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가는 길은 20여 년 동안 쉼 없이 오고 가며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들었던 사색의 길이다.
평균 한 달에 두 번 가지만 농사철에는 더 잦아질 수밖에 없는데, 기름 값이 장난이 아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나의 생활비 대부분이 길바닥에 뿌려지는 셈이다.
양평으로 가는 국도를 이용하여 고속도로 통행료는 없지만, 왕복 기름값이 5만원 소요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짐도 짐이지만 만지산 중턱이라 두 번 갈아타는 데다 한 참을 걸어야 한다.
국도로 가면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속도를 내지 않아 기름 값이 절약되고 길 막힘도 그의 없다.
도로가 정비된 요즘은 세 시간 반쯤 걸리지만, 쉬다보면 족히 네 시간은 걸린다.
그러나 혼자 운전하는 시간만이 스스로를 생각하게 하는 유일한 시간인 셈이다.
돌아올 때는 일에 지쳐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출발하는 시간은 새벽이라 안성맞춤이다.
정신도 맑은데다 주변 풍경까지 변화무쌍해 사색하는 시간으로 딱 좋다.
지난 20일은 특별하게 갈 일은 없었으나 새벽 네시에 집을 나섰다.
요즘 무더운 쪽방에서의 생활에 열 받아 그런지 폭발 직전이었다.
어저께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댓글에 악을 박박 쓰며 욕을 퍼부어 댔다.
그 댓글에 대한 감정은, 오랜 악연이 생각나 도저히 누그러트릴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9년 전 완주 종남산 자락에서 열린 ‘창예헌’의 가을여행 때 일이었다.
난 행사를 준비하는 처지라 그 자리에 없었는데, 그가 뱉은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된 것이다.
소설 쓰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날더러 “저 인간이 뭐가 좋아 같이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니
소설 쓰는 친구가 “좋은 구석이 있겠지”라고 대꾸했다는 것이다.
물론 같이 앉은 술좌석에서 말했더라면 농담으로 여겨 욕하고 넘어 갔겠지만,
본인도 없는 자리에서 그것도 마누라가 듣도록 이야기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말은 수십 년 된 친구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며칠 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어 혼자 속을 부글부글 끓였는데,
그의 전화번호를 지우며 그와의 오랜 인연을 끊기로 작정한 것이다.
본인은 내가 안다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말 한 것도 잊었는지 그 뒤에도 자기가 필요할 때 연락해 왔다.
도록에 들어 갈 사진이 필요하면 내려와 사진을 찍어달라거나, 서울 올라오면 불렀지만,
내가 미쳤다고 그를 위해 삼천포까지 내려가며, 그 얼굴 보러 인사동 나가겠는가?
더불어 맞장구치고 어울려 다니는 친구까지 꼴 보기 싫어졌다.
그런데, 엊그제 느닷없이 패북에 댓글이 달린 것이다.
처음 페북에 가입했을 때는 누군지 살피지도 않고 페친 신청을 받아주었던 게 탈이었다.
그가 페친인줄도 몰랐는데, 그가 올린 댓글에 오랜 악연이 치솟았다.
내용인즉, 내가 올린 페북의 글을 쭉 읽어 잘 안다며 충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도둑고양이처럼 훔쳐보기만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인데,
내용도 내가 올린 동자동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말년에 철든 것처럼 왜 그리 설치냐”는 댓글에 처음엔 습관적으로 대꾸했으나,
“옛날의 미소가 그립다”. “뒤도 돌아보라”는 등 두 세 번 올라오는 내용에 저의가 느껴졌다.
아마 위선적인 노인을 탓하는 글에 알랑방귀 끼고 싶었으나, 속보일까 엉뚱한데 댓글 단 것 같았다.
댓글도 댓글이지만, 오랜 악연이 생각나 댓글을 지우며 페친을 끊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분노가 식지 않으니, 녹번동에서 술친구 만난 이야기를 쓰면서도,
그 이야기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이 터져 나오는 등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작정으로 집을 나선 것이다.
어두운 시가지를 벗어 나 양평 쯤 도달하니 운무에 휩싸인 그림 같은 풍경이 연출되었다.
자연의 경이에 감탄하며 속 좁은 인간의 한계를 탓하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속마음을 숨기고 수시로 변하는 인간사를 말하는 듯 했다.
만지산에 눌러 살 때는 새벽녘, 안개나 구름 따라 바뀌거나 사라지는 산의 형상을 통해
지워져 가는 산을 찍은 적도 있었다.
구름에 가려 지워지는 모든 것은 무에서 시작되어 무로 돌아간다는 무위의 사상을 일깨우며,
산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지우는 작업이었다.
사진 팔아먹을 속샘도 깔렸지만, 사진 아닌 소설쓰는 것 같아 비위도 상했다.
자신을 지우지 못해 다시 사람을 찍지만, 그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용문산 가까이 이르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에서 어김없이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세상사를 떠 올렸는데,
부질없는 생각일랑 버리고 좀 더 희망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메시지로 다가 왔다.
미워하는 사람도 끌어안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친구 모습만 떠올라도 달아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던 일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졸음방지용으로 준비해 둔 대마초를 한 대 피웠다.
생각을 깊게하는 대마초는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끌어내며,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긴 시간 운전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으나 자신이 없었다.
그를 만나면 그 때 일이 다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차는 이미 귤암리 강변으로 들어섰는데,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차를 강변에 세워두고 흐르는 강물을 멍청하게 지켜보았다.
비가 왔는지 흐르는 강물의 속도가 빨라졌고, 우뚝 솟은 만지산 살팔봉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나쁜 기억은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고, 좋은 기억만 세우라는 것 같았다.
그래! 나쁜 기억은 지우고, 그때 일은 용서하기로 하자.
만나면 그 때 일이 생각나 다시 불편해 질것아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기로 했다.
대신 그 친구가 말한 “뒤 돌아보며 살라”는 말은 두고두고 새겨들을 것이다.
나 역시, 말 한마디로 남에게 상처 준 적이 한 두 번이겠는가?
쉽게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박혀 등진 사람은 왜 없겠는가?
그동안 글로서도 숱한 상처를 준 것이 사실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정의롭지 않은 부당한 일을 밝혀내어 시정하는 일은 중단할 수 없다.
고쳐지면 당사자에게 정중하게 사과할 작정인데,
개인적인 감정은 없음을 너그럽게 이해하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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