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은 흑백사진 한 장으로 시작되는 사진 속 남자가 누구인지 찾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으나 꼭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에 끌렸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 영화를 본 날은 상영 마지막 날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전시 개막식에 늦을 것 같아 중간부터 보기 위해 막아놓은 입구를 뚫고 들어갔다.

그런데, 영화 내용이 생뚱맞았다. 알고보니 배심원’인데, 두 영화를 순서대로 상영하는 것 같았다.

기다렸다 보아 일정에 차질은 생겼지만, 너무 좋은 영화를 보았다.





대부분의 다큐영화가 사건 중심의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지만, 이 영화는 달랐.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한 청년이 누군지 찾는데 집중했다.


분노나 슬픔이 전개될 것이란 추측을 뒤집으며, 전하고 싶은 내용은 당사자의 증언으로 대신했다.

인터뷰 장면 장면을 보여주며 추리해 내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해석은 관객의 몫으로 남겼다.





19805, 광주 도심에서 포착된 군용 트럭 위에 군모를 쓰고 무기를 든 매서운 눈매의 젊은이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사진 속 남자가 평양 군중대회의 당 간부와 닮았다며 그를 북한 특수부대원이라고 지목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진 속 인물의 광대뼈 등 주요 특징의 선을 연결 3D화하여,

북한 매체에 소개된 사진과 비교하며 동일 인물임을 주장했다.

 

그런데 광주로 내려 보낸 북한군 특수부대원, 광수라고 지목한 600여명의 광주 시민들이

하나 둘 자신은 북한군이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철통같이 주변을 지킨 당시 상황에서 어떻게 600명이나 되는 많은 북한 병력이 광주까지 동원될 수 있었겠나?

 


 


그러나 1광수로 지목된 김군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다급한 마당에서 서로의 이름이나 나이 같은 것은 알 겨를도 없었지만,

더구나 30년이 지난 오래된 시민군의 모습이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그 사진을 찍은 중앙일보 이창성 기자는 사진 속 주인공과 눈 맞췄던 순간을 이야기 했고,

김군이라 불렀던 당사자를 기억하는 사람도 나왔지만, 그의 생사는 확인할 길 없었다.

주 옥씨의 증언에 의하면 고아 출신 넝마주이 '김 군'이라는 것과 다리 밑에 살았다는 목격담이 전부였다.



 


당시 20대였던 한 청년은 자신이 시민군이 된 이유는 억울하게 죽은 시민의 사진 때문이라 했다.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던 아낙, 맨손으로 저항할 수 없어 마지못해 총을 들었던 학생,

무기를 관리한 선생까지 모두 내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나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김군이었다.

 

당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 관리를 하던 오기철씨는 진압군이 공격한 전날

도청 밖에 나가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왔단다. 죽어도 깨끗한 모습으로 남으려는 각오였다.

물고문 후유증으로 이발소에서 머리를 감지 못한다는 분도 있었다.






강상우 감독은 805월 이후에 태어난 세대여서 객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을 찍기위해 4년 가까이 지만원을 비롯한 시민군을 찾아 증언을 들었고,

1989년 제5공화국 청문회 영상과 그날을 기록한 수백 장의 이미지와 기록들을

살피며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5.18에 접근했다.


이 영화가 5·18 역사 왜곡 문제를 처음으로 조명했다.

'박하사탕‘,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5·18을 소재로 한 영화가 더러 나왔지만 결이 달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주입하지 않고 당시의 상황을 차분하게 담아냈다.


그 결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으나.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상업영화에 밀리는 현실이라 흥행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을 일깨웠다.

역사 왜곡을 방임한 우리의 자세를 반성케 하며그에 맞서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 것이다.





김군은 한 편의 영화이기 전에 우리나라 역사였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슬픔에 앞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한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이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대개가 5,18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실상을 정확히 모르면 지만원이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논리에 수긍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보며 몰랐던 사건을 알게 되었다.


당시의 ‘광주 송암동 양민 학살사건과 작년 518일 국립현충원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망했다는

전사자 추모 집회가 열렸는데, 당시의 계엄군 지휘관들이 집회 무대에 당당히 서 있었다.

지만원이가 북한군 투입설을 주장하며 앞장 섰지만, 그 뒤에 가해자들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성은커녕 무고한 살상을 정당화하여 역사를 조작하려한 사실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런 집회가 용납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로부터 증언자 이창성과 주옥, 그리고 강상우감독 / 영화자료 스크랩



살인 잔당들이 역사를 뒤집고자 꿈틀거리는 것도 싹을 완전히 자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흉 전두환을 당장 사형시켜야 하는 이유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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