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쥐띠부인은 기어이 나타나지 않았다.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블로그에 올려놓고 날자와 장소만 알려주면 찾으러 가겠다고 했으나,

정작 날자와 장소를 올렸더니 애매한 글을 올려놓았다.






“[쥐띠부인-조문호] 네사진은 갖고 싶지 않다. 박광호 까마귀 그림과 맞바꿀 것이다
까마귀 그림 없이 네 사진 받을 생각 말아라
날 모욕 명예혜손 건으로 고소한 댓가는 내가 혹독하게 치루 게 할 것이다“






이런 글이 다시 올랐지만, 세발 까마귀 그림에 집착한 것으로 보아 올 것으로 생각했다.
약속한 날은 동강할미꽃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 혹시 길이 엇갈릴 수도 있겠다 싶어 집에 메모까지 해 두었다.
아무리 화가 났지만, 막상 얼굴 보면 옛날 생각나 사진과 그림을 모두 주려고 했다.
무슨 철천지 원수진 것도 아닌데다, 병석에 누운 박광호를 생각해서다.






그러나 내 기대는 빗나갔다. 약속한 29일의 해가 저물어도 쥐띠부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며, 그림을 태울 것인가 아니면 더 두고 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입에 두말 할 수도 없지만,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그림은 태우는 게 상책인 것 같았다.





태울려면 군불 지피는 아궁이에 집어 넣어버리면 간단할 것이나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박광호 까마귀그림을 3월30일 오전9시에 정선 윗만지산길 56-5 소재에서 태운다’고 못 박기도 했지만,

박광호를 생각해서라도 푸닥거리는 해 주고 싶었다. 돈만 있었다면 정선에 있는 무당도 불렀을 것이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림 태울 준비를 했다.
생각한 장소는 십 일년전 ‘만지산서낭당축제’ 때 여러 작가들이 작품을 내걸었던 밭 이였다.
당시 그 그림도 함께 걸었기에, 그 곳이 좋을 것 같았다.
산이라 불이 옮겨 붙을 수가 있어 가마솥 화덕을 옮기려니, 돌 계단이 무너져 오를 수가 없었다.
야외에서 삼겹살 구울 때 사용하는 가마솥 화덕의 무게가 보통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어 돌계단 아래 자리를 잡은 것이다.
먼저 사진부터 찍어두기 위해 액자 유리를 제거했더니, 아련한 향수가 밀려왔다.
20여 년 동안 쌓인 겹겹의 세월 먼지도 먼지지만, 어렵게 살아 온 박광호의 지난날이 떠올라서다.
캔버스 살 돈이 없었던지, 세발 까마귀는 종이 위에 그려져 있었다.





디테일도 없이 덧칠한 검은 까마귀가 전면을 가득 차치하고 있었다.

세발로 버둥되는 까마귀의 기형적인 모습은 불구로 몸부림치는 화가의 자화상 같았다.

그래,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훨훨 날아가거라.





마침 ‘전시장 가는 길’이라 쓰인 표석 옆에 진달래도 피어 있었다.
처음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세발까마귀 그림 화형식 퍼포먼스를 하려했으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싶었다.

그냥 조용히 날려 보내기로 했다.






각목 세 개를 맞대어 고정시키고, 철사 줄로 액자를 매달았다.
화약처럼 마른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니 금세 세발까마귀에 불길이 옮겨 붙었다.
마치 불새처럼 허둥대는 까마귀 형상이 카메라 파인더에 들어왔다.






박광호 내외를 괴롭히는 악귀도 나를 괴롭히는 악귀도 모두 물러가라며 주문을 외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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