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래면 70을 바라보는 늙은이 주제에, 일 생각 밖에 없다.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찍고 또 찍는다.

이젠 찍는 것 보다 사진 정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그 버릇의 첫째는 필카에서 디카로 바뀌면서 부터다.

언제 우리가 필름 걱정 안 하며 이렇게 마음대로 찍은 적이 있었던가?

둘째는 다큐사진가 정영신을 아내로 맞고 부터다.

조가 잘 맞아, 오늘에 만족하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가지, 나이 탓에 마음의 조급함도 있을게다.

하기야! 젊은 시절 친구들을 좋아해 너무 많이 놀았다.

늦게 철이 난 건지, 망령이 든 건지 나도 모르겠다.

 

서양화가 장경호씨가 술만 취하면 주문처럼 외는 말이 생각난다.

“대충 삽시다,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31일과 4월1일, 이틀 동안 연이어 인사동에 나왔다.  

 

첫 날은 보슬비가 보슬보슬 내려 술 생각나게 하더니,
이튿날은 화창한 봄볕으로  꽃놀이를 가고 싶었다.

31일 늦은 오후, ‘화신포차’에서 장경호씨를 만났는데,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은 것이다.

신학철형이 차에 받혀 갈비뼈가 세대나 부러졌다는데,

사고차량은 돌려 보내고 입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형의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연세가 있어 쉽게 아물지 않을텐데 걱정스럽다.

 

그리고는 귀가 번쩍 떠이는 제안을 했다.

신학철형을 좌장으로 모시고, 마음 맞는 10여명이 ‘무다헌’에서 정기모임을 갖잖다.
모임 이름은 ‘노세! 노세!’가 어떠냐는 것이다.

요즘 인사동이 예전 같잖다.
거리는 관광객들로 들썩이고, 전시장은 많아도 텅텅 비어있다.
술 한 잔 마음 편히 마실 곳조차 없다.
인사동 마지막 낭만이 될지도 모를 ‘노세!’ 모임에 박수를 보냈다.

이튿날 한정식선생과의 오찬 약속으로 다시 나왔다.
밥 먹고 차 마시며 많은 말씀을 들었으나 기억에 남는 건, 딱 한가지였다.
혼자 사는 친구 소원이 저녁9시 뉴스를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란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런 말씀을 했을까?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라아트'의 '세월호 편지전'에 들렸으나 썰렁했다.

흐르는 세월에 모두들 세월호의 아픔조차  잊었나보다.

 

길거리에서 혼자 사는 이행자 시인도 만났다.


사진,글 / 조문호

 

 

 

 

 

 

 

 

 

 

 

 

 

 

 

 

 

 

 

 

 


 

지난 '청량리 588' 전시 때 팔렸던 사진들을 전해주려
마석의 장경호씨와 장안동 신학철씨 댁을 각 각 방문했다.
가난한 화가들이 사진을 사 줘, 그 고마움에 인사차 들렸다.

처음 들린 마석의 장경호씨 화실은 홀 애비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난간에 걸린 단출한 빨래가 그의 고단한 삶을 대변해 주었다.
장경호씨 댁은 일전에 방문한 적이 있어 살림살이를 대충 파악하지만,
신학철씨 댁은 처음이었다.


 


혼자 사시지만, 정리 정돈이 꽤 잘 돼 있었다.
김치냉장고에는 백김치를 잔뜩 담가놓았고, 장독에는 된장을 가득 담가놓았다.
오랜 세월, 병석에 누운 아내 간병하느라 살림꾼이 다 된 모양이다.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셔서 짬을 낼 수 있으나, 그 전에는 꼼짝달싹 못했다.
인기작가로 부상해 여기저기서 그림을 찾고 있지만, 그릴 시간이 태부족이다.
아마, 신학철선생처럼 바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는 아내가 누운 요양병원까지 자전거로 다녀오며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집안 살림도 살림이지만, 시국현장마다 나서야 해 안 팎으로 바쁘다.
얼마 전 재야인사들로 모인 '국민신당' 창당준비위 공동대표까지 맡아 더 바빠졌다.

 

화구가 있는 작업실에 빨래가 널린 걸로 홀애비임을 말해준다.

 


아무리 바쁘지만, 그림도 열심히 그린다.

정교한 작품들을 완성하려면 많은 시일이 걸린다.

방마다 준비하는 자료와 그리는 작품은 있었지만, 마무리 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완성되기가 무섭게, 비싼 가격으로 팔려 나가니 남을 틈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다.

돈만 생기면 가난한 재야단체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니 통장은 늘 재로상태다.

그의 작품세계는 어떤가?  한국의 '고야'로 불릴 만큼 독보적이다.
민중을 중심으로 특유의 해석과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한 기발한 내용들이다.
극 사실주의와 콜라주 기법으로 그려 낸  "갑순이와 갑돌이"시리즈와
'한국근대사' 연작들로 오래전 부터 화단의 주목을 받아온 터다.

 

 

신학철 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 부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신학철 작 '한국근대사'

장안동 술집에서 앞으로의 작업에 대해서도 귀띔해 주었다. 

 

작업 중인 '촛불시위' 외에도 남성문화와 전쟁문화를 비판하는 작품도 구상중이란다.
거대한 워싱턴기념탑을 남성 성기로 형상화할 것이라는데, 정말 볼 만하겠다.

 

의리의 신학철화백을 영원한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사진,글/조문호

 

 

 

 

준비중인 자료들을 설명하고 있다.

 

 

투병중인 아내의 고등학생 시절 찍은 사진이 거실 벽에 붙어 있었다.

축제에서 춘향으로 뽑혀 가장행렬에 나선 모습이다.

 

 

 

서재에 꽂힌 옛 자료들이 고풍스럽다 . 머지않아 신학철미술관에 남을 중요한 사료다.

 

언제봐도 소탈한 모습이 정겹다.

 

담배 피우는 장경호씨 표정 자체가 작품이다.

 

 

무슨 말을 저렇게 진지하게 할까? 술이 취해 찍어 기억이 안 나네.

 

 

늦은 시간에 누가 또 전화했을까?

 

 

아이구! 오줌마려워...

 

날씨는 봄인데, 나들이객들의 옷차림은 아직 한 겨울이다.
어저께만도 추워 싸매고 다녔는데, 곧 바로 여름으로 접어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지난 16일 오후6시 무렵, 카메라를 메고 사냥꾼의 심정으로 인사동을 돌아 다녔다.
약속시간이 좀 이른 것 같아, '툇마루‘ 앞 벤취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무는데,
카메라 화인더에 반가운 분들이 등장했다.

강선화씨와 김구, 임경일씨가 골목에 접어들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반가워 ‘툇마루’에서 막걸리 한 잔 했는데,

임경일씨는 ‘청량리588’ 책에 사인해 준 내용을 핸드폰으로 찍어 보여주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들여다보니 “마누라 열심히 꾹꾹 눌러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취중에 쓴 글이라 기억도 없었다.

‘화신포차’에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득달같아 오래 머물 시간은 없었다.
약속장소에는 장경호씨와 배성일씨가 먼저 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장경호씨의 모습이 확 달라졌다. 취기가 올라 홍조 뛴 얼굴에 부티가 났다.
이야기인 즉 선, 없었던 치아를 복구해 제 모습을 찾았다는데, 참 부러웠다.
나도 썩어 문드러진 이빨 다 뽑아버리고, 틀이라도 해 넣으면 좀 나아질까?

뒤이어 장 춘씨가 합류해 ‘무다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반주로 노래까지 한 곡씩 불렀으나,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전시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셔서 그런지, 요즘 조금만 취해도 맥을 못 춘다.
늦게까지 마셔야하는 장경호씨가 마음에 걸렸으나, 장 춘씨와 먼저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려는데, ‘인사동사람들’로 옮겼다는 장경호씨의 기별을 받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청량리 588’ 조문호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아라아트’ 전시장에는 연일 인사동 사람들의 반가운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만화가 박기정, 박재동선생, 가수 최백호씨, 최혁배, 이대복변호사, 경기도미술관장 최효준씨, 소설가 임헌갑씨, 시인 신경림, 정희섭, 김신용, 조준영, 강고운씨, 건축가 김동주씨와 박경주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서양화가 신학철, 문영태, 장경호씨, 설치미술가 김언경씨, 피리연주가 김정남씨, 불화가 이인섭씨, 목조각가 신명덕씨, 영화감독 이창주씨, 연극배우 최일순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며, 588에 대한 감회를 되 새겼다.

이른 시간부터 부산식당에 자리를 잡은 신학철, 문영태, 최석태, 장경호씨 등, 그림 패와 어울려 낯 술에 취해 버렸다.

‘사동집’의 출판기념회는 박기정씨를 비롯하여 50여명이 모였으나, 책을 꺼내 놓지 않아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술판기념회가 되어버렸다.

 

뒤늦게 간 ‘무다헌’에서 강고운, 정영신, 신학철, 장경호, 조준영씨와 어울려 밤늦도록 재미있게 놀았다.
제 각기 사연베인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잘 못돼가는 세상을 한탄하기도 했으나,
창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신학철 선생께서 한 말씀 던졌다.

‘난 예술지상주의를 거부한다’

 

 

 

 

 

 

 

 

 

 

 

 

 

 

 

 

 

 

 

 

 

 

 

 

 

 

 

 

 

 

 

 

 

 

 

 

 

 

 

 

 

 

 

 

 

 

 

 

 

 

 




‘청량리 588’ 사진전이 시작된 이틀 만에 작품 하나가 팔렸다.
그것도 가난하기 그지없는 서양화가 장경호씨가 샀기에 더 뉴스거리다.

588사진들은 일 이 십만 원 정도의 싼 작품이 아니다. 한 컷에 두 장만 뽑는 오리지널
프린트라 11X14인치 소품 한 점에 300만원이고, 최고는 1,000만원씩이나 한다.

돈이 없어 허덕이며 연이어 전시를 하는 우리 내외가 안 서러워 도와주려는 마음이
앞섰겠으나, 사진을 소장하고 싶은 가치도 알았던 것 같다.

지난 26일 정오 무렵, ‘백련’에서 막걸리 반주에 추어탕을 같이 먹고 올라와서는

두둑한 돈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며 작품을 사겠다는 것이다.
그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라  놀랐으나, 그 속 깊은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건 감동 자체다.
너무 고마워 정우일씨와 화신포차에서 한 잔 한 후, ‘무다헌’에서 한 잔 사고 싶었으나 술값을 먼저 내 미안하게 만들었다.
밤 늦은 시간, 술이 취해 마지막 전철을 타고 오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사진집출판으로 우연찮게 연이은 전시를 하지만, 두 달 가까이 정신없이 뛰다보니 그의 탈진상태다.

주변 사람들 걱정처럼 스스로의 대책 없음도 자책했지만, 지난 작업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다.

세월의 무게에 실린 588사진들이 된장이나 와인처럼 숙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좀 더 부지런히 남기지 못했음도 한스러웠다.

전시 둘째 날에는 한국일보, 조선일보 기자들한테 잡혀 취조를 당하기도 했고,

장경호씨를 비롯하여 연극연출가 기국서씨, 미술평론가 윤범모씨, 시인 정우일, 홍행숙씨, 무도인 김형진씨, 이종률,  공윤희씨 그리고 이계익선생을 모시고 나온 노광래, 편근희씨를 만났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정영신,조문호의 ‘장에 가자’ 전람회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전시가 한 달간이나 이어져 지루한 감은 있지만, 언론사 나팔 덕택에 관람객은 꾸준했다.

 

지인이나 재방문 하신 분으로는 서양화가 문영태, 정복수, 장경호, 이길원씨 미술평론가 최석태씨

조각가 이재욱씨, 도예가 김용문씨, 시인 강 민, 김신용, 조준영씨, 시인 김수영씨 미망인 김현경선생,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부부가 재방문 하셨고, 민속학자 심우성선생께서는 매일같이 출근하셨다.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지난 29일, 조준영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번개팅으로,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말에
가까이 있는 몇몇 분들에게 카톡을 날렸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니 ‘유목민’으로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준영, 유진오, 정영신, 이명희, 허미자, 전강호, 김상현, 김명성, 노광래씨가 왔다
뒤늦게는 미국에서 귀국한 오세필씨가 집에도 들리지 못한 채,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술 귀신들이 반가웠지만, 가슴 아픈 전갈도 있었다.
이청운 화백은 뇌경색으로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했고,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지만, 장경호화백도 마석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모두들 애주가이니 술이 병인이었을 게다.

몇 년 동안 술로 세상을 떠난 친구들이 여럿있다.
사진가 김영수씨를 비롯해 서양화가 여 운, 김용태씨가 비명에 세상을 하직하지 않았던가.
더 이상 친구들을 잃을 수 없다며 입을 모았다.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는 굿판이라도 한 번 열어야겠다.

“물렀거라~ 물렀거라~ 저승사자여 물렀거라~”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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