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9일 한정식선생과 약수동 이명동선생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열흘 전부터 한번 찾아뵙자는 선생의 말씀이 계셨지만,
이런 저런 날을 피하다보니, 토요일로 정해 진 것이다.

그동안 사모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한 번 밖에 찾아뵙지 못했는데,
요즘은 출입을 일체 안 하시어, 신경 쓰였든 터라 기회다 싶었다.
한정식선생께서 이명동선생 좋아하는 장어구이를 주문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먼저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더니,
혼자 계셔야 할 집에 여러 사람이 와 계셨다.
이명동선생의 아드님과 따님, 그리고 사위까지 있었는데,
그 날이 마침 이명동선생의 생신이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듯이, 잔치 날이었다.

생신이면 음식도 준비해 왔을 터이고, 가족끼리 모인 자리라
날을 잘 못 잡은 것 같기도 했으나 어쩌라! 이미 저질러 진 일을...
곧바로 한정식선생께서 등장하셨는데,
이명동 선생께선 기분이 좋았던지, 옛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일본의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 이야기에서부터
윤주영 선생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그침 없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많이 들었지만,
한 선생께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했다.
재방송이지만, 재미있게 들었는데,
오랫동안 들려 줄 사람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났으나, 주문한 음식이 오지 않았다.
충무로에 있는 장어구이 집에 미리 계산해 두고
정오까지 택배로 보내 달라고 했다는데, 30분이 지나도 감감소식이었다.
한정식선생께서 식당에 전화를 하니, 그 때까지 잊고 있었다.
빨리 보내 달라 했으나, 음식 장만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집에 음식이 준비되었지만, 한정식 선생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입장이 난처했겠는가?
한정식선생의 독촉전화에는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음식이 도착했지만, 배달꾼을 나무랄 순 없었다.






다들 시장했던 터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는데,
한정식선생께서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장어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명동선생께서는 그 걸 의식하였는지, 다른 음식은 두고 장어만 열심히 드셨다.
스승과 제자 사이지만, 같이 늙어가며 서로 챙기는 두 원로사진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무튼, 건강 잘 관리하시어 여생을 건강하고 재밋게 사십시오.


"이명동 선생님의 생신을 다시 한 번 경하 드리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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