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사진가

2016.04.26 - 서울문화투데이-


안산 대부도 절벽의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 새끼를 찍겠다고 둥지 주변의 나무를 모조리 잘라내 서식지를 엉망으로 만들더니,

또 어떤 이들은 동강할미꽃을 찍겠다고 벼랑에 기어올라 동강할미꽃을 망가트린다는 연이은 소식들로 온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다.


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동강할미꽃 찾아, 서식지인 정선 귤암리로 몰려든다. 아름다운 꽃을 찍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사진인의 잘못된 욕심들은 바위틈에서 자라는 꽃의 묵은 잎과 줄기를 없애거나, 이슬처럼 보이려 물까지 뿌려댄다.

동강할미꽃은 해가 떠올라 날씨가 따뜻해야 꽃이 피기 때문에, 핀 꽃에는 이슬이 맺힐 수 가 없다.

그리고 화면을 단순화하려 꽃을 감싼 마른풀을 뜯어내고 있는데, 생태사진은 꽃도 꽃이지만,

꽃의 습성이나 자연적인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왜 모를까?

자연환경에 대한 보호의식은 물론, 야생화사진의 가치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 더 안타깝다


매년 이 맘 때면 화엄사 매화나무를 찍으려 하루500여명이 몰려드는가 하면, 구례 산수유 같이 꽃피는 마을들이 사진인 들로 북적인다.

꽃구경이라면 모르겠으나, 똑 같은 사진을 찍어 다들 어디에 쓸까? 때로는 모델까지 동원해 영화촬영 하듯 몰려다니는 걸 보면 정말 가관이다.


이 모든 원인은 단 한가지다. ‘사진작가협회’에 입회하기 위한 공모전 출품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 단체에 들어가야 사진작가가 되는 줄 착각들 한다.


하기야 회원증에다 ‘사진작가증’이라 적어 놓았으니, 순진한 초보들이 속을 수밖에 없다.

이제 전국회원 만 명에 가까운 공룡집단으로 성장해, 그 먹이사슬에 의해 초보 사진인 들이 희생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진을 제대로 하는 사진가들이 그 단체에 소속되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80년대 중반 단체의 구태에 환멸을 느낀 사진학과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탈퇴하므로 명실상부한 아마추어 단체로 남게 된 것이다.

회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사진교육은 뒷전이고, 숱한 공모전 비리나 만들어내며, 회원증 장사와 감투 늘리기에 급급하더니,

이제 그 한계점에 달한 것 같다.

문제는 그 단체를 이끌어가는 주체들이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라는 점이다. 뭘 모르니 후진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해 야생화사진의 대가라는 김정명씨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가 발표한 동강할미꽃은 마른풀이 제거되거나, 꽃잎에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심지어는 인공조명까지 사용해, 마치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 같았다. 엉터리 사진들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발표하니,

너도 나도 그 짓을 따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구에 사는 장국현씨는 제 작년 울진에서, 대왕송을 찍기 위해 주변의 금강송과 활엽수를 스무 다섯 그루나 베 낸 일도 있었다.

여론의 질책에도 자성은커녕, ‘예술의전당’에서 안 된다는 전시를 소송까지 걸어 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무슨 대단한 예술을 하는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기본이 되지 않은 몰염치들이다. 내가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어디 그 뿐인가, 세월호의 원흉 유병헌도 사진한다며 국제적 망신을 시키지 않았더냐?


1983년에는 청산가리를 먹여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찍었던 희대의 살인마 이동식도 아마추어 사진인이었다.

취미 사진의 순수함이 이런 몰지각한 이들로 이름이 더럽혀 진 것이다.

사진이 돈 있는 자나 할 일 없는 건달들의 자기 과시욕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진을 제대로 공부했거나, 전업으로 메 달리는 사진가들은 대부분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평생을 사회기록에 매달려 온 나 역시, 남은 건 신용불량자란 딱지뿐이다.

이러나저러나 범법자이긴 마찬가지니 차라리 사진을 그만 두고 싶다.


더 이상 열심히 작업하는 선의의 사진가들을 욕되게 하지마라.










정선 만지산 골짜기에도 봄이 왔다.

마당의 목련은 처녀가슴처럼 부풀었고,
할미꽃도 수줍은 듯, 고개 내민다.

자연은 온통 봄소식 전하느라 바쁘건만,
만지산 사람들은 싸우느라 정신없다.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기 싸움질이다.
마치 정치판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툇마루의 낡은 가림 막은 깃발처럼 펄럭이고,
시멘옹벽이 무너져 주춧돌을 협박한다.

함께 살자던, 자연마저 나를 버리려는가?
낯 술에 취해, 울 엄마 무덤을 찾았다.

미주알 고주알 하소연하다, 잠들어버렸다.
꿈에라도 기다렸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다.

사진,글/ 조문호












조양강 산내울에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다.

강가에는 버들강아지의 하얀 솜털이 하늘거린다.
산내울에 따뜻한 봄기운이 일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있다.
뼝대를 수놓는 동강할미꽃 찾아 방방곡곡에서 사진인 들이 몰려온다.
꽃이 피면 나비가 날아들 듯 카메라가 몰려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야생화 찍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 다 어디다 쓸까?

아니면 사돈 따라 장에 가듯, 남이 찍으니까 따라 찍는 것일까?

예쁜 꽃을 보면 누구나 찍고 싶은 마음이 일기마련이다.

그런데 꽃이 좋으면 꽃만 찍지, 왜 못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위험한 벼랑에 무리하게 기어올라, 꽃 주변에 있는 마른 풀을 뜯어내거나,

심지어는 스프레이로 꽃망울에 물을 뿌리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진인 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몰지각한 사진인들의 추태가 전체 사진인 들을 욕 먹이는 것이다.

야생화 자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공모전이나 노리는 초보 짓이 틀림없을게다.


야생화를 찍으려면, 자연환경을 다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찍어야 한다.

꽃도 좋지만, 꽃의 습성이나 주변여건을 함께 담아야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진인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고, 사진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로

사진한다는 말 꺼내기가 민망스럽다. 


올 해로 열 번째를 맞는 동강할미꽃축제는
오는 4월1일부터 3일까지 정선 병방산 '동강생태체험학습장'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는 옷바우 제례를 시작으로 나만의 동강할미꽃 심기, 학생백일장, 떡메치기,
동강할미꽃 분재 및 사진전시, 마을풍경 그림전시, 동강할미꽃 10년사 자료 전시,

한반도지형 및 수리봉 포토존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우라지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떡메 한 번 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사진,글 / 조문호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귤암리 동강 변 뼝대(벼랑)에 석회암 바위를 뚫고 피어난 동강할미꽃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연분홍, 청보라, 붉은 자주색 꽃이 하늘을 향해 초롱초롱 빛을 낸다.
 


 ‘동강할미꽃’의 고장 강원도 정선 기행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으로 알려진 ‘동강(東江)’은 강원도 정선의 주강이다. 동강 물길 51㎞ 중 태백이 5㎞, 영월이 14㎞인데 정선은 32㎞다. 동강에서 봄철에 유난히 주목받는 것이 있다. 암벽 틈 사이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동강할미꽃’이다. 고개를 숙이는 여느 할미꽃과 달리 깎아지른 기암괴석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신비스럽게 꽃을 피워 보석 같은 꽃향기를 뿜어낸다.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롭다.


동강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15㎝ 정도의 꽃을 피운다. 꽃대 전체에 흰 털이 많다. 잎은 뿌리에서 나는 깃꼴겹 잎으로 작은 잎 7∼8장으로 이뤄진다. 동강 주변의 정선, 영월, 평창의 석회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한국의 자생 야생화다. 1997년 한 식물사진가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으며 2000년 6월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가장 늦게 봄이 드는 강원도 땅에 살지만 3월말부터 4월 초순에 어김없이 꽃을 피운다. 현란하게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한 잔영을 남기는 아름다움이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우리 꽃이다.


할아버지 수염을 한 동강고랭이. 정선 동강변에 동강할미꽃과 함께 자란다.


처음 동강할미꽃이 발견된 곳은 정선군 귤암마을이었다. 수직 절벽이 동강할미꽃의 자생지다. 이름은 할미꽃이지만 전혀 할머니 같지 않다. 수줍은 새색시 마냥 가냘프고 고운 미녀 같은 꽃이다. 연분홍, 청보라, 붉은 자주색 꽃이 하늘을 향해 초롱초롱 빛을 낸다. 동강을 붉게 물들인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동강할미꽃도 활짝 열었던 꽃잎을 서서히 닫는다.  

동강할미꽃을 맞이하러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꼬불꼬불한 동강변 도로를 한참 달려야 한다. 길 한 켠에 ‘낙석주의’ 표지판이 긴장감을 준다. 그렇게 가는 길에 만나는 ‘동강할미꽃 군락지’라는 표지판이 반갑다. 동강할미꽃은 장미나 튤립처럼 흐드러지게 피지 않는다. 군락지라고 해서 빠르게 지나치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을 부릅뜨고 바위벽을 찬찬히 살펴야 그 틈에서 손을 들고 있는 보랏빛 꽃을 마주할 수 있다. 그 빛은 장미의 붉은색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병방치 스카이워크.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반도 지형과

휘돌아가는 동강의 풍광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귤암리는 53가구에 138명이 사는 마을이다. 정선에서 유일하게 온대식물인 감나무가 재배 되는 곳으로 예부터 감꽃이 만발해 귤화리라고 칭하던 ‘귤’자와 의암이라는 자연부락 이름에서 ‘암’자를 따왔다. 주민들은 세계 유일종이며 한국특산종인 동강할미꽃을 보존하기 위해 2005년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를 창립했다.

귤암리 동강생태체험학습장 및 동강 유역에서 4월 1일부터 3일까지 제10회 동강할미꽃축제가 개최된다. 동강할미꽃 분재 및 사진전시, 마을풍경 그림전시, 동강할미꽃 10년사 자료 전시, 한반도지형 및 수리봉 포토존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 서덕웅 회장은 “동강할미꽃축제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라기 보다 자연의 고마움을 자연 속에서 느끼고 아름다운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것”이라며 “척박한 환경 극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는 동강할미꽃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말했다.

귤암리 동강생태체험공원에서 올려다보면 병방산(兵防山·861m)이 웅장하게 서 있다. 위로는 천층 절벽이요,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강물이라 한 사람만 지켜도 천군만마가 근접하지 못할 요새지여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그 산 중턱에 병방치라는 옛길이 있다. 1974년 강변으로 통행할 수 있는 호박길(동강로)이 생기기 전까지는 산 아래 귤암리 주민들이 정선 5일장터에서 생필품과 비료, 시멘트 등을 운반했던 생명의 길이었다. 병방산의 허리를 가로질러 오르는 고갯길의 경사를 낮추기 위하여 36굽이 뱅글뱅글 돌아 통행했기에 뱅뱅이재라고 불린다. 다람쥐도 한숨짓고 나는 새도 쉬어가는 길이다. 

병방치에 서면 굽이치는 동강의 아름다움이 가슴 뻥 뚫리는 청량감을 준다. 깎아지른 듯한 산세를 따라 뱅뱅 돌아가는 옛길을 따라 가면 동강변 할미꽃마을에 이르게 된다. 약 3㎞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선에서 요즘 ‘뜨는’ 곳이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송중기·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인 고한읍 ‘삼탄아트마인’이다.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의 폐광시설을 이용해 시간의 흔적과 예술의 희망을 캐는 콘셉트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예술광산으로, 지난해 ‘한국관광 100선’으로 선정됐다. 1964년부터 2001년 10월 폐광되기 전까지 3000명이 넘는 광부가 석탄을 캐던 삶의 터전이었다. 갱도로 내려가는 승강기와 석탄을 나르던 레일 등이 모두 보존돼 있다.


여행메모 
영동고속도·42번 국도 이용 3시간 소요… 곤드레나물밥 별미
 


곤드레나물밥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나와 42번 국도를 타고 평창읍을 지나 비행기재터널을 통과한 뒤 7㎞가량 가면 광하교다. 이 다리를 지나 강변을 타고 4㎞ 정도 더 가면 ‘동강 할미꽃 축제’가 열리는 정선 귤암마을이다. 약 3시간 걸린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정선행 시외버스가 있다. 

정선읍내에서 59번 국도를 따라 가다 남면에서 38번 국도로 갈아타고 고한읍을 지나면 삼탄아트마인에 다다른다. 지난해 한국관광100선에 포함된 삼탄아트마인은 탄광 문화와 예술이 결합된 공간으로 문 닫은 뒤 멈춘 과거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다. 4층부터 전시 공간 10여 곳을 둘러보면 석탄을 캐서 모으던 시설에 미술 작품을 가미한 레일바이뮤지엄을 거쳐 기억의 정원 등이 있는 야외 공간으로 나온다.

정선은 곤드레나물의 고장이다. 정선읍내의 싸리골식당(033-562-4554)은 곤드레나물밥(사진)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아라리촌주막(033-563-0055), 동박골식당(033-563-2211), 동광식당(033-563-3100), 짐포리식당(033-562-2479) 등도 맛집이다. 

[스크랩/ 국민일보]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누가 내 처지를 알아줄까’라는 뜻의 ‘아라리’같은 노래를 지어 불렀을까?

그 한 많은 아라리의 고장 정선에서 열리는 정선아리랑제가 나흘간의 축제를 마무리하였다.

정선보다 외지에 있는 시간이 더 많지만, 매년 정선아리랑제 만큼은 빠지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서울의 결혼식에다 출판기념회까지 있어, 길놀이와 개막식만 보고 올라와야 했다.

길놀이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아리랑시장에서 나온 풍물패 임미순, 정춘경씨는 소고를 두드리고 있었고,

소설 쓰는 강기희씨는 마을 사람들을 인솔하여 차위에서 전병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정선읍장 유경수씨는 대감 차림을 한 채, 정선읍 팀의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지역민들의 참여도가 제일 높은 행사이지만, 매년 반복되는 진부함으로 

참여하는 분들의 노고와 비용에 비해 성과가 적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의 나열식 진행에서 함께 어울어지는 진행을 위한 아이디어를 짜 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개막식 무대는 정말 장관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무대를 촌스럽게 끌어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왔으나,
정 반대의 컨셉도 괜찮았다.
이번 개막공연을 보며 '정선의 힘과 도약을 상징하는 무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은 정선아리랑과 랩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디다!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젊은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요.
목발 두드리는, 지게 장단 역시 짱이었습니다.“

사진,글 / 조문호










































 

프로젝트 ‘장에 가자2’ 정선전시를 어렵사리 끝 마쳤다.
27일간 서울과 정선을 오가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나 일반인들의 참여를 확대하기에는 한계를 느꼈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전시 문화에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을까 하는 큰 숙제만 남긴 셈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지역 사진인의 비협조적인 자세다.
주최 측인 정선문화원에서 정선군청 홈페이지에 ‘장에 가자’ 초상사진 퍼포먼서 안내를 했는데,

그곳에다 비난하는 댓글을 올린 것이다.
정선 사진의 대가로 자처하는 스스로의 존재를 몰라주는데 따른 불만인지 모르지만,
전시는 보지도 않은 채,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어 와 실소를 머금게 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협회원’이란 과대망상적 ‘중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정선문화원의 전시작가란 말에 공식 인증된 작가 타이틀을 공개하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사진작가란 말이긴 하지만, 사협 회원이 아니니 촬영기사라는 것이고,

사진을 무료로 찍어 주면 자기같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논지였다.
한 사진인의 시기심에서 비롯된, 우물 안 개구리 격인 일고의 가치 없는 글이었으나,

아마추어 공룡 집단 '한국사진작가협회'의 병폐를 보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었다.
회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사진교육은 뒷전으로 한 채,

숱한 공모전으로 회원들과 감투 늘리기에만 급급하더니, 이제 그 한계점에 달한 것 같았다.

나도 20여년 전 ‘한국사협’이라는 회보 편집장으로 그 조직에 관여한 적이 있었다.
공모전비리는 일상이었고, 조직의 패거리적 병폐에 한계를 느꼈다.

그 당시 이사장이었던 고 문선호씨가 나의 ‘87민주항쟁’전시 추진에 제동을 건 적도 있었다.

사진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어떻게 격려, 지원은 못할망정 전시를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사직서를 내 던지고 강행했지만, 사협이란 단체가 본래 힘 있는 정치에 아부나 하는 그런 어용단체인 것이다.

그 이후 사진과 교수들을 비롯하여 작가의식이 투철한 사진가들은 모두 사협을 탈퇴하여

‘민족사진가회’란 새로운 단체에 영입되었으나, 그 또한 사진가 김영수씨의 독주로 회원들의 결집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사실 작가들에게 단체는 중요치 않다. 공익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작가 개인으로서는 제약에 불가할 뿐이다.

‘예술인총연합회’ 산하 각 예술단체의 창립 배경도 결국은 부패 정권이 예술가들을 이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일그러진 사진계 내막도 모른 채, ‘사진작가증’이라 적은 전대미문의 회원증 하나에 현혹되어 

가입한 다수의 피해자(사협회원)들을 구제할 방법은 없을까?

그들을 공모사진이나 형식사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사진으로 이끌 수는 없을까?
이 것 저 것 고민거리만 안겨준 정선 전시였다.

글 / 조문호

-아래는 군청 홈페이지에 올린 전석원씨의 글-

“정선문화원에서 시행하는 전시사업은 작가가 아니라
촬영기사라고 표기해야 맞습니다
아무나 같다가 붙이는 작가타이틀 말고
국가에서 공식 인증된 작가타이틀을 공개 해주시면,
어떤 공인단체에서 그런 일을 하는지 의문이 가서 묻고 싶습니다.
정선에 포크레인 공사를 정선문화원에서 무료로 다 해준다고 하면
정선에 포크레인 하시는 분들 포크레인 정선문화원에다가 다 세워놓고 항의 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문화 홍보와 마케팅이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추락시키면서까지 그렇게 절박하게 정선문화원을 운영 하는 것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정선문화원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를 제데로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사)한국사진작가협회 디지털아트분과 부위원장
(사)한국사진작가협회 강원도지회 사업간사
강원포토 대표 전석원 “

 

 



-정영신씨가 찍은 아래 사진들은, 전시가 끝나는 지난 15일 전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이다.-

대구에서 온 양기원씨, 부산에서 온 최종렬씨, 서울에서 온 이도영, 심재현, 이명화, 송민준, 손영주, 이해인, 박찬의씨 정선의 이하윤, 이진순씨, 그리고 무지개빛 청개구리라는 이은영, 엄세빈, 박상우, 박준우, 박용현, 전도연, 송영은, 김민지, 박종선, 김봉섭, 신윤택, 정우준, 임나경 학생 등

 

 

 

 

 

 

 

 

 

 

 

 

 





 

 

정선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열리고 있는 ‘프로젝트 장에가자2’ 사진전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호객행위로 전시장의 공백을 메워가는데, 막상 사진전에 들려 초상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대 만족이었다.
지척에 있는 좋은 전시를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며 정선군의 홍보부재를 아쉬워했다.

지난 7일에는 시간 내어 찾아 온 지인들이 많았다.
정선의 문인 안영환, 김우영씨를 비롯하여 장승공예가 서덕웅, 최원희, 귤암리 최연규, 지동진, 신승철씨 등

여러 명이 들려 축하해 주었고, 그 외에도 전제덕, 이서정, 김혜진, 전형수 이성학, 이승준, 정상임, 임기덕,

강효순씨가 들려 초상사진을 찍었다.

메마른 삶의 현실에 장터가 유일한 희망이다. 모두들 장에가자.
이 전시는 오는 15일까지 열린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예전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당이 도처에 있었다.
대개 서낭신이 붙어사는 오래된 나무나 돌 더미를 서낭당이라 했으나,
곳에 따라서는 사당, 즉 당집을 지어 서낭신을 모시기도 했다.

서낭당은 잡귀나 병을 막아주며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역할 외에도
마을 어귀에 자리 잡아 먼 길에서 돌아오는 가족들이 서로 만나거나 헤어지는
작별의 장소이기도 했다. 마음의 평안까지 안겨주는 곳이었으니,

이 얼마나 신성하고 드라마틱한 장소였던가?

이렇게 오랜 세월 민중과 함께 해 온 서낭당이 이젠 대부분 사라졌다.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우리 고유의 의식과 전통을 깡그리 없애 버린 것이다.
새마을 운동이란 깃발아래 씨를 말려 버렸다.

그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종교는 손대지 않았다.
미신이라 내쳤지만, 다른 종교도 결국 마음의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니던가
힘센 다른 나라 눈치는 보면서 국민 아니 조상은 거지 발싸게 처럼 얕본 것이다.
그런 짓을 했으니 어찌 천벌을 아니 받겠는가?

우리 마을 만지산 서낭당이야기하려다, 괜히 열 받았다.
그렇게 서슬 퍼른 칼날에도 살아남은 곳이 내가 사는 정선 만지산 서낭당이다.
그만큼 깊은 산골에 숨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해마다 만지골 사람들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기도 하고,
몇 년 전에는 만지산에 산삼 심으러 온 서울의 ‘농심마니’들도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무당을 불러 서낭당축제를 개최할 만큼 애착을 가진 곳이다.

그런데 올 들어 이 골에 자꾸 우환이 생기는 것이다.
모두 아흔은 넘겼으나 만지골의 어르신 두 분이 차례로 돌아가시더니,
두 달 전에는 옆집에 사는 노성수(60)씨가 갑자기 목숨을 잃었다.
과음으로 팔을 헛짚어 유리에 동맥이 끊기는 끔찍한 사고가 난 것이다.

지난 8일 밤늦은 시간 아내와 서낭당 앞에 무릎 꿇고,
제발 우환을 거두어 달라며 서낭신께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만지골의 재앙을 거두어 주소서!
내친김에 이 사악한 세상까지도 바로잡아 주소서!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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