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가식 없이 살고, 가식 없이 노래한 시인이 천상병시인이다.
그 천진난만한 위인께서 하늘나라로 떠난지도 어언 20여년의 세월이 훌쩍 넘었다.
오늘 따라 선생님이 그토록 간절히 생각나는 건, 또 한해를 보내야하는 인생의 무상함 같은 게 아니라,
선생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결심을 뒤늦게 접어야 하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다.
평생을 아내에게 짐 지우며 살아 왔으나, 이제 한계에 달했다.
온 종일 내년부터 벌일 일거리에 몰두하다보니, 불현 듯 선생님이 그리워졌던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60이 넘어 철이 든 것 같다지만, 나는 70을 앞두고 철이 들려니,
더 미련하다. 올해처럼 돈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 적도 별로 없었다.
오죽하면 자칭 사회불만자라고 떠벌리며, 정치와 섞은 사회구조에 악을 쓰며
욕설을 퍼 부었겠는가?
돌이켜 생각하니 꼴리는 데로 잘 살아왔고,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잔잔한 행복들도 가득했다.
30여년 전에는 천상병선생님이 사시던 의정부 댁에 가끔 들린 적이 있었다.
인사동에서 만나면 세금 내라지만, 댁에서는 절대 세금을 받지 않는데다
가족처럼 격식을 가리지 않아 좋았다.
한 여름을 빼고는 내복차림으로 사셨다.
오줌 누는 모습을 보고 뒤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서 비나~ 비나~ 앞에서 찍어야지~ 앞에서 찍어야지~”라며 능청도 잘 떠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너무 땡보셨다.
아무도 선생님에게 술 한 잔 얻어 마신 분이 없을 것 같다.
매번 인사동대폿집에 술을 맡겨두고 드시지만, 한 잔 마시라는 소리 들어 본 적 없다.
"저승에서 만나 뵈면, 그 때는 꼭 얻어 마셔야지..."
86년(인사동 대폿집)과 87년(의정부자택)에 찍은 조문호사진으로,
‘눈빛출판사’의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추모 사진집에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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