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탐방할 주민을 모집하는 벽보가 오래 전부터 동자동에 나 붙었다.
동자동을 재개발하기 위한 작업이 추진 중인데다 

‘대책 없는 쪽방주민 집단이주 중단하라“는민들의 입장이 상충하는 상황이라 임대주택 탐방을 신청했다.

동자동 주민으로 임대주택을 신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난, 동자동 빈민들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절대 이주할 뜻이 없음을 먼저 밝혀둔다.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힘을 보태기도 하겠지만, 동자동 사람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기록하기 위해서다.

이주하더라도 임대주택에 갈 것이 아니라 정선 만지산 집을 수리해 돌아가야 한다.



주택 탐방일로 정해진 15일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였다.

집합장소로 정해진 '서울역쪽방상담소' 체력 단련실이 있는 곳에서는 아침부터 김치 배급이 있었다.

한 쪽 벽에 ‘'제2차 임대주택및 지역탐방"이라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서울시'와 '서울주택공사'를 등에 업은 '용산주거복지센터'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예상했던대로 동자동 쪽방주민들은 몇 명 나오지 않았다.

총 열 아홉명으로 대부분 남영동에서 온 사람이고 아는 사람은 이배식씨 뿐이었다.



'용산주거복지센터' 담당자가 나와 임대주택 탐탕에 대한 취지와 일정을 소개했고,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도 보충 설명했다.

옆에는 참가자에게 줄 선물장자 20개가 ‘임대주택 및 지역탐방자 선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보란듯이 쌓여 있었다.

다들 45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탐방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임대주택 탐방지역이 동자동으로 옮겨오기 전에 내가살던 곳이었다

수시로 장 보러 다니던 불광동 '대조시장' 옆에 버스를 세워 놓고 시장에서 백여미터 떨어진 연립주택에 들어갔다.

임대주택 탐방 온 주민들이 살 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몇 년전 동자동에서 살던 분이 옮겨 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전에 연락된 듯한 세 가구를 방문했는데, 15평에서 18평 쯤 되는 각기 조금씩 다른 구조였다.

결론적으로 어디를 가던 이 정도 집을 얻어 살 수 있다며, 이주 신청을 권장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볼 때는 한 평 남짓한 쪽방에 사는 독신이 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대부분의 주민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임대료야 수급비에서 보장되지만, 그 공간을 채울 가구나 생활용품도 없다.

썰렁한 집인데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집만 넓으면 무엇 하겠는가?

여지것 타 지역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다들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동자동처럼 자주 나누어주던 구호물품도 받을 수 없으니 더 싫은 것이다.

동자동 재개발을 위해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면 이 같은 땜질식 이주정책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 거주하는 동자동은 서울역과 가까운 교통이 편리한 지역인데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이웃이 있다.

먼저 지하철역과 가까운 지역에 빈민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계획된 아파트 건설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울주택공사'에서 7평에서 10평 정도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필요한 만큼 지어야 한다.

외곽 지역이거나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 않다면, 불편한 만큼의 보상은 재개발조합에서 부담해야 한다.


 

다들 임대주택 탐방을 끝내고 서오능으로 옮겨 ‘남원추어탕’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빈민들이 오랫만에 맛있는 추어탕으로 영양 보충하는 시간이었다.



식사 후 서오능 구경하는 것이 마지막 행사 일정인데, 비가 내려 불가능할 것 같았다.

입구에서 단체사진이나 찍자며 데려 갔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비가 오지 않았다.

가을을 떠나 보내는 서오릉이지만 인적조차 없었다. 빗물에 젖은 단풍은 애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왕능은 세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오릉에 들어가니 초입에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과 속세와 성역을 구분하는 금천교가 있었다.

홍살문부터는 제향을 올리는 공간인데, 왕의 업적을 기록한 비각과 왕의 신주를 모시는 정자각이 있었다.

맨 윗부분은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능침 공간으로 무인석과 문인석, 석호 등의 호위를 받는 봉분이 자리했다.

왕릉에 따라 구조물과 석물 등이 조금 식 다른데,

그 규모를 보면 왕과 함께 그 시대의 권력이 사라지고 있는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숱한 정치적 파란을 일으킨 장희빈 릉도 돌아보았다.



긴 세월 녹번동에 살며 서오릉 앞을 수없이 지나쳤건만, 한 번도 들려보지 못한 자책이 들었다.

다른 분들은 유적에 대한 관심보다 저물어가는 단풍에 취해 서오릉 길을 산책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퀴즈로 선물을 나누어주는 시간도 가졌는데,

관광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음악이 소음되어 괴롭히기도 했다.



처음 떠난 장소로 돌아와 준비된 선물을 받을 차례인데, 쪽방상담소 실장이 올 때가지 기다리라고 했다.

준비한 선물상자를 그냥 나누어주면 될 것을 왜 기다리게 하는지 궁금했는데,

준비된 선물에다 다른 선물박스를 하나 더 보태주는 것이다.

상자에는 된장, 고추장, 김, 통조림, 라면 등 여러가지 식료품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무거워도 가져갈 수는 있으나, 왜 많은 선물을 집중적으로 안기는지 모르겠더라.

주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야 할 선물을 몇몇 사람에게 모아주는 이러한 형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입 맛대로 나누어주는 불평등한 분배가 쪽방촌 완장부대를 만들어내며, 주민을 길들이는 경우로 비약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남거나 적은 량의 물품이 들어오면,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는 노숙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비효율적인 주거복지 프로젝트도 재고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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