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선 만지산에 들렸다.
일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다, 그 많은 더릅이 피어버려 못 먹게 되었다.
쌉쌀한 맛에 소주한 잔 하려던 생각은 고사하고, 선물할 곳도 많아 걱정이지만 어쩌랴!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꼭 가는 집이지만, 요즘은 기름 값 걱정에 그마저 못 갈 때가 많다.
이번엔 야채파종과 축대를 보수하려 했으나, 막상 부딪쳐보니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언 땅이 풀리면 밭을 오르는 계단이 허물어져, 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해야 하는 일인데다,

돈 못 버는 주제에 야채라도 많이 심기위해 빈 땅을 개간했으니 접힌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고추가 주종이었으나 개간 못한 땅엔 옥수수를 심었는데, 윗집 최종대씨가 걱정스레 말했다.

“밭에 전기철망 치지 않으면, 멧돼지가 쑥대밭 만듭니더”

그렇게까지 해 가며 농사지을 생각은 없어, 사람이 먹던 짐승이 먹던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차라리 노동이 필요 없는 딸기 같은 과일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나 살던 집은 손 볼 곳이 많아도 노동력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아마 귤암리에선 제일 오래된 집이 우리 집일 것이다.

한 때 동강 댐이 무산되며 주민들 보상책으로 정부에서 주택건설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겹던 옛집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국적불명의 이상한 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옛집의 불편한 점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래된 집이라 수시로 손을 봐줘야 하는데다, 수세식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없으니,

개량주택에 길든 여인네들은 질색이다. 그러나 군불 지펴 따뜻한 온돌에 더러 눕는 그 맛이 쥑인다.

불과 반세기밖에 지나지 않은 집이지만, 구옥을 하나라도 지키고 싶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사진만 팔리면 신용불량자 신세도 면하고 집수리도 할 작정이었으나, 매번 공염불이 되고 만다.

예전엔 떠돌다 힘들면 마음편이 쉬려 정선 집에 갔으나, 이젠 일할 때만 정선가는 꼴이 되었다.

낡은 집이 남은 내 수명까지 버텨주면 고마우련만, 허물어진 내 몸보다 못하니 그게 문제로다.

차라리 잠자다 무너져내려 같이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푸념에 아내의 핀잔을 받기도 한다.

가족 생각은 아랑곳 않는 무책임한 말에 자괴감은 느끼지만, 이 모순투성이 세상이 싫은 걸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젠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한적한 시골에 살려면 이웃이 좋아야하는데, 염치없는 사람이 옆집으로 이사 온 것이다.

본래 살았던 노성수씨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집이 팔렸는데, 새로 이사 온 사람의 무례가 도를 넘고 있다.

이사 올 때부터 이웃과의 인사도 없이, 재 측량한다며 남의 집에 빨간 막대를 꽂아 불쾌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 마당을 자기 주차장처럼 사용하는데다, 자기 땅도 많은데 남의 땅에 고추를 심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서울서 살러 온 사람들이 지역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이기심 때문이다.

이제 정선마저 싫어졌으니, 더 이상 내 쉴 곳은 없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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