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 팔러 장에 가는 행렬이 오래된 추억을 일깨운다.
그리 많지도 않은 장작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에서 가난의 세월이 그대로 읽혀진다.
네 사람이 이고 진 장작을 다 모아도,
하루 저녁 군불 땔 양밖에 되지 않을 텐데, 도대체 몇 푼이나 받을 수 있었겠는가?

옛날엔 곡식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땔감이었다.
가스나 석유가 대체한 요즘의 연료에 비해 원시적이긴 하지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이 장작불이나 화롯불이다.

온돌방에 군불을 때거나 밥을 짓는 등 가정에서 사용한
유일한 에너지가 장작이나 솔가리뿐이었다.
요즘에야 산에 나무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헐벗은 산이라 나무도 흔치 않았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대개의 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녔는데,
가난한 집은 어린이까지 나무하러 다녔다.
나도 친구 따라 한 번 간적이 있었는데,
빌린 지게가 내 키만 해 질질 끌고 다닌 기억이 난다.

그러니, 장날만 되면 나무전에 장작이나 솔가리 둥치가 많이 나왔다.
아버지께서 나무장사와 흥정해 마루 밑이나 헛간에 사 모았는데,
나무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무게로 달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림짐작으로 매기니 그럴 수밖에..

장작이 타 들어가는 부엌아궁이에 쪼그려 않아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던 추억도 새록새록 하지만,
밥 짓느라 아궁이를 지킨 엄마 옆에 달라붙어 용돈 달라고 칭얼대던 기억도,
화가 난 엄마가 부지깽이를 들고 달려 나오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친다.






그런 촌스러움이 그리워서인지, 요즘도 정선만 가면 나무를 하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핀다.
아궁이에 군불 때는 것은 물론, 도끼로 장작 패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끼 한방에 쩍쩍 벌어지는 쾌감이나,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불길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기는 재미를 알랑가 모르겠다.
따뜻한 아랫목에 드러누워 등 찌지는 맛은 또 어떻고...

몇 년 전에는 넘어지는 나무에 치여 발가락이 망가지는 사고도 있었지만,
나무를 쌓아두면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은 오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올 해는 여러 분들의 집안에 장작불 같은 행복의 에너지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위의 사진은 작고하신 광고사진가 김한용선생의 초기사진 ‘장터 길’이고,
아래 사진은 조문호의 '두메산골 사람들'이다. 글을 조문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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