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5시 무렵, 매점을 찾아 나섰다.
저녁에 먹을 빵 사러 나갔는데, 골목 한구석에 남종호씨가 술판을 벌여 놓았더라.
막걸리 두 병과 종이컵 두 개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난 그의 친구인 셈인데, 대뜸 한 잔하라며 컵을 내밀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바닥에 퍼져 앉았으나
옆집 식당 아줌마 더러 땅콩 몇 조각만 달라고 졸라댔다.
식당 옆에 자리 잡은 것만도 눈에 거슬리는데, 땅콩을 줄 리 있겠는가?






얼른 일어나 구멍가게에서 땅콩 한 봉지를 사 왔더니,
‘몇 알만 있으면 되는데,,,.’라며 겸연쩍어 했다.
종호씨는 나보다 다섯 살 아래지만, 사람을 너무 그리워한다.
술을 좋아해도 많이는 못 마시고, 조금씩 마시는 술에 항상 취해있다.
“방에서 마시지 왜 길바닥에 술상 차렸나?‘고 했더니, 심심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 만큼 외롭다는 말이다.
거리에 술상을 차리면 아는 술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있으니 잘 모르는 분이 끼어 앉았다.
난, 사진 찍는 조문호라며, 자기의 이름도 적어달라고 수첩을 내 밀었더니,
“不可無一杯酒”라 쓰고는 그 밑에 郭玉泰(57)라 적었다.
없어서는 안 될 한 잔 술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자기도 술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어디 사느냐고 물었더니 ‘광주여인숙’에서 머무는데,
요즘 하루에 만원씩하는 여관비 대느라 정신없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얼마 전 사고를 쳐 감방에서 한두 달 썩고 나왔더니,
기초생활수급비가 반으로 줄었다며 투덜거렸다.
왜 적게 나오는지 영문은 모르지만, 참 세상 인심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유병철씨가 싱글벙글 나타나 새로 장만한 핸드폰 자랑에 신났다.
핸드폰에다 “구글 구글~, 보지 보지~”라고 말로 검색해 한참 웃었는데,
보여주는 이미지에 아연실색했다.
나도 성개방론자이지만, 그건 쪽팔리는 짓거리였다.
그만두라고 퇴박을 주었으나, “형 카메라보다 이게 더 좋다”며 자꾸 보란다.
아무리 혼자 살아 여자가 그립겠지만, 그건 아니다 싶었다.
세상 정보가 한 손에 들어 있어 좋은 세상인지 모르지만,
몰라도 될 폐해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구멍가게에 일보러 가야겠다며 일어나니,
‘형 같이 놀아줘!“하고 불렀으나 모른척 가버렸다.
가게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다 왔더니,
다들 사라지고 남종호씨만 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신발을 베개 삼아 웅크린 모습에 마음이 아렸으나,
겨울이 아니니 그대로 둬야 했다.
다들 술이 취하면 눈 좀 붙였다 들어가는 습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이준기씨와 황춘화씨가 만취해 있었다,
아들 용성이가 달려와, 더 있으려는 황춘화씨를 부축해 갔으나,
다리가 불구인 이준기씨는 내가 데려다 줘야 했다.
간신히 자기 방에 들어가서는 ‘형! 멋진 안경이 생겼으니,
안경 쓴 사진 한 판 찍어 달라“ 했다.






그러고는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으나 술이 없는데다 너무 취해 움직이기 힘들다며,
설합에서 오천원을 꺼내서는 내려가다 한 잔 하고 가란다.
걱정말라며 사양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래, 이 돈으로 다음에 술 한 잔 사겠다"며 받아 나왔으나, 코 끝이 찡했다.

이게 사람 사는 정이다.






내방에 돌아와 폐북을 뒤적거리다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가 쓴
‘쪽방촌 사진족에 몸살’이란 기사에 분노가 치밀었다,
물론 생각 없이 쪽방촌을 기웃거리는 무례한 아마추어 사진인 부터 탓해야겠지만,
사진족이란 말에 부풀린 뉘앙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뚫어진 문살에 눈만 나오게 만든 사진이미지도 도둑촬영을 의미했는데,
뉴스를 만들기 위해 기사를 썼다는 생각이 앞섰다.



‘사진은 본 기사와 상관없음’이라며 실은 /뉴스1 사진


여지 것 동자동에 살면서 한 번도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만나지 못해 그런지 모르지만,
두 부부의 이야기만 거론 한 것으로 보아, 사실보다 부풀린 내용인 것 같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포토그래퍼 윤모씨라는 분의 인터뷰 내용도 몇자 적었는데,
그렇다면 이름을 정확하게 밝혀야 했다.
자신의 이름 하나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나서지 말아야 했다.
사람 사는 게 구경거리냐?는 글도 구경거리를 만들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윤리적인 잣대를 앞세워,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울타리에 가두고 금기시하는 자체가
그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소외된 약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인들도 가시적인 풍경이 아니라,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다면,

사진에 앞서 인간적인 접근이 우선되어야하고,
필요할 때는 본인의 양해 아래 연출 없이 찍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상을 당하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다들 이름 석 자 중 한자는 빼고 적었는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소 본인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릴 사정이 있다면, 이름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표하는 이름을 숨기는 자체가 당사자나 망자를 모독하는 짓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평등의 말처럼,
제발 평범한 사람으로 봐 주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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