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새 것보다 오래된 것이 더 좋다.
젊을 때 부터 새 옷 보다 양놈 구제품 옷을 더 좋아했으니, 어제 오늘만의 일도 아니다.

오래 전에 '신사는 새 것을 좋아 한다’는 영화도 있었듯이, 신사되긴 틀린 모양이다.
자동차나 옷이나 물건이 생기면 끝장을 보는 체질이다.




버리겠다는 마나님과 늘 실랑이를 벌이지만, 오래된 물건이 정들어 더 편한 걸 어쩌겠는가?
여지 것 애마도 '포니'에서 시작하여 코란도, 갤로퍼, 무소 등 여러 종류를 갈아 탔지만,
한 번도 중간에 바꾼 적 없이 폐차할 때 까지 끌고 다녔다.
한 번은 운행 중에 차에 불이 나 장열하게 전사한 일도 있지만...




몇 일 전, 차주가 기사도 모르게 타고 다니던 고물차를 폐차장에 보낸 일이 있는데,
노후차량 폐차 보조금 받을려고 보냈다가, 퇴자 맞은 것이다.
범퍼와 외관을 수리하면 주고, 그냥 두면 사고차량이 되어 안 된단다.
좌우지간, 없는 놈만 죽어나는 잘 못된 법이나 규정이 한 둘이 아니다.




덕분에 폐차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똥차를 찾아 극적으로 구출해 온 것이다.
그렇찮아도 차가 없어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 곳에 끌려 간 차가 얼마나 쫄았으면, 잡소리도 없이 더 잘 나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튿날 새벽 정선으로 떠났다.





할 일도 많지만, 지난 번 잊어버린 안경을 찾기 위해서다.
도수가 맞지 않는 옛날 안경을 쓰고 다니려니, 어질 어질해 미칠 지경이었다.
내일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권철씨 전시가 있어, 당일치기로 오려고 새벽 네 시에 출발했다.
양평 쯤에선 구름이 몰려다니며 분위기를 잡더니, 횡성 초입에서야 해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침 불볕을 보니, 한 낮 더위가 사람 잡을 것 같았다.




정선에 도착해 라면부터 한 그릇 끓여먹고 텃밭에 일하러 나갔다.
지난 번 풀숲에서 안경을 벗은 기억이 선명해 그 자리를 이 잡듯 뒤졌으나 없었다.
네 시간 가까이 헤매었으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모아 둔 잡초를 퇴비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마당에 눈 익은 게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지 것 찾고 있는 그 안경이 처참하게 사망해 있었다.




안경에 발 달린 것도 아닌데 마당에 어떻게 내려 왔으며, 꼴은 또 그게 뭐냐?
추측컨대, 옆집 강아지가 풀숲에서 물어다 마당에 갖다 놓은 걸, 옆집 차가 깔아 뭉갠 것 같았다.
반갑기는 했지만, 사용할 수 없도록 망가져 그만 맥이 풀려버렸다.
마치 유해를 수습하듯 돌아 올 채비를 했다.




방안에서 옷가지를 챙기다 보니, 하늘에 구멍 난 차양이 가관이었다.
집이나 차나 하나 같이 나를 닮아 고물 뿐이다.


안경은 못 쓰게 되었지만, 돌아오는 발길은 한결 가벼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두워질 때 까지 찾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방림을 거쳐 안흥 쯤 들어서니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말 걸었다.


“고물님, 제 노을이 보입니까?”
“눈은 가물 가물해도 카메라는 밝다”며 사진을 찍었더니, 다시 말했다.
“지나치다 찍는 풍경은 아마추어 사진이라 무시한다며 사진은 왜 찍나요?
“야~ 입장 곤란하게 하지마라. 찍어야 구라를 풀게 아니가?”
“세상에 정답이 있나요?

난, 볼거리를 선사하려 그림같이 하늘이라도 물들이지만, 당신은 뭘 주고 갈 건가요?“
"할 말이 없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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