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은 하릴없이 동자동을 돌아다녔다




앰블랜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더니, 누군가 구급차에 실려 간다,
동자동에선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게 흔한 일이라 다들 죽음조차 초연하다.
저승 대기소 같은 쪽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 



 
어린이 없는 '새꿈어린이공원'은 날씨가 쌀쌀해 그런지 한산했다.
김용철, 김정호씨가 공원을 어슬렁거렸고, 한 노인은 어설프게 기타를 쳤다.
햇살을 받은 막바지 단풍이 공원을 붉게 물들였건만, 아름답고 정겨워야 할 공원이 왜 처연하게 느껴질까?




하루하루를 희망 없이 사는 사람들은 술이 약이다.
공원 앞 쓰레기터에 자리 잡은 지경학씨 노숙 텐트는 술꾼들 아지트다.
눈치 보이는 공원보다 다들 이곳으로 몰려든다. 




그 날은 윤 용, 황우현씨 등 여러 명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지경학씨는 술자리에서 물러나 의자에 앉았는데, 오랜 노숙생활에 찌들어 연신 콜록거렸다.




전기장판이라도 사용하게 어디 전기 좀 끌어올 수 없냐고 물었더니, 꿈도 못 꾼단다.

안 그래도 구청에서 빨리 철거하라는 독촉이 빗발쳐 다른 데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이는 청와대 앞에서도 전기를 끌어와 전기난로까지 켰는데,
너는 왜 안 되냐?“며 염장 지르는 소리를 해댔다.
권력 있는 놈과 거지가 같을 수 있겠나? 평등이란 말은 사전에나 존재한다.




좀 있으니, 목발 짚은 이준기씨가 절뚝이며 나타났다.
나도 올 때 술을 사왔으나, 이준기씨도 사와 술이 넘쳤다.
이곳은 술 담배 인심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다. 아무나 사고 아무나 마신다.
비둘기조차 같이 먹는다.



좀 있으니, 벌침 놓아주는 젊은이가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동자동을 들락거리는 양반인데, 몸 아픈 사람에게 벌침을 놓아준다.
어디서 잡아오는지 벌을 프라스틱 통에 담아 다니며 공짜로 놓아 주지만, 난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이 날도 벌침을 한 번 맞아 보라고 권했다.
매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정력도 좋아지냐고 물었더니 손가락 등에 맞으란다.
핀센트로 벌을 끄집어 내 한 방 놓았는데, 따끔하긴 했으나 간단이 끝났다.
이 나이에 정력이 좋아 진들 어디에 쓰랴?




술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군대이야기 아니면 잘 나갈 때 이야기뿐이다,
다들 시간만 보내고 사는지라 “세월이 약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 날은 황씨가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절호의 찬스가 생겼으나 놓쳤다는 것이다.
나쁜 짓이라 거절했는데, 제안만 받아들였다면 팔자가 달라졌을 것이라 했다.
생각할수록 후회스럽다며, 일생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쳐 평생 고생한다고 했다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돈과 권력은 언젠가 사라져도 가오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