모습을 담은 1991년의 '무대 뒤의 차가운 풍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 앞이 보여주는 그 화려함에 관심을 가질 때 그는 그 뒤에 숨겨진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러운 연습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군상들의 모습이다. 그것이 무대든, 전쟁이든, 식민이든 이재갑은 드러난 것, 앞면, 승자의 모습 등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 것, 기록이 아닌 기억, 기록이 언급하지 않으나 분명 실재한 것들, 사건이 남기고 간 이면에서 역사를 찾는다. 






  역사의 이면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7년에 발표한 '혼혈인, 내 안의 또 다른 초상'부터다. 이 작업은 전쟁을 하러 (혹은 못 하게 하러) 온 미군이 남기고 (혹은 버리고) 간 그의 '사람'에 대한 작업이다.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한 시대의 이면이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 '혼혈인'에 대한 존재론적 기록인데, 그 기록의 형식과 제기하는 문제의 깊이가 시간이 가면서 바뀐다. 초기의 작업은 혼혈인의 일상을 중심으로 찍었다. 사진의 초점은 얼굴 모습이나 그들 생활의 주변성에 맞추어진다. 1992년 2월부터 작업한 이 작업은 15년의 작업 끝에 '또 하나의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2006년에 발표된다. 사진은 냉담하고 무표정한, 메시지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재현했다. 어떻게 보면 토종 한국인이고 어떻게 보면 백인이거나 흑인이기도 하는 듯한 모습들이다.

그들이 순종과 잡종, 도덕과 부도덕의 이분법에서 후자로 분류되고 그래서 정상이 아닌 비정상으로 취급되어 '우리' 아닌 '남'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혼혈의 문제를 이른바 정체성의 문제로 올려 한국 사회의 병리를 지적함과 동시에 한강의 기적을 가져다 준 천조국 미국의 은혜에 묻혀 애써 쉬쉬했던 아픈 역사를 끄집어낸 작업이다. 그런데 얼굴 사진 밑에 그 '혼혈인'이 소지하는 주민등록증이 제시되어 있다. 주민등록증은 공식적 정체성의 표상이다. 공식적 기록으로 명토 박아준 그의 한국인임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이재갑이 역사를 다루면서 처음 대상으로 삼은 혼혈이나 현재 가장 치열하게 작업하는 기념물의 공통점은 역사가 남긴 흔적 즉 이면이라는 사실이다. 사진가가 이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진실'이라는 건 전면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이면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승자의 기록이 진실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패자의 말, 기억의 말, 기념의 말 등이 모두 진실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재갑의 이면의 역사학은 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사진가가 찾아가는 '진실'을 찾으러 떠나는 과정을 함께 보여줘야 사진의 역사학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전시라는 것이 그에게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독자가 진실을 찾는데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그 전시 안에는 사진가가 작업한 즉 진실과 만나러 갔던 길에서 사용했던 여러 가지 오브제가 설치된다.

그의 설치 전시가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말하는 장르의 크로스 오버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사진을 '진실'을 드러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거기에서 다른 오브제도 반드시 사용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재갑은 예술 지상주의에 철저히 떨어져 있는 사진가가 된다.

3. 기억을 끄집어내 상생하는 방식

이재갑의 이면으로 하는 역사 작업은 기억 문제로 연계된다. 기억을 문제 삼아 사진 작업을 하는 것은 대개 사건의 현장이나 유물을 이미지로 만들어 보여주거나 기념물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이나 유품과 같은 1차 자료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불규칙적이고 이질적인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시도이다. 유물이나 유적이 가해자의 것이든 피해자의 것이든 그 역사적 경험을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기념물 같은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은 국가나 관(官)이 기억을 배제하고 역사를 하나의 기록으로 지배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재갑은 이 두 가지의 방식을 모두 사용하였다. 전자에 속하는 것은 식민 일본이 한국에 남기고 간 적산가옥과 일본에 남긴 징용으로 끌려간 한국인의 유산에 대한 작업이다.



역사를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1996년 이후 적산가옥과 서대문형무소 등 일제가 남긴 유산을 작업하면서 이재갑은 그 역사 안에 있을 한(恨)과 아픔을 기록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서 기억의 문제를 끄집어냈다.


역사의 현장에서 기억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 작업은 2008년의 한국전쟁 중 경북 경산의 한 코발트 광산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잃어버린 기억'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후 2012년의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된 조선인 문제를 그들이 남긴 유적을 촬영하여 다룬 '상처 위로 핀 풀꽃'에서 그 작품의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

그 사진들은 모두 어둡고, 음산하다. 대상이 어둡고 음산하여서가 아니다. 국가에 의해 학살되거나 국가가 방치한 채 끌려가 죽고 잊힌 그 죄 없는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사진가가 어둡고 음산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사람들의 비명이 있고, 물속에 수장돼버린 징용자들의 피울음이 있다. 동굴과 돌무덤에 갇혀 버린 한 맺힌 절규가 있다. 멈춰선 나가사키의 괘종시계에는 추모라는 이름 아래 애도는 없고 의례만 남은, 망각해가는 훼손된 역사의 시간이 있다.

이재갑은 2015년에 발표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을 통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 문제를 작업하면서부터는 기념물을 대상으로 기억의 역사를 작업하기 시작한다. 아픈 역사가 기념의 대상이 되면 그것은 이제 공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순간 이후부터는 각 개인의 잡다한 기억들은 모두 망각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된다. 사진가 이재갑은 바로 이 국가에 의한 역사 독점이 갖는 폭력성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에 이 시대의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추구하는 어떤 특별한 스타일을 만들어내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기념물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사진가는 별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다. 대상 그 자체가 국가주의의 폭력성을 충분히 갖기 때문에 그보다 더 극적인 어떤 요소들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다.





이 맥락에서 이재갑이 굳이 다른 형식을 취하는 게 있다면, 베트남 전쟁을 놓고 한국과 베트남 두 국가가 역사를 어떻게 이미지화 하고 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삼는지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 사진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지만, 특별한 스토리텔링을 갖추지도 않는다. 결정적 순간을 담은 이미지도, 일부러 비틀어보는 프레이밍도 없다. 구조를 버리고 미시와 일상에서 역사성을 찾으려는 방편 같은 것도 시도하지 않는다. 예의 이재갑만의 독특한 컬러를 쓰지만, 화각이나 앵글 등 사진을 구성하는 물성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베트남 기념물을 찍은 경우 일부에서는 셔터 스피드를 길게 잡아 마치 어떤 혼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정도가 다를 뿐, 기본적으로 둘의 재현 양식은 동일하다. 기념물은 권력의 이데올로기이다.

그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재현하고 구축해내는지를 독자들이 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가 하는 두 나라의 기념물을 찍은 사진을 비교해서 보면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국가가 전유하여 이데올로기로 만들고 국민을 의식화 하는 행위는 한국의 경우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기념물로 영웅 신화 만들기에서 한국이 훨씬 탁월함을 사진가가 드러내주는 것이다.

참전 군인이 아기를 안고 걸어 나오는 장면 같은 게 기념물에 조각되어 있는 것이 아주 좋은 예다. 사진가는 그 장면을 그냥 찍어 보여줄 뿐, 특별히 다른 메시지를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때로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사진가가 굳이 다른 짓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이재갑이 20년 넘게 천착해 온 식민과 전쟁은 결국 사람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사진가로선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인간적으로 매우 힘든 작업이다. 역사가 말해주지 않고 국가가 묻어버린 그 아픈 과거의 한(恨)에 대한 기록을 20년 동안 작업해 왔다는, 그것도 역사학자들이 하듯 냉정한 이성으로 한 것도 아니고 뜨거운 가슴으로 해왔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더 이상 그러한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만큼 정신적으로 한계에 당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는 최근 '나'에게 다가서는 중이다


'뇌(腦) 안의 풍경', 사회와 역사에 대한 사진가로서가 아닌 '나'에 대한 주체로서의 사진가가 보는 풍경을 작업하는 중이다. 사진가 이재갑 개인이 주관적으로 하는 기억을 담은 풍경이다. 그의 뇌는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는 것일까? 사진가의 그 풍경들은 이성을 떠나 보고, 듣고, 느끼면서 철저히 자기 자신만의 감정들을 자아낸 것들이다. 기록의 역사에서 기억의 역사를 넘어 '나'의 역사로 가는 사진가의 길,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가 누구도 밟지 않은 길에 이재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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