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일시 :  2018년 3월2일~3월 31일

전시장소 :  G갤러리(033-563-9591)

정선군 화암면 소금강로 1029 (그림바위예술발전소)















평창동계올림픽 부대행사로 열린 정선고드름축제가 막을 내리며 정영신의 장터사진전이 열리는 고드름정원 정선사진관도 문을 닫았다.

성공적인 축제였으나 행사장 전역의 동선 연결이 원활하지 않았다. 얼음낚시터에는 연일 어린이들과 관광객이 몰렸지만,

갈대숲 고드름정원이 있는 곳은 다소 한산했다. 구경거리 보다는 잡고 먹는 곳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했다.

조양강변에 일억 원 상당의 송어를 풀었으니, 송어축제나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고드름정원 정선사진관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촬영을 해주고 현장에서의 인화서비스도 병행되었으면 좋았겠다.

고드름주제관에서 무료인화서비스가 있었지만, 그곳보다는 고드름정원의 대표적 배경지에서 사진가가 직접 찍어주는 기념사진과 같을 수 없다.


행사가 치루어진 19일동안 방값 싼 숙박업소 찾느라 증산까지 출퇴근했으나. 마지막 날은 날씨가 춥지않아 만지산 집에서 하루 머물렀다.

“움막이라도 역시 내집이 편안했다.


사진,글 / 조문호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정선은 '고드름축제'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정선아리랑시장'도 축제가 열리는 동안 매일같이 장이 들어선다.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지만, 다양한 문화공연으로 장터를 들썩이게 한다.






공연장에서 사회를 보는 정춘경씨와 시장 팀장인 임미순씨 등 반가운 분도 여럿 만났다.
임미순씨는 빈대떡과 막걸리까지 챙겨 주었는데. 공연 보며 마시는 술 맛도 꽤 괜찮더라.






구성진 정선아리랑 가락에 어깨를 들썩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최성월씨가 나타났다.
이분은 귤암리 분으로 그동안 몸이 아파 병원에 계셨는데,
장에 나오신 걸 보니, 어느 정도 완쾌된 듯 보였다.






이 분의 정선아리랑 소리도 귀가 막히지만, 그 특유의 꺽세 춤은 웃음이 절로 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무대에 나가 춤을 추기 시작하니, 등달아 다른 할머니까지 따라 추었다.
이토록 신명이 많은 분이 엉덩이가 들썩여 어떻게 병원에 누워 계셨을까?






봄이 되어 산나물이 지천에 깔리게 되면, 시장을 찾는 관광객도 나물처럼 깔릴 것이다.
이 날 공연은 곧 들어 닥칠 봄날의 성수기를 위한 워밍업 같아 보였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도 한 둘이 아니다.
정선시장은 주민들 보다 관광객들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번 설 대목장도 대개의 주민들이 시장보다 활인매장으로 몰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 곳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장점도 있으나, 다들 상품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품이 비싸다면 관광객인들 모를 리 없다. 부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기를...



사진, 글 / 조문호

































정선 고드름 축제로 조양강변이 흥청댄다.
송어낚시가 한창인 얼음놀이터는 매일같이 북적대지만,
반대편의 눈썰매장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그러나 눈썰매장도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사정이 달라진다.






갈대숲과 고드름 정원으로 가는 고드름 터널을 통과하면
정영신씨 장터사진전과 유재순씨 천연염색 설치전이 열리는 전시장이 나온다.
전시장 맡은 편에 있는 눈썰매장에 경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도 달라진다.






지난 15일은 눈썰매장에서 설피와 눈썰매, 전통스키로 이어지는
3종 혼합 릴레이 결승전이 열렸다.
각 부락 대표로 짜여 진 선수들이 이른 시간부터 몰려왔다.






징소리를 신호로 설피 경기가 시작되어 눈썰매로 이어지는 부분이 가장 흥미진진하다.
눈 길을 잘 못 잡아 낑낑대기도 하고, 중심을 잃어 엉덩방아를 찧는 일도 흔했다.
마지막으로 이어받는 전통스키는 발로 밀어 타야 하지만, 설피처럼 뛰다 실격을 당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손발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은 수련이었다.
남보다 일찍 나와 한두 번 연습해 보는 자들이 이기더라.


나도 짬을 내 정영신씨를 앉혀 한 바퀴 돌아 볼 심산인데,
그 방뎅이 무게에 잘 끌려올지 모르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정선에서 열리는 고드름축제도 이제 중반을 넘어섰다.

추운 겨울 축제지만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는데, 송어 낚시터와 장작구이 등의 잡고 먹는 곳만 만원이다.
난, 고드름축제에서 열리는 정영신씨 장터사진전 지원하러 왔으나, 먹고 자는 게 영 편치 않다.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아 답답한데다, 동자동도 인사동도 갈 곳을 못가니 더 미친다.
이제 며칠만 고생하면 끝나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이 나이에 언제 어린애처럼 놀 기회가 있겠는가?
어린 시절 고향의 영산 연지 못에서 썰매 타며 놀던 생각도 났다.
겨울철이면 온 동네방네 친구들이 다 모여 썰매를 탔는데,
얼음이 녹아 휘청대는 곳을 질주하다 한 번은 물에 빠진 적도 있었다.






이제는 썰매보다 설피 신고 눈길 뛰는 재미가 더 좋더라.
아마 산골에 살다보면 더 필요한 게 설피 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가한 틈을 내어 고구마 구워 먹으며 노는 재미도 빼 놓을 수 없다.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정영신씨 웃기는 재미를 알랑가 모르겠다.






반가운 분들도 여럿 전시장을 방문했다.

신주호 부군수를 비롯하여 서건희 문화관광과장, 전상현, 유명선,
박상철씨도 오셨고, 늦게는 강기희씨가 소주와 안주를 사와 가뿐하게 한 잔했다.

그 맛있는 닭발을 이가 빠져 못 먹는 신세가 좀 처량하지만...

강기희씨의 신작 '위험한 특종 김달삼'이 다음 달에 출간된다는 소식도 들었다.

천연염색하는 유재순씨 일행과 저녁 식사하며 부족한 술은 보충했다.






그 이튿날은 일찍부터 강기희씨가 부인을 대동하여 나타났고, 뒤 따라 전상현씨도 왔다.
전 날 저녁 있었던 도깨비소 총각과 유재순씨의 중매 문제를 들고 나왔으나,
당사자인 도깨비총각이 나타나지 않으니, 공술 얻어먹을 일은 물 건너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중매 잘 못하면 빰이 세대라지만, 외로운 사람끼리 한 번 붙어보는 것도 좋을텐데 말이다.



사진: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정선엔 또 다른 겨울 축제로 시끌벅적하다.

바로 조양강바닥에 펼쳐 진 정선 고드름 축제다.

 

오는 25일에야 끝나는 이 축제는 고드름의 별천지를 볼 수 있는 눈요기 뿐 아니라,

다양한 경기와 놀이가 펼쳐져 온 몸으로 느끼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기계적인 각박한 삶에서 이런 추억거리를 만들어 두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매일 볼거리와 놀 거리가 널렸지만, 설날에는 더 많은 즐길거리가 있다.

연날리기대회, 가족 윷놀이, 가훈쓰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널뛰기, 투호놀이 등

다양한 설맞이 민속놀이가 열려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놀이뿐 아니라 낙동농악 등의 다양한 민속공연을 비롯하여 허영호 산악사진전,

정영신의 장터사진전, 유재순 천연염색 설치전도 열리고 있다.

먹거리로는 정선음식 10선체험관, 겨울송어 회 센터, 장작구이 터도 운영된다.

가래떡, 군밤, 군고구마도 구워먹고, 떡메치기, 어묵 등 먹 거리가 풍성하다.

 

그리고 왕 고드름이나 고드름터널을 배경으로 가족들의 기념사진도 한 장 찍어두자.


    

아래 사진들은 지난 7일 있었던 고드름축제 개막식에서 부터 신비로운 고드름 풍경,

그리고 '정선군청' 앞에서 열린 올림픽 성화봉송 맞이 축하공연 등 하루 동안의 기록이다.

 

축제기간 동안 고드름 축제 부대행사로 열리는 정영신의 장터사진 전시장에 상주하고 있다.

실시간의 기록을 올려야 하나, 행사장에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아 노트북도 사용할 수 없다.

찍은 사진도 올릴 수가 없어, 잠깐 짬을 내어 우체국에 가서리는데,

눈치보여 구구한 사연 말할 시간조차 없구나.

 

 사진, 글 / 조문호















































































잃어버린 카메라를 가까운 지인들 도움으로 한 달 만에 구하게 되었다.
카메라가 없으니 동자동과 인사동 기록은 물론 꼭 필요한 사진조차 놓칠 경우가 많았는데, 너무 고마웠다.

후배 사진가 하재은씨가 선물한 ‘라이카’도 있지만,

그 카메라는 행사 사진이나 부탁받은 촬영에만 사용하지, 일반적인 생활사 기록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Nikon Coolpix P310 카메라는 휴대하기 편한 컴펙트 카메라라 술상에 젓가락 놓듯 항상 같이 놀 수도 있지만.

손바닥에 쏙 들어가 상대방이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는 편리한 카메라다.

그런데도 기능마저 탁월해 큰 카메라에 전혀 손색 없다.

이 카메라는 5년 전 정영신씨가 38만원에 구입해 물려 받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년 말 노숙인과 놀다 잃어버려, 다시 구하려니 단종 되고 없었다.

기가 수만 좀 높아졌지 바뀐 게 전혀 없는 새 제품으로 둔갑해 58만원에 출시되어 있었다.

도둑놈이라 욕할 수도 없는 건, 그들은 돈에 영혼을 판 장사꾼이 아니던가.

카메라를 잃어버린 후, 중고 카메라를 구입하려 카메라점마다 돌아 다녔으나 도무지 구할 수가 없었다.

휴대폰처럼 사용하다 버리는 카메라인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새 모델을 살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상술에 끌려가는 것 같아 싫었다.






사실상, 살 돈도 없었다.

진즉부터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김명성씨가 여러 사람에게 거두어 30만원을 만들어 주었으나, 사지 못했다.

이 곳 저곳 알아보았으나 카메라 자체가 없는데다, 돈이란 호주머니에 넣어두면 없어지는 요물이나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 녀석들 용돈도 주고, 모자라는 술값을 보태는 등 야금야금 썼더니, 핫바지 방귀 새 듯 사라지고 없었다.

걱정에 걱정을 머리에 이고 살았는데, 몇 일전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의 오찬장에서 또 다시 구세주를 만난 것이다.

디지털카메라를 잘 아는 김생수선생께 행여 구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더니,

옆에 있던 엄상빈씨가 인터넷 중고시장에 검색하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뜸 최경자씨가 5만원을 내 놓으며 시동을 걸어 주었고, 엄상빈, 정영신씨가 각각 5만원씩 부담한 것이다,

모자라는 돈은 그 자리에도 없던 마동욱씨까지 합세하여 돈을 마련해 주었다.

이번엔 정영신씨가 직접 돈을 맡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뒤져도 중고 카메라는 없었다는데, 이월 상품 하나가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즉각 돈을 보냈다고 한다.

신품인데도, 처음 나올 때의 정품보다 싼 25만원에 구입했다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정선 고드름축제장으로 떠나야 하는데, 주문한 카메라가 오지 않았다.

이번에 떠나면 축제가 끝나는 25일경에나 돌아 올 수 있으니, 마음이 다급했다. 

동자동에 카메라를 인수할 사람도 없는데다, 축제 사진도 찍어야 하니 그냥 출발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어 택배회사까지 찾아가 어렵사리 카메라를 인수받아 정선으로 떠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카메라에 기분이 충천했다.

이 카메라는 엄상빈씨를 비롯한 네 분의 사진가들이 사주었지만,

그 이전부터 김명성씨를 비롯한 인사동 사람들의 마음까지 담겨 예사 카메라가 아니다. 


이 조그만 카메라에 십 여 명의 정성이 담겨 있으니,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 분들의 마음에 보답하는 길은 정신 바짝 차려 좋은 사진을 찍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좋은 사진이란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사진에 앞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이바지하는 사진이고 싶다.





이런 저런 일로 좀 늦게 정선으로 출발했는데, 정선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쯤 되었다.

전시장으로 만든 콘테이너 박스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좁은 면적에 그 많은 사진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도 난감했다.

늦어도 디피를 끝내고 싶었으나, 전기 연결이 잘못 되었는지 불도 켜지지 않았다.

정영신씨와 의논하여 대충 자리만 잡아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숙소가 마땅찮았다,






만지산 집은 추운 겨울에는 살 수 없는 집이다.

군불을 때면 바닥은 따뜻하지만, 산중의 찬바람이 바로 들어오는 집이라, 방안에 있어도 입김이 피어 오른다.

그래서 보온텐트를 방에 치려 했으나, 모든 매장에서 제품을 철수하고 없었다. 이젠 봄 상품을 준비한다나...






하는 수 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내려 왔는데, 그 때까지 텐트가 도착하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도 정선 읍내 일보러 나왔다가, 쏟아지는 폭우에 강물이 불어 이틀 동안 여관에 머문 적이 있지만,

이번에도 여관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동호장’에 방이 있는지 전화를 걸었더니, 오늘은 방 하나에 5만원이지만, 내일부터 10만원이라는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기화로 바가지 씌울 생각부터 하는 돈벌레라는 생각이 드니, 두 번 다시 돌아보기도 싫었다.

'그림모텔'에서 4만원에 잤는데, 생각 외로 괜찮은 여관이었다.

모든 게 다 좋았으나, 욕실 벽의 누드 타일이 좀 야하더라.

 

정영신씨와 모처럼 티브이를 같이 보는 시간도 가졌다.

둘 다 티브이가 없기도 하지만, 그 중독성에 이미 쐬기를 박은지 오래기 때문이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바뀌는 화면만 쳐다보다 잠들어버렸다.




 

정선 고드름 축제 개막식이 있는, 그 이틀 날은 더 추웠다.

축제장에서 정선군청에 근무하는 전상현씨를 만났으나, 전시준비에 정신이 없어 한가하게 인사 나눌 틈도 없었다.

전시 벽이 액자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아 각목과 전기드릴이 필요했다.

어렵사리 구하여 디피를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전시공간이 좁으니 유치원생 사생대회전이 연상되었다.


    

 



그 때서야 고드름으로 장식한 조양강 축제장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둘 다 전시장은 비워두고 어린애처럼 구경하러 돌아다녔는데,

마침 취재 중이던 엠비시 황지웅 피디와 노기환 엠씨를 얼음동굴에서 만난 것이다.

정영신씨의 장터에서 백 만 가지 표정을 담다.’사진전이 열리는 전시장으로 안내했는데,

배고픈 줄을 어떻게 알았는지,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겨울송어낚시 행사장에서 노기환씨가 직접 잡았다는 송어를 회쳐 왔는데, 너무 맛있었다.

야전의 식사는 이럴 수도 있다며, 둘 다 손가락으로 허급지급 먹어 치웠다.



 


오후 두시 무렵 열린 개막식장에서 전정환 정선군수를 비롯하여 반가운 분들을 여럿 만났으나. 귤암리 주민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추운 날씨라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한 것 같았다.

축제의 열기는 고드름을 녹일 정도로 후끈했다.



    

 

썰매장에서 열리는 어린이들의 경기를 구경하다보니, 올림픽 성화 봉송팀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선은 알파인스키활강과 슈퍼대회전, 복합 종목이 열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개최지가 아니던가.


올핌픽 개막을 이틀 남긴 시점의 성화봉송은 구절리와 아우라지를 잇는 레일바이크와 풍경열차를 타기도 했고,

배우 김보성씨는 병방치의 짚와이어를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정선 고드름 축제가 열리는 조양강변 일원을 지날 즈음정선군청 앞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화가 김형구씨를 비롯한 많은 군민들이 정선군청 앞을 메웠다.

많은 공연이 있었지만, 정선군립 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 별곡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축하공연이 끝나자 전정환 정선군수의 환영사와 김옥휘 정선군의회의장의 축사도 이어졌다.



 


그러나 그 날은 축하공연 때문인지 정선시내에 빈 방이 없었다.

결국은 증산에 있는 리브사이드모텔까지 찾아 가야 했다.

정선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소요되지만, 요금도 4만원인데다 침구도 깨끗했다.

그동안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는 커녕 컴퓨터 구경도 할 수 없었으나,

그 날 저녁만은 컴퓨터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눈팅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 이틀 날은 보온 텐트가 도착하여 귤암리 만지산에서 잘 수 있었지만, 결코 녹녹치 않았다.

얼마나 추운지, 두 사람이 양쪽 아궁이에 나누어 앉아 군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

추위도 녹일 수 있는데다, 바짝 마른 장작에서 타 오르는 불길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불에 파묻혀 있다보니, 방에서 연기가 새어 나왔다.


깜작 놀라 들어가 보니, 이불에 불이 붙은 것이다.

불을 너무 많이 지피기도 했지만, 아랫목 시멘트 갈라진 틈으로 불길이 올라와 붙은 것 같았다.

일찍 발견하여 큰 탈은 없었으나, 자칫했으면 큰 산불로 옮겨 갈 수도 있는 여건이라 아찔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텐트 안에 들어가 누우니, 마치 산행에 나선 기분이었다.

바닥이 따뜻해 그리 춥지는 않았으나 텐트 밑으로 기어 들어오는 한기에 잠을 설쳐야 했다.

가마솥에서 밤새 끓은 물로 세수는 할 수 있었으나, 식사는 불가능 했다.

언제, 아침 식사라고 정해두고 먹은 지도 없었기에, 전시장으로 바로 나왔다.


그러나 급히 나오느라 빠트린 것이 있어 정영신씨만 전시장에 내려주고 다시 만지산으로 돌아가야 했다

가는 길에 어머니 계신 묘소에 들려 술 한 잔 올렸는데, 어머니께서 뭣에 삐쳤는지, 가는 길을 막아버렸다.





내리막으로 꺾어지는 산길에서 핸들을 돌렸는데, 내려가는 길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후진은커녕 질질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핸들만 마음대로 움직여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결국은 벼랑으로 떨어져 소나무에 꽝 부딪힌 것이다. 충격의 순간은 얼마나 놀랐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침 백열등을 갈기 위해 전구를 사서 앞자리에 놓았는데, 그게 팅겨나가 유리창을 치며 터진 것이다.

한동안 멍청하게 앉아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친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운전석 문이 나무에 끼어 열수가 없어 옆 좌석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터진 유리조각부터 치워야 했다.

간신히 기어 나왔으나 걱정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곳은 도저히 견인차가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일단 그 곳에서 제일 가까운 아랫만지 골의 최연규씨 댁으로 내려갔다.

이 친구는 소를 50마리나 키우는데, 자동 물 공급기가 얼어 우사마다 돌아다니며 물을 주고 있었다.

차량 견인에 일가견이 있는 그에게 사정을 이야기를 했더니, 서둘러 따라 나서 주었다

사고현장을 보더니, 견인차로는 불가능하니 내일 포크레인을 불러 끌어내자는 것이다.

그럴려면 눈부터 녹혀야 하니, 염화칼슘 열 포와 모래부터 실어와 뿌려 두어야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밤에 서울 다녀오기로 한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영신씨에게 버스 편으로 혼자 다녀오라는 전화를 했으나 걱정스럽기 짝이 없었다.

만지산도 차가 없으면 꼼짝할 수 없지만, 정영신씨도 조양강변 행사장에서 나오려면 제법 걸어야 했다.


마침 최연규씨 트럭타고 정선 읍내에 열화칼슘과 모래를 가지러 가는 길에

전시장에 잠깐 들렸다가 정영신를 태워 귤암리로 들어 와버린 것이다.

서울행을 하루 연기 한 것은 피차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영신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신승철씨까지 합세하여 모래와 염화칼슘을 뿌렸다,

뒤늦게 소문 듣고 온 김익수, 윤인숙씨 등 여러명이 함께 어울려 술도 한 잔했다.

최연규씨 부인은 허리관절에 문제가 생겨 일어서지도 못하는 환자가 되어 있었는데,

최연규씨가 직접 두부찌개를 끓였으나 음식솜씨가 제법이었다.


그 자리에서 속이 후련한 반가운 소식도 전해 들었다.

2년동안 이어진 지루했던 만지산의 물싸움이 정선군청의 개입으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다.

김익수씨 노래로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윗방에서 하룻 밤 신세졌다.



    

 

그 이튿날 정영신씨는 윤인숙씨의 도움으로 전시장에 나가고, 난 포크레인 기사의 연락에 사고현장으로 올라갔다.

언 땅은 녹았으나, 내리막 시멘트 길이라 포크레인도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마을의 최종대, 나병연, 송용삼씨가 와서 보더니, 체인을 감아 끌어 올리더라도 견인차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견인차와 동내 주민들이 합세한 애마 구출작전이 펼쳐 진 것이다.


사람이 많으니 눈도 금새 치워지고, 내려 갈 길에 모래를 뿌리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난, 차가 끌려 나올 때 다칠세라 주변의 나뭇가지를 톱으로 자르기도 했는데,

두 사람이 당겨 감는 체인에 조금 식 조금 식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뼘만 움직이면 돌을 괴기를 반복한 결과 억측 서럽게 버티던 자동차도 결국은 끌려 나오고 말았다.

동네사람들의 지혜와 견인기사의 협력이 이루어 낸 결과였다.





차가 파손된 부분이라고는 앞 범퍼와 운전석의 백 밀러, 그리고 유리창 빗물막이 뿐이었다.

백밀러만 끈으로 묶어 고정시키니, 운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남의 일이지만,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울 뿐이었다.


마침, 함평에서 농사지은 쌀을 정선에서 먹기 위해 20킬로 실고 왔는데, 그 것이라도 최연규씨에게 사례했다.

동내 분들은 서울 갔다 와서 술자리 한 번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정영신씨가 기다리는 전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일요일 하루만 전시장을 다른 분에게 맡겨두고, 서울로 돌아 온 것이다.

정영신씨는 군청에 보내 줄 서류도 만들어야 하고, ‘서울문화투데이에 송고할 정선고드름축제기사 작성하느라 바빴다. 

나도 몇 일 동안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게 되었는데, 이야기도 길지만, 빠진 내용도 많은 것 같다.



    



월요일 아침 여섯시에 정선으로 출발해 다시 전시장을 지켜야 하는데, 날씨라도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25일까지 전쟁을 치루어야 하지만, 더 이상의 시련이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추운 날씨였지만, 벗들과 이웃의 따뜻한 온정에 봄날 처럼 훈훈한 시간이었다.

동자동으로 복귀할 수 있는 날이되면, 그 땐 진짜 봄이겠구나.

 

사진, / 조문호






















 





장작 팔러 장에 가는 행렬이 오래된 추억을 일깨운다.
그리 많지도 않은 장작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에서 가난의 세월이 그대로 읽혀진다.
네 사람이 이고 진 장작을 다 모아도,
하루 저녁 군불 땔 양밖에 되지 않을 텐데, 도대체 몇 푼이나 받을 수 있었겠는가?

옛날엔 곡식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땔감이었다.
가스나 석유가 대체한 요즘의 연료에 비해 원시적이긴 하지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이 장작불이나 화롯불이다.

온돌방에 군불을 때거나 밥을 짓는 등 가정에서 사용한
유일한 에너지가 장작이나 솔가리뿐이었다.
요즘에야 산에 나무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헐벗은 산이라 나무도 흔치 않았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대개의 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녔는데,
가난한 집은 어린이까지 나무하러 다녔다.
나도 친구 따라 한 번 간적이 있었는데,
빌린 지게가 내 키만 해 질질 끌고 다닌 기억이 난다.

그러니, 장날만 되면 나무전에 장작이나 솔가리 둥치가 많이 나왔다.
아버지께서 나무장사와 흥정해 마루 밑이나 헛간에 사 모았는데,
나무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무게로 달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림짐작으로 매기니 그럴 수밖에..

장작이 타 들어가는 부엌아궁이에 쪼그려 않아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던 추억도 새록새록 하지만,
밥 짓느라 아궁이를 지킨 엄마 옆에 달라붙어 용돈 달라고 칭얼대던 기억도,
화가 난 엄마가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 나오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그런 촌스러움이 그리워서인지, 요즘도 정선만 가면 나무를 하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아궁이에 군불 때는 것은 물론, 도끼로 장작 패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끼 한방에 쩍쩍 벌어지는 쾌감이나,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불길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기는 재미를 알랑가 모르겠다.
따뜻한 아랫목에 드러누워 등 찌지는 맛은 또 어떻고...

몇 년 전에는 넘어지는 나무에 치여 발가락이 망가지는 사고도 있었지만,
나무를 쌓아두면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은 오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올 해는 여러 분들의 집안에 장작불 같은 행복의 에너지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위의 사진은 작고하신 광고사진가 김한용선생의 초기사진 ‘장터 길’이고,
아래 사진은 조문호의 '두메산골 사람들'이다. 글을 조문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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