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소리가 지겹다.
쪽방의 더운 바람을 돌리지만, 그것마저 꺼버리면 질식한다.
정선에서 허리를 다쳐 일주일째 더러 누워있다.
약을 먹어도 신통찮아 쉴 수밖에 없는데, 컴퓨터가 유일한 소식통이다.
라면과 미숫가루가 넉넉하니, 먹을 것은 걱정 없다.






가끔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는데,
정선덕씨가 심어 놓는 고추와 오이가 잘 자랐더라.
얼마나 정성을 들였으면, 징그럽게도 컸다.
옥상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동자동의 또 다른 풍경이다.
늘어놓은 빨래와 꾀죄죄한 옥탑 방에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난다.






어제 아침엔 꼼짝하지 않는 내가 걱정되었던지,
건물 관리인 정선덕씨가 죽을 끓여 내밀었다.
고맙지만, 죽을 좋아하지 않아 부담만 되었다.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 눈 감은 김에 스르르 갔으면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산목숨이다.





구부정한 폼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몸을 추스렸다.
친절한 은자씨가 방정맞게 앉아 아이스케키를 먹고 있었다.
천천히 아껴 먹으려고 핥아먹어, 한 입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날씨가 더워 유난히 얼음과자가 그리운 날이다.






공원 쪽으로 올라가니 낮선 학생들이 우글거렸다.
용산고등학교 전기과 학생들이 동자동에 봉사활동 하러 나왔단다.
건물 주인들이 해 주지 않는 공사를 학생들이 하는 모양인데, 도움 될지 모르겠다.
작년 여름에는 내 방도 전기가 나가 곤욕을 치룬 적이 있지만,
대부분 돌출된 외부선이 아니라 건물내부의 오래된 전선이 문제다.
결국 천장을 뜯어내는 공사를 하였는데, 학생들로서는 역부족일 것이다.






원용희씨는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도시락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를 불러 세워 지난 번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을 전해주려니,
‘서울역쪽방상담소’ 전익형실장이 나를 좀 보잖다.
지난 달 주민간담회에 참석한 글을 보았다며, 그 지적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 날 준 일회용 곰탕은 답례가 아니라 있는 물건을 주었단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줄 세우는 짓을 그만둘 수 없냐고 다그쳤더니,
줄 세우지 않는 방법이 있으면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다.
‘푸드마켓’으로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거기서 골라가도록 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푸드마켙’은 용산구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쪽방상담소와 상관이 없단다.
그래서 옥상옥인 쪽방상담소를 없애고, 그 일을 동사무소에 통합시키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간을 여유 있게 해도 일찍부터 줄 서는 사람을 탓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너 자신도 줄을 서지 않냐?"는 말처럼 들렸다.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줄을 서야 그 일을 기록할 수 있지만, 줄서는 사람 고충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래야 바꾸라고 말할 것 아니가?






날씨가 더워 공원 곳곳에 드러누워 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도시락을 돌리던 원용희씨가 찾아 와, 한 개 남았다며 날더러 먹으라고 주었다.
고맙게 받기는 했으나, 밥 생각이 없어 청소하는 황옥선 할머니에게 넘겼다.
다들 입맛이 없으니, 술만 마시고 자는 것 같았다.






더운 선풍기바람 돌듯 다들 그래그래 살아가고 있었다.
건물주는 돈벌이에 급급하고, 일하는 사람은 편한 방식만 고집하고,
가진 것 없는 빈민들만 모든 걸 감수하지만, 인정 하나는 변치 않았다.
그래도 바람이 부니, 죽지 못해 잔소리를 해댄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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