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태형’ 추모식장에서 밤새도록 퍼 마신 술자리는 다음 날 백제 화장터 까지 이어졌다.

문화사가 유홍준씨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강요배, 류연복, 박흥순, 이인철, 이강군, 장경호씨 등 여러 명이 어울려 땅바닥에 술상을 차린 것 까지는 좋으나 제주에서 올라온 강요배씨는 술이 취해 땅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하였다. 안쓰럽게 지켜보던 장경호씨가 초코렛 한 조각을 전해주자 그걸 먹고 벌떡 일어나서는 힘자랑에 나선 것이다. 옆에 있던 가로등을 뽑겠다고 설치다 가로등이 꼼짝달싹 않으니 이젠 산비탈에 올라가 큰 소나무를 뽑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중국 심양에 사는 이강군씨가 걱정스러워 데려오긴 했으나,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천하의 강장사께서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까짓 가로등 쯤이야 간단히 뽑았겠지.
그러나 술 취한게 천만다행이야. 

만약 가로등이 뽑혔다면 공공시설 파괴로 경찰서에 끌려 갈 뻔 했잖아.


 

 

 





인사동에서 노제를 마친 '용태형' 시신은 백제 화장터로 옮겨져,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인상무상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용태형' 부디 극락왕생 하소!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떠난 '용태형' 운구행열은 서소문 배제학당을 한바퀴 돌아 인사동으로 들어왔다. 오래전 문화운동의 본거지였던 '그림마당 민' 앞에서, 그 시절을 회억하는 유홍준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며 고인의 넋을 기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망자의 가게였던 '낭만'으로 자리를 옮겨 노제를 올렸다.

 

 

 

 

 

 

 

 

 


 

 

 

 

 

 

 

 

 

 

 

 

 

 

 

 

 

 

 

 

 

 

 

 

 

 

 

 

 

 

 

 

 

 

 

 

 

 

 

 


지난 4월19일은 채현국선생께서 팔순을 맞는 날이었다.  

 

노광래씨로부터 전화는 왔으나 시간과 장소는 좀 있다 연락하겠다는 것이다.
아마 선생님께서 본인 스스로 잔치 상을 차리기도 그렇지만 평소 자신의 일로 떠벌리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오후6시가 되도록 연락이 없기에 선생님께 인사 전화를 드렸더니 빨리 인사동으로 나오라고 재촉하셨다.

부랴부랴 축하선물로 드릴 작품 한 점 프린트해 나갔으나 이미 파장이었다.
그나마 들어가시는 채현국선생 내외분과 구중관씨를 골목 입구에서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안내된 술집에는 신경림선생을 비롯하여 강신옥, 김태서, 최혁배, 장경호, 노광래, 편근희, 남민우씨가

남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채선생님께서는 팔순을 알리지 않은채, 인사동에서 만난 분들과 점심 때부터 술을 드신 모양이었다.  

 

남의 일에는 팔을 걷어 부치지만 스스로의 일로 내세우지 않는 선생님의 성품을 알면서도,

미리 자리를 마련해 드리지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팔순 기념사진 한 장, 찍지 못한 것이다. 

 

뒤늦게 알게된 공윤희씨도 달려왔으나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

모두들 ‘노마드’로 자리를 옮겼지만, 술이 취한 분들과 서로 사이클이 맞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배성일씨와 나재문씨도 만났지만, 그냥 줄행랑쳤다.

 

 

 

 

 

 

 

 

 

 

 

 

 

 

 

 

 

 


지난 19일 오후, 오랜만에 인사동을 찾았다.

 

문학평론가 이정숙씨의 ‘낯선 듯, 낯익은 듯‘전에 갈 작정이었으나 같은 시간에

'학고재'에서 강요배씨의 전시 오프닝이 있다는 소식을 장경호씨로 부터 들었다.

매월 블로거에 올리는 인사동 전시들은 대개 알고 있으나 소격동 '학고재' 전시는

영역 밖이라 미처 파악하지 못했는데, 뜻밖의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먼저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전시부터 촬영 한 후, 부랴부랴 ’학고재‘를 향했으나

그 곳에서 만날 작정이었던 박윤호씨는 다른 약속으로  떠나고 없었다. 

 

전시장에는 강요배씨를 비롯하여 박재동,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 김석종씨 등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분들과 함께 와인 한 잔 나눌 수 있었다.
부족한 술은 뒤풀이에서 마실 작정이었으나, 장경호씨가 인사동 ‘노마드’로 안내했다.

신학철, 박불똥씨와 함께 간 ‘노마드’에는 미술평론가 유근오, 설치미술가 김언경,

행위예술가 타이거 백, 패션디자이너 손성근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뒤늦게 최혁배 변호사를 비롯하여 배성일, 안영상, 정기영씨가 나타나 술좌석이 무르익기

시작했고,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소주와 막걸리를 골고루 마셔 기분 좋게 취했다.

'아라아트'의 이정숙씨 전시장에 머물렀던 아내로 부터 갈 시간이 되었다는 전화를

두 차례나 받고서야 마지막 이별가를 불렀다.

 

찻집에는 아내와 박인식, 권영진, 전인경, 전인미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80년대 대표 민중미술작가로, 제주 4.3항쟁의 아픈 역사를 드러내기도 한

서양화가 강요배씨의 소묘전이 2월19일부터 3월30일까지 소격동 학고재에서 전시된다. 

8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30여년 동안 목탄으로 그린 돌하르방 드로잉 등 50여점을 선보인다.
지난 2월19일 오후5시부터 개막된 오프닝파티에는 박제동, 신학철, 박불똥, 장경호, 김정헌, 김석종씨 등

여러 지인들이 참석하여 전시를 축하했다.

 

 

 

 

 

 

 

 

 

 

 

 

 

 

 

 

 

 

 

 

 

 

 

 

 

 

 

 

 

 

 

 



지난 8월22일 오후 무렵,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와 더위가 한 풀 꺾인 거리 풍경들을 스케치하였다.

퇴근하시는 송상욱 시인을 만나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고, 툇마루의 ‘인사모’ 모임에서는

이동엽씨의 부음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기도 했다.

만취하고 싶은 생각에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셨지만 왠지 술이 취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김신용시인이 맡겨놓은 시집 찾는다는 핑게로 ‘노마드’에 들렸는데,

뜻밖에도 장경호씨와 신학철씨를 만나게되었다.

반가워하는 중에 안다혜시인도 나타났고, 뒤늦게는 현장스님도 등장하였다.
신학철씨가 술값을 먼저 계산하여 2차를 사겠다는 장경호씨를 따라 나섰는데,

종로경찰서 맞은편에 있는 “남자만”이란 술집이었다.

“여자만”에서 지배인 하던 아가씨가 독립하여 “남자만”이란 주점을 개업했다는 것이다.

여자건 남자건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 만나 우울했던 마음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인사동 사무실 '아트 온'을 방문해 주신 분들의 기념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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