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동자동 주민들을 줄 세워, 또 사람을 길들인다.





지난 5일은 삼성에서 주는 선물이라 묵직했다.
작년처럼 물량까지 충분해 천천히 나누어주어도 될 일이었다.
아홉시 반부터 나눠주기 시작해 열두시에 끝났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날씨까지 추워 두 시간을 벌벌 떨어야 했다.






나누어 주는 절차는 뭐가 그리 복잡한지, 도무지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삼 백미터나 되는 긴 행렬이 가관이었다.
그런 걸 노렸는지, 이엔지 카메라까지 동원되어 짐 날라 주는 봉사활동까지 샅샅히 찍었다.
제발, 선심을 써도 조용히 소리없이 모르게 하라.






2년 넘게 쪽방 촌에서 살다보니, 나도 슬슬 길들기 시작한다.
공짜 좋아하며, 은근히 주는 게 기다려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얻어먹는 게 부끄럽지 않고, 뻔뻔해 졌다는 것이다.






처음 동자동 들어오니, 보컬그룹 레이더스의 ‘인디안 보호구역’이 생각났다.
인디안은 아니지만, 빈민 보호구역으로 여겨졌는데,

우리들을 보호구역에 가둬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 돌도끼 그리고 칼과 할마저 빼앗아 갔다

노래 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수시로 먹을 것 나눠주며,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사육이나 다름없다.
주는 떡이나 받아먹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 아니가?

우범자들을 한 군데 모아 관리하는 것 같기도 한데, 종종 정치적 쇼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도대체, 서울시에서 ‘쪽방상담소’란 것은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오갈 때 없는 노숙자를 위한 ‘노숙자상담소’라면 모르겠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별도로 만든 것은 다른 저의가 있는 것 아닌가?
차마 줄 세워 길들이는 일을 공무원한테 맡겨, 똥바가지 덮어 쓸 필요 없다는 거지...






이 날도 '삼성화재'에서 50여명의 도우미가 나왔으나, 노약자들 짐 옮겨 주는 일만 했다.
내 앞의 할머니는 허리가 아파 일어 설 수 없어, 시멘트 바닥에 퍼져 않아 한사람 빠지면 자리 옮기기를 반복했다.
지나가는 삼성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며 신분증을 줘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이 그러겠다며 받아 가더니, 한 참 있다 와서는 본인 확인이 안 되면 불가능하단다.






에라이! 이 융통성 없는 죽일 놈들...
쪽방상담소 직원들이 권위적이고, 갑질하는 못된 짓만 배웠다.
그런 원칙이 똑 같이 지켜지면 말도 안한다.






할머니께서 한 시간이나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시니,
쪽방사무소를 들락거리는 완장부대가 신분증을 받아가 해결해 주더라.
아는 사람은 새치기도 받아주면서...






마침내 두 시간 만에 내 차례가 돌아 왔다.
한 사람이 컴퓨터에 입력하여 넘겨주면, 한 사람은 신분증에 적힌 이름과 생년월일을 보고 적더라.

그리고는 본인에게 서명까지 하라는데, 그 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두 군데나...





글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 많은데, 해보지도 않은 사인을 두 군데나 하려니
오죽 시간이 걸리겠는가? 추워 손가락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데...
시간이 지체될것 같으면 일하는 사람을 늘리면 될 텐데, 끝까지 노인들을 추위에 떨게 했다.






선물을 받아 열어보니, 작년처럼 쌀, 라면, 통조림, 김 등 꼭 필요한 것만 있었다.

그걸 보니,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구호물품으로 준 시레이션 박스가 연상되었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나라미’ 쌀 주지, 푸드마켓 에선 김치 주지, 토요일은 교회에서 빵 주지,
수시로 이런 저런 것들을 나눠주니, 줄만 서면 가만있어도 굶어 죽을 염려가 없다.






이러니 임대주택에 독립해 나간 사람조차 다시 동자동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새집에 살면 뭐하냐? 먹을 것이 없고 친구가 없는데...






제발 줄세워 길들이는 짓은 그만해라.

"안자 마이 뭇다 아이가”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