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씨로부터 말복 날 삼계탕 한 그릇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해방촌고기방앗간의 이태주씨가 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해방촌은 같은 용산구라 가깝기는 하지만, 신세진 적이 많아 송구스러웠다.


 

그리고 정의당 동물복지위원회에 소속된 아들이 복날에 채식해요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터라,

그 날 하루만큼은 육식을 금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사람간의 정이 더 중요한 세상이라, 조햇님이가 벌이는 캠페인에 따르지 못했다.


 

약속한 일요일 정오 무렵, 해방촌에 갔으나 버스노선을 몰라 좀 헤맸다.

해방촌고기방앗간에 들어가니, 이태주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상차림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오기로 한 모양이었다.


 

씨름 선수처럼 덩치 좋은 젊은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눈에 익은 친구도 여럿 있었다.

가까운 친구거나 후배들인 모양인데,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그동안 해방촌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이태주씨를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참 정이 많은 친구였다. 요즘 이런 사람 보기 힘들다.

다들 살기 바빠 그런지 남을 배려하기보다 제 식구 챙기기 바쁘다.

더구나 손님 많은 말복에 장사할 생각은 않고

가까운 사람 불러 모아 정 나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촌놈이 오랜만에 목에 때 벗길 작정으로 엊저녁까지 굶은 터라

김상현씨도 오기 전에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간만에 살려고 먹는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었다.

이 집에 올 때마다 배가 터지도록 먹는데, 그 날은 삼계탕에다 콩국물도 내 놓았다.

다들 반가운 사람들과 어울려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바쁜 사람들은 먼저 일어나고,

김상현, 김삼환씨 등 몇 분만 남았는데, 뒤 이어 맥주와 케익이 나왔다.

난 허리가 아파 한 달 가까이 밀밭에도 못 가보았지만,

통풍에는 맥주가 원수지간이라 아이스커피만 쫄쫄 빨았다.



그런데 이태주씨가 이름도 모르는 귀한 술을 한 병 가져온 것이다.

맛만 본다며 한 잔 받았는데, 일단 향이 기가 막혔다.

다들 단숨에 들이켰으나, 몇 차례 나누어 마시며 역시를 연발했다.

술의 향도 향이지만, 취기가 퍼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하기야! 촌놈이 즐겨 마시는 소주에 어찌 비길 수 있겠나.

무엇이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니 다들 돈 벌려고 난리 치는 것 아닌가.


    

단 한 잔의 술과 한 모금의 연기에 이렇게 마음이 넉넉해지다니..

김상현씨가 들려주는 정감 있는 음악에 푹 빠져, 도저히 행복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싶었다.


 

주책스럽게 눈물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늘 가까이 있는 행복도 모르고 산 후회였는지도 모른다.


 

한 잔의 술이 자극했겠지만, 마음을 휘어 잡은 것은 사람 사는 정이었다.

한마디로 이태주씨의 인간미에 감동 먹은 것이다.


 

,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배려는커녕, 늘 벌집 쑤셔 놓듯 일만 벌이고 다니지 않았던가. 

여지 것 잘못 살아 온 업으로 그러지만, 자책이야 왜 없겠는가.


 

혼자 감정에 빠져 청승을 떨고 앉았는데 뒤늦게 선비 내 가족이 왔다.

음악을 배우는 선비양이 김상현씨에게 한 수 배울 작정인 것 같았다.

더구나 음악 경연이 한 달 후에 있다며 노래 한 곡을 불렀는데, 제법이었.


 

몸집만큼 성량도 풍부하고 가창력도 뛰어났다.

정확한 발성 등 시정할 점을 김상현씨가 지적해 주었는데, 일단 음악적 끼가 보였다.

머지않아 만나보기 어렵겠다는 농담까지 했다.


 

늙은이는 눈치껏 빠져 줘야 하는데, 너무 오래 퍼져 있었다.

더구나 다섯 시에 이준기씨를 만나기로 하지 않았는가.

시간이 늦어 서두르니, 이태주씨가 동자동 친구들 술 한 잔 받아 주라며 용돈까지 쥐어주었다.

너무 황송했지만, 고마운 뜻이라 받아들였다.



늦을세라 택시까지 타고 갔는데, 이준기씨가 먼저 나와 있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일은 무슨 일요? 복날 행님하고 술 한 잔 할라고 불렀지요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준기씨는 절대 술을 얻어먹지 않는다.

종종 남에게 술값까지 쥐어주는 인정 많은 사나이다.



 그날도 잘 아는 사람이 갑자기 죽어, 술이 한 잔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처럼 술 한 잔 살려고 했으나 한사코 손사래 쳤다.

행님! 와 이라요. 급수로 치마 내가 행님보다 한 급 위가 아인기요.”

다리가 불구라 장애등급 수급자란 말인데, 정말 못 말리는 친구다.

그 날도 술자리를 기웃거리는 친구에게 오천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다음에 중국집에서 내가 한 턱 쏠 테니 가까운 사람들 연락하라고 했더니,

웃긴다는 듯 씩 웃었다. “행님 술이 목구멍에 넘어 가겠소?”

개 무시하는 것 같아 신사임당 지폐를 보여 주었더니, 내 돈은 위조지폐라며 감방가기 싫다는 것이다.



 좌우지간, 술 한 잔 사려면 이준기는 절대 부르면 안 된다.

이 야박한 세상에 사람이 너무 좋아도 탈이라니까...

이젠 받기보다 갚아야 할 때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동자동은 사람 냄새를 풀풀 풍겨 너무 좋다.

가진 자들은 욕심에 눈이 멀었지만, 없는 자들은 욕심을 버려 사람이 잘 보인다.

저승 대기소 같은 동자동이 그래서 좋은 거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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