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살아가니, 하루가 편한 날이 없다.
옛날 같으면 고려장할 나이에 사진 찍다 두들겨 맞지를 않나,
주변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우환이 끝일 줄 모른다.
녹번동에서 개기는 지난 일요일,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심봉사 잔치처럼, 인사동 사람들 불러모아 풍류 자리 만든 김명성씨였다.
연신내 ’연서시장‘에서 소주 한 잔하자는 것이다.
‘인사동 백년을 걷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나갔더니, 응암동 사는 조해인씨도 와 있었다.
연서시장 ‘파주집’에서 세 사람이 둥지 튼 것이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조해인 시인이 술을 끊었단다.
건강 때문인지 무슨 결심인지 모르지만, 이제 호탕한 그의 구라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살까 걱정되더라.
잘 했다며 박수 쳐 주어야 할 일을 걱정부터하니, 나도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김명성씨는 인사동 잔치에 오백만원 쯤 들어갔다는데, 잘 했다 싶더라.
전국에서 몰려든 백 오십 명의 풍류객과 한데 어울릴 수 있는 날이 이제 몇 번이나 더 있겠는가?
그 많은 사람들이 얻은 마음의 덕은 얄팍한 돈으로 계산되지 않을 것이다.
조해인씨가 별 이야기가 없으니, 김명성씨만 썰을 풀었다.
이 친구는 ‘아라아트’ 건물을 날리고 빚더미에 앉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며 열심히 살았다.
본래부터 고미술 수집 전문가였으나, 이젠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미쳐 있었다.
재기를 위해 아내가 어렵사리 돈을 마련해 왔다는데, 그 돈을 독립운동 사료 모우는 데 써 버린 것이다.
고미술도 마찬가지지만, 독립운동사도 정확히 모르고는 대들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얼마나 독립 운동사를 파고들었던지, 모르는 게 없었다.
술 마시며 제일 분개한 일은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로 조작된 사실이란다.
백년이 가까운 빛바랜 고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만 나면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난, 내일 새벽에 정선 가는지라 더 마실 수 없었다.
소주 반병으로 끝내고, 먹다 남은 생선조림을 비닐에 담아 먼저 일어났다.
동자동을 들려 정선으로 출발했는데, 양평을 거치는 국도로 장장 네 시간을 달렸다.
팽창농협에서 비료까지 실고 갔는데, 기절초풍할 일이 생겨버렸다.
집에 들어 갈 열쇠를 두고 온 것이다.
항상 자동차 열쇠에 달려 있었는데, 정영신씨가 폐차시킨다며 분리한 걸 모르고 차만 끌고 온 것이다.
차에 실어 온 의자와 짐을 부려야 하지만,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요즘 시골인심도 예전 같지 않아 좌물 통도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연장은 물론 장갑까지 집 안에 두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하루 머물지 않고 밤중에 돌아 갈 작정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했다.
한 달 동안 잘 자란 상추와 부추, 고추는 거둘 수 있었지만,
작물을 휘감은 칡넝쿨이나 잡초 뽑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장갑이 없어 맨손으로 뜯다 보니, 날카로운 풀에 배어 손가락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니기미! 약은커녕 그 흔한 일회용 밴드조차 없어 휴지를 칭칭 감아 칡넝쿨로 묶었다.
이 장마철에 그곳만 비가 피해 갔는지 작물은 혀를 날름거렸다.
바가지 하나로 떠나르며 물 주느라 생 똥을 싼 것이다.
시간이 없어 울 엄마 산소도 들리지 못하고 내려왔는데,
시간 낭비나 고생은 차지하고, 오고 가며 쏟아 부은 기름 값이 아까워 미치겠더라.
수확한 것은 상추 한 바구닌데, 너무 비싼 상추라 목구멍에 넘어갈지 모르겠다.
미련한 곰탱이 같은 나 더러, 강물에 묻힌 석양이 조롱하는 것 같았다.
“인간아~ 인간아~ 왜 사니?”
살고 싶어 사냐? 죽지 못해 산다.
저승길 이 되던, 천당 길 이 되던, 또 네 시간을 졸라 달렸다.
갈지자 졸음운전 깨우는 경적을 음악 삼아 기적적으로 살아왔다.
죽느냐? 사느냐? 그 것이 문제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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