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30일 오후 4시무렵 이광수 교주께서 쪽방촌 성지순례 나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필이면 녹번동 파출부로 나가는 금요일이었다.

 

그날은 월말이라 ‘서울아트가이드’ 얻으러 인사동도 들려야 하고,

맡겨놓은 초상 사진 찾으러 충무로도 가야 해 오후 1시부터 서둘렀다.

안국역에 도착할 무렵 이광수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일이 빨리 끝나, 서울역 11번 출구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큰일 이었다! 시원한 곳에서 잠시 기다리라 했으나 마음은 바빴다.

 지하철을 탔으면 빨랐을 텐데, 마음이 급해 택시를 잡아탔으나 차가 밀려 더 늦었다.

 

간신히 후암동에 도착해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작동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아나 내비는 안 되지만 거는 전화는 잘 되는 핸드폰인데,

전화가 걸리지 않아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선 자리에서 담배를 세 대나 피우며 우왕좌왕하는판에 이교주가 나타났다.

시원한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때까지 지하철 입구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 날따라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얼굴이 빨갛게 익었더라.

미안해 죽을 지경인데, 시원한 커피집에 안 가고 방으로 가잖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계단은 마치 저승가는 계단 같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내린 계단을 4층까지 올라간 것이다.

급히 방문을 열어 선풍기를 돌렸으나, 더운 바람이 감겼다.

 

삼층 사는 박씨 아지매는 계단을 기어 오른다.

수행하는 것 처럼, 덥고 비좁은 방에서 몸으로 느끼며 쪽방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요즘 한 달에 한 번씩 유튜브 강의 촬영하러 상경하는데,

출발하기 전 페북 메시지로 빨리 간다는 연락을 했다지만,

컴퓨터에서만 페이스북을 볼 수 있으니, 알 리가 없었다.

두서없는 쪽방촌 이야기를 했으나, 더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20분쯤 수행하다 내려왔는데, 시간이 어중간했다.

기어이 맛있는 고기를 사 주겠다며 고깃집을 찾았는데, 대개의 식당이 쉬는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돌고 돌아 찾아간 집이 ‘서래갈매기’란 고깃집인데, 처음 가 본 식당이었다.

손님 없는 텅 빈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지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을 마신 것이다.

 

이교주와 여러 차례 술자리를 했지만, 단둘이 앉아 마신 술은 처음이었다.

오래전 최민식 사진상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다들 눈치만 보고 찍소리 못하는 썩은 사진판에 가슴이 뻥 뚫렸다.

 

시건방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이광수씨나 황정수씨,

그리고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안애경씨 같은 분이,

각 분야 열 명만 리드가 되어도 국민의 삶의 질은 물론 가치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오래 전 부터 교수가 아니라 교주로 깍듯이 모셨다.

나처럼 한번 물면 안 놓는 성질도 비슷했다.

 

옛날 사진계 이야기가 안주였으나, 다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기록사진을 아카이빙할 민간단체 설립의 절실함도 말했고,

스승 최민식선생에 대한 기록물을 제작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에 관한 논문이 니체와 닮았다는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딴 약속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선물로 담배까지 사 주었다.

가게에 담배가 몇 갑 없으면 있는 대로 사지, 기어이 다른 가게를 찾아 한 보루를 샀다.

찾아 준 것만도 황송하지만, 까발겨 두들겨 맞을 논문이 걱정이다.

아무튼, "억수로 고맙습니다.”

 

교주가 떠난 후 발동이 걸려 ‘새꿈공원’으로 담배 자랑하러 가다 이병호씨를 만났다.

그 양반은 담배보다 술이 더 절실하지만, 담배 밖에 줄 수 없었다.

알콜중독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준기씨가 날 나무란다.

“형님은 사진값도 안 받으면서, 돈은 왜 쓰냐?”는 것이다.

내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길래, 꺼내 보니 만 원짜리 두 장이 있었다.

“문디 코구멍에 마늘을 빼먹지! 니 돈 묵고 내가 편하겠나?”

소주 한병 콜라 한 병 사고 남은 돈을 돌려주니, 씰데 없는 소리란다.

“날 우째 보고 그라요. 내가 준걸 다시 받것소. 사나 가오가 있지”

그래, 요즘 가오 있는 놈이 드물어 보호종으로 정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 보호종 개 목걸이 쟁취를 위해 “투쟁!”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6일은 하릴없이 동자동을 돌아다녔다




앰블랜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더니, 누군가 구급차에 실려 간다,
동자동에선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게 흔한 일이라 다들 죽음조차 초연하다.
저승 대기소 같은 쪽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은 날씨가 쌀쌀해 그런지 한산했다.
김용철, 김정호씨가 공원을 어슬렁거렸고, 한 노인은 어설프게 기타를 쳤다.
햇살을 받은 막바지 단풍이 공원을 붉게 물들였건만, 아름답고 정겨워야 할 공원이 왜 처연하게 느껴질까?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술이 약이다.
공원 앞 쓰레기터에 자리 잡은 지경학씨 노숙 텐트는 술꾼들 아지트다.
눈치 보이는 공원보다 다들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 날은 윤 용, 황우현씨 등 여러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지경학씨는 술자리에서 물러나 의자에 앉았는데, 오랜 노숙생활에 찌들어 연신 콜록거렸다.




전기장판이라도 사용하게 어디 전기 좀 끌어올 수 없냐고 물었더니, 꿈도 못 꾼단다.

안 그래도 구청에서 빨리 철거하라는 독촉이 빗발쳐 다른 데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이는 청와대 앞에서도 전기를 끌어와 전기난로까지 켰는데,
너는 왜 안 되냐?“며 염장 지르는 소리를 해댔다.
권력 있는 놈과 거지가 같을 수 있겠나? 평등이란 말은 사전에나 존재한다.




좀 있으니, 목발 짚은 이준기씨가 절뚝이며 나타났다.
나도 올 때 술을 사왔으나, 이준기씨도 사와 술이 넘쳤다.
이곳은 술 담배 인심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다. 아무나 사고 아무나 마신다.
비둘기조차 같이 먹는다.



좀 있으니, 벌침 놓아주는 젊은이가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동자동을 들락거리는 양반인데, 몸 아픈 사람에게 벌침을 놓아준다.
어디서 잡아오는지 벌을 프라스틱 통에 담아 다니며 공짜로 놓아 주지만, 난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이 날도 벌침을 한 번 맞아 보라고 권했다.
매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정력도 좋아지냐고 물었더니 손가락 등에 맞으란다.
핀센트로 벌을 끄집어 내 한 방 놓았는데, 따끔하긴 했으나 간단이 끝났다.
이 나이에 정력이 좋아 진들 어디에 쓰랴?




술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군대이야기 아니면 잘 나갈 때 이야기뿐이다,
다들 시간만 보내고 사는지라 “세월이 약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날은 황씨가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절호의 찬스가 생겼으나 놓쳤다는 것이다.
나쁜 짓이라 거절했는데, 제안만 받아들였다면 팔자가 달라졌을 것이라 했다.
생각할수록 후회스럽다며, 일생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쳐 평생 고생한다고 했다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돈과 권력은 언젠가 사라져도 가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사진, 글 / 조문호















김상현씨로부터 말복 날 삼계탕 한 그릇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해방촌고기방앗간의 이태주씨가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해방촌은 같은 용산구라 가깝기는 하지만, 신세진 적이 많아 송구스러웠다.


 

그리고 정의당 동물복지위원회에 소속된 아들이 복날에 채식해요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터라,

그 날 하루만큼은 육식을 금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간의 정이 더 중요한 세상이라, 조햇님이가 벌이는 캠페인에 따르지 못했다.


 

약속한 일요일 정오 무렵, 해방촌에 갔으나 버스노선을 몰라 좀 헤맸다.

해방촌고기방앗간에 들어가니, 이태주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상차림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기로 한 모양이었다.


 

씨름 선수처럼 덩치 좋은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눈에 익은 친구도 여럿 있었다.

가까운 친구거나 후배들인 모양인데,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그동안 해방촌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이태주씨를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참 정이 많은 친구였다. 요즘 이런 사람 보기 힘들다.

다들 살기 바빠 그런지 남을 배려하기보다 제 식구 챙기기 바쁘다.

더구나 손님 많은 말복에 장사할 생각은 않고

가까운 사람 불러 모아 정 나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촌놈이 오랜만에 목에 때 벗길 작정으로 엊저녁까지 굶은 터라

김상현씨도 오기 전에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간만에 살려고 먹는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었다.

이 집에 올 때마다 배가 터지도록 먹는데, 그 날은 삼계탕에다 콩국물도 내 놓았다.

다들 반가운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바쁜 사람들은 먼저 일어나고,

김상현, 김삼환씨 등 몇 분만 남았는데, 뒤 이어 맥주와 케익이 나왔다.

난 허리가 아파 한 달 가까이 밀밭에도 못 가보았지만,

통풍에는 맥주가 원수지간이라 아이스커피만 쫄쫄 빨았다.



그런데 이태주씨가 이름도 모르는 귀한 술을 한 병 가져온 것이다.

맛만 본다며 한 잔 받았는데, 일단 향이 기가 막혔다.

다들 단숨에 들이켰으나, 몇 차례 나누어 마시며 역시를 연발했다.

술의 향도 향이지만, 취기가 퍼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하기야! 촌놈이 즐겨 마시는 소주에 어찌 비길 수 있겠나.

무엇이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니 다들 돈 벌려고 난리 치는 것 아닌가.


    

단 한 잔의 술과 한 모금의 연기에 이렇게 마음이 넉넉해지다니..

김상현씨가 들려주는 정감 있는 음악에 푹 빠져, 도저히 행복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싶었다.


 

주책스럽게 눈물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늘 가까이 있는 행복도 모르고 산 후회였는지도 모른다.


 

한 잔의 술이 자극했겠지만, 마음을 휘어 잡은 것은 사람 사는 정이었다.

한마디로 이태주씨의 인간미에 감동 먹은 것이다.


 

,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배려는커녕, 늘 벌집 쑤셔 놓듯 일만 벌이고 다니지 않았던가. 

여지 것 잘못 살아 온 업으로 그러지만, 자책이야 왜 없겠는가.


 

혼자 감정에 빠져 청승을 떨고 앉았는데 뒤늦게 선비 내 가족이 왔다.

음악을 배우는 선비양이 김상현씨에게 한 수 배울 작정인 것 같았다.

더구나 음악 경연이 한 달 후에 있다며 노래 한 곡을 불렀는데, 제법이었.


 

몸집만큼 성량도 풍부하고 가창력도 뛰어났다.

정확한 발성 등 시정할 점을 김상현씨가 지적해 주었는데, 일단 음악적 끼가 보였다.

머지않아 만나보기 어렵겠다는 농담까지 했다.


 

늙은이는 눈치껏 빠져 줘야 하는데, 너무 오래 퍼져 있었다.

더구나 다섯 시에 이준기씨를 만나기로 하지 않았는가.

시간이 늦어 서두르니, 이태주씨가 동자동 친구들 술 한 잔 받아 주라며 용돈까지 쥐어주었다.

너무 황송했지만, 고마운 뜻이라 받아들였다.



늦을세라 택시까지 타고 갔는데, 이준기씨가 먼저 나와 있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일은 무슨 일요? 복날 행님하고 술 한 잔 할라고 불렀지요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준기씨는 절대 술을 얻어먹지 않는다.

종종 남에게 술값까지 쥐어주는 인정 많은 사나이다.



 그날도 잘 아는 사람이 갑자기 죽어, 술이 한 잔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처럼 술 한 잔 살려고 했으나 한사코 손사래 쳤다.

행님! 와 이라요. 급수로 치마 내가 행님보다 한 급 위가 아인기요.”

다리가 불구라 장애등급 수급자란 말인데, 정말 못 말리는 친구다.

그 날도 술자리를 기웃거리는 친구에게 오천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다음에 중국집에서 내가 한 턱 쏠 테니 가까운 사람들 연락하라고 했더니,

웃긴다는 듯 씩 웃었다. “행님 술이 목구멍에 넘어 가겠소?”

개 무시하는 것 같아 신사임당 지폐를 보여 주었더니, 내 돈은 위조지폐라며 감방가기 싫다는 것이다.



 좌우지간, 술 한 잔 사려면 이준기는 절대 부르면 안 된다.

이 야박한 세상에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이라니까...

이젠 받기보다 갚아야 할 때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동자동은 사람 냄새를 풀풀 풍겨 너무 좋다.

가진 자들은 욕심에 눈이 멀었지만, 없는 자들은 욕심을 버려 사람이 잘 보인다.

저승 대기소 같은 동자동이 그래서 좋은 거다.

 

사진, / 조문호





















































 

 

 





오늘은 동자동 거지들의 입이 코에 걸렸다.
날씨가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이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꾼들이 다 모였기 때문이다.
술을 쌀쌀할 때만 마시는 건 아니지만, 추워야 제 맛이 난다.
술이 고파 한 잔, 떨려 한 잔, 하다보면 춘 삼월이 다 오간다.





대부분 추운 겨울을 더 걱정하지만, 그건 옛날 말이다.
요즘 없는 놈들은 여름이 더 힘들다.
아무리 쪽방이지만 전기장판만 있으면 추운 줄 모르지만,
여름철엔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고, 술 마시기도 지랄같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쪽방촌에 구호의 손길이 이어졌다.
몇일 전에는 '대한적십자사'와 '용산복지재단'에서 김치를 나누어주었고,
KT에서는 겨울 옷가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거지 상팔자라는 옛 말이 실감나는데,
이런 온정이 없는 자들에 골고루 나누어지는지 모르겠다.






지난21일에는, 이틀 동안 정영신씨 장터여행길 가방 모찌로 따라나섰다.
경상북도 군위에서 영덕을 두루 거쳐, 밤늦게 돌아와 잤는데,
이것도 나이라고, 늦잠에 빠져버렸다.
후닥닥 나갔으나, 화요일의 먹거리배급은 종쳐 버렸다.





다 떠나버리고, 공원을 어슬렁거리던 이준기가 날 반긴다.
“행님! 오데 갔다 이제 오요?” 죽은 기집 살아온 듯 반기면서,
목발로 쩔뚝거리며 매점에 가서 뚜꺼비 한 마리를 잡아왔다.






컵 두개에 나누어 부어  단판에 끝낼 기세다..
이준기는 원 샷을 했지만, 따라했다간 죽는다.
시름시름 마셨더니, 지루한지 준기가 캐물었다.






“행님 요새는 와 인터넷에 사진 안 올리는 기요?”
올리는 걸 싫어하는 놈도 있다고 했더니,
“그 자슥 사진은 빼 버리고 올리마 안 됩니꺼? 라며 투덜댔다.
오늘 올리겠다고 했더니, 공짜로 머리 깎아 주는 곳이 있단다.






술이 부족해, 막걸리 두 병 사들고, 노숙천사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는 유정희가 병원에 납치된 후로 조용술이 물러 받았는데,
쪽재비와 병학이를 비롯한 여섯 명이 술내기 화투짝을 돌리고 있었다.





화투와 거리가 먼 놈은 조용술이 뿐이라 둘이서 홀짝거렸다.
용술이는 참 착하다.






노가다로 하루 나가고 하루 쉬는데,
그 돈으로 어려운 친구들 술도 사주고, 고스톱 밑천도 대준다.
없는 놈들의 진득한 인정을 있는 놈들은 잘 모른다.
돈이란 마약에 중독되지 않은 유일한 희귀종이다.






“나이는 몇 살이고?”라고 물었더니, 제 나이도 잊었단다.
61년생 소띠라는데, 바뀌는 나이는 기억해 뭘 하냐는 것이다.
그런데, 기억력만 간 게 아니라, 정력까지 갔단다.
한참 꽃 띠에 거시기가 말을 안 듣다니, 귀가 막혔다.
하기야!~ 풀 곳도 없는데, 선들 어디에 쓸소냐?






여자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던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CCTV가 작동 중입니다. 쓰레기를 버리면 백만원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사람만 나타나면 반복했는데, 머리 위에는 CCTV가 내려보고 있었다.
아! 기분 더럽더라. 24시간 감시당하는 곳에서 산다는 게..
술김에 욕을 퍼부었다. “야이 씨발 년아~ 사람이 쓰레기냐?”



사진. 글 / 조문호



























일요일의 동자동은 한산해서 좋지만, 밥 사먹기가 지랄 같다.
직장인이 없어 쪽방 사람들이 이용하는 광주식당까지 닫아 버린다.
하루 쯤 굶어도 죽지는 않으니, 발길을 공원으로 돌려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입구에는 여러 사람이 술로 다독이고 있었다.
트랜지스터에서는 ‘돌아가는 동자동’이 아니라 ‘돌아가는 삼각지’가 흘러나왔다.
김상구씨가 잔뜩 어깨에 힘을 실어 장단을 맞추고 있었는데,
직장인 없는 일요일의 동자동은 쪽방 사람들 세상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자리를 지키는 정재헌씨를 비롯하여
구멍가게 주인 강재원씨, 전설로 통하는 전찬우씨,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씨, 이법사로 불러달라는 이원식씨,
그리고 김상구, 이태수, 박동구씨 등 여러 명이 있었다.






술과 담배가 바닥나 물주를 기다리는 중이었던지,
소주 세병과 담배 한 갑을 사갔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
늘 술자리를 지키며 빈병을 치워주는 황옥선 할매에게도
우유 한 팩 드렸더니, 기분 좋아 노래까지 하신다.
작년 추석 노래자랑에선 상까지 탔는데, 올해도 나간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구멍가게 주인인 강재원씨가 할 말이 있다며 날 좀 보잖다.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냐고 귀를 쫑긋 세웠더니, 나도 생각나지 않는 지난겨울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 줄테니, 소주 한 병만 외상으로 달라 한 것을 거절한 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린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구멍가게에서 외상 주는 곳이 어딨냐고 그랬더니, 그 때는 사람을 잘 못 봤으나, 앞으론 잘 하겠단다.
그리고는 면전에서 내 칭찬을 해대는데, 얼굴이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가게에서 십만원치 팔아야 만원도 남지 않는다며, 돈도 잘 빌려주지 않는 땡보 양반의 또 다른 순진한 모습에 놀랐다. 



 


이번엔 이홍렬씨에 이어, 화장을 지운 김은자씨가 나타났다.
난 이 여인을 ‘친절한 금자’씨로 바꾸어 부른다.

김은자씨는 왕년에 룸살롱 마담으로 전전하며, 사내께나 휘어잡은 여인이다.
세월에 밀려 쪽방 촌까지 들어 온, 그 한 많은 사연을 한 번 들어 볼 작정이다.






그 날은 화장을 하지 않아, 나도 사진 찍을 생각을 않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이준기씨는 같이 한 판 찍자며 졸라댔다.
“안 된다는데 왜 그래~”라는 날선 반응에 이해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대머리라 모자 안 쓰면 찍기 싫은 거나 마찬가지다”고 했더니, 그때야 알아차렸다.






담장 모퉁이에 올려놓은 조그만 라디오에서는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한다'는 대목에서는 은자씨가 슬퍼하고,
현인의 ’체리핑크 맘보‘에서는 다들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이 것이 사람 사는 재미다.
하잘 것 없는 사연에 울고, 흥겨운 멜로디에 웃는 사람들...
배우고 가진 자들이 서민들의 순수한 이 맛을 알리 있겠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0일 오후 5시 무렵, 매점을 찾아 나섰다.
저녁에 먹을 빵 사러 나갔는데, 골목 한구석에 남종호씨가 술판을 벌여 놓았더라.
막걸리 두 병과 종이컵 두 개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친구인 셈인데, 대뜸 한 잔하라며 컵을 내밀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닥에 퍼져 앉았으나
옆집 식당 아줌마 더러 땅콩 몇 조각만 달라고 졸라댔다.
식당 옆에 자리 잡은 것만도 눈에 거슬리는데, 땅콩을 줄 리 있겠는가?






얼른 일어나 구멍가게에서 땅콩 한 봉지를 사 왔더니,
‘몇 알만 있으면 되는데,,,.’라며 겸연쩍어 했다.
종호씨는 나보다 다섯 살 아래지만, 사람을 너무 그리워한다.
술을 좋아해도 많이는 못 마시고, 조금씩 마시는 술에 항상 취해있다.
“방에서 마시지 왜 길바닥에 술상 차렸나?‘고 했더니, 심심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 만큼 외롭다는 말이다.
거리에 술상을 차리면 아는 술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있으니 잘 모르는 분이 끼어 앉았다.
난, 사진 찍는 조문호라며, 자기의 이름도 적어달라고 수첩을 내 밀었더니,
“不可無一杯酒”라 쓰고는 그 밑에 郭玉泰(57)라 적었다.
없어서는 안 될 한 잔 술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자기도 술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디 사느냐고 물었더니 ‘광주여인숙’에서 머무는데,
요즘 하루에 만원씩하는 여관비 대느라 정신없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 사고를 쳐 감방에서 한두 달 썩고 나왔더니,
기초생활수급비가 반으로 줄었다며 투덜거렸다.
왜 적게 나오는지 영문은 모르지만, 참 세상 인심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유병철씨가 싱글벙글 나타나 새로 장만한 핸드폰 자랑에 신났다.
핸드폰에다 “구글 구글~, 보지 보지~”라고 말로 검색해 한참 웃었는데,
보여주는 이미지에 아연실색했다.
나도 성개방론자이지만, 그건 쪽팔리는 짓거리였다.
그만두라고 퇴박을 주었으나, “형 카메라보다 이게 더 좋다”며 자꾸 보란다.
아무리 혼자 살아 여자가 그립겠지만, 그건 아니다 싶었다.
세상 정보가 한 손에 들어 있어 좋은 세상인지 모르지만,
몰라도 될 폐해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구멍가게에 일보러 가야겠다며 일어나니,
‘형 같이 놀아줘!“하고 불렀으나 모른척 가버렸다.
가게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 왔더니,
다들 사라지고 남종호씨만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신발을 베개 삼아 웅크린 모습에 마음이 아렸으나,
겨울이 아니니 그대로 둬야 했다.
다들 술이 취하면 눈 좀 붙였다 들어가는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이준기씨와 황춘화씨가 만취해 있었다,
아들 용성이가 달려와, 더 있으려는 황춘화씨를 부축해 갔으나,
다리가 불구인 이준기씨는 내가 데려다 줘야 했다.
간신히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형! 멋진 안경이 생겼으니,
안경 쓴 사진 한 판 찍어 달라“ 했다.






그러고는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으나 술이 없는데다 너무 취해 움직이기 힘들다며,
설합에서 오천원을 꺼내서는 내려가다 한 잔 하고 가란다.
걱정말라며 사양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래, 이 돈으로 다음에 술 한 잔 사겠다"며 받아 나왔으나, 코 끝이 찡했다.

이게 사람 사는 정이다.






내방에 돌아와 폐북을 뒤적거리다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가 쓴
‘쪽방촌 사진족에 몸살’이란 기사에 분노가 치밀었다,
물론 생각 없이 쪽방촌을 기웃거리는 무례한 아마추어 사진인 부터 탓해야겠지만,
사진족이란 말에 부풀린 뉘앙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뚫어진 문살에 눈만 나오게 만든 사진이미지도 도둑촬영을 의미했는데,
뉴스를 만들기 위해 기사를 썼다는 생각이 앞섰다.



‘사진은 본 기사와 상관없음’이라며 실은 /뉴스1 사진


여지 것 동자동에 살면서 한 번도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만나지 못해 그런지 모르지만,
두 부부의 이야기만 거론 한 것으로 보아, 사실보다 부풀린 내용인 것 같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포토그래퍼 윤모씨라는 분의 인터뷰 내용도 몇자 적었는데,
그렇다면 이름을 정확하게 밝혀야 했다.
자신의 이름 하나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나서지 말아야 했다.
사람 사는 게 구경거리냐?는 글도 구경거리를 만들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윤리적인 잣대를 앞세워,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울타리에 가두고 금기시하는 자체가
그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소외된 약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인들도 가시적인 풍경이 아니라,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다면,

사진에 앞서 인간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하고,
필요할 때는 본인의 양해 아래 연출 없이 찍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상을 당하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다들 이름 석 자 중 한자는 빼고 적었는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소 본인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릴 사정이 있다면, 이름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표하는 이름을 숨기는 자체가 당사자나 망자를 모독하는 짓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평등의 말처럼,
제발 평범한 사람으로 봐 주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간 밤 꿈에 수안스님이 나타나셨다.

'통도사'에 계시는 전각가이자 화가, 시인 등 다재다능하신 분인데, 나에겐 “眞空‘이란 법명을 주신 분이다. 
너무 반가워 큰 절을 넙적 올렸더니, 빙그레 웃으시기만 하셨다.

소식 끊긴지가 십 오년도 더 되었는데, 갑자기 왜 나타나셨을까?
스님께 연락 드리지 못한 건, 잘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내 주둥아리 때문이다.


오래 전, 통도사에서 올라와 인사동에서 전시를 열 때였다.
스님을 모시는 통 큰 방림보살이 호텔 방을 두 개나 잡아두고,
근사한 전시오프닝을 마련했는데. 주연에서 그만 방정을 떨고 말았다.
“스님! 서울역에 한 번 가보이소. 배고픈 놈들이 천진데, 스님이 이라마 됩니꺼?”
화가 난 스님께서 크게 나무라시어, 그 뒤부터 가지 못했는데, 
한 참후 방림보살과 동강에 레프팅하러 오셨다며 정선 집에 들리셨다.
‘夢菴’이란 현판 글씨를 써 주시며 거금 백만 원이나 놓고 가셨는데,
연이 닿지 않았는지, 그 뒤로도 스님이 계신 축서암에 들리지 못했다. 

가끔 스님의 근황이 궁금하거나 보고 싶기도 했지만, 연락처마저 바뀌어 버렸다.

수소문해 보니 축서암에서 문수암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그러던 중에 꿈에 나타나시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한편으론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도 되었으나, 나더러 조심하라는 경종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나도 늙었지만, 스님께서도 연로하시어 살아생전 만나 뵙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작정하여 한 번 찾아뵈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난, 주둥이 뿐 아니라 손가락으로도 상대를 씹어 가까이 있는 많은 사람을 잃어 버렸다.
상대에 대한 악의는 없으나, 잘 못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버릇 때문이다.
태생은 그렇지 않았으나, 평생을 기득권자에 당하기만 해 온 처지라
나도 모르게 입바른 악바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가까운 친구는 물론 예술계, 특히 사진판에서 더 그렇다.
그러니 ‘다된 밥에 코 빠트린다’는 말처럼 지원이나 도움이 확실했던 일도
뒤늦게 따돌리기 일 수였는데, 기득권자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이다.
다들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모 나는 일에 나서지 않고 살아 그런지,
정치판이나 사진판이나 곳곳이 썩어 문드러졌으니, 어찌 간이 뒤집어지지 않겠는가?

정영신씨가 시골장에서 점쟁이를 만나면, 가끔 내 사주를 물어보는데, 

만나는 점쟁이마다 입 때문에 팔자가 세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인지 말년에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가 된 것같다.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었지만, 상처 준 이들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쪽방 촌에 들어 왔다.

빈민들과 함께 마지막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비난 받을 말썽을 일으키고 말았다.

갑 질 하는 자를 나무라며 잘 못을 바로 잡으려했으나, 잘 못 전해진 내용이었다.
개인적 감정에 의한 이야기를 믿고 발발거렸으니, 내 꼴이 어떻겠는가?

그것도 친하게 지낸 믿었던 사람인데 말이다.
뒤늦게 사과는 했지만,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일로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다. 글로 옮길 때는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된다는 것을...
비가 들쳐 창문도 열지 못하고, 방안 열기 때문에 컴퓨터도 켜지 못한 채,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이틀 동안 한증막에서 곤욕을 치루었으나, 비가 그친 어제 오후에서야 모처럼 공원에 나갔더니,
이준기, 방원길, 변성식씨가 모여 앉아 소주 한 잔 하고 있었다.

술병이 비어 소주 한 병을 더 사오려니 준기씨가 강력하게 말렸다.
이 친구는 어느정도 술이 취하면 더 이상 마시지 않지만, 성식씨와 원길씨 생각은 달랐다.
소주 한 병 사와 세 사람이 나누어 마시며 시름을 달랬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정신 바짝 차려, 주민들이 힘을 모아 권익 찾는데 집중해야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요즘 부쩍 기억이 분명하지 않거나 약속을 잊을 때가 많다.
지난 17일엔 동자동 주민 자치회의가 있었으나, 시간을 잘 못 알아 허탕 쳤다.
지하철에서도 내릴 역을 놓칠 때가 더러 있는데다,
아는 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헤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늙으면 죽어야지’를 되 뇌이며 돌아오는데, 뒤에서 누가 ‘형님’하며 불렀다.
돌아보니 의리의 사나이 이준기였다.

술 한 잔 하자는 그의 권유에 끌려 구멍가게에 들어갔다.
비좁은 가게 안에서 못 마시게 되어 있으나, 눈을 껌뻑거렸다.
날씨는 춥지 않으나 사람들이 몰려와 오붓하게 마실 수 없다는 것이다.
바닥에 소주 한 병과 골뱅이 통조림 하나를 펼쳐 놓으니 술상이 되었다.





좀 있으니, 김진호씨가 들어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어저께 돈이 없어 손가락에 낀 금반지를 맡기고 소주 한 병을 샀는데,
어느 가게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자주 들리는 집에 찾아가, “무조건 반지 달라”하라며 준기가 재촉했다.

지금 갚을 돈이 없다기에, 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 주었다.
좀 있으니 반지는 찾지 못하고, 외상값만 주었다며 빈손으로 돌아왔다.
반지는 맡긴 적이 없다는데,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대부분의 돈을 담배와 술값으로 탕진하는데,
아픈 기억을 잊으려 술을 마셔대니, 술이 기억력을 앗아가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옆방에도 술만 취하면 세상에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이도 있다. 다들 치매 증세인지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민센터에서 보낸 치매예방 검진 안내서가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필수검진대상’이라 적힌 글귀가 마음에 걸렸다.





지난 24일 오전 무렵, 검진장소인 주민센터 복지관으로 나갔더니,
검진 받으러 나오 신 분들이 제법 많았다.
문제는 실제 치매증세가 있는 분들은 자신은 절대 아니라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뺄셈을 반복시키며, 먼저 말해 놓은 사물 몇 가지를 다시 물어보는 등
여러가지 기억력을 테스트했는데, 딱 한 가지 답을 못한 게 있었다.
오늘 날짜가 몇 일 이냐는 질문에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했으나,
더러운 세상! 기억 못하는 것도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나쁜 기억들만 잊어버리는 치매는 없을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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