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래 있는 ‘사람이다’전시 오프닝은 ‘갤러리 브레송’ 김남진관장께서 날자를 잘 못 잡아, 안 오셔도 됩니다. 그 날은 탄핵이 가결되던, 부결되던 싸워야 합니다. 좋은 세상을 찾는 게 먼저입니다. 저는 오후 5시에 ‘갤러리 브레송’에서 인사드리고, 7시에 광화문으로 가서 싸울 것입니다. 전시는 편한 시간에 오셔서, 세상 이야기 좀 합시다. 10일부터 20일까지니, 언제든 편한 시간에 오세요. 

 “사람 나고 정치 났지, 정치 나고 사람 났냐?”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베터리가 방전된 것 같았으나, 산골짜기까지 출동 서비스를 부르기가 민망했다.


울 엄마 묘지 빌려 준 최영규 댁에 추석 선물 하나 전하러 갔다.

윗만지와 아랫만지는 이웃이지만, 산굽이를 돌아야 해, 걸어가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간 김에 벌초하러 산소에 들렸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걱정되어 마당에 말리던 고추를 걷어놓고 온 게 천만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비에 젖은 내모양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최영규씨에게 서울로 떠날 때, 베터리 좀 연결하자고 부탁해 두고 왔으나,

쏟아지는 소낙비로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하늘만 쳐다보며 기다리다, 혹시나 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 본 것이다.

수차례 반복했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부르릉” 시동이 걸려 주었다.

“얼시구나”하고 쉬지도 않고 냅다 달려왔다.

서울의 정비공장에 갔더니, 베터리를 교체하라지만, 난 어디서 방전되는지 좀 찾아달라고 했다.

방전되는 곳을 찾으려면, 시간은 걸리는데 돈이 되지 않으니 자꾸 교체를 권한다.

하는 수 없이 베터리를 교체하고, 아내 정영신의 전시 때 팔린 작품을 전해주러 인사동에 나갔다,

그런데, 이젠 차 문의 유리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터널통과하며 매연 마시는 것이야 참을 수 있으나 만약 비라도 쏟아진다면 낭패다.







인사동 ‘허리우드’에서 건축가 임태종씨를 만나 작품 두 점을 건네주었다.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정비소로 가야 하지만, 차 한 잔 하자는 임태종씨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아라아트’와 관련되어 건축사무소 문을 닫는 불상사까지 겪은 그인지라.

‘아라아트’ 경매낙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와 헤어져 나오다 몇일 전 어머니 상을 당한 공윤희씨도 만났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향에 다녀왔다는데,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상대를 배려하는 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건 아니다 싶다.

언제 위로주라도 한 잔 하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이번엔 퇴근하는 전인미씨를 만난 것이다,

여자들이 만나 이야기 나누기 시작하면 길어질까 걱정되었다.

결국 차문 수리는 포기했으나, 오다 보니 불 켜놓고 일하는 정비공장이 하나 있었다.

부품이 없어 안 된다지만 유리만 끌어 올렸는데, 이번엔 형수가 대장암수술을 받았다는 전갈이 왔다.

약수역에서 누님과 동생을 만나 신당동 '송도병원'으로 향했다.

아직 정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지만, 좋은 결과가 있길 기원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 형수에 대한 옛 이야기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인적 없는 만지산의 밤은 적막했다.
아궁이 앞에 퍼져 앉아, 두 시간 가까이 군불을 지피며 허튼 몽상에 빠져들었다.

비구름에 휩싸여 사위는 온통 시커멓고, 귀뚜라미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장작불마저 타닥거리며 혀를 날름대니, 마치 귀신이 나올듯한 음산한 분위기였다. ...


옛날, 울 엄마는 아궁이 불 지필 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짐작컨대, 오로지 자식들 걱정 뿐이었을 것이다.

오래 전 읽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집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툇마루의 요강 위에 앉아 달을 쳐다보며, 난 언제 유명한 시인이 되고, 멋진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까? 라고 했다.

그리고 돈 많은 과부를 만나는 거지의 꿈처럼, 유치찬란한 몽상을 한 것이다.


한 밤중에 산골 집으로 처녀귀신이 찾아 온 것이다.
귀신이, 나 귀신이라고 말하지 않으니, “이게 왠 떡이냐?”며 칙사 대접을 했다.

책장 뒤에 숨겨둔 머루주는 꺼냈어나, 안주가 없어 장작불에 감자를 구워, 주거니 받거니 황홀한 밤을 보낸 것이다.

술이 취해 그녀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앗 뜨거!” 장작불이 튀어 불똥이 날아 온 것이다.
“야 이 주책바가지야~.” 주제 파악 좀 하라는 메시지였다.


이런 생각의 발단은 내가 정선 내려오며 페이스북에 남긴 글 한 줄이다.

“정선에 가면, 울 엄마 등어리 잡초도 뽑아야 하고, 따뜻한 햇살에 고추를 말리며, 할 일도 많고 놀 일도 많은데,

아내가 따라나서지 않으니 무슨 재미랴? 차라리 정선에 새 할망이라도 얻을 까보다.”라고 올렸더니,

"병원에 있는 엄마 수발로 바쁘니, 새색시 얻어 쭉 정선에 눌러 살라"는 아내의 답 글이 올라 온 것이다.


물론, 둘 다 웃으려고 올린 글이지만, 말 나온 김에 바람 좀 피우려다 불똥 맞은 것이다.

그런데 여지 것 아내와 헤어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만감이 교차했다.

문제는 이제부터 나 혼자 새로운 작업에 빠지게 되었으니, 진짜 따로 놀게 된 것이다.

걱정은 각자의 작업에 빠져 들다보면 소통의 통로가 막히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운 거다.


사진, 글 / 조문호







































 








모처럼 짬 내 정선 갔더니,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네.
‘우루ㅡ루 쾅’ 천둥소리에 놀란 가슴 삭이며,
일손 놓은 채, 담배연기로 시름 달랜다.

시원해 좋긴 하다만, 밀린 일은 언제 할까?
칡넝쿨은 나무를 뒤덮고, 불 지필 화덕에 코스모스가 웬 말이냐?
텃밭의 상추 대는 하늘로 치솟고, 잡초들만 제 세상 만났는데..

맛도 보여주지 않고, 가버린 님은 얄밉지만,
고추, 옥수수 같이 반겨주는 것들도 남았구나.
공들인 것 만큼 거둔다는 이치 따라, 또 다시 땀을 흘린다.

“아이구! 허리야”
이러다 밤일 못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어제 아내의 지령으로 마트에서 고구마를 한 봉지 샀다.
삶기 위해 고구마를 씻었는데, 꼴이 요상했다.
대개가 여자들 거시기처럼 생겨버렸다...
그렇지 않은 것은 씻으며 힘 없어 부러졌다.


그동안 고구마는 남자의 상징처럼 말해 오지 않았던가?
여성상위시대 따라 농산물까지 변하는 걸까?


요즘 대부분의 남자들이 마누라 앞에서 벌벌 긴다.
그 기고만장한 남자들이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
오래 전 직장인의 월급봉투에서 아내의 통장으로 들어가며 역전되기 시작했다.

가족의 혈연마저 끊게하는 무서운 돈이 아니던가?


내일 정선가면, 감자는 어떻게 나오는지 캐봐야겠다.
그나저나, 한 달 넘게 비워 둔 집이 걱정이다.
농작물과 잡초가 뒤엉켜 과관 이겠다.
이판사판, 전쟁터에 투입되는 심정이다.


시원한 밤에 하는 방법은 없을까? 거시기처럼...


사진,글 / 조문호



휴가 떠나는 기분이지만, 정선 가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집 주변을 온통 뒤덮고 있을 잡초와의 전쟁에서부터 텃밭 일거리가 널려 있다.

오늘부터 열리는 ‘강릉단오제’에도 들려야 한다.
20년 전에 찍은 만신들을 만나, 그들을 다시 찍을 작정인데, 몇 분이나 살아 계신지 모르겠다.

정선 읍내에서 열릴 강기희 출판기념회에 들려 술 마실 일에서부터 만날 사람도 많은데,

‘교육방송’까지 처 들어 온다니 그 것도 걱정이다. 또 얼마나 귀찮게 할지...

이번 주말까지 마무리하고, 울 아부지 제삿날인 주말에나 돌아 올 작정인데,

정선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아 페북 질도 못하게 되었다.
갔다 올 동안, 운영위원회가 열려 인사동사진축제 기획안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인사동사람들’ 블로그도 당분간 불이 꺼진다.




 

 

 

 

똥차 검사받으러 ‘성산자동차검사소’에 갔다.
작년에 떨어진 경험이 있어 잔뜩 쫄았는데, 또 불합격이었다.
여기 저기 다니며 손보느라 정신없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정선서 다큐영화 만드는 이창주 감독이 서울 왔다는 것이다.

페북에 올린 베트남전 이야기를 읽었다며, 사진집 한 권 구해달랬다.
책이야 서점이나 전시장에서 구하면되겠으나, 그보다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간신히 검사받고, 약속장소로 갔더니, 한 시간이나 늦어버렸다.

 

낙원동 길거리에 술판을 벌여놓았는데, 요즘 어디를 가나 노상 술자리가 인기다.

답답하지 않아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담배를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국의 좋은 막걸리만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막걸리에 대한 영화를 찍기 위해 충무로에서 설명회도 두 차례 가졌는데,
반응이 좋아 곧 제작에 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그 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베트남 전쟁이라 했다.
일본작가가 펴낸 베트남전에 관한 책이 있는데, 한 번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잔혹한 학살현장 사진과 인터뷰로 엮었는데, 기가 막힌 사실이 많단다.
오래전부터 베트남 전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해 왔다고 했다.
낙원동의 ‘먹고 갈래 지고갈래’란 술집에 참전했던 해병대전우들이 자주 와,
그들과 인터뷰 하려했으나, 왜 아픈 곳을 건드리냐며 거절해 다른 방법을 찾는단다.

이 친구도 꼽히면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좋은 영화를 만들 것으로 생각되었다.
자리 잡은 술집 역시 좋은 막걸리만 파는 집인데, 부산의 산성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옛날 부산 있을 때, 마셔보았던  추억의 막걸리였으나 도수가 높아 빨리 취했다.
좋은 막걸리는 누룩에 있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완전 막걸리 박사였다.

난, 술보다 대마가 덜 해롭다며, 대마초 합법화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술만 취하면 객기가 도져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때가 더러 있다.
매번 후회하지만, 그 술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더라.
유일하게 넘치는 기분을 가라앉히는 게, 대마초인데 구할 길이 없네.

사진, 글 / 조문호

 

 

 

 

 

 

 

 

 

 

 

 

 

 

 

 

 

 

 

 

 




오랜만에 정선 만지산에 들렸다.
일에 쫓겨 차일피일 미루다, 그 많은 더릅이 피어버려 못 먹게 되었다.
쌉쌀한 맛에 소주한 잔 하려던 생각은 고사하고, 선물할 곳도 많아 걱정이지만 어쩌랴!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꼭 가는 집이지만, 요즘은 기름 값 걱정에 그마저 못 갈 때가 많다.
이번엔 야채파종과 축대를 보수하려 했으나, 막상 부딪쳐보니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언 땅이 풀리면 밭을 오르는 계단이 허물어져, 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해야 하는 일인데다,

돈 못 버는 주제에 야채라도 많이 심기위해 빈 땅을 개간했으니 접힌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고추가 주종이었으나 개간 못한 땅엔 옥수수를 심었는데, 윗집 최종대씨가 걱정스레 말했다.

“밭에 전기철망 치지 않으면, 멧돼지가 쑥대밭 만듭니더”

그렇게까지 해 가며 농사지을 생각은 없어, 사람이 먹던 짐승이 먹던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차라리 노동이 필요 없는 딸기 같은 과일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러나 살던 집은 손 볼 곳이 많아도 노동력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아마 귤암리에선 제일 오래된 집이 우리 집일 것이다.

한 때 동강 댐이 무산되며 주민들 보상책으로 정부에서 주택건설비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정겹던 옛집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국적불명의 이상한 집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옛집의 불편한 점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오래된 집이라 수시로 손을 봐줘야 하는데다, 수세식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없으니,

개량주택에 길든 여인네들은 질색이다. 그러나 군불 지펴 따뜻한 온돌에 더러 눕는 그 맛이 쥑인다.

불과 반세기밖에 지나지 않은 집이지만, 구옥을 하나라도 지키고 싶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사진만 팔리면 신용불량자 신세도 면하고 집수리도 할 작정이었으나, 매번 공염불이 되고 만다.

예전엔 떠돌다 힘들면 마음편이 쉬려 정선 집에 갔으나, 이젠 일할 때만 정선가는 꼴이 되었다.

낡은 집이 남은 내 수명까지 버텨주면 고마우련만, 허물어진 내 몸보다 못하니 그게 문제로다.

차라리 잠자다 무너져내려 같이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푸념에 아내의 핀잔을 받기도 한다.

가족 생각은 아랑곳 않는 무책임한 말에 자괴감은 느끼지만, 이 모순투성이 세상이 싫은 걸 어쩌겠는가.

그런데, 이젠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한적한 시골에 살려면 이웃이 좋아야하는데, 염치없는 사람이 옆집으로 이사 온 것이다.

본래 살았던 노성수씨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집이 팔렸는데, 새로 이사 온 사람의 무례가 도를 넘고 있다.

이사 올 때부터 이웃과의 인사도 없이, 재 측량한다며 남의 집에 빨간 막대를 꽂아 불쾌하게 만들었다.

우리 집 마당을 자기 주차장처럼 사용하는데다, 자기 땅도 많은데 남의 땅에 고추를 심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서울서 살러 온 사람들이 지역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개인주의적인 이기심 때문이다.

이제 정선마저 싫어졌으니, 더 이상 내 쉴 곳은 없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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