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잘려고 자리에 누웠지만, 너무 더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도 공동화장실에서 물 뒤집어쓰기를 세 차례나 했다.
자정이 훨씬 지났건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가보니, 술 취한 사람이 길 가운데 큰 대자로 뻗어있었다.
차 다니는 길이라 일으켜 세웠으나, 너무 취해 힘에 부쳤다.
지나갈 차가 기다렸지만, 도와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핸들을 꺾어 피해가면 될 텐데, 기어이 버텼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 도움을 받아 인도로 옮겼으나,
좀 있으니 경찰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아마 승용차 운전자가 112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사정을 이야기해 돌려보냈지만, 참 야박한 세상이더라.




날씨가 더워 길가에 잠든 사람만 있고, 공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술자리가 어지럽게 널린 걸 보니, 조금 전 까지 여럿이 술을 마신 듯 했다.
어떻게, 자리가 파하면 치우고 가야지 몸만 빠져 나간단 말인가.
옆에 재활용품과 쓰레기 모우는 포대기도 있는데도...
몇 몇 몰지각한 인간들 때문에 동자동 빈민 전체가 욕먹는 것이다.



사실, 공원에서 술 마실 수 없으나, 불쌍해서 눈감아 주는 것 아닌가?
아무리 사회가 폐인을 만들었지만, 최소한의 질서는 지켜야 한다.
주변에서 젊은 놈들이 일은 안하고 술만 마신다며 손가락질해도,
사는 게 너무 안 서러워 감싸 안았던 것도 사실이다.
엉뚱한 사람 욕먹이지 않도록, 해 끼치면 강력하게 대처해야 겠다.




방에 돌아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옆에 사는 정선덕씨가 콩국수 한 그릇을 말아 왔는데, 벌써 점심 때란다.
입맛이 없어 끼니를 거른 터라 고맙기 그지없었다.
가끔 구두까지 닦아주어 부담스러울 때가 많은데, 보답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선에서 일하느라 삼일 간이나 떠나 있어, 궁금한 게 많았다.




나가보니, 누군가 보따리를 오트바이에 실어 이사하는 것 같았다.
날씨가 더우니 공원도 한가했다.
‘용산소방서’에서 무더위 안전캠프를 차려 놓았으나, 파리만 날렸다.
하기야! 이처럼 더울 때는 꼼짝 않는 것이 상책이다.
숨까지 안 쉴 수있다면 더 좋겠지만...




생필품 나눠준다는 벽보가 붙어 있어 지하 쉼터로 찾아갔다.
더워 그런지 먹거리가 없어 그런지 줄 선 사람이 없었다.
마침, 옷으로 보이는 구호물품이 들어와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배급품을 받아보니, 살충제와 모기향, 토시, 펜티, 쫄티 등 다섯 가지나 있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여럿 있어 요긴하게 쓸 것 같았다.
그런데, 고마운 상품들을 어디서 보냈는지, 알고나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주민들에 대한 배려이기 이전에 보낸 사람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다.




주민들도 지킬 것은 지키고, 협조할 건 해야 하지만,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도 주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사람들, 좀 어여삐 봐다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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