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새 것보다 오래된 것이 더 좋다.
젊을 때 부터 새 옷 보다 양놈 구제품 옷을 더 좋아했으니,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오래 전에 '신사는 새 것을 좋아 한다’는 영화도 있었듯이, 신사되긴 틀린 모양이다.
자동차나 옷이나 물건이 생기면 끝장을 보는 체질이다.




버리겠다는 마나님과 늘 실랑이를 벌이지만, 오래된 물건이 정들어 더 편한 걸 어쩌겠는가?
여지 것 애마도 '포니'에서 시작하여 코란도, 갤로퍼, 무소 등 여러 종류를 갈아 탔지만,
한 번도 중간에 바꾼 적 없이 폐차할 때 까지 끌고 다녔다.
한 번은 운행 중에 차에 불이 나 장열하게 전사한 일도 있지만...




몇 일 전, 차주가 기사도 모르게 타고 다니던 고물차를 폐차장에 보낸 일이 있는데,
노후차량 폐차 보조금 받을려고 보냈다가, 퇴자 맞은 것이다.
범퍼와 외관을 수리하면 주고, 그냥 두면 사고차량이 되어 안 된단다.
좌우지간, 없는 놈만 죽어나는 잘 못된 법이나 규정이 한 둘이 아니다.




덕분에 폐차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똥차를 찾아 극적으로 구출해 온 것이다.
그렇찮아도 차가 없어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 곳에 끌려 간 차가 얼마나 쫄았으면, 잡소리도 없이 더 잘 나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튿날 새벽 정선으로 떠났다.





할 일도 많지만, 지난 번 잊어버린 안경을 찾기 위해서다.
도수가 맞지 않는 옛날 안경을 쓰고 다니려니, 어질 어질해 미칠 지경이었다.
내일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권철씨 전시가 있어, 당일치기로 오려고 새벽 네 시에 출발했다.
양평 쯤에선 구름이 몰려다니며 분위기를 잡더니, 횡성 초입에서야 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침 불볕을 보니, 한 낮 더위가 사람 잡을 것 같았다.




정선에 도착해 라면부터 한 그릇 끓여먹고 텃밭에 일하러 나갔다.
지난 번 풀숲에서 안경을 벗은 기억이 선명해 그 자리를 이 잡듯 뒤졌으나 없었다.
네 시간 가까이 헤매었으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모아 둔 잡초를 퇴비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마당에 눈 익은 게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지 것 찾고 있는 그 안경이 처참하게 사망해 있었다.




안경에 발 달린 것도 아닌데 마당에 어떻게 내려 왔으며, 꼴은 또 그게 뭐냐?
추측컨대, 옆집 강아지가 풀숲에서 물어다 마당에 갖다 놓은 걸, 옆집 차가 깔아 뭉갠 것 같았다.
반갑기는 했지만, 사용할 수 없도록 망가져 그만 맥이 풀려버렸다.
마치 유해를 수습하듯 돌아 올 채비를 했다.




방안에서 옷가지를 챙기다 보니, 하늘에 구멍 난 차양이 가관이었다.
집이나 차나 하나 같이 나를 닮아 고물 뿐이다.


안경은 못 쓰게 되었지만, 돌아오는 발길은 한결 가벼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두워질 때 까지 찾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방림을 거쳐 안흥 쯤 들어서니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말 걸었다.


“고물님, 제 노을이 보입니까?”
“눈은 가물 가물해도 카메라는 밝다”며 사진을 찍었더니, 다시 말했다.
“지나치다 찍는 풍경은 아마추어 사진이라 무시한다며 사진은 왜 찍나요?
“야~ 입장 곤란하게 하지마라. 찍어야 구라를 풀게 아니가?”
“세상에 정답이 있나요?

난, 볼거리를 선사하려 그림같이 하늘이라도 물들이지만, 당신은 뭘 주고 갈 건가요?“
"할 말이 없네"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에! 어찌 이리 간이 컬 수 있을까?
정선 집 방문 앞에다 벌집을 만들고 있는데,
천장도 아닌 정면에 보란 듯이 작업 중이다.
이건 쪽발이 아베 신조가 하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산중에서 벌이나 뱀은 가급적 손대지 않으나
이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도발이었다.
이전 같으면 벌집을 때내 멀리 버렸겠으나,
아베 신조 생각에 살충제로 씨를 말려버렸다.
빈 벌집은 도발의 표본처럼, 보란 듯이 붙여두었다.




찢어진 차양막은 점령군 깃발처럼 펄럭이고, 축대는 산사태 난 것 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사는 데는 지장 없는 오래된 집이다, 쪽방에 비하면 대궐이지...
집을 비울 때는 찾아 올 손님을 위해 따뜻한 물도 준비해두고, 책장이 비좁아 오래된 책은 밖에다 내놓았다.
다들 그런 건 관심없고, 필요한 물건만 가져가는 야박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젠 전기세가 부담되어 온수기는 꺼버리고 오지만,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책장은 주저앉아버렸다.
오래된 책은 다들 버리라지만, 오래된 책일수록 버릴 수가 없다.
요즘 일이야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지만, 오래된 소식은 옛날 잡지에서나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두 번 들리는데, 이번에는 이박삼일로 좀 여유 있게 잡았으나 금방 가버렸다.
옆집에서 술 한 잔 하라는 인정도 마다한 채, 혼자 동동거려야 했다.
날이 어두워져야 주변도 보이고, 이런 저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서울이던 정선이던 한 곳에 눌러 살면 좋으련만, 그게 잘 안 된다.
쓰러지기 직전에 있는 정선 집이나 동자동 쪽방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아직은 할 일이 남아 결정하지 못한다. 죽고나면 아무 필요없는 이 욕심을 어쩔까?
서울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도, 또 다시 가야 한다.




그 이틀 날은 새벽부터 서둘렀다.
늙어 버린 상추는 다시 파종하고, 지킴이로 봉숭화 한포기만 남겨 두었다.
무성한 잡초를 뽑아가며 농산물을 거두었는데, 한참 일하다 보니 안경이 없어졌다.
흐르는 땀에 밀려 잠시 벗어 두었는데, 어디다 벗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만 지체되어 나중에 찾을 생각으로 산소부터 올라갔다.




지난번 떡갈나무 아래 수목장한 햇님이 외할머니와 어머니 무덤 앞에 무릎 꿇었다.
두 분이 생전에는 상면한 적 없으나, 햇님에게는 조모와 외조모라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분 모두 손자를 지극히 좋아했으니, 모처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다.
혼자 걱정하는 것 보다 두 분이 하니, 햇님이가 잘 풀릴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젠 갈 일만 남았는데, 사라진 안경이 걱정이었다.
풀밭을 이 잡듯이 세 시간이나 뒤졌으나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돌아왔으나, 흐릿한 초점으로 운전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별 탈 없이 오기는 왔으나, 좌우지간 명줄 하나는 길다.




길에 뿌린 기름 값에다 안경 맞출 돈까지 생각하니, 머리 아프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편한 날이 없다.


홧김에 쪽바리 아베에게 욕이나 퍼부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옛날에는 요즘처럼 몰려 다니며 피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난화에 의한 찜통 같은 날씨도 아니겠지만,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던 시절이 아니던가?

찬물에 발 담그는 탁족에 부채질하며, 죽부인이나 껴안고 딩구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음식물은 깊은 우물 속에 걸어두거나, 소쿠리에 담아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했다.

밤이 되어도 점 잖은 사람은 냇가에 나가 목욕할 처지도 못되어,

대문 걸어 잠그고 아내가 밀어주는 등밀이에 "어푸~어푸~"를 연발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은 정선 조양강에도 피서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난, 사람들이 몰리는 강변을 피해 만지산 중턱에 살고 있지만,

피서객들의 차량이 좁은 산길까지 가로막아 바야흐로 피서철 임을 절감한다.






옛 귤암분교 터에 자리 잡은 캠핑장에는 야영객들로 넘쳐나고,

강가에는 가족들 끼리 낚시나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나는 이곳을 20여년 넘게 들락거렸으나, 강변에서 한 번도 더위를 피해 본 적이 없다.






젊은 시절부터 물가 찾아다니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이 곳 귤암리 강변은 그늘이 없어 무지 덥기 때문이다.

간혹 아는 분들이 밤 낚시를 부추기기도 하지만, 그마저 나서지 않는다.






현지에 사는 원주민들의 피서 법은 따로 있다.

이열치열이라 듯 부지런히 일하여 땀 흘린 후, 찬 지하수 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축 늘어진 불알이 착 달라붙는 그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푸! 하하~
밤에는 고기 구워 소주 한 잔하는 맛도 죽인다.






그나저나 지난번에 허리를 다쳐 옥수수 밭을 매지 않았더니, 옥수수 밭이 풀 밭이 되어버렸다.

풀 밭이던 옥수수 밭이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옥수수가 비쩍 말라 이빨 빠진 내 강냉이를 닮았더라.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멧돼지가 먹어 치우지 않은 것이다.

강냉이가 부실해 봐주었는지 모르지만, 멧돼지들도 그렇게 얌체는 아니다.

오랜 세월 지켜 본 바로는 한 해 쑥대밭을 만들었으면 그 다음해는 그냥 넘어가 주었다.

하물며 짐승도 상대를 배려하는데, 어찌 전기 철망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피서나 농사나 자연의 섭리대로 따를 수밖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은 정선 만지산에 일하러 갔다.
한 달에 한 번 가지만, 가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두렵기도 하다.
자연 속에 파묻히는 것은 좋지만, 일에 쫒길 생각하면 두려운 것이다.
한 달 동안 쌓인 일을 이틀에 끝내려면, 오줌 누며 좆 볼 틈도 없다.

옆집에선 밥 먹으러 오라지만, 한가하게 밥 먹을 여유조차 없다.
빵과 우유로 해결하는 게, 시간도 벌지만 부담이 없다.
한 달 동안 자란 잡초를 뽑는 일은 빠지지 않는 일이지만, 이번엔 고추 지지대를 박아야 했다.
더 큰 일은 잡목에 가려 밭에 햇볕이 들지 않아 잡목들을 베어내야 했다,
기계톱만 있다면 간단하겠지만, 작은 톱으로 씨름하려니 간이 빠진다.






한 낯에는 더워서 일을 못하니, 더 쫓긴다 ,
오후 네 시쯤 다시 시작하여 한 두시간 밖에 못했는데, 옆집에서 두 차례나 데리러왔다.
아무래도 욕 먹을 것 같아 일손을 놓아야했다.

가보니 서울과 홍천에서 온 손님이 여섯 명이나 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무슨 손님이 그리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노부부는 손자 재롱에 흠뻑 빠져있고, 다들 백숙을 안주로 한 잔하고 있었다.






술잔을 권하던 한순식씨가 이야기를 꺼냈다.
“작가님 집을 탐내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팔게되면 연락해 달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팔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매번 올 때마다 비어 없으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20년 전 삼천만원에 구입했는데, 지금은 많이 올랐다는 말도 덧 붙였다.





한 때는 집터가 명당이라며 절터로 팔라는 스님도 있었지만,
‘몽암’이란 현판을 보라며, 이 집이 절이라고 농담한 적도 있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팔고 싶은 유혹도 따랐으나,
돈은 사라져도 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버텨왔다.
어쩌면 소유한다는 자체가 욕심일 수 있겠으나, 정신적 고향만은 지키고 싶었다.





아무튼, 죽어도 팔지 않는다며 딱 잘라 거절했더니, 돌아가시면 자식들이 팔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획안을 만들어 공익단체에 기부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밤이 되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 졌다.
한순식씨가 매운탕 끓인다며 강가에 고기 잡으러 가는 사이 슬쩍 빠져 나왔다.
비워둔 집이라 군불도 지피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술이 너무 취해버렸다.
군불만 지펴놓고 방에 쓰러져 잤는데, 또 데리러 온 것이다.
자칫했으면 불 단속도 않고 잠들 뻔 했는데,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 이튿날은 시원할 때 일을 끝내려고 새벽4시부터 서둘렀다.
정영신씨 줄 상추와 야채부터 거두고, 언덕을 수놓은 딸기도 땄다.
어지럽게 잘라놓은 잡목을 정리하다 보니, 벌써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옥수수 밭에 난 잡초 뽑기를 서두러니 하늘에서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농작물에 물 줄 일도 남은 일의 하나인데, 큰일을 덜게 된 것이다. 





다음 달은 울 엄마 제사가 있어 좀 여유 있게 지낼 작정이다.
가족이 어울려 산소에서 술 한잔하는 일도 사는 즐거움의 하나다.
잘 갔다 오라는 인사마냥, 비는 오지 않고 천둥만 울어댔다.
“우루루 쾅쾅”

하늘이 무너져도 똥차는 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3일간의 연휴에는 정선으로 야채 심으러 갔다.
사진 찍어 올리며 사는 것도 그렇지만, 정선에서 농사짓는 것도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오가며 길에 뿌리는 돈도 만만찮지만, 모종 살 돈으로 사 먹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 팔아 똥 사먹는 일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땅을 놀리면 안 된다는 말은 구실에 불과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으면 정선가기도 어렵고, 산소도 못 간다.
또 하나 못 말리는 것은 무공해 농산물을 좋아하는 정영신씨 때문이다.






오전 아홉시 무렵 평창에 도착하여 야채모종 부터 샀다.
고추 두 판, 상추 한 판, 옥수수 한 판, 도마도, 오이, 가지, 호박 등을 몇 포기씩 사다보니

모종 값이 육 만원을 넘어버렸다. 나머지는 씨앗으로 대체했다.





정선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니, 늘 반갑게 눈 맞추던 종이 사라지고 없었다.
일하러 밭에 나가면 밥 먹으러 오라 부를 때 치는 종인데,
치는 사람은 없지만, 늘 사람을 기다리는 종이었다.

요즘은 산골짜기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
남의 땅에 있는 두릅이나 고사리도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한 때는 두릅 철이 되면 서울로 가져와 나누어먹기도 했는데, 맛 본 지가 오래되었다.

산골 사는 원주민들이야 남의 것을 탐내지 않겠으나,
요즘은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이 많아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가 없다.

공기 좋은 곳에 살러 왔으면 마음을 곱게 써야지...
사람들이 CCTV를 달라지만, 그러고는 쉽지 않았다.






밭에 난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며 비닐을 씌우는 등

오줌 누며 뭐 볼 틈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중에

갑자기 하늘이 깨질 것 같은 천둥소리를 내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가문 날씨라 모종이 잘 살 것 같아, 비를 피하지 않고 부지런히 심었다.


한 시간 가량 쏟아지다 그쳤으나, 온 몸이 비에 흠뻑 젖어버렸다.
떨리는 한기는 견디겠으나 장화에 묻은 진흙이 무거워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물가로 내려가다 미끄러져 돌계단에 허리를 찧었으나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었다.
그 것으로 그 날의 일은 끝이었다.






준비해 둔 빵조각과 우유로 저녁 끼니를 때운 후
군불 땔 힘도 없어 전기장판 위에 드러누워 끙끙대다 잠든 것이다.
한 밤에 진땀이 흐르기도 했으나, 자고나니 견딜만했다.






다음 날은 땅바닥에 퍼져 않아, 시름시름 옥수수를 심었다.

작년에는 멧돼지가 들쑤셔 한 톨도 건지지 못했지만, 또 한 번 투기를 한 셈이다.
곳곳에 철쭉과 조팝꽃, 복사꽃이 너울대니, 새들도 좋아라 지저긴다.
무슨 놈의 새 소리도 요상하다. “찌찌 찌~ 찌찌 찌~‘ 엿 먹이는 소린가?
그래, 마음먹기 따라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도 될 수 있구나.






그 이튿날은 다시 마음이 바빠졌다.
모종이 모자라 정선 나갔더니, 연휴에 몰린 자동차로 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좋아하는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먹어려던 생각은 포기해야 했다.
차댈 곳도 없지만, 한가하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내일 약속이 있어, 모든 일을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산소부터 들리고는 일을 서둘고 있는데, 옆집의 한순식씨가 빨리 오란다.
연휴기간 내내 옆집은 손님들로 북적였는데, 여러차례 술자리에 불렀지만 사양했다.
그 날은 아랫집의 김익수씨가 왔다기에 얼굴이라도 볼 겸 잠시 내려간 것이다.






낮부터 백숙을 안주로 소주를 까고 있었으나, 난 밥을 먹었다.
소화제라며 딱 두 잔 받아마셨는데, 술이 달았다.


사라진 종 이야기를 꺼냈더니, 또 CCTV를 달란다.
안 달면 도둑을 키우기도 하지만, 엉뚱한 사람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너덜거리는 창호지를 뜯어내고 도배를 하는데,
술 취해 몸을 못 가누는 김익수씨를 한순식씨가 부축해 가고 있었다.
공기가 좋아 아무리 마셔도 자고나면 멀쩡하다고 자랑하더니, 너무 많이 마신 듯 했다.
나이도 나이지만, 술에 장사 없다.






무너진 돌계단도 손봐야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떠날 채비를 했다.
연휴가 끝나는 날이라 차 밀릴 것이 걱정되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양평 가까이 도착하니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수동 변속이라 다리에 쥐 날 지경이나, 무사히 돌아 옴을 자축했다.

뭐 사는게 별거냐?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3일 새벽 일찍 정선 만지산으로 떠났다.
봄 눈이 내리는 변덕스런 날씨라 파종한 씨앗이 얼어 죽었을 것 같아 다시 씨를 뿌리러 갔다.





오전 아홉시 무렵 도착하니, 지난 동강할미꽃 축제 때는 봉우리만 맺었던 목련이 활짝 반겼다.





얼어 죽었을 거라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잡초에 뒤섞여 싹이 돋아나고 있었느데, 강인한 생명력이 놀라웠다.

기특하기 짝이 없으나, 왕복 일곱 시간의 고생이야 차지하고라도 길에 뿌린 기름 값 오만원이 아까웠다.

어차피 보름 후에 야채 심으러 다시 와야 하는데, 그 돈이면 일주일 지낼 생활비가 아니던가.






온 김에 일이라도 넉넉하게 해 두려, 호박 심을 구덩이를 여러 군데 파서는 변소 똥을 옮겨 묻었다.

그리고는 올 여름 지낼 솔밭 쉼터도 둘러보았다.





요즘 호흡 장애로 숨쉬기가 힘들어져, 여름철 쪽방 생활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피난 가려는 정선집도 동자동에 비한다면 신선놀음이지만, 한 더위에는 스래트 지붕으로 내려 앉는 열기가 장난 아니다.





그래서 오래전 부터 집에서 백 미터 쯤 떨어진 솔밭 숲속에 쉼터를 만들어 둔 것이다.





산길을 오르다보니, 사람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그냥 두지 않았다.



몇년 전 요염한 자태를 뽐내던 복사나무


돌계단은 허물어지고, 멋지게 가랑이를 쩍 벌린 복사나무는 둥지가 부러져 있었다. 





산으로 기어오르던 전선은 숨 줄을 끊지 못해 살려 달라 아우성치고 있었다.





잠시 쉬어가는 나무의자는 썩어 무너져 내렸다. 남아 있는 것은 방향을 표시한 돌덩이 뿐이었다.






10년 전에 심은 은행나무는 한 그루만 살아남아, 짝이 없어 은행도 달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옻나무에는 시커먼 칡 넝쿨이 뱀처럼 똬리틀고 있었다.

볼 때마다 질리게 하는 옻나무라 이웃집에서 베어가겠다지만, 그냥 두라했다.

오래 살다 보면 옻도 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숲속 놀이터도 그냥 둘리 없었다.
탁자는 날아가 낙엽에 파묻혔고, 평상 위의 소반은 주저앉아 자연으로 돌아가려 했다.

살아남은 것이라고는 독한 비닐뿐이었다.





다행스럽게 평상 밑에 넣어 둔 스치로폼 박스는 그대로 있었다.

전기 콘센터와 여러 집기들이 숨을 죽인채 숨어있었다.  

 




평상을 감싼 비닐장판이 그나마 평상을 거두었고, 비닐텐트도 간신히 골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프를 열어보니, 청소만 하면 당분간은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쪽방 촌에가며 버려 둔 낙원은 전쟁터 처럼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불과 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그냥 두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 봐도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그동안 수시로 정선을 들락거렸지만, 일하느라 쉴 틈도 없이 돌아 왔으니, 챙길 겨를이 없었다.





애인 생기면 마누라 거들떠보지 않는 잡놈 근성은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에 빠지면 한 곳에 미쳐버리는 더러운 고질병을 어쩌겠는가?

내가 지은 업으로 받아들여야지... 


 



사람도 나무처럼 썩어 문드러진다는 생각에 이르니, 무릎 꿇은 소반이 내 자화상 같았다.

그래,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추억이나 남기자.

야채 심으러 올 때는, 날자를 넉넉하게 잡아 놀이터까지 손 볼 작정이다.






육년 전 정영신씨와 함께 소나무 숲에서 놀던 그때가 그립다.
올 여름에도 아름다운 추억 한 자락 만들어야지....



사진, 글 / 조문호
















이석필사진



올해도 변함없이 귤암리 벼랑에 동강할미꽃이 수줍게 고개 내밀었습니다
열세 번째 맞는 ‘정선동강할미꽃축제’가 오는 3월29일(금)부터 3월31일(일)까지
정선읍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박광호 까마귀그림은 3월30일 오전9시 무렵 태울 작정입니다.
장소는 정선군 정선읍 윗만지산길 56-5 소재, 저의 작업실 마당입니다.


쥐띠부인이 그 그림을 가져가려면 3월29일까지 찾아와 정중한 사과와 함께

내 사진을 돌려줘야 찾아갈 수 있습니다.

태울 것이 두려워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접수시킨 모양인데, 어림없습니다.





지난주에는 정선 만지산으로 가을걷이 하러 떠났다.
해마다 이맘 때만 되면 월동 준비 겸 가을걷이에 나서지만, 이번엔 별로 거둘 것이 없었다.
그러나 추워지면 잘 가지 못하니, 밖에 내놓은 정수기도 들여 놓고, 텃밭의 고추대도 뽑아야 했다.
무엇보다 산소에 들려 어머니께 추운 겨울 잘 견디시라는 인사드리는 것도 가야할 명분 중 하나다.






새벽 녘 정선으로 떠나면, 가끔 눈요기 거리가 펼쳐진다.
매번 양평을 거치는 국도로 가는데, 일교차로 피어나는 양수리 물안개가 너무 멋지다.
온천처럼 물 위로 김이 오르기도 하고, 물위로 구름이 몰려다니기도 한다.
그런 장면이야 사진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감회에 비길 수가 없다.
풍경사진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나도 모르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몸에 베인 습관이라 죽기 전에는 고쳐기 어려울 것 같다.
자연이나 사물은 찍던 말든 탓하는 이가 없으나, 사람이라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반가운 사람 만나면 인사도 하지 않고 카메라부터 들이대니, 기분 더러울 것이다.
오래된 지인들은 의례 저 인간은 저러려니 하겠지만, 친하지 않은 분들은 의아해 한다.
모르는 분이라면 쓴 소리가 나오거나, 잘못하면 경찰서까지 가야 한다.






꼭 그래서만 아니지만, 난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 찍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대상 자체를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거리스냅 사진은 어쩔 수 없이 행인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땐 처신을 잘해야 한다.
찍을 때는 항상 웃고, 눈이 마주치면 손을 들거나, 멋지다는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그래도 문제 삼으면 찍은 이미지 보여주며, 상대의 결정에 따라 지우거나 양해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별에 별 사람이 다 있는지라, 트집 잡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간이 뒤집혀도 웃어야 한다. 자칫 같이 화를 냈다간 싸움되기 십상이다.
마음의 문을 닫아, 불신만 가득 찬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만지산에 도착하면 산소부터 올라간다.
지난 겨울엔 산 길이 얼어붙어 차를 쳐 박은 일도 있었지만, 늦가을의 산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무덤에 술 한 잔 올리고는 귀신과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가 그 걸 보면 미친 놈이라 여겨도 상관없다. 
아무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하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 날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배신감을 메주알 고주알 풀어 놓았더니, 보나마나한 답이 돌아온다.

“친구 좋아하더니, 꼴 좋다. 내가 뭐라 카더노? 
돌아서면 남보다 못하니, 대강 어울려 다니라 안 카더나.”





집으로 내려와 가을걷이를 시작했으나, 거둘 것이 별로 없었다.
따고 남은 꽈리고추 한 광주리, 호박 열 개, 부추 한 단이 전부였다.
기특한 것은 올 봄에 도망친 토끼가 먹어 치운 대마초 한포기가 살아 남아 씨를 잔뜩 안고 있었다.
씨만 없었더라면 한 철은 잘 지내련만, 영양가 없는 씨 때문에 조져버렸다.





지천에 늘린 산초열매나 땡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번 힘들여 따지만 버리기 일수다.
제 작년엔 산초를 잔뜩 따서 기름 짜려고 방앗간에 가져갔더니, 냄새가 독해 다른 기름을 못 짠다며 짜주지 않았다. 
담아 둔 산초 장아찌도 일년은 더 먹을 양이 남아 있다.






내버려 두고 일을 줄이니 하루 만에 가을걷이가 끝나버렸다.
정선에서 하루도 자지 않고, 오후 여섯 시경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도 명색이 가을걷이라고 정영신씨는 술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복분자술이 세우와 전어 몇 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정영신씨는 고추 다듬느라 정신없었으나, 난 대마초를 술병에 옮겨 담았다.
정영신씨가 서인형씨로부터 선물 받아 둔 연태 고랑주를 거기다 쏟아 넣었다.
아끼던 좋은 술이건만, 더 멋진 술을 맛 보고 싶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혹시 알 수 있나?
그 술이 약술되어 봄이 돌아올지...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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