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전라도 순창과 보성애서 음기를 잔뜩 받았다.

‘순창 여인들의 길’이라 붙여놓은 안내부터 심상치 않았다.
인정샘, 남근석, 대모암. 홀어머니 산장, 귀래정. 설씨부인 권선문, 물통골 약수터.

열부이씨려. 요강바위 등의 열 곳을 순창 여인들의 길로 정해두었는데,

가는 곳마다 여인네들의 기가 구절구절 고여 있었다.


아마 순창에 청상과부가 많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인네들 한과 애증의 정서가 베인 남근석이나 여근곡 같은 곳도 많았다.





난, 점잖떠는 양반들이 정해놓은 말씨부터 마음에 안 든다. 

왜,  좆 씹 보지  같은 편한 우리말은 모조리 욕으로 정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여근이니 음부, 음경, 성교 등의 점잖다는 말이 더 듣기 거북스럽다.


소중한 생명의 원천이라 숨기는지 모르나,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욕으로 생각하며 저질로 취급하는 세태가 불만스럽다.
더구나 요즘은 ‘미투’라는 요상한 바람이 불어 입도 뻥긋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그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으며, 그걸 싫어하는 사람은 또 어디 있겠는가?






여근곡 기를 누를 목적으로 입구 쪽에 세웠다는 남근석에는 연꽃과 연잎이 새겨져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아들을 원하는 여인네들이 이곳에 움막을 쳐놓고 치성을 드렸다는데,

이 마을로 이사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홀어머니산성 ‘대모산성’은 고려와 조선초기에 군량을 비축해 두었던 산성으로,

고려 말에 어떤 어머니가 아홉 아들과 함께 이 성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과부 양씨와 설씨총각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도 전해진다.






인정샘이라 부르는 우곡리 여근곡은 마을 앞 가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타구니 같은 지형 가운데 도톰한 지맥이 있는데, 이 지형을 불두덩이라 하고 배랑낭굴, 보지명당이라 부른다.

마치 옹달샘 같은 깨끗한 물이 솟아 나는 그 곳이 여근곡 중심으로, 물 나오는 바가지샘이 바로 여근이란다.





강천사 가는 길목에도 남근석을 만날 수 있었고, 건너 편 구장군폭포에도 여근곡이 있었다.

섬진강 상류에 있는 ‘요강바위’ 등 성의 형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곳이 곳곳에 늘려 있다.





그 다음 날에는 보성과 벌교를 찾아갔다.

보지 성을 연상케 하는 점잖은 지명은 차지하고라도 벌교라는 이름이 죽이지 않는가?

이보다 더 야한 지명이 어디 있겠나.






벌교에서 꼬막만 잔뜩 먹고, 보성 전일리 마을 앞의 팽나무 숲으로 갔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막하에서 공을 세운 정경명(丁景命)이 심었다는 팽나무가 길게 줄지어 있었다.





해안선 방향으로 400년이나 되는 고목들이 백오십 미터 둑에 한 줄로 늘어 섰는데,
팽나무들이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과 방조 기능까지 겸했다. 

주변 지형과 산세에 잘 어울리는 풍광인데, 고목의 자태가 범상치 않았다.


옆에 있던 정영신씨가 욕을 한마디 지껄였다.

"워매, 저런 년조까 보소. 무신 가시나년이 조로코롬 우악시럽당가?"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속담처럼 그 우람한 팽나무의 생김생김이 하나같이 풍만한 몸으로 비쳤다.

이글거리는 야성의 볼륨보다 더 숭고한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정염을 토해내는 뒤틀리는 격정에 꿈결같은 아련함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위대한 생명의 사랑을 자연에서 느낀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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