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카메라를 접하면서 낭만적 삶의 시대는 끝난 줄 알았다.

사진정리하며 인터넷에 몰두하다 보니, 아내로부터 컴퓨터 중독자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 역시 기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해 한심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컴퓨터를 통해 소통하는 인연도 인연이려니와 사진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정선에 있는 컴퓨터를 버리고, 정선 있을 때는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는다.

정선 갈 때도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양평으로 가는 국도 따라 쉬엄쉬엄 간다.

완전히 서울과 정선을 구분해 불편한 이중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한 달에 열흘 정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는 정선의 삶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자연을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기는 하지만, 잡초와의 전쟁으로 진땀께나 흘린다.

서울에 올라와도 밀린 자료 정리하느라 밤잠 설치기는 매 마찬가지다.

대신 서울에서는 잠꾸러기처럼 늦게 일어나지만, 정선에서는 새벽부터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새소리에 깨어서는, 표도 나지 않는 일을 온 종일 하는 것이다.

 

지난 말일부터 8월3일까지 머문 정선 체류기간은 평소보다 더 바빴다.

낯에는 전시장에 나가 ‘‘장에가자’ 퍼포먼서의 초상사진 찍어주느라 시간 보내고,

집에 들어와서는 밭을 점령한 잡초 뽑으며, 화재로 불탄 문짝 단장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렇지만 하루 일을 끝내는 밤이 되면 아내와 함께하는 술잔 속에 하루가 스르르 녹아든다.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우리를 축복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인사동을 기록하는 서울생활도 보람은 느끼지만, 힘들어도 정선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행복하다.

수시로 변하는 자연의 경이로움에서부터 땀 흘리며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한 물맛까지 더 없이 좋다.

그렇지만 현실과 밀접한 디지털과의 불륜, 아니 불편한 이중생활을 접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본처도 첩도 아무도 버리지 못한채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다.

 

이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작정이다. 어차피 함께 즐겨야할 동반자니까...

 

 

사진 : 정영신 /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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